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아이라·만화·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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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만화·그중 여섯

공중 정원, 점심 식사 후의 휴식 시간.

인공 천막은 푸르다 못해 눈이 부셨다. 아이라는 손을 내려놓고 다른 쪽 땅에 비친 햇빛을 가볍게 밟았다.

단말기가 울리더니, 매니저의 고함이 복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이라!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모레까지 새로운 전시 신청을 제출해야 해!

지난달에 주기로 한 새 작품집은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지!

아이고, 예술이란 게 급하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

더 이상 미룰 수 없단 말이야! 오늘까지야! 정리한 작품집을 꼭 봐야겠어!

뭐가 그렇게 급해~ 작품집을 정리하는 것도 영감이 필요한데~

모퉁이를 도니, 목적지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이라

음~ 알겠다고~ 영감 찾으러 갈게, bye~

아이라는 망설임 없이 단말기를 끊어 매니저의 포효를 차단한 후, 그레이 레이븐 휴게실 팻말이 걸린 문을 열어 살금살금 들어갔다.

이 시간에 지휘관은 아마 서류를 처리하고 있을 거야!

따스하게 비친 오후 햇살 덕에 겨우 눈꺼풀을 올려,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런 반복된 서류 업무는 도대체 언제 끝날 수 있는 걸까...

편안한 온도는 빨리 팽개치고 낮잠을 자라고 재촉했지만, "긴급"이라고 적힌 서류가 "반드시 오늘 내에 완료"해야 한다고 경고를 하고 있었다.

졸음이 몰려올 때, 밖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시아 일행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가?

역시! 지휘관, 여기 있었구나!

하얀색 코팅을 입은 핑크색 머리의 구조체가 활기차게 뛰어들어와, 상큼한 과일 냄새를 풍기며 오후의 나른한 공기를 가시게 했다.

쉿! 내가 여기 있는 걸 절대 매니저에게 들키면 안 돼!

아이라는 소파에서 가장 편안한 자리에 앉은 후, 화구 가방을 꺼냈다.

매니저가 새 작품집을 내놓으라고 어찌 재촉하던지... 근데 사실 저 마지막 작품을 채 못 그렸거든.

엄연히 예술가의 사정이 있는 건데, 미룸병은 아닌걸?

조용히 있을 테니까, 조금만 여기에 숨어 있게 해줘. 제발~

아이라는 눈을 가늘게 떠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간절하게 두 손을 모아 부탁을 했다.

헤헤. 고마워, 지휘관. 내가 영감을 좀 찾은 거 같아~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급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아이라는 붓을 집어 든 채, 때로는 주변 환경을 훑어보며, 때로는 화판 위에서 구도를 잡는 듯한 제스처를 하곤 했다.

도대체 어떤 영감이...

자신의 호기심을 억누르며, 마지막으로 남은 몇 개의 "긴급" 서류를 모두 확인했더니 2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해는 서쪽으로 지기 시작했다. 찬란했던 금색은 점차 오렌지색으로 물들었고, 아이라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도화지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조용한 방에는 그녀의 붓이 종이에 닿는 소리만 들렸다.

그레이 레이븐 휴게실이 아이라의 도화지에 완벽히 재현되었다.

책상에 놓인 다 마시지 못한 커피잔, 지휘관이 의자 등받이에 걸친 코트, 심지어 실수로 소파 쿠션 사이에 떨어트린 만년필까지, 모든 디테일이 이 작은 도화지에 복각돼 있었다.

그림에 지휘관의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지휘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흥흥~

아이라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심한 척 지휘관을 몰래 훑어봤다.

아이라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붓을 움직이자, 책상 뒤쪽 의자 위에 작고 귀여운 만화 스타일의 캐릭터가 나타났다. 하지만 두꺼운 서류에 거의 묻혀 있었다.

지휘관이 훔쳐보고 있는 걸 진작에 눈치챘거든!

봐~ 정말 생동감 있지 않아? 파일에 묻혀버린 불쌍한 지휘관?

그냥 과장된 표현일 뿐이야~

아이라는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그러고는 못된 웃음을 지으며, 만화 스타일의 캐릭터에게 고양이 수염을 몇 개 더 그려줬다. 마치 지휘관이 그녀의 얼굴을 얼룩덜룩하게 그린 것에 대한 "복수" 같았다.

어? 지휘관?

책상에서 연필을 꺼내어 소파에 앚아 간단하게 사람의 형체를 그렸다.

이건... 내 신규 코팅?

동그란 모양의 장식 안경, 특별한 옷깃 디자인, 깜찍한 모자...

아이라는 내 옆에 앉아, 조용히 집중하며 지휘관의 도화지를 쳐다봤다.

그림 실력이 여전히 서툴렀고, 쓸데없는 선도 있었지만, 연필의 움직임에 따라 아이라의 모습이 종이 위에서 점점 생생해졌다.

반복된 수정 끝에 그림을 완성했을 땐 이미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따뜻한 주황빛이 도화지에 번져, 그림 속 그레이 레이븐 휴게실을 따스한 색깔로 물들였다.

후, 잘 그렸네.

이쪽 선까지 예쁘게 처리됐어.

지휘관, "졸업"해도 될 것 같네.

아이라는 눈웃음을 지으며 이 작품에 매우 만족해하는 듯했다.

이건 지휘관이랑 "함께 창작"한 첫 작품이니까, 잘 보관해두어야겠어!

아이라가 또 입을 열려고 할 무렵, 갑자기 단말기에서 긴박한 소리가 울렸다.

아이라! 왜 지금 작업실에 없는 거야!!

어... 저기, 나 지금 작업실에 있는 거 맞는데. 작품 준비 중이야.

지금 내가! 네 작업실 앞에서! 5분째 노크하고 있거든!

내일! 내일까지 네 작품집을 못 본다면, 우리 같이 저 세상으로 가면 되겠네!

으아아앙, 진정해! 지금 바로 돌아갈게!

아이라는 갑자기 불에 덴 고양이처럼 소파에서 튕기 듯 일어났다.

지휘관! 내 차기 전시회는 다음 주에 개최하거든! 다음 주 월요일에 시간 괜찮아? 월요일에 함께 전시관 레이아웃을 확인하러 가자.

우리 약속했잖아. 시간만 된다면, 내 첫 관객이 되기로 했잖아!

시간 되면 연락 줘! 나 먼저 갈게!

아이라는 나타났을 때와 같이 황급히 떠났다.

해가 지면서 주황색 빛깔도 더 이상 방에 머무르지 않았지만, 따뜻했던 기운은 여전히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예술 협회.

매니저가 붙인 사람의 감시를 피해 몰래 작업실로 들어간 후, 아이라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화구 가방에서 그림을 꺼냈다.

음... 게으름을 피우는 난 이런 모습이었구나.

아이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선으로 그림 속의 게으른 소녀를 묘사하고 있었다. 눈동자 안에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새로운 색채가 담겨 있었다.

아니면, 지휘관의 시선 속의 내가 이런 모습인 걸지도...

뭔가 떠오른 아이라는 수납장을 열고, 소중히 보관해 둔 액자 몇 개를 꺼냈다.

액자에는 노트에서 떼어낸 반 페이지의 종이, 제대로 된 도화지, 불에 탄 흔적이 남은 종이, 심지어 혈액과 순환액이 묻은 붕대까지 들어 있었다

조잡하다고 할 수 있는 물건에는 모두 예외 없이 앞에 있는 소녀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 실력은 서툴렀지만 점점 능숙해지는 게 보였다. 음영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실력에서 자유로운 터치로 더 깊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아이라는 벽에서 액자를 걸기 위한 밧줄을 잡아당겨, 그림들을 한 줄로 배치해, 밧줄 위에 반듯하게 걸었다.

지휘관이 바라본 나는 "예술가"와 "전사" 외에도 이렇게 다양한 "모습"들이 있구나.

아이라는 마치 지휘관의 눈을 통해 자신을 응시하 듯,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틀에 박힌 태그를 떠나서,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아, 그리고 허용되는 연약함...

깃털이 수면에 떨어지는 듯, 그림이 전하는 섬세한 감정들이 가장 깊은 의식의 바다를 건드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아이라는 항상 자신을 하나하나의 태그 위에 놓았다. "예술가", "전사"...

이렇게 화려한 태그들로 한층 한층 감싸진 아이라는 태그 속의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거의 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그림들이 아이라 몸에 붙어 있던 태그를 하나씩 떼어내어, 태그 속에 숨겨진 진정한 "아이라"를 드러냈다.

아,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네.

머릿속에서 그 사람의 모습을 그리며, 아이라는 도화지를 펼쳐 배경을 아침 햇살의 색감으로 물들였다.

다음에 지휘관은 무엇을 그릴까?

싱그러운 색채가 황량한 사막을 가로질렀다. 한 송이의 꽃이 도화지에, 그리고 소녀의 환한 미소 속에서 피어났다.

아이라의 마음은 한때 황야에서 길을 잃은 새 같았지만, 마침내 그녀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자신만의 하늘을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