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가슴속에 얼마 되지 않는 공기를 수압으로 다 밀어내고, 코로 들어온 바닷물은 내가 호흡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시키는 공포스러운 그녀의 일면을 보여줬다.
어둠, 추위, 고요함이 주변을 감싸며, 날 끌어내리고 있었다.
몇몇 허상들이 끊임없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살아 있거나 죽었거나, 익숙하거나 낯선 기억 속의 모든 사람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정신이 흐릿한 가운데,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 것 같았다.
지... 손을... 내게...
단단한 금속의 촉감이 손바닥으로 전해져 왔고, 뒤이어 상승하는 힘이 느껴졌다.
차가운 바닷물에서 벗어나 잃어버렸던 공기를 들이마셨고, 붉은빛이 어둠을 몰아냈다.
고개를 들어보니, 밝게 빛나는 붉은색 거성이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다.
맞아. 노년기에 접어든 상징이기도 하지.
우주복을 입은 나나미가 내 옆에 서있었다.
지휘관은 마음에 들어?
우주 비등현상, 치명적인 방사능, 극단의 온도 등 평범한 육체를 가볍게 파괴시킬 수 있는 우주 현상을 말하지 않아도...
내가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식에 어긋났다.
지휘관이 우주에서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나나미가 작은 수단을 사용했어.
나나미는 오랫동안 준비하면서, 이 순간만을 기다렸어.
나나미가 나를 향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지휘관, 나나미랑 같이 가줄 수 있어?
이 말을 들은 나나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손바닥에 얹혀있던 손을 꽉 잡았다.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힘이 셌다.
응!
우주는 매우 크다.
이건 일반적인 인식이다. 공중 정원에 오랜 산 난 이 점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었다.
나나미의 '작은 수단' 아래서 난 처음으로 우주의 온갖 진기한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먼지로 이뤄진 오색 성운,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지만 서서히 늙어가는 백색 왜성, 항성을 흡수하는 블랙홀, 서로 부딪히고 융합하는 은하...
하지만 아무리 기이한 장면도 우주의 시점에서는 평범하게 보였다.
1억 년 전의 오래된 빛은 무한한 우리를 만들어, 모든 사물을 '광속'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었다.
보이는 것은 예전의 잔향일 뿐, 쫓던 것은 이미 소멸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망막에 비치는 것은 수십만 년 전의 모습이었다. 난 호박 속에 갇힌 곤충처럼, 시간 속에 무자비하게 버려져 있었다.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유일하게 실감이 나는 것은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온기와 앞에 있는 은색의 그림자였다.
뭔가 알아차린 듯 나나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산책' 시간이 끝날 때가 된 것 같네. 지휘관을 집에 데려다줄게.
지휘관, 나나미는 속도를 낼 거니까, 손 놓으면 안 돼.
음... 그렇게까지 꽉 잡을 필요는 없는데...
전방의 시야가 파란색으로 변했다. 모든 별은 지나갈 때, 붉게 변했고, 등 뒤에 있는 큰 붉은 성운에 합쳐졌다.
이건 일정 수준까지 속도를 내야 볼 수 있는 적색편이였다. 시간과 공간은 색깔로 나누어졌고, 멀리 있는 파란색은 '미래'를, 뒤에 있는 빨간색은 '과거'를 의미했다.
이런 리얼하고도 환상적인 풍경은 차원을 벗어난 것 같았다.
시야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을 때, 눈앞에 익숙한 푸른 별이 나타났다.
지휘관, 돌아갈 때야.
소녀는 손을 떼고 살포시 밀었다. 난 중력의 힘에 의해, 푸른 모성으로 떨어졌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작은 그림자를 향해 소리쳤다.
나나미는 그냥 여기 있을 거야. 하지만...
소녀는 눈을 깜박이며, 평소의 장난스런 표정을 되찾았다.
계속...
뒷말은 이제 잘 들리지 않았고, 의식은 하얀 빛에 부딪혔다.
지...
몸이 흔들리고, 앞에 있는 희미한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내가 소파에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지휘관, 일어났네. 느낌이 좀 어때?
마지막에 경험한 우주여행은 여전히 비현실적인 느낌을 줬다. 익숙한 사무실에 있음에도, 현실로 돌아온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 봐봐.
나나미가 옆에 있는 사무용 책상에서 서류 몇 장을 가져왔다.
이건 지휘관이 아직 처리하지 못한 서류잖아. 어때, 기억나지?
나나미가 마이보에다가 수많은 상황을 업로드하긴 했지만, 지휘관이 임시로 처리해야 할 문서까지 재현할 정도로 정확하지는 않아.
자세히 보니, 내 기억과 진행 상황이 일치한 것으로 보아, 확실히 게임에서 나온 것 같았다.
그럼 지휘관, 나나미는 먼저 가볼게.
나나미가 마이보를 문밖으로 끌고 나가면서 내게 말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느낌이라는 게 이런 느낌일까?
하지만 내가 묻기도 전에, 나나미의 모습은 문밖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마음속에는 아직 많은 질문들이 있었지만, 나나미가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은 이상, 내가 해야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사무용 책상 위에 있는 갓 내린 커피 한 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커피를 들고 입에 갖다 댔다.
참지 못하고 전부 내뿜어 버렸다.
소녀는 마이보의 복잡하게 엉킨 케이블에 집중하며, 무언가를 자세히 찾고 있었다.
음... 어디에 뒀더라?
힌트, 마이보의 전송 인터페이스는 오른쪽 손잡이 뒤에 있습니다.
어, 진짜네. 마이보 너 정말 대단한데!
나나미님, 과찬이십니다. 따라서, 마이보는 나나미님께서 마이보의 CPU 보호 케이스에서 드라이버를 즉시 제거해주실 것을 권장합니다. 전송 인터페이스는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헤헤, 데이터 전송 시작...
나나미는 반드시 이 기억들을 잘 간직할 거야.
질문이 있습니다. 나나미님의 메모리에도 관련 기억 데이터가 있는데, 왜 마이보의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는지 궁금합니다.
마이보는 이런 식으로는 의미가 없고,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낭비가 아니야.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다면, 다들 이렇게 할 거야.
이런 일에 있어서는, 양쪽 모두 득실을 따지지 않아.
이런 일이라면?
마이보가 크면 알게 될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