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6 요람 속의 유행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26-1 요람 도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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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눈에는 성질이 다른 두 가지의 혼란이 있고,

그것이 두 가지 다른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는 빛에서 어둠으로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것이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영혼도 똑같은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어떤 영혼이 방황하며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무작정 조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이 더 밝은 삶에서 나왔기 때문에 어둠에 적응하지 못해 주위를 보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둠에서 밝은 곳으로 막 나와

과도한 빛 때문에 눈이 부신 것인지를 먼저 물어볼 것이다.

-플라톤 <국가>-

-발췌-

4월 1일. 만우절. 운명이 잔인한 장난을 쳤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 실종된 것이다.

공중 정원으로 복귀하던 수송기가 도중에 습격을 받았다. 응급 시설은 전부 파괴되었고, 펼쳐진 낙하산마저 겉으론 멀쩡해 보였지만, 큰 구멍이 난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칭송하던 "인간 영웅"이 "풍덩" 소리와 함께 오염된 강으로 추락했다.

사람들은 즉시 수색대를 조직하여 그 강을 샅샅이 뒤졌고, 사고와 관련된 모든 인원을 찾았다. 하지만 그들이 그리워하는 지휘관의 행방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은 그렇게 시작됐다.

실종 사건 발생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던 그때...

곤경에 처한 지휘관은 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잔혹한 미지의 세계를 홀로 마주하게 되었다.

머리는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했고, 기억은 흐릿하기만 했다.

몸은 낡은 테이블과 의자에 단단히 묶여 꼼짝할 수 없었다.

옛 동료들과 전우들 모두 곁에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외쳐 봐도 응답이 없었다.

이곳은 밀폐된 의무실로, 단단히 잠긴 좁은 문 외에는 어떤 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바닥과 의료기기에 얼룩진 핏자국은 과거의 비극을 무언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갑자기 문밖에서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작은 그림자 하나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깨어났구나.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늦었네. 괜찮아?

혹사는 거의 손질하지 않은 생선 한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관심 어린 눈길로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혹사

처음엔 널 구조체로 만들려고 했어. 우리에게는 구조체만이 적합한 씨앗이 되어 앞으로의 계획에 맞춰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넌 그 제안을 계속 거부했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널 강제로 여기에 데려온 거야.

보다시피... 여기서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는데도 넌 아직 인간의 몸이잖아.

그 이유가 뭔지 알아?

혹사

음. 역시 알고 있구나?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자, 인간 영웅이라는 칭호를 가진 네가 탄탈-193 공중합체 적응성에는 적합하지 않더군.

혹사

넌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질의를 받아도 부인하지 않았어. 왜 그랬지?

공중 정원에 남아 있는 "동료"한테서 들었어, 비앙카와 리브가 특화 기체의 영향을 받아, 미래의 연산을 봤다고 하던데.

그 미래에서 넌 매번 인간의 모습으로 죽었어. 그런데 그녀들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거야?

왜 모두에게 이실직고하지 않았을까? 동료들이 걱정할까 두려웠나? 아니면 명령을 받은 건가?

혹사는 눈길을 돌려 지휘관의 표정을 관찰했다.

너무 낙담하지 마라. 적응성은 그저 최후의 보장일 뿐이야. 지휘관으로서 제일 중요한 건 마인드 표식의 연결률과 신체 능력이다.

하지만 네가 최전선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이 적응성 검사 보고서는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거다.

최전선 지휘관은 고위험 직업이다. 무사히 졸업한 이들도 대부분 적응성을 보유하고 있어서, 임무가 긴박하지 않을 때는 적응성이 없는 사람들의 "보호"를 받게 돼.

예를 들면, 간단한 임무를 배정받거나 안전한 후방에 남겠지. 시몬도 그렇게 배치됐잖아. 넌 그러고 싶지 않다며.

검사 보고서를 바꿔치기하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최전선에 나가고 싶지 않아서 합격을 불합격으로 수정하지.

지휘관을 육성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서, 들통나더라도 징계만 받게 될 거다.

잘 생각해 봐. 네 미래도 걸려있으니까.

인간은 늙고, 다치고, 장애를 갖게 되기 마련이다. 영원히 젊어서 전장을 누빌 수 있는 이는 없어.

네 결심이나 꿈과 무관한 현실이라고 볼 수 있지. 네가 전장에 나가자마자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상부를 속이고 싶지 않다면, 지휘부에서 일하라는 내 제안을 잘 생각해 봐

혹사

아시모프는 이 일을 다 알고도 너를 위해 비밀을 지켰겠지.

인간 영웅이 구조체가 될 수 없다는 건, 네가 앞으로 인간들 곁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입장도 인간 쪽으로 기울게 된다는 걸 의미하니까.

지금의 공중 정원은 구조체도 일정한 인권을 누려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있어. 만약 지휘관의 이 약점이 드러나게 된다면 하층 구조체들의 지지를 잃게 되겠지.

널 지지하는 것보다 크롬처럼 양쪽 모두를 생각할 수 있는 이를 지지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거야.

음... 하지만 그는 구조체가 되어, 너와는 정반대되는 길을 걷게 됐어.

혹사

당신들이 "배신자"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거든.

어떤 일을 말하는 거지? 아시모프가 네 비밀에 대해 모른다는 거야? 아니면 그가 공중 정원의 정치적 입장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야? 아니면 둘 다인가?

그래? 하긴 내가 공중 정원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배신자"한테서 들은 거니까. 그들이 좋은 소식을 말했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지.

혹사

우리는 적응성이 없는 인간을 어떻게 하면 의식의 바다로 전환할 수 있을지 계속 연구해 왔어.

혹사

정확히 말하자면, 의식의 바다와 유사한 상태지.

구조체가 기체를 교체하는 걸 직접 봤다면, 머리와 몸통에서 분리되는 "물질"도 봤을 테지. 적어도 난 우리의 "영혼"이 그 안에 저장되어 있다고 믿어.

그런 형태로 변했음에도, 자신과 비슷한 기체 안에서 온전한 자아를 유지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야.

휴머노이드 구조체나 스스로 승격 네트워크에 연결해 복잡한 데이터를 수신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보통 더 좋은 뇌를 가지고 있고, 강렬한 감정과 자아 인식 능력도 가지고 있지. 내가 필요로 하는 게 바로 그거야.

의식의 바다가 충분히 안정된 사람만이 크틸라에 의해 완전히 태어날 수 있으니까.

혹사

넌 그녀를 만난 적이 있어.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작은 요람을 본 적이 있을 거야.

그때, 너희는 그녀를 "이중합 모체"라고 불렀지.

그녀는 우리를 도와 적조 속에서 인간형 변종을 만들어냈고, 직접 쌍둥이를 낳기도 했어.

그리고 적조를 바다로 흘려보내는 실험을 통해, 우린 구조체 의식의 바다를 쌍둥이의 육체로 이식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거든.

모든 준비를 마쳤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녀에 의해 온전한 형태로 태어날 수 있었던 존재는 별로 없었지.

혹사

응. 죽음을 뛰어넘어 새로운 인간이 되는 거야.

괴물? 아니. 그건 괴물이 아니야. 넌 죽음을 뛰어넘어 재창조되는 거야.

널 구조체로 만들 수 있었다면, 일이 훨씬 더 순조로웠을 텐데, 아쉽네. 그래도 괜찮아. 우린 미리 대안을 준비했으니까.

혹사는 지휘관의 손에 꽂힌 유치 침을 가리켰다.

혹사

이런 약제는 우리의 연구 성과 중 하나야. 매일 한 번씩 투여해야 하는데, 이제 마지막 한 번만 더 투여하면 너한테도 적응성이 생길 거야.

혹사

아니. 이합 생물과의 적응성이 생긴다는 말이야.

물론 네 기대와는 좀 다르겠지, 왜냐하면 이건 이합 생물과 적응성이 생기도록 조치하는 거니까.

인간이 적조에 직접 들어가게 되면, 갈기갈기 찢겨서 흩어진 퍼즐 조각이 되고 말아.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퍼즐 조각들과 섞여서 구분할 수 없게 되는 거지.

그런 방식은 네 타고난 자질을 낭비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

하지만 네가 이런 적응성을 갖추면, 크틸라가 더 쉽게 널 받아들일 수 있고, 넌 더욱 온전한 형태로 남을 수 있어.

혹사

참. 며칠째 아무것도 먹이지 못했고, 영양제도 주지 못했네. 이거라도 맛볼래?

혹사는 포크로 잘라놓은 생선 간 한 조각을 찍어서 건네줬다.

혹사

원래 선생님을 위해 준비한 건데, 선생님께서 당분간은 오시지 않을 예정이라서 말이야.

혹사

독이 들었을까 봐서 그래? 두려워할 필요 없어, 난 널 해칠 생각 없어. 이 계획을 막을 수 있는 건, 네가 여기서 탈출하거나 계획이 성공하기 전에 죽는 것뿐이야.

도망가고 싶지? 오랫동안 굶었는데, 체력을 보충해야 하지 않겠어?

혹사

널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사.랑.해.

혹사

그러면 마지막 주사를 맞기 전까지 네가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물론, 네가 모르는 사이에 "난" 오랫동안 너를 지켜봐 왔어. 임무가 없었다면, 정말로... 너에게 다른 일들을 더 하고 싶었을 거야.

그런데 모두에게 존경받는 "영웅"의 영혼이 승격자의 사랑까지 주워 담으며 그 진위를 물을 정도로 외로운 거야?

혹사

괜찮아. 외로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야. 성인조차 고독에 빠지잖아. 그러니 자신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고 자책하지 마.

널 사랑한다고 말한 건 진짜야. 사랑하니까 반드시 이 계획을 성공시킬 거고.

마지막 주사를 맞기 전까지 꼭 살아있어야 해. 그래야만 네 의식이 지속될 수 있으니까. 음식도 좀 챙겨 먹고.

혹사

탈출은 격한 감정과 자아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거든. 너무 늦게 깨우면 네 의식의 안정도가 떨어지게 될까 봐 그랬어.

물고기는 신선할 때 가장 맛있단 말이야.

혹사는 손에 든 포크를 흔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미끼를 흔드는 어부처럼 보였다.

혹사

마지막 주사까지 맞고 나면, 너에겐 48시간밖에 남지 않아. 공중 정원으로 즉시 돌아간다 해도 그들이 널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은 없잖아.

그 48시간 동안, 넌 피와 육체가 서서히 곪기 시작하는 걸 느끼게 될 거야. 게다가 이 약제에는 강한 부작용이 하나 있어.

혹사

넌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한 통증을 느낄 거야. 정말 미안하긴 한데, 이런 부작용만큼은 나나 하이디도 어떻게 할 수 없었어.

진통제를 투여할 순 있지만, 그러면 "성과"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게 되잖아.

어쨌든 통각은 제정신을 유지하는 약제나 다름없고, 구조체 수술을 할 때에도 의식의 바다와 본인 의식을 동기화하기 위해, 통각을 유지하잖아.

마지막 주사 후, 곪음으로 인한 통증을 견딜 수 없는 네가 미리 해탈하려고 할까 봐 걱정이야.

혹사

자. 남기지 말고 이 생선 다 먹어. 바다의 요정이 힘들게 잡은 물고기니까, 음식을 낭비하면 안 돼.

혹사

어, 그 녀석도 크틸라의 자식인데,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자, 먹어.

혹사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

날카로운 포크가 그 위에 있는 물고기 덩어리와 함께 묶여 있는 인간의 손을 찔렀다. 그러자 극심한 통증이 상처에서 심장까지 전해졌다.

혹사가 말한 "마지막 주사"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음에도 지휘관의 몸은 얼마나 심한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혹사

소리도 지르지 않는다니, 대단하네.

혹사는 손목을 살짝 돌려, 포크에 찔린 상처를 비틀었다.

고통이 두 배로 밀려오자, 몸이 극심한 통증을 제어할 수 없어 웅크린 채 떨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낡은 테이블에 부딪힐 뻔했다

시야가 테이블의 얼룩과 매우 가까워졌을 때, 테이블에 수많은 작은 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같은 일을 겪었을까?

혹사

미안. 그냥 네가 현재의 네 몸 상태를 잘 알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을 좀 더 아꼈으면 좋겠어.

아, 참. 사과의 의미로 질문 하나에 대답해 줄게. 그리고 그 답은 거짓말이 아닐 거라고 약속할게.

혹사

그럼, 믿지 마. 그리고 질문하지 않아도 돼.

지휘관의 질문에 혹사는 코웃음만 칠 뿐,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혹사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보는 건 어때?

물론 그렇게 하면 널 변태로 취급해서 감금할 거야.

혹사

음. 미안. 그 대신 다른 질문 하나 더 받아줄게.

혹사

이런 질문이 나올 줄은 몰랐네.

너 혼자서는 절대 탈출할 수 없다고 생각해. 여긴 매우 밀폐된 공간이니까.

공중 정원이 네 흔적을 발견하거나 대행자가 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이상 힘들다고 봐야겠지.

발견한다 해도 널 구하러 오기는 힘들 거야. 여기에 있는 이들 대부분은 좀 더 얕은 곳에서 옮겨져 온 뒤, 이곳까지 잠수해서 온 거거든.

혹사

그건 두 번째 질문이야.

혹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혹사

그래. 이것도 대답해 줄게. 내가 강제로 데려온 사람이니까, 나도 계속 미안했거든.

혹사

그 대가로 넌 나와 질문 게임을 두 번 해야 해. 물론 기밀과 관련된 내용은 묻지 않을 거야.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

혹사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라고 들어본 적 있어?

예를 들어서, 공중 정원의 연구자들이 의식의 바다 복제 기술을 통해 리브를 다섯이나 복제했어. 그리고 그녀들은 지금 전차 궤도에 묶여 있고, 곧 전차에 치일 위기에 처하게 됐어.

콘솔에 있는 방향키를 당겨 전차를 다른 궤도로 이동시킬 수 있어. 하지만 그 궤도에는 진짜 리브가 누워 있어. 이때 넌 어떤 선택할 거야?

방향키를 당겨 너와 사계절을 함께 보낸 진짜 리브가 전차에 깔려 궤도 위에서 죽을 때까지 너를 바라보게 할 거야?

그렇게 하면, 넌 리브를 다섯이나 얻을 수 있어. 물론 의식의 바다 은통 부작용이 있긴 하겠지만, 다섯 리브는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겠지. 그리고 네 곁에 더 오래 있을 수도 있어. 꽤 좋은 선택지이지 않아?

아니면 복제된 리브 다섯을 포기하고 진짜 리브를 남겨둘 수도 있어.

혹사

그렇군. 넌 그렇게 대답하는구나.

혹사

알파만 복제될 수 있거든. 루시아는 엄연히 복제체잖아. 복제체의 복제는 품질이 떨어져서 자의식조차 제대로 보존할 수 없어.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 역시 트롤리 딜레마야.

공중 정원의 연구자들이 네 클론을 5명이나 만들었어. 지금 그 5명이 모두 전차 궤도에 묶여 있고 곧 전차에 치일 위기에 처하게 됐어.

혹사

맞아. 조금 전 문제와 동일해. 방향키를 당기면 전차는 다른 궤도로 이동해. 하지만 그곳엔 너 자신이 누워있는 거야.

안타깝게도 결정 권한은 공중 정원의 의회에 있어. 그리고 그들은 누굴 구할지 투표하기 시작할 거야.

한쪽은 초강력 마인드 표식을 가진 지휘관이 5명이나 있어.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1명을 돌려주더라도 4명이 남아. 그 4명은 각기 전투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겠지.

음... 자신과 같은 사람이 5명이나 있으면 좀 짜증 나려나? 그럼, 사고와 기억상실로 해결하면 되겠다.

다른 쪽에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만 신경 쓰는 지휘관 본인이 있어. 너에 대한 그들의 감정을 생각한다면, 본인인 널 구하고 싶겠지.

하하. 루시아도 복제체긴 하지만 말이야.

혹사

음... 모르겠어. 심지어...

지금 넌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간절히 찾고 있는 지휘관일까? 아니면 그들이 신경 쓰지 않는 5명 중 하나일까?

아니면 네가 본인이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5명 중 한 명을 찾아서 더 이상 널 찾지 않을까?

혹사

그래. 좋아. 우리는 깊이가 5000미터가 넘는 심해에 있어. 여기를 거대한 잠수함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혹사

세 번째 질문은 안 돼.

단 1미터만 넘어도 넌 혼자 여길 나갈 수 없어. 게다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도 이곳을 찾기 어려울 거야.

마지막 주사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고 버텨. 너도 여기서 죽고 싶진 않잖아? 우리의 목적은 같아.

혹사

응.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지금 지휘관의 유대가 얼마나 돈독하고 정이 깊은지는 잘 알고 있어. 많은 소대가 너희들의 모습을 부러워했지. 물론 나도 그렇고.

혹사는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혹사

몸 상태는 좀 어때? 방금 깨어나서 정신이 좀 혼미할 텐데, 도망가다 다치진 않을까 걱정이네.

이렇게 하자. 간단한 게임으로 몸 좀 풀어볼래?

혹사

겁먹지 마. 겁먹지 마.

부드러운 어투로 앞에 있는 지휘관을 달랜 혹사는 의자 옆에 있는 통에서 실 한 가닥을 꺼냈다.

혹사

그냥 단순하고 친근한 게임이야. 어렵지도 않고 벌도 없어. 네가 긴장을 풀기만 바랄 뿐이야.

혹사는 길고 가는 실을 손에 감았다.

혹사

내가 어릴 적에 실뜨기 놀이가 유행이었어. 얽힌 실을 풀다 보면 서로의 손이 닿을 기회가 생기곤 했지.

이렇게 앉아서 간단한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도 둘의 운명과 처지가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

봐. 내 양손도 너처럼 묶였어.

혹사가 얽힌 실을 내밀자, 코를 찌르는 백합꽃 향기와 피비린내가 함께 풍겨왔다.

약제의 자극으로 예민해진 후각은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어두운 기억을 끄집어냈다.

백합과 피, 그건 군인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잊지 못할 냄새다.

혹사는 인간의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손에 든 가느다란 실을 통해 멀리 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실을 바라봤다.

혹사

어릴 적에... 아버지는 이런 실뜨기 놀이를 "고양이 요람"이라고 불렀어.

"흔들흔들. 높은 나무 위에 있는 작은 고양이. 강한 바람이 불어서 나뭇가지가 끊어지면 요람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고양이도 같이 떨어져."

혹사

...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우리를 구속하는 밧줄도 다르고 입장도 다르니, 내가 "거들먹거리며" 너에게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네가 절망에 빠진 난민들을 구하며 아직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할 때, 그것 또한 일종의 "거들먹거림" 아니었을까?

여기에 남은 사람들도 많아. 난 그들에게 강요한 적 없고, 우리의 주장을 홍보한 적도 없어. 여기저기 알아보고 스스로 찾아온 거야.

그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어. 구제 불능의 세계에서 크틸라의 품으로 도망쳤지. 그리고 그녀의 요람 속에서 곤히 잠들기 위해 그녀의 아이가 되었어.

나도 똑같아.

넌 어때?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네가 파멸의 끝에 다다랐을 때, 아무것도 없는 자신과 크틸라의 요람을 어떻게 마주할 생각이야?

응. 알아.

고양이 요람은 잔혹한 현실을 가리는 거짓이자, 동화 같은 희망과 허상에 불과해.

아버지가 내 몸에 밧줄을 걸었을 때도, 크틸라 계획도, "인간 영웅"도 마찬가지야

살아있을 때 얻지 못한 것을 천국이나 다음 생에 얻기 위해, 반드시 신이 있어야 했고, 영웅도 있어야 했어. 그리고 실뜨기에도 고양이와 요람이 반드시 있어야 했어.

우리는 희망이 있다는 걸 믿기 위해 거짓말이 필요했어. 하지만 거짓말은 언젠가 밝혀지는 날이 올 거야.

혹사

맞아. 네 말이 맞아. 선생님도 이 책을 나에게 권했을 때와 많이 달라지셨어. 많은 일들이 원래의 이상했던 모습에서 멀어졌어.

혹사는 손으로 자살용 밧줄을 만들기라도 하는 듯 가느다란 실을 반복해서 문질렀다.

혹사

"나"도 그래.

"혹사"가 새로운 복제체로 자신의 사명을 이어갈지도 몰라. 그러면 지금 너와 대화하고 있는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거야.

넌?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네가 모든 걸 알게 됐을 때, 너도 "고양이 요람"과 함께 나뭇가지에서 추락할 거야?

여기까지 말한 혹사는 갑자기 모든 동작을 멈추고 문 쪽을 바라봤다.

잠시 후, 테이블에서 일어난 혹사는 포크와 생선 접시를 제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혹사

불청객이 와서, 맞이하러 가야겠어. 넌 좀 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