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황야를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눈앞에는 황사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현재 시각 오전 9시 12분. 이 구역의 기온은 10분마다 0.7도씩 상승하고 있었다.
뜨거운 기온은 거대한 압력솥처럼 이 사막을 지나는 사람들을 천천히 그리고 무자비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정신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출발하기 전의 그날 밤이 떠올랐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나?
밸러드의 해방 운동이 끝난 후, 망각자와 공중 정원 모두 각자 뒤처리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와타나베와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와타나베로부터 암호화된 통신을 받게 됐다.
항상 진지하고 침착한 그의 표정에는 드물게 피곤함이 묻어 있었고, 이마를 덮은 헝클어진 머리가 오랫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음... 역시 너한테는 숨길 수가 없겠군.
미안. 일부러 숨긴 건 아니야. 다만 나도 생각을 다 정리하지 못해서 그래.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 와타나베의 주위에서 총기가 부딪치는 소음과 모닥불 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음. 그 사건 이후, 밸러드가 선동해서 만든 여러 조직을 모으려고 애쓰는 중이거든.
하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 번 자리 잡은 생각을 없애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잖아.
더군다나 그들은 이미 무기를 들어봤고, 무력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맛도 봤어.
안심해. 밸러드가 죽은 뒤로 진통 계획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어. 이제 큰 소란을 일으키지 못할 거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손댈 수 없는 죄악이 암암리에 자라고 있지.
잠시 침묵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린 와타나베는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너만 해결할 수 있어.
인심 한 번 쓴다고 생각하고 지상으로 내려와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긍정적인 대답을 듣자, 와타나베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건 네가 직접 와서 보면 알게 될 거야.
흔들리는 등불 아래, 와타나베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목적지의 정확한 좌표를 알고 있는 지휘관은 찾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막에서의 긴 여정은 그리 녹녹하지만은 않았다.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없었고, 와타나베와 약속한 접선 장소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막에서 이동할 때는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고개를 최대한 숙여야만 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또다시 떼려는 순간, 강하고 단단한 힘이 어깨를 짚으며 지휘관의 지친 몸을 지탱해 주었다.
고개를 들자, 시야에 은발의 커다란 구조체가 들어왔다. 변함없이 의젓한 표정에는 일말의 걱정이 묻어나 있었다.
버틸 수 있겠어?
두꺼운 갑옷을 입은 그의 팔은 생각보다 뜨겁지 않았다. 그리고 들고 있던 찬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지휘관 이마의 열기를 닦아주었다.
세 시간 전에 네가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어. 수송기 속도를 고려했을 때, 빠르면 한 시간 안에 지상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접선 장소에 나타나지 않길래 네가 출발한 경로를 따라 여기까지 찾아왔지.
괜찮아. 사막에서는 흔한 일이니까.
아직 힘이 남아있다면, 출발해 볼까?
와타나베는 인간 지휘관의 어깨를 받쳐주며, 이 끝없는 황사 속에서 다시 짧은 여행을 시작했다.
와타나베가 받쳐주는 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든든했다. 그의 곁에 있기만 하면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생각이 짧았어.
다음번엔 안전한 접선 장소를 정한 뒤, 네가 도착 지점으로 마중 나갈게.
우리의 협력이 이번 한 번뿐이라고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살짝 고개를 숙인 와타나베는 머리카락 아래의 그늘로 표정을 숨겼다.
와타나베가 알게 모르게 드러내는 배려를 눈치챈 지휘관은 그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난 이미 너를...
말하던 와타나베가 갑자기 말을 돌렸다.
그는 말하는 속도를 늦추며, 드물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내가 공중 정원의 만행을 완전히 용서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은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너는 나에게 중요한 협력 대상이야.
그래서 내가 널 지켜줄게.
말을 마치고 다시 굳은 표정으로 돌아간 와타나베는 더 이상 이 화제를 이어 나가지 않으려 했다.
지휘관은 아직 한참 남은 사막의 여정에서 믿을 만한 동행자가 생겨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와타나베와 함께 오랜 시간을 걸은 끝에, 드디어 전방에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후, 많은 익숙한 얼굴들이 오아시스 주둔지에서 사라졌지만, 대신 많은 신병들이 가입했다.
애니! 저쪽 선반은 건드리지 마! 넘어지면 또다시 정리해야...
아. 와타나베 님. 안녕하십니까?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장관이라고 불러.
네. 장관님!
장관님. 이 손님은 누구십니까? 제가 안내를 도와드릴까요?
잠시 생각한 와타나베가 설명하려던 그때, 주둔지 주변을 맴돌고 있던 아이들이 몰려왔다.
교환상이 또 온 거예요? 오랜만이네요. 이번엔 또 어떤 재미있는 걸 가져오셨어요?
지난번에 만들어 주신 등롱은 잘 간직하고 있어요. 이따가 보여드릴게요!
그래도 대문에 걸지는 말아요. 어른들한테 혼날 거예요.
아이들이 자주 얘기하던 교환상이 바로 당신이군요. 죄송해요. 제가 망각자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몰라뵀어요.
네! 제가 살던 보육 구역도 밸러드의 선동에 휘말려 폭동에 가담하려 했어요. 와타나베 장관님께서 제때 그 음모를 막아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는 여기에 서 있지 못했을 거예요.
와타나베 장관님께서 지상의 평화를 위해 큰 공헌을 세우셨잖아요. 저도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요.
과장해서 말하지 마. 그건 나 혼자만의 공이 아니다.
이런 얘기 그만하세요, 너무 지루하잖아요. 같이 나가서 놀아요~
밖에 길도 다 다져졌으니까, 숨바꼭질하면 재미있을 거예요!
멍멍!
온몸에 모래가 잔뜩 묻은 목양견 한 마리가 지휘관의 발치로 달려와, 친근하게 주위를 맴돌았다.
성냥아! 방금 어디 갔었어? 한참을 찾았잖아!
멍멍~
멍멍대는 성냥은 자신이 일부러 사라진 게 아니라고 항의하는 것 같았다.
귀여운 강아지를 보고 마음이 녹아내린 지휘관은 참지 못하고 쭈그려 앉아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었다.
멍!
성냥이는 이제 우리 소대에 꼭 필요한 수색원이에요. 와타나베 아저씨도 성냥의 사람 찾는 속도가 빠르다고 칭찬해 줬어요!
맞아. 무작정 찾는 것보다 성냥이한테 목표를 데려오라고 시키는 게 훨씬 빠르더라고.
게다가... 성냥이는 우리 주둔지의 병사들과도 잘 지내고 있어서 이제는 우리의 중요한 일원이 됐어.
멍멍~~
와타나베가 자신을 칭찬하는 것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어린 목양견은 더욱 빠르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럼, 오후에 성냥이를 데리고 사막 보물 찾으러 가실 거죠? 성냥이도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어? 또 가요?
좀 더 힘내봐요! 우리 탐험대가 중간에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그러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요!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여전히 다음에 무엇을 할지 재잘거리며 토론하고 있었다. 그들의 밝은 눈동자에서는 방금 끝난 그 대혼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콜록. "망각자 예비대 K-107".
와타나베의 명령이 떨어지자, 방금까지 떠들던 세 아이는 즉시 자세를 바로잡고, 완벽한 군례를 올렸다.
"예비대 K-107" 대장 애니. 장관님께 보고드립니다!
어제 너희가 판 구덩이를 메우라고 했는데, 그 임무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아, 와타나베 아저... 아니. 장관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깜빡했습니다.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세 아이는 성냥을 안고 허둥지둥하며 달려갔다. 다시 고개를 든 와타나베는 마른 신병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손님과는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넌 평소 하던 임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네! 장관님!
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했던 광장은 순식간에 질서 정연하게 변했다. 와타나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뒤, 지휘관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가자. 이 여정의 진짜 목적을 알려줄게.
와타나베의 거처에는 개인 물품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잘 정리되고 분류되어 벽에 걸려 있는 무기들이 주인의 깔끔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민트차 두 잔을 내온 와타나베가 지휘관을 찻상에 앉으라고 권유했다. 시원한 민트향이 사막의 열기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것 같았다.
앉아. 역시 이런 어투로 얘기하면 더 편하네.
방금 봤듯이, 신병들은 과장된 소문을 듣고 망각자에 합류한 거야. 하지만 난 소문이 말하는 것처럼 대단하지 않아.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이런 시대에 희망을 볼 수 있다는 게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희망을 지키는 게 내 책임이다.
몸을 똑바로 세운 와타나베는 전에 없었던 단호한 눈빛을 보였다.
지휘관도 이제 곧 본격적인 화제가 시작될 것임을 깨닫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player name]. 솔직하게 말할게. 네 도움이 필요해.
밸러드의 잔당들은 전쟁 후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 하지만 그들도 대세가 기울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 지금은 "저항자"라고 자칭하면서 보육 구역 근처를 떠돌며, 평민들을 선동해 보급 노선의 물자를 훔치게 하고 있지.
보육 구역의 평민들에게 "저항자"를 떠나라고 설득해 봤지만, 그들은 이미 밸러드 잔당에게 완전히 세뇌당해서, 망각자들의 행동이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걸 전혀 믿지 않고 있어. 게다가 폭력적인 진압은 더 많은 혼란의 씨앗만 뿌리게 될 뿐이야.
그리고 일정한 명성을 가졌지만, 동시에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돼. 그래야 공중 정원과 망각자가 결탁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있어.
그런 입장의 사람이 보육 구역 제도가 지금 상황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말해야만 그들이 믿을 거야.
그래서 이 역할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자 평민들의 마음속 "영웅"인 [player name]. 너만이 할 수 있어.
와타나베는 스스로도 방금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말한 자신이 웃긴 듯 가볍게 웃었다.
그럼, 도와줄 거야?
황사는 여전히 이 황량한 대지를 떠돌고 있었지만, 이 사막에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