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로제타·아레테·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로제타·아레테·그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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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대지 위에 깊게 파인 트럭 타이어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한 명의 연구원이 고개를 숙인 채 그 흔적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연구원은 눈 위의 타이어 자국에 완전히 매료된 듯 보였다. 마치 그 자국 속에 숨겨진 신비로운 과학의 세계로 들어가, 학계를 뒤흔들 만한 중대한 보고서를 발견하고 정리해 낼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의 후두부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깨진 두개골 안쪽은, 내리는 눈 아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본래 과학 연구에 쓰였어야 할 모든 지성은 뒤통수 위에 아름답지 못한 붉은 꽃 하나를 피워낸 채 흩어졌다.

그가 그토록 집착하던 타이어 자국 역시 눈 위에서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약 10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이미 완전히 타버린 수송 트럭의 반쪽이 전복된 채 놓여 있었다.

나머지 절반의 화물칸은, 건물의 한 층이 통째로 잘려 나간 연구소 위에 걸쳐 있었다. 어딘가 조악하면서도, 브루탈리즘 건축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미감이었다.

현장에는 털과 가죽이 타들어 간 악취, 그리고 인체 피부가 완전히 연소되지 못하며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뒤섞여 있었다. 이들은 끝내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통유리 창 앞에서 그대로 발이 묶여 생을 마감했다.

불길에 그슬린 신체들은 자연스럽지 않은 각도로 뒤틀려 있었고, 서로 엉킨 팔과 다리는 아직 완전히 붕괴되지 않은 연구소를 마치 거대한 거미의 둥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죽었다.

북극 항로 소속의 한 기밀 연구소 내부

몇 시간 전

몇 시간 전, 북극 항로 소속의 한 기밀 연구소 내부.

기체 교체는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데이터 동기화도 97%까지 완료됐습니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 굳이 계속 이 자리에 계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엠베리아 사건이 공표된 이후로 저희 북극 항로 연구소는 구조체 기술에 대해선 절대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에 크롬, 리브, 베라… 수많은 구조체들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인간은 고개를 흔들어, 지금 이 순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기억의 파편들을 떨쳐내려 했다.

편견 없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데이터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player name]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휘관님의 도움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원래라면 기체 교체는 여기서 끝입니다만, 이번 신규 기체는 특수한 구조라 아인형과 인간형, 두 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어 추가 조정과 의식의 바다의 유지가 필요합니다.

…[player name].

뭔가 이상해… 허상 같은 게 자꾸 보여…

환각인가요? 신형 기체로 교체하면서 발생한 의식의 바다 문제로 보입니다…

잠시만 쉬고 계세요. 저희 연구소 특산품인 극저온 콜드브루 커피를 한 잔 가져오겠습니다. 이후에는 지휘관님께서 로제타님의 의식의 바다 안정화에 협조해 주셔야 합니다.

연구원은 일이 곧 끝날 사람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실험실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금속 문틈을 비집고, 실외의 기압과 함께 밀려 들어오는… 피비린내를 머금은 차가운 바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player name]——!

콰앙――!!

적의 습격이야!

실험실 문이 열리는 순간, 로제타는 아직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새 기체를 움직여 인간을 덮치듯 밀쳐냈다.

방금 전까지 커피 이야기를 나누던 "연구원"은, 굉음과 함께 인간이 서 있던 자리 위로 산산이 부서졌다.

전투에는 문제없어.

전부 감염체야. 수량은 30…… 아니, 60! 전부 중화기 장비야!

로제타는 휘광창을 휘둘러 실험실 출입구를 틀어막으며 감염체가 몰려오는 걸 막았다.

[player name], 우리 둘만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해. 근처 수비 부대와 연락이 돼?

통신 채널 1

(잡음)

통신 채널 2

(잡음)

통신 채널 3

???

통신 채널 3

도망치세요… 지금 어디에 있든… 사방이 모두 감염체예요…

육체가 찢어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통신이 끊어졌다. 피비린내가 수화기 너머로 스며들어 인간의 입과 코를 뒤덮는 것만 같았다.

통신 채널 3

빨리… 도망…

피거품이 죽어가는 자의 성대를 틀어막았다. 그는 어디가 안전한지 알지 못했지만, 살고자 하는 본능만으로 단말기 너머의 인간에게 지금 당장 해야 할 행동을 전했다.

침식체 무리

쉬익!!

수화기가 감염체의 손에 넘어간 듯했다. 인간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대와 대화할 생각이 없었기에, 차갑고 피 냄새 섞인 녹슨 공기가 들이치기 전에 통신을 종료했다.

어떻게 됐어, 상황이 별로 안 좋아 보이네?

너 데리고 철수하는 건 문제없어.

…최선을 다해 볼 게. 어디로 철수할 생각이야?

밖에 아직 쓸 수 있는 수송차가 있어. 내가 퇴로를 만들어 줄 테니까, 너는 생존자들 모아서 움직여.

너도.

서로 해야 할 일을 확인한 두 사람은, 속으로 3, 2, 1을 센 다음 각자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고출력 휘광창은 녹아내린 눈처럼 부드럽게, 앞을 가로막은 감염체들을 베어냈다. 로제타는 화력을 전개해 인간을 중심으로 안전지대를 만들어 냈다.

비록 로제타의 엄호가 있었지만, 인간은 여전히 힘겹게 감염체 무리를 돌파해야 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몇 차례의 공격을 간신히 피한 끝에, 드디어 수송차의 운전석에 올라탈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차량이라는 방패를 얻은 인간은 중무장 수송차로 감염체 무리를 밀어내며 질주했다. 이 노아의 방주는 부서지기 전까지는 사람들을 태운 채, 퍼니싱의 흉포한 파도 속으로 항해할 것이다.

[player name]! 측면이야! 피해!

본래 사각지대를 감시했어야 할 후사경은 충돌 속에서 이미 사라진 뒤였다. 로제타의 외침과 함께, 인간은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는 감염체가 수송차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로제타는 휘광창을 휘둘러 저지하려 했지만, 조정되지 않은 기체와 불안정한 의식의 바다가 그녀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감염체는 어느새 수송차 위까지 기어올랐고, 눈에서 반짝이던 공포의 붉은 빛이 멈췄다.

찌익——!

콰앙――!!

거대한 충격이 수송차의 화물칸을 날려 반쯤 붕괴된 연구소 위로 던져버렸다. 출항을 시도하던 노아의 방주는 결국 항해를 시작하기도 전에 퍼니싱의 거대한 파도에 삼켜졌다.

폭발이 지나간 뒤, 눈 덮인 대지 위에는 불꽃만 조용히 타올라 이 행성의 잔혹한 법칙을 부드럽게 속삭이고 있었다.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죽은 자뿐이라고 말이다.

설원

북극 지역

북극 지역, 알 수 없는 구역, 설원.

폭발로 인한 전신 타박상과 경미한 화상 외에는, 아무 문제 없다고? 하긴, 처음도 아니지… 이젠 운이 좋다고 칭찬하는 것도 의미가 없을 것 같군.

그쪽 상황은 이미 파악했다. 공중 정원에서도 적극적으로 구조를 준비하고 있어. 다만…

인간은 단말기 너머로 들리는, 아시모프의 미묘한 망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너도 알겠지만, 극지에 동원될 수 있는 전력은 제한적이다. 그리고… 방금 니콜라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불안정한 통신에서 인간은 나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공중 정원과 극지 지역 간의 통신이 전면 차단됐다. 즉, 지금 이 순간, 극지에서 유일하게 연결된 인원은 자신들뿐이다.

철수 지점인 안전 가옥과 이동 경로는 이미 네 단말기로 보냈다. 그곳에 우리가 미리 준비해 둔 수송기가 있어. 그걸 타면 공중 정원으로 복귀할 수 있을 거야. 다만…

극지 전역에서 강력한 신호 교란이 감지되고 있다. 지금도 네 방향으로 급속히 확산 중이야. 각지에서 발생 중인 정체불명의 습격과 더불어, 지상 부대와의 연락도 이 때문에 끊겼어. 대략 15분 후면, 우리의 통신도 완전히 끊길 거다.

정확한 시간은 장담 못 해. 그 말인즉, 안전 가옥으로 철수하는 동안 공중 정원의 지원은 아마 없을 거야. 네가 의지할 수 있는 건 너 자신과 로제타뿐이다… 다른 질문이 있나?

네가 제출한 보고서로 대략적인 상황은 파악했다. 신형 기체로 교체한 직후, 조정도 의식의 바다 안정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고강도의 전투에 투입됐고, 그 와중에 부상을 입었지. 게다가 수송차 폭발 당시, 널 보호하느라 충격 대부분을 대신 흡수했고… 더 보충할 내용이 있나?

로제타는 지금 옆에 있겠지? 현재 상태가 어떤지 직접 확인해야겠다. 아직 몇 분 남았으니, 로제타와 잠깐 통화하게 해 줘.

로제타는 황량한 설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극야의 하늘에는 거대하고 밝은 천체가 고요히 떠 있었고, 그 침묵 속에서 대지 위 생명들의 운명과 조수의 흐름, 세대의 교체를 묵묵히 지배하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눈과 얼음의 대지는 지평선을 따라 펼쳐지다 이내 차가운 밤 속으로 사라졌다. 드물게도 설원에는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하지만 도망치는 두 사람에게 이 고요함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태양을 흉내 낸 달빛이 눈 위로 쏟아졌고, 눈이 반사한 빛은 극지를 벗어나려는 두 사람의 모습을 자연이 세운 감시탑의 탐조등 아래로 끌어냈다. 거친 숨소리와 지친 발걸음 소리만이 쉼 없이 이어졌다.

밝은 달 아래, 여전히 울부짖는 건 차가운 바람뿐이었다…

방금, 무슨 소리지?

[player name], 너도 들었어?

아니… 분명히 소리가 들렸어…

???

???

[player name], 바짝 붙어…

파도 소리인가?

로제타는 이곳에 있을 리 없는 그 부름을 분명히 들었다고 확신했다. 과거와 다시 만난 듯한 감정의 파도가 그녀의 몸을 덮쳤고, 그 격렬함은 부서진 육체를 억지로 떠받치는 힘이 되었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 끝에, 로제타는 마침내 거대한 설사면을 넘어섰다.

피로, 통증, 무력감. 모든 불쾌한 감각은 부상으로 인해 몇 배로 증폭되어 조각난 새 기체에 달라붙었다. 소모 증가로 인한 부하에 잠시 숨을 고르던 로제타의 시야가 순간 어두워졌다.

그리고 다시 밝아졌을 때, 그녀의 눈앞에는 단조롭고 끝없는 설원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여긴?

설원은 이곳에서 끝나 있었고, 갈색과 녹색이 섞인 툰드라와 노출된 단단한 암반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곳곳에 남은 눈은 이곳이 한때 자신들의 영역이었음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더 멀리 있는 차가운 해안은 마치 따뜻한 품처럼 보였고, 해안가의 소박한 마을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불빛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다.

집? 저건… 할아버지의 집?

할아버지 집이 왜 여기에… 그리고, 이 마을은 대체 뭐지?

그건 말이다… 여기가,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이니까… 로제타, 할아버지를 보러 왔구나.

로제타의 귓가에 다시는 듣지 못할 줄 알았던 늙고도 다정한 목소리가 울렸다. 쉰 음성에는 재회의 울먹임이 섞여 있었고, 그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과거로부터 온 소리 같았다.

소박한 목조 오두막은 로제타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실내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불빛이 문 앞에 길게 드리워져 귀향자를 맞이하는 융단처럼 펼쳐졌다.

할아버지…

많이 컸구나, 로제타… 이제 다 큰 숙녀가 됐네.

오두막 안으로 들어서자, 허리가 굽은 노인이 자신보다 훨씬 커진 로제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넓고 거친 손은 노출된 기계 부품 위를 천천히 스쳐 지나갔고, 눈에는 안도와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참고 견디느라,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네.

아니에요, 할아버지.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스스로를 돌보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지켜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제가 약해졌을 때 저를 지켜주는 사람도 생겼어요.

그래? 그럼 다행이구나. 할아버지도 그 사람을 한번 보고 싶네.

[player name]이(가) 근처에 있어요. 할아버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지휘관을 데리고 올 게요.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왜요? 저도 지휘관에게 할아버지를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여긴,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이야.

포브는 그 단어를 다시 읊었다. 로제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알고 있던 그 답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자신과 할아버지를 갈라놓은 건, 거리도, 조직도, 권력도 아니었다. 바로 우주에서 단 하나, 절대 깨지지 않는 규칙―죽음이었다.

죽은 자들? 그럼 할아버지의 말씀은… 여기에 있는 모두가 이미 죽었다는 뜻인가요? 여긴, 사후 세계인가요?

로제타는 해안가에 조용히 자리 잡은 이 마을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불빛이 비치는 모든 창문 뒤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럼… 저는요? 저도 죽은 건가요?

아니란다, 로제타. 여긴 원래 세계야. 너와 내가 함께 살았던 세계고, 우리가 일하고, 숨 쉬고, 하루하루를 버텨냈던 그 세계야.

네가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건, 할아버지에게는 무엇보다 큰 행복이란다.

노인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로제타를 바라보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포브는 로제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창밖을 보라고 눈짓했다.

이 작은 마을은 마치 그녀의 시선에 순응한 듯 밤에서 깨어났다. 익숙하거나 낯선 얼굴들이 생계를 위한 도구를 짊어진 채 집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이 별 위의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 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다들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으니, 우리도 늦으면 안 되지.

노인은 돌아서서 벽에 걸린 익숙한 사냥용 활을 집어 로제타에게 건넸다.

사냥을 나갈 시간이다, 로제타…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걸 잊어버리진 않았겠지?

로제타는 포브가 건넨 활을 받아 들었다. 어릴 적에는 버거워 보였던 그 활이, 지금은 놀라울 만큼 손에 잘 맞았다.

우선은 사냥감부터 찾아야 해요…

이 계절엔 사슴 사냥이 제격이지.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요, 할아버지?

사슴이 있는 방향도 헷갈려 하다니, 많이 서툴러졌구나.

자신의 미숙함이 부끄러워진 로제타는 아무 말 없이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멀리 보이는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 발자국… 사슴은 아니에요. 제가 앞쪽을 더 확인해 볼게요!

천천히, 발걸음도 움직임도 가볍게 하거라. 로제타, 우리는 지금 사슴을 사냥하는 거지 사슴보다 빨리 달리는 게 아니란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사슴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어요, 할아버지.

노인과 소녀의 가벼운 대화는 갑작스러운 활시위 소리에 끊겼다.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이 숲을 가르며 날카로운 파공음을 남겼다. 숲 깊숙한 곳에서 색이 유난히 이질적인, 건장한 순록 한 마리가 뛰쳐나와 불청객인 두 사람을 마주했다.

로제타는 순록과 눈이 마주쳤다. 그 눈동자를 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로제타!

포브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로제타는 즉시 화살을 얹어 활을 당겼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활시위가 떨리는 소리에 순록은 이미 놀라 숲속으로 도망쳤고, 전력을 다해 날아간 화살은 허무하게 숲 깊숙이 박혀버렸다.

로제타, 무엇이 널 망설이게 한 거니?

젠장! 제가 쫓아갈게요.

실수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로제타는 포브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활을 다시 등에 메며, 구조체의 성능을 믿고 순록을 추격하려 했다.

로제타, 도대체 뭘 본 거야?

뛰쳐나가려는 로제타의 팔을 누군가 붙잡았다.

인간은 부상당한 몸으로 설원을 달리려는 로제타를 꽉 붙잡았다. 차가운 달은 여전히 극야의 하늘에 높이 떠 있었고, 하얀 눈과 얼음은 이 생기 없는 대지를 변함없이 지배하고 있었다.

로제타는 인간의 걱정 어린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숲이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끝없이 펼쳐진 백설이 반사하는 빛이 시신경을 찌르듯 스쳤다.

나도… 잘 모르겠어. 할아버지를 본 것 같아…

모르겠어…

인간은 한층 더 걱정이 섞인 얼굴로 아직 통화가 이어지고 있는 단말기를 로제타에게 건넸다.

로제타는 인간의 손에서 단말기를 받아 들었다. 통신 너머에서 아시모프의 냉정하면서도 신뢰가 담긴 목소리가 짧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 채널에는 "지직, 지직" 하는 잡음만 남았다. 아시모프가 예고한 대로, 신호 교란의 그물은 끝내 그들을 따라잡아 마지막 빈틈마저 메워 버렸다.

아시모프 얘기로는, 5일 안에 철수 지점인 안전 가옥에 도착해야 한다고 해.

인간은 잠시 생각했다. 방금 아시모프와의 통신에서 이 이야기를 직접 들은 기억이 없었다.

[player name], 안전 가옥 좌표를 다시 확인해 보자… 맞아, 오차가 없어.

과부하 전투만 피하면 된 대. 그 외에는 문제없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아. 그리고, 네가 있잖아. 날 환각에서 깨워주면 돼.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서로의 장비 상태를 점검했다.

…출발.

눈을 밟는 소리는 광활한 설원 속에서 모기 울음처럼 작게 흩어졌다. 극야의 하늘에 높이 떠 있는 달은 이 두 사람이 떠나는 길고도 고독한 여정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