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지 알 수 없는 지하 공간.
붉은색을 띤 커대한 지오드만 희미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은발의 소녀가 지오드 속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
수많은 정보가 루나의 의식의 바다에서 흐르고 있었고,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모든 것을 재구성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루나의 꼭 감은 두 눈에서는 모든 미래와 과거가 비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칠흑같이 차가운 공허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승격 네트워크는 루나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지식과 답변이 포함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지식은 해독약이 아니었고, 이 답변은 구원이 아니었다.
루나는 새로운 답을 찾아 자신을 가두고 있는 우리를 부숴야 했다.
하지만...
모든 미래가 루나를 지우려고 했고, 모든 과거가 그녀를 대체하려 했다.
루나는 때로는 무지한 아이였고, 때로는 기력이 쇠한 노인이었다.
루나의 존재는 무수히 찢겨, 배고픈 물고기들<//정보>에게 먹히고 있었다.
으... 언니. 치사해.
침실 안, 체스판 위에는 어지럽게 놓인 체스 말들이 가득했다. 소녀는 자신이 패배할 것이 확실해지자, 초조해져서 울기 시작했다.
루나...
루나. 시간이 다 돼가.
언니?
루나, 계속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
루나. 계속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어.
너, 넌 누구야...! 언니? 언니는 어디 갔어!?
내가 바로 너야. 루나.
넌 아직 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잖아. 루나. 나랑 같이 가자.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싫...
루나,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어.
루나, 두려워하지 마.
안 돼... 싫어!
소녀는 두려움에 그녀의 손을 밀치고 일어나서, 침실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언니. 언니 어디 있어?
언니. 도와줘! 여기 나쁜 사람이 있어!
루나! 그쪽으로 가면 안 돼!
그녀는 손을 뻗어 소녀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소녀는 침실 문을 열어버렸다.
큰일 났다.
침실 밖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붉은 복도가 이어졌다.
부서지기 쉬운 기억이 파편처럼 산산조각이 났고, 그녀는 소녀와 함께 소용돌이에 휘말려버렸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그 거대한 진홍빛 적조에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붉은 궤적이 버려진 도시를 질주하고 있었다.
알파는 무언가를 떨쳐내려는 듯 오토바이의 엑셀을 끝까지 당겼다. 엔진이 포효하자, 붉은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폭풍을 일구었다.
쯧...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알파의 회색 눈동자에 희미한 빛이 스치자, 그녀는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방향을 바꾼 오토바이는 고가 다리를 올라 곧장 다리의 끊어진 부분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한 건물의 측면을 벽에 붙어서 달렸다.
건물에 붙은 오토바이의 바퀴가 유리를 조각내며, 수십 미터를 미끄러진 후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같은 시각, 알파 배후의 도로에서 격렬한 포성이 터졌다. 만약 그녀가 방금 전 극한의 반응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포격이 그녀에게 명중했을 것이다.
알파가 다시 핸들을 돌렸지만, 엔진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약한 소리만 냈을 뿐이었다. 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자기 애마가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시동이 꺼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필 이럴 때 말썽이야.
포격으로 인한 바람이 알파의 묶인 머리를 날리자, 알파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습격자를 흘겨보았다.
……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소녀가 도시 고층 건물의 부서진 철골 위에 서서, 거대한 대포를 들고 알파를 조준하고 있었다.
후드의 그늘이 소녀의 표정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왼쪽 눈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불꽃만은 뚜렷이 볼 수 있었다.
검은 대포의 포구에서 다시 불꽃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눈빛이 가라앉은 알파의 허리에서 전류가 흘러나왔다.
칼날이 번쩍이면서 전류가 감도는 작은 태도로 포탄을 맞받아 쳐내 두 동강 냈다. 다음 순간, 검은 옷의 소녀가 연기를 뚫고 돌진하며, 알파의 얼굴을 향해 검은 칼날을 휘둘렀다.
"쾅"!
알파는 몸을 옆으로 비틀며 칼을 뽑아 들었다. 알파의 칼날이 검은 칼과 맞부딪히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
이후 알파는 회전하는 힘을 이용해 상대의 힘을 빼면서 칼을 뽑아 반격을 시도했다. 기습이 실패한 상대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참격을 피했다.
양쪽은 약 50미터 거리를 두고 각자 자세를 잡으며, 다음 공격을 대비했다.
끝이 없네!
이런 데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이 순간 알파는 눈앞의 적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왜 자신이 공격을 받고 있는지조차 이유를 알지 못했다.
너 누구야? 공중 정원의 구조체인가?
공중 정원?
아니면 다른 곳에서 온 승격자인가?
구조체... 승격자...
상대는 알파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을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치 이러한 개념을 처음 접하는 듯했다.
대답 안 해? 뭐, 상관없어.
나를 공격한 이상, 감당할 준비는 돼 있다는 거겠지.
……
검은 옷의 소녀가 대답을 하지 않자, 알파는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
상대는 이미 도시의 반을 추격해 온 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대화를 기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알파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번개가 붉은 옷처럼 알파의 칼날을 감쌌고, 왼쪽 눈에서는 파란빛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알파의 조금씩 강해지는 기운을 느낀 말 없는 검은 옷의 소녀는 칼자루를 꽉 쥔 채로 그 붉은 폭풍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