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아!
휘두른 낫을 검은 태도로 튕겨내고, 몸을 돌려 상대를 걷어찬 후, 대포에 에너지 충전하여 균형을 잃은 적에게 마지막 포격을 가했다.
연기가 걷히자, 낫을 든 소녀는 흥분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멋졌어!
역시 내가 눈여겨볼 수밖에 없네. BLACK★ROCK SHOOTER!
DEAD MASTER의 주변을 맴돌던 빛나는 주사위 하나가 그녀의 곁을 떠나 BLACK★ROCK SHOOTER에게 떨어졌다. 이로써 이번 전투는 BLACK★ROCK SHOOTER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엔 네가 졌어.
그래. 하지만 다음번에는 어떨지 모르잖아.
스코어보드의 턴 수가 27에서 28로 바뀌었다. 이제는 흑색 진영의 차례가 됐다.
이제 이쪽이 앞서갈 차례야.
그래? 계속 나만 쳐다보고 있느라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신경 쓸 여유가 있었겠어?
초록 눈동자의 소녀가 BLACK★ROCK SHOOTER에게 다가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
검은 옷의 소녀는 고개를 들어 가상의 성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DEAD MASTER의 불빛은 이미 결승점에 가까워졌지만, 그들 외의 나머지 체스 말들은 여전히 중간쯤에서 싸우고 있었다.
루시아를 나타내는 "나이트"는 백색 진영의 체스 말 두 개에게 협공당했고, 후방에 남겨진 프리다는... BLACK★ROCK SHOOTER는 처음부터 그녀가 쓸모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 결승점에 가는지는 아무 의미 없어. 너희들의 패배는 이미 정해졌어.
나 혼자면 충분해.
맞아. 맞아. 다른 이는 필요 없어. 넌 나만 바라보면 돼.
나는 네가 피할 수 없는 악몽이자, 네 운명이 정해준 "숙적"이야!
확실히 네가 집요하긴 해.
하지만...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야.
BLACK★ROCK SHOOTER는 고개를 저으며 체스판에서 다음에 일어날 변화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저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프리다는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장인이 예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프리다는 주사위의 명령을 무시할까 생각해 봤지만, 실제로 그것을 어길 용기는 없었다.
이 게임에서 "폰"이 결승점에 갈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마지막에 "희생"을 거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프리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명확히 말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도망치는 선택만을 했었다.
대체, 난 왜 처음부터 이 골칫거리를 그냥 내버려두고 떠나지 않았을까요?
그녀는 인정받지 못하는 겁쟁이였고, 전장의 탈영병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념체의 운명을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남은 사념체들을 대신해 이곳에 왔다.
나는 도대체...
프리다. 여기 있었구나?
메라가...
무슨 일 있니? 요 며칠 밤에 마을로 돌아오지 않던데.
저는...
그날 일을 아직도 생각하고 있어? 모두 널 이해했을 거야.
다른 사념체들의 생각은 저한테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저... 저 자신에게...
그래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
메라가. 우리가 왜 그녀와 적이 되어야 하죠?
응?
당신이 제게 가르쳐준 모든 말들은 정말 당신의 진심에서 나온 건가요?
우리는 대체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싸우고 있는 거죠?
회랑의 운행? 세계의 발전? 우리끼리 정말 이런 그럴듯한 이유로 상호 살육을 시작한 걸까요?
프리다?
그날, 검은 검이 저를 겨눴을 때, 그 눈 뒤에서 제가 무엇을 봤는지 당신은 아시나요?
프리다는 수많은 의문을 품고 있었고, 그 불꽃 속에서 궁극적인 답을 찾으려 했다.
저는 봤어요. 시체로 가득 찬 전장에서 사념체 하나가 수많은 피로 얼룩진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을요.
그 사념체는 검을 쥐고, 무서운 미소를 짓고 있었어요.
저는... 저 자신을 봤어요.
그녀는 환영을 봤다.
그녀의 검이 적의 가슴을 꿰뚫었고, 튀어 오른 피가 나비의 날개처럼 흩날렸다.
그 순간, 그녀는 감정이 끓어오르면서 전에 없던 쾌감을 느꼈다.
그녀는 내면에 있는 커다란 공간을 채우려는 것처럼, 손에 든 검으로 다가오는 모든 존재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어 했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그녀는 이 표정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계속해서 외면해 왔다.
그녀를 적대하는 사념체를 죽일 때마다, 수많은 전장에 발을 디딜 때마다,
모든 사념체의 표정은 같았다.
모든 사념체는 진심으로 타인에게 상처 입히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 눈을 떴을 때, 메라가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입가에 띄운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제야 비로소 이해했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투쟁이 계속될 수 있음을 축하하는 미소였다.
무, 무서워요.
그녀가 아니라, 저 자신이요.
언젠가, 저도 당신에게...
그때는 내가 기꺼이 받아들일게.
메라가?
내가 너한테 말한 적이 있었나? 이전 "프리다"에 대해서 말이야.
설마...
그녀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어.
네가 말한 대로, 모든 사념체가 서로를 해치려 한다 해도, 나는 결코 그녀를 적으로 여기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어.
하지만 내가 틀렸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지.
언제부터 우리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아. 마지막에 그녀가 나에게 무기를 들이댔고, 내가 직접 그녀를 죽였다는 것만 기억나.
바로 그날, 네가 내 눈앞에서 태어났어.
그럼, 저는...
우리는 항상 그대로일 수 없어. 우리는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네가 나와 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리고 그런 날이 온다면, 그건 우리 개인의 의지에서 비롯된 거야.
하지만 너는 내가 한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어. 그게 나를 좀 서운하게 했지.
저는 그런 게...
우리가 투쟁을 선택한 이유가 정말로 그렇게 단순하다 해도, 그 본래의 목적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해도, 우리는 그것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
이게 내가 나를 마비시키려는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믿고 싶어.
하지만 뭐라 해도, 한 가지는 확신해. 완전히 그리고 백 퍼센트 내 진심에서 나온 거야.
언젠가 우리 사이가 적이 된다 해도, 그 이후의 미래에서 우리 둘 다 사라질지라도,
나는 다음 "메라가"와 "프리다"가 여전히 친구가 되길 바라.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메라가?
낮게 중얼거리던 프리다는 앞쪽에서 들려오는 칼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저건...
정말 성가시네요!
태도를 든 소녀는 흰색 사념체의 찌르기를 옆으로 피한 뒤, 곧바로 칼을 휘둘러 또 다른 사념체의 참격을 튕겨냈다.
총 3개의 체스 말이 같은 칸에 놓였기 때문에 백색 진영의 "나이트"와 "폰"이 동시에 그녀와 싸울 수 있었다.
2개의 체스 말로 공격을 하면 이득은 줄어들지만 승률은 보장할 수 있었다. 백색 진영의 "킹"은 이런 방법으로 루시아의 주사위를 조금씩 빼앗아 가고 있었다.
저를 얕보지 마세요!
2대 1의 상황이지만, 루시아의 기세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다시 두 사념체와 거리를 벌린 루시아는 태도를 어깨 앞으로 세우며 숨을 고르고 집중했다.
다음 순간, 루시아는 태도를 휘둘러 새하얀 폭풍을 일으켜 수많은 얼음 조각으로 백색 진영의 "나이트" 움직임을 봉쇄했다.
이어서 검광이 번쩍였다.
……
백색 진영의 "폰"이 반응할 틈도 없이 루시아의 검에 의해 그의 칼이 두 동강이 났다.
"폰"의 마지막 주사위가 천천히 사라지자, 그녀의 모습도 희미해졌다. 이는 "폰"이 게임에서 퇴장했음을 뜻했다.
이 기세로 한 번에...!
첫 번째 적을 해결한 후, 루시아는 회전하는 자세를 이용해 칼날의 방향을 바꿨다. "나이트"는 아직 얼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는 루시아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루시아의 뒤에 있는 분사기가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그녀를 번개처럼 앞으로 돌격시켰다.
하지만 검의 끝이 "나이트"의 목에 닿기 직전, 루시아의 기체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주홍빛 불꽃이 그녀의 왼쪽 뒷다리 배기구에서 전류 소리와 함께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과부하로 인해 루시아는 균형을 잃었고, 공격도 무위로 돌아갔다.
하필 이런 때에...
강도 높은 전투로 인한 기체 손상이 이 순간 치명적인 약점으로 변하고 말았다.
얼음을 깬 "나이트"의 검이 루시아의 가슴을 갈랐다.
안 돼요!
거의 반사적으로 외친 프리다는 루시아의 위치로 달려가려 했지만, 분할된 격자의 차단막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프리다는 루시아의 남은 주사위가 다시 한번 줄어드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때 "나이트"도 그녀를 주목했다.
……
당신...!
주먹을 꽉 쥐고 차단막을 친 프리다는 눈을 크게 뜨고 하얀 옷을 입은 사념체를 노려보았다.
망토에 얼굴이 가려져 있었고,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프리다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프리다...
백색 "나이트" 사념체가 천천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정말로 가려는 건가요, 메라가?
응. 누군가는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해.
저 캐슬이 위협하는 건 이 마을뿐만이 아니야. 그대로 두면 결국 회랑 전체가 위험에 빠질 거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신뢰를 잃게 되었지?
네가 아직 혼란스러운 건 알아. 그래서 너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 않은 거야.
그 검은 악마에 도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알아. 하지만 너처럼 나도 찾고 싶은 "답"이 있어.
그러니 난 멈출 수 없어. 프리다.
……
보아하니 네 말을 듣지 않는 체스 말이군.
넌 졌다.
체스판 위에서 흑색 진영을 대표하는 체스 말들이 하나씩 빛을 잃어갔다.
그래서 패자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되지?
처벌? 왜 그런 게 있어야 하지? 이건 단지 "게임"일 뿐이잖아?
게... 임...?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장난일 뿐이야. 이기든 지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우... 우리를 없애려고 한 게 아닌가?
아니. 이건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야. 난 너희들 같은 결함 있는 존재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거든.
내가 추구하는 건 "투쟁"에 사로잡힌 지성들이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거야.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다?
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네?
"투쟁"의 끝은 무다. 출구도, 답도 없다.
이 회랑은 그저 무의미한 순환을 반복하며, 멸망으로 향할 뿐이야.
우리의 "의미"를 너 따위가 정의할 수는 없어.
난 아무것도 정의하지 않았어. 그저 설명했을 뿐이지.
내가 네 이해를 구한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이건 꽤 흥미로울지도 모르겠군.
네가 답을 원한다면,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래?
……
메라가는 한동안 침묵했다.
메라가는 거절할 이유가 많았지만, 결국 "킹"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 순간...
그녀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았다.
수많은 생명이 죽어갔다.
수많은 가치가 사라졌다.
하늘이 무너지자, 황금의 바다도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 내렸다.
만들어진 재난, 돌이킬 수 없는 실수.
고통받는 영혼, 얽힌 운명.
맴돌며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 구역질이 나는 광란.
모든 환영이 결국 한곳으로 모였다.
그것은 본질이자, 기원이었다.
그것은 한 면의 거울이었다.
그리고...
거울은 그녀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
메라가? 왜 거기에 있어요!?
"나이트"는 프리다의 외침에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검을 거두었다. 턴이 바뀌자, "나이트"의 몸에 있는 주사위가 빛나더니 다음 구역으로 이동하도록 안내했다.
이제는... 상황이 좀 나빠진 것 같네요.
루시아가 검을 지지대로 삼아 몸을 일으키며 비틀거렸다.
기체의 배기구에서는 여전히 전기 불꽃이 튀면서, 움직이기도 힘들어 보였다. 루시아는 움직일 수 없는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며 프리다 앞에 다가갔고, 얼굴에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이트"는... 뒤따라오는 체스 말을 막아서 강제로 저와 전투하게 만들 수 있어요.
루시아 자신도 흑색 진영의 "나이트"였고, 그녀가 백색 진영의 봉쇄를 뚫지 못한 이유도 바로 "나이트"라는 체스 말의 특성 때문이었다.
지금... 제 상태로는...
루시아의 주사위는 이제 두 개만 남았고, 백색 진영의 "나이트"는 여전히 길을 막고 있었다.
그럼, 무리하지 말고 여기 계세요!
안 돼요. 지휘관님은 제가 필요해요.
결승점까지 가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이 "게임"에서 이길 가능성은 아직 있어요. 그러니 지휘관님께 그 기회를 만들어 드려야 해요.
왜요?
네?
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죠?
그 지휘관이라는 이를 위해... 당신은 왜 기꺼이 희생하려고 하는 거죠?
……
이건 "희생"이 아니에요.
화, 화나신 건가요?
아니요. 다만, 우리 둘은 이제 막 알게 된 사이고, 서로를 잘 모르잖아요.
저와 지휘관님은 오랜 시간을 함께했어요. 우리 이야기를 그레이 레이븐을 창설한 날부터 말하자면, 책 한 권은 족히 만들 수 있을 정도죠.
그중에는 아름다운 기억도 있고, 불쾌한 기억도 있어요. 우리는 여러 번 의견 차이를 겪었고, 수많은 논쟁을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갈라선 후에도 우리는 항상 그레이 레이븐에서 다시 만났어요.
함께한 시간이 많기 때문에, 서로의 최고의 모습과 최악의 모습을 다 알고 있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지휘관님은 제가 희생하게 두지 않으실 거예요. 저도... 그렇게 쉽게 저 자신을 희생하지 않을 거예요.
말로 다 전할 수 없더라도, 지휘관님의 마음은 행동으로 저에게 전해지고 있어요.
저는 그 신뢰에 보답하고 있을 뿐이에요.
신뢰...
그리고... 근거도 없고, 별로 믿을 만한 직감은 아니지만...
턴이 바뀌자, 루시아의 몸에 있는 주사위가 빛나기 시작했다.
루시아는 얼굴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프리다를 안심시키려는 듯 단호한 미소를 지었다.
루시아는 검을 쥐고 몸을 일으켰다.
저와 지휘관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곤경과 위기를 겪었어요.
매번 그게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매번 우리는 그 "마지막"을 넘어왔어요.
이번에도 분명 마지막이 아닐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