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베라·비요·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베라·비요·그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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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로 찌르고, 세로로 벤 이후 전방 돌격으로 이어지는 공격

삐——삐!

인간과 비명소리와 흡사한 마찰음과 함께 침식체가 베라의 창끝에서 쓰러졌다.

음.

그녀는 창을 뽑아 창 막대기로 뒤에서 기습 해오는 침식체를 날려버린 뒤, 창끝을 다른 목표의 몸통에 쑤셔 넣었다.

잿빛 하늘 아래 금속 부품들이 가득 쌓인 땅 위에서 그녀는 기창을 휘두르며, 침식체들을 차례대로 처치했다. 그녀는 수많은 배우 사이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무용수처럼 보였다.

그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앞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춤을 지켜보며 날아오는 부품들을 조심스럽게 피했다.

뭐?

그 춤의 주인공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녀는 창을 휘두르며 곁눈질로 지휘관을 바라봤다. 마치 "별거 아니면 말하지 마"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구조체가 최전선에서 침식체들과 싸우면 지휘관들은 멀리서 지켜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왜? 불만 있어?

구조체가 주요 전투를 수행하고 지휘관은 후방에서 지원 및 지휘를 맡는 게 가장 흔히 보는 전술이긴 하지만...

쿵! 베라는 기창을 휘두르며 로봇의 몸통을 관통했다. 몸통은 이미 기능을 잃었음에도 사지는 여전히 버둥거리며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 했다.

그녀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로봇을 뒤로 던져버렸다. 발버둥 치던 침식체가 지휘관 발아래로 떨어졌다. 붉은 카메라 렌즈가 지휘관을 바라보고 있었고 입에서는 자극적인 금속 마찰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삐... 삐삐...

하지만 베라는 적을 완전히 무력화시키지 않고 적당히 공격한 뒤 한쪽에 버려두기만 했다. 작전이 시작된 뒤로 지휘관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다시 일어서서 공격하려는 침식체를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구조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안전 구역을 확보하고 싶었지만, 이리저리 휘둘리는 기창은 다가가면 반드시 다칠 수밖에 없는 장미의 가시와도 같았다.

삐...

손을 들어 격발한 순간 카메라 렌즈의 붉은빛이 어두워지면서 지휘관을 찌르려던 흉기가 간발의 차이로 바닥에 떨어졌다.

이제 알았어?

길을 튼 베라는 그제야 공격 속도를 늦추더니 창을 휘두르며 지휘관을 향해 조롱의 미소를 지었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평소에도 이렇게 전투하는 거 아니었어? 그냥 마무리 작업만 하라고 한 건데.

하하, 뭐 마음대로 생각해. 무서워도 어쩔 수 없어. 괜히 잘난 척하며 임무를 받은 자신을 탓해.

어차피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으니까. 곧 목적지에 도착할 거야.

베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기창을 바닥에 꽂고 무릎을 꿇었다.

지휘관 앞에 펼쳐진 건 로봇과 기계들의 잔해로 가득 쌓인 폐허였다. 매캐한 공기 속에서 금속 분말 냄새가 느껴졌다. 로봇 부품들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고, 그중에는 가끔 꿈틀거리는 것도 있었다.

으... 아...

베라가 몸을 숙인 그곳에서 로봇이 갑자기 끼륵끼륵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로봇은 아직 인간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원래는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구조체였을 것이다.

하. 이 정도로 침식되었는데도 움직인다는 거지?

그냥 죽어.

기창을 사용하기도 귀찮은지 베라는 바로 침식체의 내핵으로 손을 뻗었다.

찰칵. 심장이 파괴되는 듯한 미세한 소리와 함께 침식체의 몸통이 경직된 후 곧바로 스르륵 미끄러져 곱게 잠든 아이같이 베라의 품에 안겼다.

어디 보자. 이 자식한테는 뭐가 남았으려나...

베라는 허리를 숙여 방금 전 살짝 움직였던 몸통을 한참 동안 뒤졌다.

베라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던 지휘관은 그저 그녀가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미세한 마찰음에 불과했다.

그리고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거대한 로봇음에 고막이 터지려 할 때쯤, 드디어 침식체의 몸체에서 일어선 베라는 부품을 든 손으로 머리를 정리했다.

휴. 자원 회수 작업은 진짜 번거롭다니까. 게다가 구조체는 한 명밖에 파견할 수 없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일단 둘러보면서 수집해야겠어.

너? 네가 뭘 안다고? 걸리적거리지 말고 멀리 떨어져서 있어.

물론 구조체 부검을 참관하고 싶다면 반대하진 않겠어. 뭐 거기서 튀어나온 부품이 네 목을 가른다 해도 나완 상관없는 일이니까.

공중 정원은 이를 부검이라는 비교적 공식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베라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이 행동 뒤에 숨은 본질을 꼬집었다.

이번 작전은 자원 회수 외에 이후에 진행하는 임무 수행을 위해 주위 환경을 조사해야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죽은 전사들도 우리의 조사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별로 특별한 작전은 아니지만, 참여 경험이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휘관과 함께 작전에 참여했던 구조체들은 베라와 완전히 다른 스타일들이었다.

하, 흔적을 보아하니 전술이 뭔지도 모르는 구조체들이 나름 치열하게 싸웠었네.

코어 부위는 완전히 파괴됐네. 하. 반항할 힘이 없었던 게 아니라 무언가를 보고 절망해서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이야.

2시 방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구조체부터 시작된 거야. 아마 이들의 리더였겠지.

어디 보자. 아마 이 일대에서 이 방어선을 지키려 했을 거야. 5번 아니 6번 정도의 공격은 받아냈고 다시 반격을 시작하려던 그때 거대한 침식체가 이 구조체들의 리더를 밟아 뭉개고 저 나무 위로 던져버리는 걸 본 거 같아.

응. 그리고 제대로 공격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죽은 거야.

하, 신념이 없는 사람이라니. 슬프네.

지휘관은 더 이상 베라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두 눈을 감았다.

베라는 담담한 말투로 이곳에서 죽은 이들이 겪었던 전투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누군가는 죽기 살기로 저항했고 누군가는 비장하게 자신을 희생했으며 누군가는 당황하며 도망쳤다. 그녀의 분석 보고를 들으니, 전장의 상황과 그 상황 때문에 발생하는 죽음의 결말이 연상됐다.

그리고 베라는 그 죽음의 전장을 다시 끄집어내 분해하고 해석해 냈다. 그녀에게 이 모든 건 상황 분석에 필요한 소재일 뿐이었다.

지휘관은 어떤 기분으로 이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마주해야 할 것인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베라의 목표는 아주 명확했다. 그녀는 단순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이 사건의 결말을 기록해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죽음과 함께 하는 존재라는 뜻의 닉네임인 "사신"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임무였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하긴 했지만 정말 거기서 멍하니 보고만 있을 거야?

자칫하다간 너도 이것들처럼 될 수 있어. 일단 주위 환경에 익숙해지는 게 어때?

그래? 그럼 거기 있어.

나 지금 바쁘니까 너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 침식체가 공격해 오면 알아서 살아남아.

흐, 착하구나.

파괴된 부품 속에서 고개를 든 베라가 갑자기 지휘관을 향해 웃었다.

이때, 베라가 구조체의 몸통에서 작은 부품을 꺼냈다. 유리관 모양의 용기에 녹색의 용액이 담겨있었다.

지휘관은 처음 보는 부품이었다. 호기심에 지휘관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그것의 정체를 물었다.

아, 이거?

베라는 지휘관에게 진실을 알려줘도 되나 고민했었는지 잠깐 망설였다.

베라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눈을 깜박이다 지휘관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차피 이미 봤을 테니까 알려줄게.

베라는 캡슐 크기의 유리관을 높이 던지더니 다시 캐치했다.

이건 역판막 병원체 약물이야. 공중 정원이 대외비로 숨기고 있는 시약이지.

못 알아들었으면 됐어. 어쨌든 아주 비밀스러운 약물이라고. 원료부터 제작 과정까지 절대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되는 비밀로 가득하지. 그중에는 순식간에 통증이 온몸으로 퍼지게 하는 효과를 가진 약물도 있어.

아,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그럼, 기밀 사항이라는 것도 알고 있겠네?

복잡하게 말하는 건 귀찮아서 됐고. 간단히 말하면 정맥에 주사하면 죽기 직전의 인간도 다시 되살릴 수 있는 강심제야.

이건 모든 구조체의 척추 아래에 장착되어 있어. 방금 전처럼 구조체의 몸통을 박살 내지 않는 한 꺼낼 수 없지.

흐음. 구조체와 지휘관들의 관계로 볼 때, 이 물건이 공개되면, 얼마나 많은 지휘관이 절체절명인 순간에 구조체의 기체를 부수고 이 물건으로 목숨을 구하려 할지 너라면 예상할 수 있겠지. 한낱 구조체가 지휘관을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벌 수 있다는 데 뭐가 아깝겠어.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 이 기술은 지금까지 기밀로 내려온 거지. 극소수의 지휘관들만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아~ 그러니까 너도 특별한 지휘관 중 하나란 말이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이제 이 비밀을 알았으니 네 팀원들에게도 알려줘. 목숨이 위험할 때 자신을 구할 구조체를 찾도록 말이야.

하, 정말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겨 봐. 아주 자기가 먼저 희생하겠다고 난리일걸?

좋아. 루머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한테 떠벌리지도 않겠지. 계속 그렇게 생각해.

언젠가 정말 위험해지면 이 물건을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해.

지휘관은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베라의 말이 사실이든 거짓말이든 지휘관은 절대 전장에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혼자 살겠다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물론 다른 구조체의 몸을 희생하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고 지휘관은 생각했다.

그것만은 단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그래?

베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됐어. 상관없어. 어차피 여기 자원만 회수하면 끝이니까. 이제 보육 구역으로 돌아가자.

그녀는 일어서더니 여기저기 흐트러진 구조체들을 차버렸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수집한 부품들을 지휘관 쪽으로 던졌다. 이제부터는 지휘관에게 들라는 신호였다.

자, 그럼 출발하자고.

그녀의 말투는 날카로우면서도 가식적이었다. 그 소리에 지휘관은 오래전에 봤던 동물 다큐멘터리에 나오던 이름 모를 새들이 떠올랐다.

존경하는 지휘관님~

갑작스러운 친절한 호칭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