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 독백
>그녀가 황폐한 땅을 걷고 있었다.
여긴... 어디인가요?
사방으로 얽히며 우뚝 솟은 폐허들 사이, 새들이 백골을 물고 허공을 날아다니며 애가를 전하는 듯했다.
그녀의 코팅은 모래바람에 의해 서서히 벗겨졌고, 무거운 묘비를 짊어진 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누굴까요?
흔들리던 시선이 어느새 옆에 무너진 담벼락으로 향했고, 깨진 유리 비친 건, 희미한 그녀의 얼굴 윤곽과 속눈썹에 살며시 내려앉은 눈꽃 한 송이었다.
설...
저는... 설원에서 태어난...
설원...
혹시 들었냐? 그 여자가 설원에서 자기를 키워준 신부님을 죽였대.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역시 그 마녀와 엮인 자들은 결국...
저는 그런 적 없어요...
꺼져! 우리 도시에서 당장 나가라고! 인간인 척하면서 우리 곁에 맴돌지 마!
저는... 누굴까요?
옷자락이 더러워졌다.
수녀? 아니면 마녀인가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니까요, 침식체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마녀"라길래 강단이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기가 찹니다!
누구한테 하는 얘기죠? 또 누가... 저를 바라보고 있는 거죠?
지금까지 제가 고집해 온 것들이... 과연 옳은 걸까요?
대체 저는 누굴까요?
이 세계에서 저는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발밑의 자갈이 조금씩 질퍽해졌고, 그녀는 늪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적조 속에 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저는...
목이 바짝 말라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손을 뻗어보았지만, 적조에 침식을 당한 의식은 조금씩 기체로부터 멀어져 갔다.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그럴 수는...
깊은 어둠이 그녀의 시야를 삼켜버렸다.
비앙카...
누가... 저를 부르고 있는 거죠?
시각 모듈이 순간 어두워졌고
마녀가 심해 속으로 추락했다.
본·네거트의 임시 거점
본·네거트의 임시 거점.
본·네거트 님, 이건 약속된 "각성" 시간이 아닙니다.
그래, 네 각성 시간을 앞당겼어.
적조의 배양을 일찍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예상 밖의 일이 생겨서, 카퍼필드 해양관 지하 거점을 더 일찍 가동해야겠어.
본·네거트는 노트를 넘기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탑이라면...
보라색 머리의 승격자는 방금 깨어난 탓에 본·네거트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예전에 말씀하셨던 그 "탑" 말입니까?
대행자는 본·네거트의 혼란스러움을 눈치챘다.
문제가 생긴 것 같군.
카퍼필드 해양 박물관 쪽 준비를 서둘러야겠어.
그럼, 해양관 지하 3층은...
거긴 당분간 건들지 말거라.
가면을 쓰고 있던 탓에, 본·네거트의 표정을 정확히 볼 수는 없었다. 본·네거트는 노트를 대충 몇 장 넘기고 닫더니, 다시 보라색 머리의 승격자를 바라보았다.
서둘러, 시간이 없다.
알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