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루시아의 수색 및 구조 임무를 받은 지 3시간이나 지났다.
많이 알아서 너한테 득이 될 건 없다.
……
계속 말해봐.
그 시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근거는?
월리스의 말이 맞았어. 자넨 골칫거리를 끌어당기는 자석이야.
과학 이사회의 추측에 의하면 루시아가 영향받은 건 알파의 의식의 바다 활동 신호 때문인 것 같아. 그래서 그들이 지금 이런 단서를 통해 신호 출처를 찾고 있어.
이 일을 너에게 말하지 않은 건, 소용돌이에서 겨우 벗어난 네가 다시 말려들지 않았으면 해서 그런 거다.
왜 스스로 말려들려고 하는 거지? 이유를 말해봐.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루시아가 전투할 수 없는 지금 전투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동력갑은 생각 없이 전장에서 나대기 좋아하는 젊은 지휘관들이 표적이 되지 않도록 추가 보호 성능을 제공할 뿐이다.
그러니 네가 구조체 그것도 특화 기체의 전투력 부족을 완벽하게 보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
허, 이 점은 잘 알고 있는 모양이군.
알겠다. 본인이 미끼가 되겠다고 하니, 신청을 허가하지.
수송기를 타고 지정된 지점에 도착했다. 구조 효율을 높이기 위해 리브, 리와 상의한 끝에 따로 수색하기로 했다.
발밑 지형도 신경 써야 했고 눈보라 때문에 시야도 좋지 않아서 수색은 지지부진했다.
그래서 눈보라를 거슬러 이동하면서 시야가 비교적 좋은 곳을 찾아, 수송기 잔해 같은 걸 발견할 수 있는지 살펴보려고 했다.
생물 신호가 감지됐습니다.
AI가 알려준 방향을 바라봤다.
눈보라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나타나자, 익숙한 느낌이 든 지휘관은 입가에 맴돌던 말을 자기도 모르게 내뱉었다.
그 그림자는 잠시 멈추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늦지 않게 왔네. 그렇지 않았으면, 루시아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했거든.
검은 머리 소녀는 알파의 품에 조용히 안겨 있었다. 기체엔 별다른 상처가 없는 거 같았지만, 보기 드물게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파의 움직임을 경계하며 지원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의식을 연결해 루시아의 상황을 확인했다.
알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막을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루시아는 더 이상 그런 게 필요 없어.
구체적인 건 루시아가 깨어난 후에 직접 물어봐. 그녀가 말하는 게 더 믿음이 갈 테니까.
그건 네 일이야.
[player name]...
알파가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고 나서야, 그녀가 더 이상 왼쪽 눈을 가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루시아한테 일어난 일은 알고 있겠지?
이번엔 그들이 너한테 숨기지... 않은 게 아니라 누군가가 정보를 흘린 거 같군?
참으로 "신뢰" 받는 지휘관이네.
루시아가 정말 봉인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네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어떻게 확신하지?
그래?
눈보라와 동력갑을 관통하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이 지휘관의 마음을 꿰뚫는 것 같았다.
혹시 알고 있나? 어떤 사람들은 침식된 존재를 보호하는 게 배신이라고 여기던데?
네가 바라는 미래의 세계는 어떤 거지? 황금시대의 "영광'을 되찾는 건가?
좀 더 나아진다라...
잠시 침묵한 알파가 루시아를 지휘관에게 넘겼다.
받아.
루시아를 넘겨받은 후에야, 그녀의 손에 메모리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겨울 계획]에 관한 모든 내용이 들어있어. 계속 조사하고 있었잖아?
난 이미 원하는 걸 손에 넣었어. 남은 거엔 관심 없어.
그리고 너희들이 스스로의 행동으로 다른 가능성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이상,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야.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고 싶다면서 아무것도 모르면 안 되잖아?
하지만 진실을 이해한다는 건 심연을 탐구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해. 정말 준비가 됐나?
그래?
끝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뿐이라도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쳐봐.
나도 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싶군.
……
네 대원들이 왔으니 이만 돌아가.
알파의 시선이 눈보라를 뚫고 뒤쪽을 바라봤다.
우리에겐 각자의 길이 있고, 아직은 만날 때가 아니야.
그전에 다른 대행자와 그 탑의 영향이 닿지 않는 곳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알파는 더 이상 설명할 생각이 없다는 듯 돌아서서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지휘관의 뒤쪽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지휘관님! 루시아!
뒤돌아보니 두 대원과 중상을 입은 정화 부대의 대원이 같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샌가 텅 빈 로비에 와 있었다. 주위엔 인기척이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늘한 불빛만이 회백색 금속 벽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거대한 공간에 있자, 전에 없던 불안감이 엄습해 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벽 구석으로 물러났다.
하얀 불빛이 무게를 가진 것처럼 숨을 쉴 수 없게 했다.
그 빛은 자의식이 있다는 듯, 그늘 속으로 숨으려 하는 대상을 쫓아다니며 온몸에 빛을 비추려 했다.
"재료를 관찰해", "퍼니싱을 잡을 결정적 역할", "중점 관찰 대상"...
그렇다. 사실을 알고 난 후 이런 것들에 대해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손으로 손바닥을 만지자 익숙한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그 손을 잡았을 때, 그 손은 허무 속에서 날 구원해 줬다.
그 사람은 내 존재를 긍정해 주었고, 이 세계와 연결해 주었다. 모든 건 그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에 배정한 지휘관은 어떻게 됐지? 이 일은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전에 확정하는 게 좋을 거야.
갑자기 기억 속에 불협화음이 들려왔고, 손바닥의 온도도 조금 차가워졌다.
이미 배정했어요.
잠깐만...
그래. 그녀는 중요 감시 대상이야. 똘똘한 애로 배정해.
걱정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저희가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뽑은 우수 졸업생인걸요.
소중한 기억에 거울처럼 금이 갔다.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자, 금속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줄곧 이런 것들을 무서워하고 있었던 건가?
그 만남조차 계획적인 배정이었다면, 시작도 없는 내게 남아있는 건 무엇일까?
……
아니야. 그 사람이 했던 말이 거짓말일 리 없어.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배우고 행동 방식에 주의했었어.
그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고, 이 유대도 가짜가 아니야.
그러니까...
누가 선수 쳤다고?
네. 제 실수예요. 편성되지 않는 소대를 선택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기체를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을)를 이곳에 휴면하게 했거든요. 이후에 우리가 배정한 사람 밑에 그녀를 다시 옮기면 돼요.
선수 친 사람이 누구야?
이건 그 녀석의 자료예요.
쳇, 이 녀석이었군.
사령관님?
별거 아니야. 사령부 전근 명령을 거부한 졸업생을 봤을 뿐이다.
놔둬.
네?
이 녀석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을 맡게 놔둬.
하, 파오스의 새로운 수석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보자고.
다행이다. 계획적으로 배정된 게 아니었어.
차갑던 불빛이 따뜻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반대로 그 사람은 날 허무에서 구해 준 사람이야.
파오스의 새로운 수석이라고요? 아. 기억났어요. 그 녀석의 이름은...
그 사람의 이름은...
[player name]...
시각 모듈 교정 완료에 오랜 시간이 걸린 루시아는 눈앞의 천장이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휘관님. 이곳은...
생명의 별... 참. 지휘관님의 상처는 어떻게 됐나요?
다행이에요. 그리고 죄송해요.
루시아가 일어나려 했지만, 기체의 허약함과 의식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그녀의 행동을 가로막았다.
기체의 허약함이 느껴졌다. 그건 지금까지의 부상과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이런 허약함은 기체 손상 때문만은 아닌 거죠?
루시아는 눈앞에 진지한 표정을 지은 인간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무언갈 얘기하려는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
[player name] 님, 면회 시간이 다 됐으니 그만 나가 주세요.
관찰 기간 내엔 융통의 여지가 없다는 걸 이해해 주세요.
……
지휘관님. 저를 대신해서 리와 리브한테 "다녀왔어요"라고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루시아는 손을 흔들며 지휘관과 작별했고, 병실의 문이 다시 닫힐 때까지 바라봤다.
참. 이건 검사를 끝마쳤으니 돌려드릴게요.
그 안에서 최신 메시지 외에 특별한 것이 없기 때문에 소속 지휘관님께 돌려드려도 된다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저희 소대를 대신하여 다시 한번 그레이 레이븐의 도움에 감사드려요.
그럴게요.
오가는 사람이 많은 병원에 구조체 소녀 한 명이 안내데스크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혹시 구조체 병실을 찾고 있나요?
아니요.
소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호흡은 사람들 틈에 섞여서 순간적으로 사라질 것처럼 미약했다.
쿠로노 히사카와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소녀는 배후의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걸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
이상이에요. 상대방은 우리의 동료가 되기는커녕 극도의 저항을 보이기까지 했어요.
본·네거트 님. 이것도 당신이 예상하셨던 일인가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절대 통과할 수 없는 고과 항목을 내주시다니, 정말로 엄격하시네요.
아니. 그녀들의 목적과 능력에 대해선 이미 파악해 뒀어. 그보다 중요한 건 그녀가 우리의 다음 계획에 방해될지 아닐지를 확인해야 해.
그래야 너도 다른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잖아, 안 그래?
릴리스가 손바닥을 펼치자, 기억 장치 하나가 보였다.
사랑하는 고모가 소중한 열쇠를 내어주지 않았다면, 저도 그렇게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그것의 꼬리를 잡을 수 없었을 거예요.
릴리스 손에서 기억 장치를 건네받은 본·네거트는 그것을 눈앞에 두고 보물 보듯 바라봤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본·네거트 님께서는 이 샘플을 가지고 무엇을 하실 생각인가요?
오래전에 한 약속을 이행하는 것뿐이다.
이번 심사는 매우 훌륭하게 마무리됐어. 그리고 크틸라를 깨울 조건도 거의 다 준비됐어.
망각자 쪽은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계속할까요?
예리한 망각자 리더가 수상한 부분을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신경 쓸 필요 없어. 이제 그들은 우리를 조사할 시간이 없을 거야.
공중 정원에서 배신한 이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것뿐만은 아니야.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모든 사건과 충돌은 모두 한 사건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지.
와타나베는 눈앞에 새 무덤을 보며, 손에 들고 있던 종이꽃 한 송이를 무덤에 올려놨다.
월터. 워커. 너희들이 보내 준 정보가 있어서, 우린 유괴 사건을 끝낼 수 있었어.
너희들의 희생은 절대 헛되지 않을 거야. 이 땅은 언젠가 원래의 질서를 되찾게 될 거다.
와타나베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봤다. 묘지엔 오래된 흙더미나 새로운 흙더미나 할 것 없이 가지런히 배열돼 있었고, 흙더미 위엔 애도에 사용하는 종이꽃이 놓여 있었다.
흙더미 아래에 있는 희생자들의 유골은 사막과 하나가 되어 대지의 품으로 돌아갔다.
와타나베는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잊은 적이 없었다.
나중에 다시 보러 올게. 그리고 다음엔 좋은 소식을 가져올게.
와타나베는 일어서서 작은 묘지를 떠났다.
리더님. 새로운 가입자가 왔어요.
우선 그들을 격리시키고, 신분 확인부터 제대로 하도록.
알겠어요. 하지만 훈련 교관이 턱없이 부족해요. 다들 신병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인원을 거느리는 게 힘들 것 같아요.
나도 훈련소에 가서 도울 거다. 그리고 다른 대선배님한테도 훈련 도와달라고 부탁할 예정이야.
대선배님이요? 리더님한테 대선배님이라고 불릴만한 분이 있나요?
당연하지.
존경할 만한 훌륭한 선배님이시다.
와타나베는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그 선배의 이름을 결국 밝히지는 않았다.
그 외에 또 다른 용무가 있나?
음... 그리고 정화 구역의 일로... 공중 정원에서 또 인원을 보내왔어요.
조만간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
지금 어디에 있지? 거기로 먼저 가자.
과학 이사회. 닫혀 있던 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아. [player name] 지휘관님. 안녕하세요.
예약한 시간이 지금은 아닐 텐데?
루시아의 일은 과학 이사회의 책임도 있어. 난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
그 말에 아시모프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멈췄다.
로사.
네?!
프로필관에 가서 초각 기체의 실험 중에 나타난 의식의 바다 과부하 부분에 대한 기록을 모두 정리해서 가져와.
네?!
알겠어요.
로사는 황급히 달려나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그 많은 기록을 언제 다 정리해"라고 투덜거렸다.
언제 알았지?
맞아. 그 암호화 통신 주소는 내가 몰래 추가한 거야.
그래서 이곳에 온 목적이 뭐지?
그렇게 말한 지휘관이 아시모프에게 메모리 하나를 건넸다.
이건...
아시모프는 그 물건의 정체성을 추측해냈는지,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이거라면 니콜라 사령관에게 전달해야 할 텐데?
이걸 왜?
그럼, 감사히 받을게.
그래.
군부든 쿠로노든 과학 이사회에 자료를 공유할 때 모두 공유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자료 내용을 이용해 그들의 계획을 추진하는 거야. 과학 이사회도 어떻게 보면 그들의 공범이라고 할 수 있지.
의장이나 다른 사람들은 정치적 수완으로 겨울 계획을 멈추고 싶겠지만, 그 계획에 대한 탐욕이 남아 있는 한, 그 계획이 재가동되는 건 시간문제야.
그래. 과학적인 방식으로 멈출 거야.
이 계획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발원지를 파괴해야 놈들의 욕심을 깰 수 있어.
그래서 이 완전한 자료는 나에게 있어서 가뭄에 단비 같은 거야.
그래서 네 목적은 뭐지?
전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루시아입니다. 이어서 남기는 메시지에는 어떠한 협박이나 간섭을 받지 않았으며 전적으로 제 개인 의지에 따라 한 말임을 밝힙니다.
제 기체에 여느때와 다른 이상 상태가 나타났고, 그것으로 인해 저희 지휘관님께 상처를 입히기까지 했습니다.
호송 대원이 남긴 메시지와 제 추측으로 판단해봤을 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 제가 언제 통제력을 잃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무고한 사람들이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해, 저... 루시아는 저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때까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대장 직무를 내려놓겠습니다.
제일 먼저 이 단말기를 발견하는 건, 절 호송하던 정화 부대 대원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리, 리브 그리고 지휘관님께 이 말을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리 긴 시간이 필요할지라도... 전 꼭 돌아가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주머니 속에서 뜨거워진 단말기를 꽉 쥐었다.
지휘관이 아시모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시모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조금 차가운 손으로 지휘관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