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2 "시련"
바닷가, 한 폐허에서.
그레이스 일행은 "카퍼필드 해양 박물관" 위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들이 이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다른 적음신계 신도들의 흔적은 아직 보지 못했다.
신계자님, 바로 여기가 맞죠!
우리가 여기에 도착했으니... 시련에 통과한 건가요?
아니에요.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신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길, 인내하고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신계자님, 적조에 정말 "신생"이 있나요?
물론이죠. 적조 속 "신생"은 아름다워요.
시련을 통과하기만 한다면, 신생의 자격을 얻을 수 있죠. 그리고 후에는... 모든 사람이 함께 아름다운 세계에 들어가게 되죠.
아름다운 세계가 뭐예요?
그건 "신생"의 세계예요. 끝없는 도피, 침식체, 괴물 그리고 죽음이 없는 곳이에요.
적조의 신을 믿는다면, 그분께서 우리를 행복한 저편으로 인도해 주실 거예요.
그레이스가 쪼그려 앉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먼저 야영하시죠. 그리고 점술로 적절한 시기를 봐서 우리 함께 이 시련의 땅으로 들어갈 거예요.
...
신도 중에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레이스 신계자의 신분 때문에 감히 큰 소리로 떠들지 못했다.
루루가 근처 파괴된 난민 주둔지를 정비하여 그들이 일시적으로 여기에 머무를 수 있게 했다.
아직... 통조림 4개, 압축 식량 1봉지, 지난번 신께서 내려주신 벼 중 일부는 씨앗으로 쓸 수 있을 것이고, 씨앗이 될 수 없는 나머지는 이번에 먹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음식이 없어요.
늙은 애연가가 딱딱하게 물자 상자를 내려놓고는 텐트를 떠났다.
누군가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 같네.
루루가 휘파람을 불며 옆을 지나갔다.
그들은 빨리 구원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항상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마포 자루에서 룬 문자를 반복해서 꺼내 점술을 봤지만, 아무리 뽑아도 긍정적 의미를 가진 룬은 나오지 않았다.
이 초대장이 정말 모든 적음신계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거라면, 분명 다른 신계자들도 약속에 오겠죠.
너희 적조 신교의 복잡한 얘기는 귀찮아서 신경 쓰지 않지만, 여기서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된다는 것만은 말해두고 싶어.
오후에 주변을 검사해 봤는데, 이 근처 퍼니싱 농도가 아주 높아. 아직 발원지는 찾지 못했지만, 분명 침식체가 있을 거야.
큰 면적의 적조일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어. 하, 내가 다 잊었었네. 너희는 원래 이걸 노리고 온 거잖아.
하지만 너희가 정말 손잡고 적조에 뛰어들려고 한다면, 난 동참하지 않을 거야. 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거든.
네, 알겠어요.
어쨌든 너 스스로 결정해.
루루가 홀연히 주둔지를 떠났다.
주둔지 첫날.
바람이 잔잔하고 파도는 고요했다. 침식체 하나가 다가왔지만, 루루가 단번에 해결했다.
파괴된 난민 주둔지는 오래전에 버려졌지만, 여전히 쓸 수 있는 텐트 천과 얼마나 오래됐을지 모를 식량이 있었다. 맛은 없지만 먹을 수는 있었다.
이 식량으로 신도들의 오늘 음식 문제는 해결됐다. 다들 배부르게 먹으니, 기운을 차렸는지 모닥불을 둘러싸고 기도했다.
주둔지 둘째 날.
루루 혼자 정찰을 나갔다. 그녀는 해양관에 접근했다가 돌아와서는 그레이스에게 해양관 쪽 퍼니싱 농도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
사람이 즉사할 정도는 아니지만 경미하게 침식될 정도야.
아, 그리고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무리가 해양관에 들어가는 걸 봤어. 그런데 너하고 비슷하게 뭐에 쓸지 모를 물건들을 들고 있더라.
어떤 도구인가요?
여러 번 기워 덧댄 깃발 같았어. 그리고 깃발 아래에 갖가지 바위를 매달았더라.
나이서예요. 명예의 깃발 나이서, 그분도 신계자예요.
외과 지식을 독학으로 습득한 나이서는 몇몇 난민을 구조했고, 그들이 살아갈 용기를 주기 위해 "신계자"가 되었다.
그다음은요?
그다음? 그다음은 없어. 그들이 들어가는 걸 보고 바로 돌아왔어.
설마 나한테 그들을 따라 들어가서 너를 위해 길을 탐색해 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
그들이 나오지 않았나요?
최소한 내가 밤에 다시 가서 확인했을 때는 나온 흔적이 없었어.
고생하셨어요. 루루. 정보 고마워요.
예전에 내 정보가 한 건당 얼마에 팔렸는지 알고 있었으면 좋겠네.
루루가 눈알을 굴리며 텐트에서 나갔다.
주둔지 셋째 날.
이곳의 퍼니싱 농도는 정말 너무 높았다.
주둔한 지 사흘째가 됐는데 인간 침식 초기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피부가 점점 썩어들어가고 환각이 나타났다.
그레이스는 어쩔 수 없이 주둔지를 뒤쪽으로 옮기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도가 반대했다.
안 됩니다. 신계자님. 우리는 이미 시련의 땅에 도착했습니다.
만약 다른 시련자들이 먼저...
이렇게 앞다투어 죽으려는 사람들은 처음 봐.
만약... 만약에 신의 왕생지 정원에 다른 시련자들이 먼저 들어가서 우리 자리가 없으면 어떡합니까?
맞아요! 제가 어... 어제 저 여자가 말하는 걸 들었는데, 신계자 나이서 님께서 이미 한 무리의 신도들을 이끌고 시련의 땅에 들어갔다고 했어요!
네?! 벌써 누군가 먼저 갔다니...
신계자님! 우리... 우리도 시련의 땅에 가야 합니다!
우리도 시련의 땅에 가야 합니다!
조용히 해주세요!
여러분의 요구는 이해해요. 하지만 여러분도... 병든 몸으로 왕생하고 싶지는 않으시겠죠!
소란스러운 주둔지가 일시적으로 조용해졌다.
임시로 주둔지를 뒤쪽으로 옮기고, 제가 신의 계시를 듣게 되면... 즉시 여러분을 이끌고 출발하겠습니다.
신도들은 그레이스의 이 답변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래서 주둔지를 일시적으로, 퍼니싱 농도가 낮은 구역으로 이동시켰다.
주둔지 다섯째 날.
당신에게만 말해줄게요. 어... 어젯밤에 저 "신의 계시"를 들었어요.
당신도 들었어요?
물론이죠. 분명 제 독실한 신앙심에 감동하셔서 신께서 적조의 소리를 들려주신 거예요.
그래서 주둔지를 떠나, 적조 소리를 따라갔는데, 명예의 깃발 나이서 님을 뵈었어요.
뭐라고요?! 나이서 님을 실제로 봤다고요?
당연히 나이서 님을 뵈었죠! 지난번 그레이스 님이 우리를 이끌고 나이서 님과 신도들을 만났을 때, 저에게 해주신 말씀들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래서 이번에는요? 나이서 님이 이번에 뭐라고 하셨어요?!
나이서 님이 저에게 그들은 이미 시련을 통과해서 신생을 얻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해양관에만 들어가면 신께서 너그럽게 모든 사람을 안아주신다고 하셨어요.
거기서는 "인간"과 "구조체"의 구별이 없고, 그 빌어먹을 적응 보고서도 필요 없대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와...
하지만 그레이스 님께서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흥! 그레이스 님께서 이익을 독차지하시려는 건 아닌지 누가 알겠어요! 저는 늙은 애연가와 상의를 마쳤어요.
내일 밤에...
주둔지 일곱째 날.
늙은 애연가가 마지막으로 남은 통조림인 고기 통조림 3개와 과일 통조림 1개를 들고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늙은 애연가를 본 게 언제인가요?
어, 어젯밤이었어요.
늙은 애연가가 마빈 일행을 데리고 해양관에 가는 걸 봤어요.
신도가 우물쭈물했지만, 눈빛에는 동경심이 있었다.
늙은 애연가와 마빈 일행 모두 "신의 계시"를 들었대요. 적조의 소리를 따라 해변으로 가서 명예의 깃발을 든 나이서 님과 다른 신계자 님 몇 분을 만났다고 해요.
다른 거는요?
그... 그가 저에게 같이 가자고 했었어요. 자신이 "신의 계시"를 들었다면서요. 계시에 따르면 해양관에 들어가 시련을 통과해 해양관 밑바닥에 도달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했어요.
거기서는 구조체와 인간의 구별이 없고, 노동할 필요도, 고생할 필요도 없다고 했어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신생을 얻을 수 있다고요.
그레이스 님, 저, 저도...
언제쯤 해양관에 들어가 시련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
그레이스가 무의식적으로 마포 자루를 흔들자, 자루 안에서 여러 재질의 룬 문자가 댕그랑 소리를 냈다.
그... 초대장은 진짜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이서는 정말 "신생"에 들어갔을지도...
하지만... 그레이스는 이전의 "계시"가 어디서 왔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적조 속에 정말로 자유가 존재할까? 그레이스는 동요했다.
이제 루루에게 그들이 결정을 내려서 시련의 땅에 들어가 신생을 얻기로 했다고 말해야 했다. 그러면 루루는 여기를 떠날 것이고, 그다음은...
그레이스는 무의식적으로 자루를 열고 손을 넣어 처음 만져진 룬을 꺼냈다.
그 돌멩이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자루 속 모든 룬은 그레이스가 직접 넣은 것이었기에, 그 안에 빈 룬은 절대 없을 것이라 그녀는 확신했다.
언제 이 룬이 섞여 들어온 걸까? 지난번 텐트에서 룬을 쏟았을 때 어둠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다른 룬을 주워 넣은 걸까? 아니면...
빈 룬... 운명,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고, "미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끊임없는 변화와 진화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신이시여, 저는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시련은 실패합니까? 거짓입니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까?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할 길입니까?
그 돌멩이를 꽉 쥔 그레이스가 중얼거렸다.
주둔지 여덟째 날.
오? 그래서 이게 네가 밤새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야?
맞아요. 이 일이 당신에게 불공평하다는 걸 알지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물자의 대부분을 당신에게 남겨둘게요. 저는 일부 신도들과 함께 해양관으로 들어갈 테니, 이곳에 남아서 부상자들과 아이들을 돌봐주세요.
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미안해요. 당신을 구했던 제가 드리는 마지막 부탁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
저희가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아요. 만약 저희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아이들과 부상자들을 가장 가까운 보육 구역으로 보낸 뒤,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세요.
알았어. 어쩔 수 없네.
아무 일 없이 돌아오는 게 좋을 거야. 부상자들이 기어이 적조에 뛰어들겠다고 하면 내가 막을 수 없거든.
네, 부탁드려요.
언제 출발해?
지금요.
야, 그래도 너무 서두르는 거 아냐!
이번 시련에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요.
그레이스가 손에 든 쇠 지렛대를 흔들어서 주위 신도들을 모았다.
우리는 곧 시련의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럼, 시련이 시작될 것입니다.
"저는 이미 의지할 곳도 호소할 곳도 없습니다. 구원만 받을 수 있다면..."
"신이시여, 당신의 존함을 찬송하며, 당신의 발 아래 엎드립니다."
"신께서 천국을 창조하셨으니, 신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적조에서 영생을 얻게 하시리라."
대열을 이룬 그들은 "시련의 땅"인 해양관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적음신계 신도들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