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진실의 무게
>지금 당장 뜨거운 물과 소독한 가위를 가져와 주세요! 붕대 세 개로 우선 활동성 출혈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모두 외상 분류에 따라 움직이세요! 빨간 표식은 최우선 치료 대상입니다! 좌측 상완부 표식 환자는 내부 출혈 위험이 있으니 즉시 평평하게 눕히고, 정맥로를 확보하세요!
네티아가 전장 임시 병원에 도착한 지 3분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찬물로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향을 등지고 황급히 도망쳐 나온 난민들 사이로 다시 몸을 밀어 넣었다.
젠장…… 누가 좀 날 일으켜 줘! 내 다리가 안 보여! 내 다리가…!
움직이지 마세요. 출혈은 멎었으니 괜찮을 겁니다.
거짓말하지 마! 하반신에 감각이 없어…
다리가 부러졌다고… 이러다간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네티아는 그의 턱을 단단히 붙잡고 몸을 낮춰, 혼란에 빠진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진정하시고, 제 눈을 보세요.
저는 카헤티 스카우트, 네티아입니다. 아무도 죽지 않아요. 제가 반드시 살아서 나가게 해 드릴게요.
갑작스럽게 찾아온 재난이지만,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 곁에 우리가 있어요.
네티아! 이쪽도 도움이 필요해!!
안정을 취하면서 누워 계세요. 다른 사람에게 특별히 신경 써서 돌봐달라고 말해 놓을게요.
금방 갈게!
네티아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다시 소란스러운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비켜 주세요! 중상자입니다! 들것에 손대지 마세요!
조금만 버티세요, 아주머니……!
윽… 윽…
비켜 주세요! 제발 비켜 주세요!!
물러서! 경계선 진입 금지다!
이분은 유탄에 맞았습니다! 우측 폐에 반응이 없어요, 기관 절개 수술이 필요합니다!
뒤로 물러서! 연대장 명령이다. 일반 시민은 출입 금지야!
제 이름은 네티아, 카헤티 스카우트입니다. 이 소령님은 저를 알고 계십니다. 파블로프 연대장님께 직접 훈장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환자 출혈량이 심각해서 정식 치료가…
철컥, 장교가 노리쇠를 당기며 몸을 돌렸다.
!
네티아는 그제야 장교의 오른팔을 발견했다. 그의 오른팔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고, 노출된 살점에서는 타는 듯한 자극적인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상관님…?
…여기까지 살아서 도망쳐 온 사람 중에 피를 안 흘린 사람이 어디 있겠어.
물러서라, 마지막 경고다.
임시 지휘부
카헤티 중앙 강변
파블로프 연대장님, 이 소령이 도착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연대장님. 현장이 너무 혼란스럽고, 각 부서에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소령의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책상 앞의 상관이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이 소령, 상황만 보고해.
…네. 마지막 소방대는 20분 전에 통신이 두절됐습니다. 화재 진압에는 성공했지만, 연구소 내부 상황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반응로 폭발 원인도, 왜 그 폭발이 퍼니싱 침식으로 이어졌는지도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4분 전, 침식체가 3대대 방어선을 돌파했습니다. 이븐 대대장은 전사했습니다. 침식체 주력은 30분 이내로 강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까지 대략 집계된 바로는, 약 3만 명의 시민이 강변에 도착했습니다. 다만…
소령은 말을 멈추고 시선을 내리깔며, 가볍게 헛기침했다.
방금 해군 쪽에서 보고가 들어왔는데, 마지막 순양함 "스파르타쿠스호"의…
최대 수용 인원은 1,200명이라고 합니다.
이럴 수가…
………
파블로프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눌렀다.
연대장님, 우리 군용 단말기는 게슈탈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적합한 대상을 선별하는 것 자체는… 기술적으로 어렵진 않습니다.
이 소령, 자네 말은 나더러 20분 안에 카헤티 시민 29,000명을 죽음으로 보내라는 소리군.
하지만 적어도… 소수의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가 아니야. 난 아직 이 군복을 입고 있어.
파블로프는 어깨 위의 은빛 별 세 개를 가리켰다.
…이븐 대대장과 수많은 장병들, 그들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임무를 다했습니다.
더 지체한다면, 그들의 희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카헤티 역사에 남을 죄인이 됩니다.
그의 목소리는 두려움과 불안이 뒤엉킨 채 떨리고 있었다.
죄인…
파블로프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마치 이제야 그 단어의 무게를 이해한 사람처럼 낮게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지난번엔 내 결혼식이었고, 이번엔 내 도시군…
그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거칠어진 이마를 오른손으로 몇 번이고 문질렀다.
퍼니싱 이 귀신 같은 놈은, 삶이 조금 안정됐다 싶으면 어느새 등 뒤로 따라와서 사람 목숨이 얼마나 값싼지 들이밀어 보여 주는군.
연대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파블로프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 내 시간은 진작에 다 써버렸어.
뜨겁게 달아오른 담뱃재가 손가락 위로 떨어졌고, 그는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방금, 마침내 공중 정원과 통신이 연결됐어. 그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나?
아마 수년이 지난 뒤에도, 이 소령은 그다음에 벌어질 일을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눈사태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무거운 설원이 몸 위로 쏟아지는 순간, 그 누구도 대비할 수 없게 된다.
파블로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갑자기 은빛 제식 권총을 꺼내 자신의 관자놀이에 들이댔다.
그들이…
연대장님?! 잠깐만—
!
총성이 울리고 경계선 안팎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뭐야! 안에 무슨 일이야?!
이럴 수가… 연, 연대장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파블로프가 죽었다고? 누가 그런 거지?!
그럼 이제 여기서 누가 결정권자야? 우릴 안으로 들여보내!
엄, 엄마…
불안은 물에 떨어진 돌멩이처럼 뜨겁게,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키며 번져 나갔다.
…다들 진정하고 현 위치에서 대기! 경계선을 유지하라!
...?
공포와 아드레날린이 그 짧은 몇 초를 끝없이 늘려 놓았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네티아의 귀에서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다가오는 북채처럼 주변의 소음을 꿰뚫고 반복해서 그녀의 가슴을 두드렸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고, 어떤 본능이 마지막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누구 단말기가 계속 울리고 있어! 당장 그 괴상한 소리 꺼!
아니요, 이건 단말기 소리가 아니에요…
상, 상관님! 탐지기에 반응이 잡혔습니다!
상공에서 고속 이동 물체가 확인되었습니다!
퍼니싱이 오고 있습니다!
붉은 광점 하나가 하늘을 가르며 수만 명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공습이다!! 엄폐해!!
곧이어 2,000킬로그램급 항공 폭탄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엄마…
엎드려!!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네티아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이를 끌어안고 옆으로 몸을 던졌다.
쾅———
파편이 몸 위로 쏟아졌고, 등 뒤에서 열기가 휩쓸고 지나갔다. 충격파가 고막을 찢어놓을 듯 몰아쳤다.
그녀는 품에 안은 아이를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죽음에게 단 한 발짝도 내주지 않으려 버텼다.
십여 초가 흐른 뒤, 대지가 마침내 떨림을 멈췄다.
네티아는 천천히 아이를 놓고 등에 쌓인 잔해를 털어낸 뒤 눈을 떴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어린 눈동자 한 쌍과 시선이 마주쳤다.
다친 데는 없어? 어디 아픈 곳이 있으면 알려줘.
저는 괜찮아요…
네티아는 아이를 일으켜 세운 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비록 공포에 질려있었지만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침식체의 폭격은 강변에서 벗어나 떨어진 듯했고, 다행히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머리끈을 고쳐 묶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달려갈 준비를 했다.
슉——
윽!!
순간, 무언가가 네티아의 흉곽을 그대로 꿰뚫었다.
고개를 떨군 그녀의 시야에, 피로 흥건한 강철의 칼날이 곧게 그녀의 가슴을 관통한 채 박혀 있었다. 네티아는 그대로 힘이 풀리며 무릎을 꿇었다.
극심한 고통이 가시처럼 심장을 휘감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녹슨 철이 피범벅이 된 목을 긁어내는 듯했다.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옮겨 아득한 과거, 오랜 세월 전부터 자신의 가슴에 상처를 남겨 온 그 모든 비극의 근원을 바라보았다.
쉬익!!!
날카로운 비명이 공기를 찢었다. 수많은 잡음이 한순간에 뒤엉켜 급류처럼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리며 네티아의 힘을 앗아갔다. 간신히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 시야는 뒤틀려 흔들렸고, 사람들의 비명이 귓가에서 메아리쳤다.
서, 설마…
연기가 서서히 걷히자, 멀리서 수많은 선혈 같은 붉은 광점들이 떠올랐다.
사격 개시! 밀어붙여! 경계선을 사수해!!
죽어! 죽어!!
죽——으아아아아아!!
안 돼…
이 괴물들! 한 발짝도 못 오게 해!!
여기는 카헤티다!!
안 돼…
2162년 3월 16일. 면역 시대 위로, 한 차례의 대재앙이 소리 없이 내려앉아 네티아가 소중히 여겨 온 모든 것을 짓밟았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뒤, 네티아가 세계정부 기록보관소에 들어가 이날의 기록을 다시 열람했을 때 그녀가 마주한 결론은 단 하나였다.
기이한 사고도, 절망에 빠진 도시도, 희생된 병사들도, 그렇게 역사 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그럼, 오늘부터 우린 친구인 거네.
넌 처음부터 카헤티를 신경 쓴 적 없었잖아! 처음부터 ▇▄▇█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고!
네티아, 꼭 █▇█▇▇▄야 해.
한때 뜨겁고 찬란했던 생명과 이야기들은 그렇게 시간의 풍화 속에 빛을 잃고, 침묵 속으로 흩어졌다.
언, 언니!
여자아이는 등 뒤에서 침식체가 칼을 치켜든 것도 모른 채, 네티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쉬익——!
오지… 쿨럭!
과거의 도살 칼이 석양을 가로막았다. 네티아는 팔을 들어 올렸지만, 앞으로 굴러가는 역사는 한 소녀의 비명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번뜩이는 칼날이 스쳐 지나가며 그녀의 시야를 가리던 어둠을 갈랐고, 금속이 부딪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
과거를 비추던 거울이 산산이 부서졌다. 빛이 붉은 안개를 가르며 눈부신 파편이 되어 그녀 위로 쏟아졌다.
균열은 하늘과 땅을 타고 번져 나가 모든 색을 벗겨내고, 풍경은 산산이 부서진 유리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네티아는 고개를 들었고, 자신과 같은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은… 누구죠?
네티아. 난 미래의 너야.
정지된 채 갈라진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은 멈추고, 오직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만 남아 있었다.
…미래?
그럼 난… 죽지 않은 건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름들이 우리를 떠받치고 있어. 생명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
…이해가 안 돼. 제발 카헤티를 구해줘. 우린 도움이 필요해!
응. 그래서 돌아온 거야.
길고 거센 바람이 불어와 삼십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이 땅에 쌓인 과거의 먼지를 쓸어갔다.
이 순간을 위해, 너무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어.
시간은 반격 시대로 접어들었고, 카헤티 사고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뒤, 네티아는 마침내 다시 한번 고향의 땅을 밟았다.
크르르——
퍼니싱이 엮어 낸 환영은 끝내 그녀를 가두지 못했다. 수없이 많은 침식체들이 안개 속에서 튀어나와 네티아를 포위했다.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적의 시체 하나를 발아래에 짓밟았다.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네…
네티아는 고개를 들어 오랜만에 느끼는 이 땅의 공기와 햇살을 손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밀려오는 적들을 내려다보며, 분노와 경멸이 뒤섞인 미소를 지었다.
이 세계가 잊는 걸 선택했다면—
거대한 낫이 휘둘러지고, 보랏빛 번개가 터져 올랐다.
그 진실은 내가 직접 되찾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