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점차 사라지고 새하얀 설원으로 변했다.
그녀의 꿈에 짓눌렸던 상처와 아픔이 이곳에 오는 순간 감지를 덮쳤다.
수집했던 여섯 개의 의식 조각도 품 안에서 눈 위에 떨어져 급작스럽고, 긴 여정이었음을 속삭이고 있었다.
악몽에서 깨어났다고 믿은 사람이 다시 악몽으로 돌아왔다.
깊이 쌓인 눈 위를 두발로 걷는 것은 쉽지 않았고, 밀려오는 통증과 피로에 자칫하다간 넘어질 것 같았다.
그녀의 의식 조각이 여기에 있다.
꿈속 리브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원래 ‘죽음’에 대한 기억이었다.
기억이라 하지만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건 그녀가 승격 네트워크를 통해 본 미래였기 때문이다.
오염된 의식의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성당 작전 때 그녀가 기록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혼란스러운 기억들과 죽음 이후 그녀는 승격 네트워크의 연산을 통해 미래를 봤다.
그 연산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더 확인해야 하지만, 리브에게 준 기억은 끝없이 쌓인 눈으로 그곳에 남아 있다.
아득한 눈은 대답도 하지 않고 방향도 가리켜주지 않았다.
폭풍은 눈을 두껍게 휘감아 길을 잃은 수색자에게 무거운 부담을 주었다. 어깨 위의 눈을 털어낼 때마다 추위에 몸이 더욱 굳어졌다.
죄송해요. 전 늘 지휘관님을 이렇게 힘들게 하네요……
어렴풋이 내 옆에 서있는 리브의 잔상이 보였다. 그건 설원에 남겨진 그리움일까? 아니면 의식 조각의 안내일까?
전 그냥 모두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지휘관님은 힘들지 않으세요?
……고마워요……
소녀의 잔영이 태양이 있는 동쪽으로 가리킨 뒤 이내 눈 속으로 녹아들었다.
긴 백야가 하늘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전진했다.
햇빛의 안내를 잃은 수색자는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막막함에 빠졌다.
길을 잃으셨나요?
이전 잔영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를 가시려고요?
미래의 저는 어떤 모습이죠?
정말요?
그럼…… 왜 이 공간은 슬프죠?
여긴 분명 제 미래인데, 왜…… 괴로워서…… 죽을 것 같죠?
이게 정말 제가 바라는 미래인가요?
네……!
저쪽이에요.
그녀는 북극성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미래의 저에게 꼭 물어보세요.
작은 잔영이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한 뒤 어두운 밤 속으로 사라졌다.
극야가 물러가고, 긴 여정을 보낸 사람은 마침내 설원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처음의 그 악몽처럼 차가운 바람과 설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 생각 해 본 적 있어? 현재의 삶은 꿈일 뿐이고, 꿈이 바로 현실이라는 생각.
예전 질문이 머릿속에 다시 메아리쳤다. 하지만 이번엔,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
——그 미래에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평화의 시대가 온다면, 그녀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의 꿈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 굳센 신념을 가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사람이 자신의 종착지에 서 있었다.
흐린 하늘의 빛을 통해 군대 방호복을 입은 시체를 찾게 되었는데…… 그곳엔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 [player name]’의 명패가 새겨져 있었다.
영웅의 이야기가 여기서 마침표를 찍었다.
——맞아.
그 순간 과거와 미래의 잔영이 겹쳐지면서 황폐한 설원에 소녀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그 창백한 몸 앞에 무릎을 꿇더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를 냈다.
……지휘관님……
[player name]님……!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었죠……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슬픔에 찬 소녀의 눈에 눈물이 흠뻑 젖었다.
가지 마세요…… 우리 곁을 떠나지 마세요…… 으아아아악!
눈과 함께 바람이 세차게 불며, 찬바람이 그녀의 마르지 않는 눈물을 응결시켰다.
소녀는 마치 눈으로 조각한 인형처럼 끝없는 설원과 하나가 되었다.
——그날이 오면, 죽어서 헤어진 사람도 다시 만나게 되겠지.
……지휘관님……
미래의 잔영이 부름을 듣고 과거와 꼭 껴안았다.
네……!
설원이 하얗게 빛나면서 모든 의식 조각들이 가슴에 모여 완전한 의식으로 합쳐졌다.
같이…… 돌아가요.
드넓은 흰색이 점차 꿈속 깊숙이 가라앉았다. 무거운 두 눈을 뜨니 눈앞은 차가운 연구실이었다.
……지휘관님!
…………
[player name](이)가 깨어났어. 마인드 표식의 오염은 아직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있어.
그쪽은 어때?
난 지금 그녀의 의식의 바다에 대한 복구를 시뮬레이션하는 중이야.
이건…… [player name](이)가 우리도 발견하지 못한 의식 조각을 찾았잖아?
너무 깊게 숨겨져 있었어.
…………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정신을 집중해 앞에 있는 각종 기기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정비대 위에 조용히 누워 여전히 꿈속에 잠들어 있었다.
둔한 몸을 이끌고 그녀에게 다가가 상처투성이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
……………………
……네……
그녀가 의식을 회복하고 있어. 복구 시뮬레이션 결과는 어떻지?
문제없지만, 백야 기체의 복구 위험도가 너무 높아. 2층 정비실에서 기체를 변경하는 게 좋겠어.
좋아. 그럼 우리가 먼저 가서 준비하자. 리브를 데려오는 건 너희들에게 부탁하지.
두 사람은 서둘러 책상 위의 단말기와 기기를 가지고서 연구실을 성큼성큼 나섰다.
……지휘관님……
희미한 시야 속에서 소녀는 그녀가 부르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네…… 저 왔어요……
제가…… 걱정 끼쳐드렸나요?
……음……
믿어요……
……항상…… 믿어 왔어요……
그녀는 그 부드러운 두 손을 꼭 잡았다.
언젠가, 한데 모인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이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소녀도 후회 없는 결의를 가지고 상처투성인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건 그 멀고 아름다운 꿈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지금 손에 쥔…… 가장 깊은 미련을 위해서 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