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익——
이합 생물들이 무력하게 쓰러지며 하나둘씩 사라졌다.
버질은 그것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야마토를 가볍게 흔들어 피를 털어낸 후, 천천히 칼집에 꽂아 넣었다.
[player name], 안 쉬어도 되겠어?
20층이에요. 방금 멀리서 본 높이로 추정해 보면, 절반 정도 온 것 같아요.
문은 이제 두 개밖에 안 남았어요.
그 말에 루시아가 앞으로 나와, 문을 열었다.
여긴...
문 뒤의 공간은 넓고 어두웠으며, 그 안엔 삼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빽빽하게 몰려 있었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놀라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곧 나타난 구조체들의 모습에 그들은 안도하며 소리쳤다.
구조체야!
우릴 구하러 온 건가요?
그들은 누더기를 걸친 채 공포에 떨고 있었으며, 오랫동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무척 야위어 있었다.
네.
한 난민이 지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린 원래 보육 구역에 살던 주민들이었는데, 그 박쥐들이 몰려들어 우리를 여기로 끌고 와 가뒀어요.
그리고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인간이 아니라 악마라고 해야 마땅합니다!
그자의 등에 달린 날개를 본 적이 있거든요!
그 악마는 주기적으로 찾아와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었고, 매번 서른 명 가까이 죽어 나갔죠.
사람들을 죽인 뒤, 자신의 피를 적조에 흘려보내, 새로운 박쥐 괴물을 만들어냈어요.
알파가 지휘관 옆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쪽에 적조 웅덩이가 있어. 거울의 악마가 이합 생물을 만들어내는 장소인 것 같아.
박쥐들한테서 악마의 기운이 느껴진 이유가 이거였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쇠약한 상태예요. 혈청 주사를 못 맞아서 이미 퍼니싱 침식이 시작된 사람도 많아요. 얼른 보육 구역으로 데려가 치료해야 해요.
두고 가야 하나? 함께 움직이면, 거울의 악마와 제대로 싸우지 못해.
잡혀 온 주민들은 숨을 죽인 채, 자신들의 운명이 달린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휘관을 향한 수백 쌍의 간절한 눈빛.
그때, 무거운 침묵을 견디지 못한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어머니는 다급히 아이의 입을 막았다.
지휘관님...
네.
알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지휘관님, 부디 조심하세요.
[player name], 슬슬 출발할까?
지휘관 일행이 떠나려던 그때, 루시아가 알파를 불러 세웠다.
알파……
왜?
널 믿어도 되겠지?
소녀의 눈빛은 단호했다.
우리가 그 정도로 친한 사이였던가?
……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알겠어. 이번만큼은 네 뜻대로 해줄게.
그럼, 지휘관님을 부탁할게.
그래.
알파의 대답을 들은 루시아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뉴 오클레르 마을
뉴 오클레르 마을.
이합 생물의 습격 이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반은 마을 어귀 구석에 숨어 있던 리카를 발견하고 그녀를 차량 행렬 쪽으로 데려가려 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차량 쪽으로 데려다줄게. 공중 정원 지원 부대 대장이 널 찾고 있어.
길을 걷던 중, 리카는 어젯밤 봤던 할머니가 한 청년과 실랑이를 벌이는 걸 목격했다.
아이고 할머니, 제발 부탁이니 어서 가요.
난 안 갈 거니까 이거 놔! 이 늙은이는 살 만큼 살았어!
젊은 사람들부터 태우게나.
할머니 안 가시면… 저도 안 가요!
청년의 단호한 말에, 할머니는 더는 실랑이를 이어가지 않았다.
잠시 뒤, 반은 리카를 데리고 브리이타와 맥스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철수 계획에 대해 논의 중이었다.
차량 몇대가 사람 가득 태우고 출발하긴 했지만… 남은 차로는 전부 실어 나를 수가 없어.
혹시 마을에 다른 교통수단은 없을까?
이게 전부야. 바퀴 달린 건 싹 긁어모았어.
전투 인원은 가장 마지막으로 하고, 민간인들을 우선 대피시켜. 이곳에 남을 지원자가 있는지 확인해 볼게.
나도 이곳에 남을 거야.
철수 준비를 서둘렀음에도, 교통수단이 부족해서 상당수가 철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이 다가오자 맥스는 하던 말을 멈췄다.
리카를 데려왔습니다.
고마워.
리카는 반이 왜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건지 몰라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브리이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그녀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나는 공중 정원 지원 부대의 대장 브리이타라고 해. [player name](이)가 널 지켜달라고 부탁했거든.
내 뒤에 보이지? 저 수송차를 타면 모두와 함께 철수할 수 있어.
저는...
음?
리카는 어젯밤 일을 떠올리며,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이합 생물들이… 저를 노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리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굉음과 함께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곧이어 맥스의 무전기에 방어선 긴급 통신이 들어왔다.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박쥐형 개체 몇 마리가 마을 안으로 침입했어요!!
리카는 방어선 너머로 날아오고 있는 이합 생물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막을게!
브리이타는 전술 톤파를 꺼내 들고, 이합 생물을 향해 달려갔다.
이 녀석들, 지난번보다 훨씬 강해졌어!
브리이타는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적의 진격을 막아냈지만, 전장을 빠르게 수습하긴 힘들었다.
곧 다른 방어선까지 무너지며, 더 많은 이합 생물들이 마을 안으로 들이닥쳤다.
불과 어젯밤까지만 해도 평화롭던 마을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리카는 눈앞의 광경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안 돼...
꺼져, 이 괴물들아!
근처에서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어느새 이합 생물 몇 마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중 하나가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와, 할머니를 지키려던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안 돼...
그렇게, 어젯밤 다정했던 할머니가 리카의 눈앞에서 쓰러졌다.
그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강렬하게 리카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흰 병실의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다 멈추고, 흐릿한 얼굴의 의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무언가를 말하던 장면.
뭐지?
소독약과 차가운 금속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다른 한쪽에는 혈흔이 묻은 하얀 덮개가 뭔가를 덮고 있었다.
뭐지?
곧이어 한 중년의 떨리는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안간힘을 쓰며 덮개를 향해 뻗어가는 손…
멈춰!!!
그 순간, 리카의 절규와 함께, 강렬한 백색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뭐야?!
이건...
마을 전체가 정적에 잠기며, 시간이 멈춘 듯 공중에 떠 있던 이합 생물들이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합 생물들의 광기가 되살아나며, 다시 하늘을 뒤덮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마을로 드리우던…
그때——
천둥이 울리고, 한 줄기 검은 번개가 내리쳤다.
에너지 방출 검이 하늘을 가르며, 이합 생물의 날개를 베어냈다.
때맞춰온 것 같네.
할머니, 괜찮으세요?
청년이 따스한 미소와 함께 노인을 부축했다.
뒤따라온 브리이타는 그 모습을 보고 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왔네.
저 멀리 멈춰 선 수송차에서, 몇몇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또 멋있는 척하고 있네…
밤비나타와 라이어는 방어선 지원하러 가.
시몬, 블랙 램. 너희들도 같이.
브리이타, 현재 철수 상황은 어때?
그리고 너... 네가 자료에서 본 그 리카구나?
바네사는 다짜고짜 명령을 내린 뒤, 힘이 풀려 주저앉은 리카를 바라봤다.
그녀는 방금 전 백광을 떠올리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