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크롬·영광·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크롬·영광·그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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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오스 지휘 학교 강당.

지금은 비상식적인 도전과 전략적 불확실성이 가득 찬 시대이기에 어느 길이 인류를 미래로 나아가게 할지 알 수 없다.

공중 정원 의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사람들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길은 반드시 고난과 역경, 피와 연기, 눈물과 땀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너희들 앞에 펼쳐져 있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언젠가 그 길을 걸었던 것을 후회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오직 오늘의 열정과 야망을 너희들의 머릿속에 단단히 새기고, 그것으로 자신을 채찍질하여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라.

힘들지만 위대한 여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기억해라, 전 인류의 기도와 희망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한다는 것을.

집에 돌아가는 모든 이들이 평안하길.

열정적인 연설이 끝나고 장내가 잠시 조용해졌다. 정적은 1초도 안 된 채 열렬한 박수 소리로 대체되었다.

연설대 밑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모두 일어났고,그의 연설은 모두의 마음을 울렸다.

공중 정원의 유일한 지휘관 학교의 학생으로서 그들은 자신이 짊어진 사명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사명의 무게는 깨닫지 못한 채 하산의 격앙된 말만 귀에 들어왔을 뿐 그 안에 있는 아픔은 깨닫지 못했다.

화약 연기와 피의 세례도 거치지 않은 새끼 독수리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곧 둥지를 떠날 것이라는 열망이 더 컸다.

 

공훈, 명예, 갈채... 이런 허무맹랑한 것들이 파오스 학생들의 심장을 울렸다.

"퍼니싱을 소멸시키고 지구를 되찾는다."라는 이 목표는 모든 학생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입학한 날로부터 그것은 그들의 기대이자 속박이었다.

오늘은 파오스 지휘 학교 학생들이 졸업하는 날이다. 또한 이미 졸업한 동문들이 학교를 방문할 수 있는 드문 날이기도 하다.

모처럼의 축제이자 놓칠 수 없는 행사이기에, 공중 정원 의회의 의장까지 참석해 지구로 떠날 전사들을 격려했다.

……

나는 무대 뒤에서 조용히 "후배"들의 희망찬 모습을 보았다.

목구멍 속에 뭔가가 걸린 것 같았고, 원래 머릿속에 확실히 외운 연설 내용 또한 물에 불린 것 마냥 몽롱하고 흐릿하게 변해갔다.

내 차례가 되기 전 순서에 따라 다른 사람의 연설이 있었다.

사회자

의장님의 연설에 감사드리며 이어서 훌륭한 동문 연설의 시간입니다. 우리들의 롤 모델이자 파오스 학교 전직 수석 중의 한 분을 소개해 드립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사회자

[player name]의 연설이 있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순서 변경에 어리둥절했다.

조명 아래에서 전쟁을 아직 겪어보지 못한 학생들의 맑은 눈빛을 받을 차례가 찾아왔다.

이제 내가 연설대에서 공허하고 텅 빈 구호를 말할 차례다.

사회자가 무대 위에서 내 이름을 불렀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고개를 천천히 돌리니 눈에 들어온 건 낯익은 얼굴이었다.

크롬이라는 이름의 구조체 청년이 내 뒤에 조용히 서 있었고, 훤칠한 몸매와 곧은 허리, 옅은 금빛 머리카락이 주인의 손에 의해 빈틈없이 다듬어져 있었다.

크롬은 예전 모습과 똑같지만 어딘가가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내 옷깃을 가다듬고 가슴에 달려있는 훈장 위치를 바로잡아주었다.

이렇게 하니 조금 흐트러졌던 내 옷이 크롬이 입는 옷처럼 단정해졌어.

모두들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player name]님.

크롬은 나의 망설임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간파한 듯했다.

후배들 기다리게 하지 마시고,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크롬은 천천히 내 몸을 연설대 쪽으로 돌렸고 살며시 등을 밀었다.

절묘한 힘 조절 덕분에 휘청거리지 않고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아마 주위에서는 자신만만한 걸음으로 보였을 것이다.

단순하고 힘찬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앞으로 걸어가게 하고 있었다.

무대 뒤에서 걸어 나와 대중들 시선 앞에 서자, 참지 못하고 뒤돌아보았다.

크롬은 아직도 무대 뒤 어두운 곳에 있었다. 내가 그를 보고 있으니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고독함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조명이 비추는 아래로 걸어갔다.

똑바로 서서, 심호흡을 했다.

미리 준비한 연설문이 물 흐르듯이 유창하게 흘러나왔다.

연설이 끝났다.

강당을 둘러보았지만 나를 지지해 줄 금빛 그림자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강당의 졸업 축제가 끝난 후, 나는 파오스 학원을 맘대로 거닐며 군 복무 이후 몇 안 되는 소중한 여유를 만끽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학생들은 모두 강당에 모여 훌륭한 졸업 동문들과 군 복무 후의 일어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미래에 얻을 명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정작 나는 그런 토론에 관심이 없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걷다보니 어느덧 예전에 수업을 듣던 교실 앞에 와 있었다.

교실 또한 복도처럼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문을 여니 뜻밖에도 금빛의 그림자가 보였다.

……

크롬은 교실 중앙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우주 정거장의 인공 천막에서 비치는 적색 빛이 그의 어깨를 물들였고, 틀에 박힌 우등생의 눈매가 지금은 상당히 부드럽게 보였다.

조용하고 평화로워 마치 한 폭의 유화 같았다.

그래서 나는 숨을 참고 발소리를 내지 않는 채 그의 옆자리에 가서 천천히 앉았다.

누군가가 온 것을 알면서도 크롬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몸을 돌려 의자 등받이에 양손을 포개고 턱을 손등에 대고 크롬을 바라보았다.

이때 크롬 앞에 있는 책상 위에 입체 홀로그램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공중에 옅은 푸른빛의 체스판이 생겨났다.

나의 시선이 느껴지자 크롬은 마침내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시선을 주고받는 순간 서로의 마음에 통하는 게 있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크롬이 왜 여기 있는지도 서로 묻지 않았다.

결국은 크롬이 침묵을 깼다.

[player name]님, 체스 한판 하시겠습니까?

크롬의 그 말에 나는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치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차징 팔콘의 리더가 아니며, 나 또한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아닌 것 같았다.

교실에 너무 일찍 온 학생이 다른 동급생에게 체스를 두지 않겠느냐고 묻고 느낌이었다.

대답하지 않았지만 크롬은 이미 나의 침묵 속에서 승낙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나를 향해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취했다.

흰색이 선입니다. 첫수가 기대되네요. [player name]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