풍속 30, 풍향 동남.
감각은 공기의 온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해졌다. 모의 훈련 환경에서 고속 원거리 탄환이 일으킨 수증기의 흔적은 스코프 없이도 잘 보인다. 재빨리 뒤로 피하는 순간, 탄환이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빗나갔다. 살짝 스친 반사광선은 상대의 위치를 드러냈다. 그건 저격 총 스코프의 반사광선이었다.
탄창은 이미 비었다.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겨 총알을 장전했다. 무거운 받침대를 잡고 있는 피부가 조금씩 뜨거워졌고 장전되는 소리가 울렸다.
집중력을 끌어모아 타깃을 찾았다... 조준경에 타깃의 머리가 보이고 그는 보일 듯 안 보일 듯 엄폐물 사이에 숨어있었다.
바로 지금이다!
생각할 겨를 없이 "탕"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날아갔고 청색의 연기가 총구에서 뿜어져 나왔다.
선수 A-14, 반즈, 아웃. 시뮬레이션 종료. 로그아웃 중입니다.
주위에 시스템 알림이 울려 퍼지고 알림 소리가 작아짐에 따라 시끌벅적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훌륭한 공격이었어. 순식간에 약점을 잡아내다니...
반즈, 방금까지도 우리를 사정없이 아웃시키지 않았나? 인체와 구조체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시뮬레이션이 차이를 조절했을 텐데...
눈 위에 쓴 장비를 벗자 맞은 편의 구조체도 장비를 벗었다. 본인이 등판하자 주위의 말소리는 점점 잦아들었고 이 잠깐의 고요함 속에서 둘은 눈이 마주쳤다.
……
반즈는 이런 훈련보다는 단독 훈련에 더 익숙하죠.
크롬이 옆에 있는 지휘관한테 설명했다.
반즈 저 자식이 훈련실을 차지하고, 잠만 자는 바람에 여기 지휘관들한테 끌려와서 훈련 상대를 하는 거잖아.
공휴일의 시뮬레이션 훈련실은 보통 한가한 구조체와 지휘관이 차지한다. 훈련실도 구조체와 인체의 전투 능력을 맞춰주는 기능이 설정되어 훈련하기에 편리하다.
임무에서 오른손을 삐끗한 바람에 리브가 한동안은 손을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해서 시뮬레이션 훈련을 온 건데, 차징 팔콘 소대와 반즈를 상대로 훈련을 기다리는 지휘관들을 만나다니...
그나저나 지휘관, 이 녀석이랑 훈련하니 어땠어?
지휘관은 지금까지 처음으로 반즈를 이긴 지휘관이야!
심지어 반즈는 어느 지휘관인지 상대도 몰랐으니... 지휘관을 특별히 봐준 것도 아닐 테고!
...아,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반즈가 갑자기 나타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이제야 알아본 듯한 말투로 이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둘은 임무를 같이 수행했었으니 아는 사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
그런데 지휘관님, 오늘 무슨 일로 사격 훈련실에 오신 겁니까? 이곳에 자주 들르지는 않으시던데...
그런 거였다니... 지휘관 님은 좀 더 쉬시는게 낫겠네요.
크롬, 계속할 거야? 방금 판은 총을 잡은 지 10초도 안 됐는데 반즈한테 당했어
나를 상대로 3분밖에 못 버티는 사람이 실력을 논할 처치가 아닌 것 같은데.
지휘관들이 저마다 장점이 있는 것처럼 모두가 사격을 잘하는 건 아닙니다. 심지어 이번 시뮬레이션은 가장 전통적인 저격 연습이었으니... 신형 권총을 주로 사용하는 지휘관의 손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이상한 게 아니죠.
음... 그나저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은 사격에 강한 타입이지?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처음으로 반즈를 이긴 사람이지?
...역시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답다고 해야 하나...
반즈 너 혹시... 카무이, 거기서 뭐 해?
아, 이거 말이야? 방금 만든 간판이야.
카무이는 "차징 팔콘 엘리트 저격수 파트너와의 훈련! 할인 특가 50/회"라고 적힌 간판을 들었다.
……
모처럼 휴일인데 반즈는 왜 이렇게 기운이 없는 거야?
모든 사건의 주인공인 반즈는 시선을 피하고 훈련실에 누워 잠잘 준비를 했다.
자지 마, 반즈... 뭐 하는 거야. 얼른 일어나 일해야지...
...하암...
리더, 반즈가 또 훈련실을 차지하고 잠을 자려고 해!
이 모습을 본 다른 지휘관은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난 아직인데.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나랑 몇 판 붙어볼래?
좋아, 자!
그럼 나도!
아... 어쩌다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을 만났는데...
그만 좀 귀찮게 해.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도 힘들겠지. 나랑 연습하자.
...그냥 개인 훈련부터 시작할게!
그 이상한 침묵은 뭐야?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거기 서!
모두의 눈길이 이곳으로 집중되는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반즈는 이미 조용히 자리를 뜨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