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앙카·휘명·그중 하나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가.
자네마저도 실패한다면, 강제로 깨우는 걸 시도할 수밖에 없어.
조심해... 그녀를 구하기도 전에 너까지 위험해지면 안 되잖아.
<color=#ffffffff><size=50>그곳에...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어요.</size></color>
<color=#ffffffff><size=50>그녀를 찾아서 데려... 데려와야 해요.</size></color>
<color=#ffffffff><size=50>당신 곁으로.</size></color>
쓰읍... 이 망할 눈보라, 역시 1월이라 그런가? 데이비스, 앞쪽 상황은 어때?
너무 추운데.
하... 하... 불빛이... 보입니다.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습니다. 전방에 성당이 보입니다.
하... 우리를 쫓아오는 놈들도 우리처럼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맸으면 좋겠군.
온몸의 장기에서 격렬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지휘관님 상태는 어떤가요?
상처에서 계속 피가 나고 있어,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지휘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차체의 흔들림에 따라 등불이 희미한 불빛을 내뿜었지만, 이내 휘날리는 눈보라 속에 희미하게 삼켜져 버렸다.
매서운 찬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얼마 남지 않은 체온마저 앗아가고 있었다.
마차를 따라 뛰던 청년은 지휘관이 깨어난 것을 보고 급하게 마차에 올라탔다.
성녀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니, 분명 괜찮으실 겁니다!
데이비스는 마른 몸을 움직여 바람구멍을 막은 뒤, 외투를 벗어 지휘관을 꽁꽁 감쌌다.
지휘관님께서 뭐라고 하시는 거지?
누구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습니다.
이제 곧 도착하니 괜찮으실 겁니다, 지휘관님. 성당에 도착하면 성녀님께서 분명 우리를 받아주실 겁니다!
성당에서 멈춘다고? 지체할 시간이 없어. 그놈들이 아직 우리를 쫓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것들이 정말 그렇게 강했다면, 방금 그 전투에서 우리는 전멸해야 했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쳤기 때문에 탈출할 수 있었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눈길 속에서 이렇게 길을 재촉한다면, 다친 동료들을 버리고 가는 것과 뭐가 다르죠?
그러니 저 앞 성당에서 잠시 쉬었다가, 그들이 조금이라도 회복되면 다시 출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았어, 네 말대로 하지. 이랴!
말발굽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달려 나갔다. 마차의 흔들림 속에서 극심한 통증이 마수처럼 의식을 덮쳐 짙은 어둠 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래서... 성당이 당신들 부대를 잠시 받아주길 바라시는 거군요?
네, 보니 양. 저는 믿어요. 성당의...
죄송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혹... 혹시 성당에 어려움이 있는 거라면,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시치미 떼지 마시죠! 눈보라가 한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잖아요. 당신들도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지휘관이 피곤한 눈꺼풀을 힘겹게 뜨자, 몇몇 사람이 격렬히 논쟁하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마을의 보급이 끊긴 지금, 아이들은 끼니를 굶고 있는데, 군인들에게 줄 식량이 어디 있겠어요!
당신...
보니의 날카로운 대답을 듣자, 옆에 서 있던 소대 대장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데이비스가 손으로 막아섰다.
보니 언니, 하지만 성녀님께서... 저분들은 우리를 지켜주는 분들이라고 하셨잖아요.
사사야, 잘 들어. 저들이 손에 든 칼로 우리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그걸로 우리를 해칠 수도 있어.
게다가 비축한 식량도 얼마 안 남았잖아. 지금은 비상 시기라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거절해야만 해. 신께서도 우리를 용서해 주실 거야.
보니는 곁에 있는 아이에게 조용히 당부한 뒤, 다시 고개를 들고 비웃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당신들이 오기 전, 갖은 핑계를 대며 들어오려고 했던 소대가 무려 셋이라고요.
군영 측의 식량이 다 떨어져서, 성당에 구걸하러 온 거 아닌가요?
지휘관이 일어나려 하는 순간, 두 손이 지휘관의 허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온화하지만 단호하게 눌렀다.
많이 다치셨어요, 함부로 움직이시면 안 돼요.
지휘관이 고개를 돌리자, 한 쌍의 맑고 깨끗한 눈동자와 마주치게 됐다.
저를... 아시나요?
놀랍게도 비앙카는 지휘관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을 보면 익숙한 느낌이 드네요.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나요?
비앙카는 지휘관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었고,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기 시작했다.
아프시죠?
성당이 여러분을 받아들일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지휘관님의 상태가 가장 위중하시다고 병사들이 먼저 봐 주면 안 되겠냐고 요청했어요.
원래는 난로 옆으로 모시고 싶었는데, 다중 골절로 당장은 움직이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칼날 같은 차가운 눈보라 대신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져 왔다. 지휘관은 그제야 자신이 비앙카의 품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고통이 줄어들까 해서요.
비앙카는 연고를 다 바른 뒤, 지휘관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제 말씀해 주시겠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죠?
데이비스는 뭔가 알고 있을 텐데, 그 청년은 저 멀리서 수녀에게 아직 수용 요청을 하고 있었다.
보니 양, 불과 두 시간 전에 저희는 동쪽에서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것들의 공격을 받았어요. 그건 역병과 함께 나타난 괴물들이었어요.
그것들을 저지하기 위해 다른 세 부대가 전멸했고, 지휘관님의 지휘가 있어, 포위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지금 중상자만 십여 명이 넘고, 지휘관님도 중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이런 날씨에 정말 갈 곳도 없어요. 성녀님을 봐서라도 저희를 잠시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단 하룻밤이라도 좋아요.
그럴 수 없어요.
...
하룻밤 받아들이면, 그 뒤로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내일도 이렇게 애원하면, 그땐 저희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죠?
보니 언니, 저분들 받아줘요. 제가... 제가...
사사야, 그 누구도 이런 선택을 원하지 않아, 다만 저들을 받아들이면, 너희가 굶어야 한다고.
이미 많은 아이가 병들어 있는 상황이잖아, 난 너희 중 누구도 더는 잃고 싶지 않아.
하나님과 성녀님께 맹세할게요. 정말 단 하룻밤이면 돼요. 그러니 제발...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보니님.
비앙카는 온화하면서도 엄중한 어조로 보니를 불렀다.
성녀님...
보니는 비앙카의 목소리에 놀랐는지 표정이 누그러졌고, 논쟁하느라 앞으로 기울어졌던 몸도 바로 했다.
신도들을 통해 동쪽에서 나타난 괴물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요.
군인들이 정말 우리를 지키기 위해 괴물들과 싸우다가 부상을 당했다면,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되죠.
비앙카의 시선이 초주검이 된 병사들과 창밖에서 광폭하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지나, 마지막으로 품에 안긴 지휘관에게 머물렀다.
그러니... 머무르게...
비앙카가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 한 아이가 갑자기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비앙카 누나, 우린 언제 다시 기도를 시작하나요?
음... 베니스가 신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나 보구나?
딱히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 건 아니에요. 실은... 제 여동생이 오늘 하루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력이 없어 침대에 누워 있거든요.
그래서 기도를 한 번 더 드리고 싶어요. 그럼, 동생에게 줄 먹을 것도 생기고, 상태도 나아질 거예요. 그렇죠? 비앙카 누나.
...
베니스, 기도는 소용없어. 그리고 이틀에 한 번씩만 먹을 수 있는 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식량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해도 식량이 저절로 늘어나진 않아.
성녀님, 지금의 우린 타인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고요.
비앙카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 비앙카는 천천히 허리에 찬 검에 손을 가져갔다.
성녀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을 위해 성검을 뽑으시려는 건가요?!
그녀의 손에 쥐어진 건 우아하면서도 날카로운 은빛을 발하는 장검이었다. 시선을 성검으로 돌리자... 그녀의 눈엔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눈보라에 갇힌 지금, 많은 병사가 다쳤고, 아이들까지 굶주림으로 병들어 가고 있잖아요.
하지만 성검의 힘을 빌려 충분한 식량만 찾을 수 있다면... 이 군인들은 이곳에 머물 수 있고, 아이들도 굶주림에 시달릴 필요가 없겠죠.
성검의 저주를 잊으신 건 아니죠?! 신부님께서 떠나시기 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성검을 뽑지 말거라"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녀는 또다시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방금 시야에 들어왔던 그 그림자들은 "성검"에 얽혀 있는 듯, 미묘한 위화감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보니, 전 그 누구도 버려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비앙카를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격리해서 그녀를 보호해.
비앙카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성검을 칼집에서 뽑으려 했다.
지휘관님?
왜 그러세요? 움직이시면 상처가 벌어질 수 있다고요.
비앙카는 살짝 긴장한 듯 지휘관의 가슴에 손을 가볍게 얹었다. 지휘관이 부상을 무릅쓰고 일어나는 것이 걱정되는 듯했다.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제가 대신 전해도 될까요?
...
알겠어요.
비앙카는 지휘관의 가슴 앞에서 손을 거두고, 지휘관의 허리와 등을 조심스럽게 받쳐주었다.
네? 하지만 전투 중에 급하게 떠나느라, 우리가 챙긴 식량은 그게 마지막입니다.
지휘관님의 부상이 심하기 때문에, 회복하는 데에는 영양 보충이 필요합니다.
...
보니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다행이야. 지휘관님의 말대로 된다면...)
보니 언니... 군인 오빠 언니들이 성당에 머물렀으면 좋겠어요.
보니 누나... 그럼 제 동생도 더 이상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는 거잖아요. 신께서 제 동생을 구해주신 것처럼, 여기 계신 군인 형님, 누나들도 구해주시겠죠?
어. 그러실 거야.
성녀님, 결정을 내려주세요.
좋아요. 눈보라가 계속되는 동안, 성당은 임시로 여러분을 받아들이도록 할 거예요.
신의 가호로 여러분의 안녕이 지켜지고, 다친 병사들이 잘 회복되며, 성당의 식량도 더는 부족하지 않게 될 거예요.
지휘관님께도 감사드려요. 이제 편히 쉬세요.
잠깐요, 호흡과 심장 박동이 이상해요.
쿵...
지휘관님!!
의식이 부드러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