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3 심연의 울림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23-1 그녀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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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AM 오아시스 주둔지 밖 8km 떨어진 지점.

노랫소리

"사막 한가운데를 여행하는 외로운 늑대~"

"갈 곳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네~"

"힘들어도 멈출 수 없네~"

어서 잡아!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정보가 망각자한테 들어가게 된다면 큰일이라고.

모래가 날리는 사막 위에 해골 머리와 여러 가지 왜곡된 글자가 그려져 있는 지프차가 질주하고 있었다. 그 지프차에서 나오는 엔진 소리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까지 덮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회색 털을 가진 늑대가 달리고 있었다.

뼈가 보일 정도로 쩍 벌어진 상처에 잔뜩 묻은 모래는 검게 변했다가 새로 흘러나오는 피에 다시 빨갛게 물들었다. 늑대의 모습만 봐도 무슨 일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늑대는 심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놀라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월터 이 빌어먹을 놈! 다시 돌아올 줄은 예상도 못했다고.

월터의 펫이 정보를 전달하게 놔둬선 안 돼. 실종된 "적음신계"의 신도들이... 우리한테 유괴됐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사내는 말을 더듬다가 침을 뱉었다.

와타나베가 알게 되면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러면 우리와 연락하던 쿠로노 놈은 자신만 쏙 빠져나가겠지.

이런 ** 늑대 새끼 잘도 도망치네!

늑대 새끼가 멈췄어. 잠깐, 옆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무리를 이탈한 늑대는 결국 혈육의 몸이었고, 빠르게 달리던 도중 다리를 휘청거리더니...

어렴풋이 보이는 인간 옆에 쓰러진 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사막에 있는 다른 무장세력과 사뭇 다른 모습을 가졌고, 무기는 등 뒤에 멘 장검뿐이었다.

보아하니 망각자 쪽은 아닌 것 같아...

지프차에 있던 두목이 모래 먼지 너머에 있는 상대를 관찰했다. 사막에서 단독 행동을 하며, 망각자 병사의 규격 무장을 하지 않은 이는 대열을 이탈한 스캐빈저일 가능성이 높았다.

밟아버려!

두목은 여느 때처럼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질주하는 차량이 일으킨 바람에 아무렇게나 몸에 두르고 있던 상대방의 누더기 천과 흰색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오드아이... 구조체?

다음 순간, 칼날에 반사된 하얀 빛이 시야를 가렸다.

두 동강 난 지프차는 알파의 머리 위로 넘어갔고 결국 모래 위에 떨어졌다.

알파는 고개를 숙여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늑대를 바라봤다. 늑대는 피가 섞인 거품을 토해낸 후 다시 일어서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다리만 벌벌 떨게 됐다.

그의 목엔 파란 목줄이 걸려있었기에 인간에게 길들여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힘들게 앞을 바라보던 늑대의 탁한 눈동자엔 희미한 빛이 깃들어져 있었다.

노랫소리

"외로운 늑대는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들었다네~"

운 좋게 두 동강 나지 않은 지프차의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노랫소리

"외로운 늑대는 지난날을 회상했네, 고향의 노래와 노래하던 고향 사람들을~"

"외로운 늑대는 사막에서 인연을 찾아 끝내고 싶었던 삶을 이어간다네~"

회색 늑대는 눈길을 알파에게 돌렸다. 아마도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자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알파의 냄새를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믿었다.

……

알파는 죽어가는 생명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윽...

하지만 알파가 조금 더 다가가려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건 부서진 총과 피와 살이 섞여 있는 모습, 부러진 비수가 순환액으로 물들어져 있는 지면에 꽂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심연에서 돌아온 악귀처럼, 붉은 기운을 풍기는 인간 모양의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장검을 검집에 넣으며, 도발적인 눈빛으로 알파를 바라봤다.

▅▃▆▅▂▄▁▅▇

닥쳐!

수면에 일렁이는 파문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환영은 알파의 왼쪽 눈에 미미한 통증만을 남겼다.

흰머리로 왼쪽 눈을 가린 알파는 늑대의 애원하는 눈빛을 외면한 채, 정해놓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행인에 불과한 그녀가 오지랖을 부렸다간 나쁜 결과만 초래할 뿐이었다.

게다가 방금 전 있었던 소동은 다른 이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노랫소리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모든 걸 맡기고~"

"랄라라~ 랄라라~ 랄라라~"

늑대의 숨소리가 바람 소리와 함께 천천히 잦아들었다.

30분 후...

리더님. 정찰을 완료했습니다. 현장에서 미세한 퍼니싱 잔류물이 확인됐지만, 다른 오염 근원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수고했어. 상대방은 이미 떠난 모양이군. 다른 주둔지에 24시간 내내 경계하라고 전달해.

네!

월터는 찾았나?

차량 트렁크에서 찾았어요. 가족에게 시신을 수습해 가라고 알릴까요?

와타나베는 고개를 저었다.

월터의 유일한 가족은 과거 혼란 시기를 겪을 때 이 세상을 떠났지.

죄... 죄송해요. 그런 줄 몰랐어요.

네 탓도 아닌데 뭐. 그 녀석은 이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와타나베는 회색 늑대의 목걸이에서 꺼낸 칩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월터와 워커의 시체는 함께 화장시켜. 그가 전에 말했던 소원이다.

철수한다. 용광로에 있는 인원에게 자동차 잔해를 회수하라고 해. 우린 공중 정원과 상의해야 할 일이 있다.

실종 사건은 그들과... 그러니까 쿠로노와 관련이 있는 거겠죠? 예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들은 꼬리만 자르고 본체는 빠져나갔잖아요.

공중 정원과 협력할 필요가 있을까요? 내부에서 처리하는 게 더 깔끔할 것 같은데요.

어떤 일은 그들과 협력하는 게 내부에서 처리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일 거다. 지금은 실종 사건의 재발을 막는 게 급선무야.

그리고 공중 정원에도 괜찮은 사람이 있어.

공중 정원의 신세대에 괜찮은 사람들이 있는 건 맞지만, 리더님께서 연락하실 상대는 대철수 명령을 내렸던 그 자식들 아닌가요?

이익이 없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놈들이 신도의 실종 사건에는 관심이나 있을까요?

그들은 이 정보에 관심이 있을 거다. 의회와 쿠로노가 힘을 겨루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니까.

그리고 정보의 진위도 그들이 검증해 줘야 해.

망각자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프차 잔해 옆에 키 큰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손에 든 양산으로 모래를 파헤쳤다.

찾았다~

양산 끝으로 탁 쳐올리자 작은 플레이어가 그녀의 손에 떨어졌다.

공기 속에 붉은 전깃불이 스치자, 작동을 멈췄던 플레이어에서 다시 노랫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노랫소리

랄라라~ 랄라라~ 랄라라~

하여튼 이런 힘이 있어 참 편하다니까. 훌륭해...

키 큰 그림자는 플레이어를 들어 올리며 도취된 듯 말했다.

플레이어의 신호를 조작해서 그 인간이 관계자의 정보를 "우연히" 발견하게끔 했으니, 그들은 계속 추적해 나가겠지.

작은 우연을 만들었을 뿐인데, 임무가 이렇게 순조롭게 완료되다니.

그녀는 알파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청자색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뜻밖의 수확도 있었고 말이야.

그녀는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알파가 향한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번 "인턴 고과 평가"를 무사히 끝냈으면 좋겠네~

노랫소리

랄라라~ 랄라라~ 랄라라~

"고향을 떠난 외로운 늑대는 다시 앞으로 나갈 용기를 되찾았다네~"

노랫소리

"새로운 고향을 위해~"

"랄라라~ 랄라라~ 랄라라~"

네?

익숙한 목소리에 희미하게 들리던 노랫소리가 끊어졌다.

그게... 노랫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요.

시선을 멀지 않은 곳으로 돌렸더니 대형 보육 구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들 중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합 생물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스캐빈저가 있었고, 아딜레 상업 연맹의 수송 부대도 있었다.

그리고 지휘관과 루시아처럼 공중 정원에서 파견 온 이들도 있었다.

스캐빈저들 쪽에서 들려온 노래겠죠. 저도 정확히 들은 건 아니에요.

어, 여기! 여기 있었어.

루시아가 말한 노랫소리를 엿듣기 위해 귀 기울이려고 할 때, 구조체 한 명이 다가왔다.

정비 부대 쪽에서 너희들이 안 보인다고 그러던데, 역시 이곳에 숨어 있었네.

도와주고 싶었지만, 정비 부대의 대원들한테 쫓겨났어요.

도움 필요 없어요. 당신들이 이곳에 있다가 사람들이 알아보기라도 하면...

분명 또 우르르 모여들겠죠. 그러니 다른 곳에 가서 숨는 게 좋겠어요.

말을 마친 지휘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이중합 탑이 역전된 후, 지상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첨탑이 푸른색으로 변함에 따라, 지구엔 최초의 안전 구역이 나타났다.

에너지 소모가 큰 여과탑에 의존할 필요도, 이합 생물의 파도가 밀려올 걱정도 없었다.

첨탑은 인간에게 자체의 색깔처럼 푸른 하늘과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대부분의 보육 구역은 퍼니싱 농도, 이합 생물의 행동 범위 그리고 수원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전선 후방에 세워졌다.

이중합 탑이 나타나기 전, 근처엔 소형 보육 구역 밖에 없었고, 주로 최전선 보급과 관측 임무를 겸하는 작용을 했다.

대부분의 보육 구역은 반이중합 탑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여과탑에 의존해서 생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과탑을 유지하는 데에는 상당한 자원이 필요했다. 때문에 긴 시간의 회의를 걸쳐 세계 정부는 기존의 대형 보육 구역을 먼저 반이중합 탑의 정화 범위 내에 이전하기로 했다.

반이중합 탑을 둘러싼 감지 시설은 기본적인 구도가 갖춰져 있었다. 감지 시설은 반이중합 탑의 상황을 24시간 감지했고, 배치한 Ω 무기도 상시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인간은 어렵게 얻은 "기적"을 매우 신중한 태도로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기 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여과탑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가라고요? 그럼, 제 일은 어떡해요?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면,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나요? 그리고 제가 모아둔 혈청은 어떡하나요?

정말로 퍼니싱이 없는 "정화 구역"이 있나요? 저희를 그곳에 몰아넣은 뒤, 실험용 생쥐처럼 관찰하려는 건 아니겠죠?

제가 보기엔 저희한테 죽어라 일해서 재건을 완료시킨 다음 뻥하고 차 내려는 속셈인 거 같아요. 정말로 그렇게 좋은 곳이 있다면 공중 정원의 어르신들이 가장 먼저 차지하지 않았을까요?

불안, 막연, 의심, 고민... 연명하기에 급급했던 사람들은 미지의 "행복"보다는 눈앞의 "안정"을 더 선호했다.

보육 구역은 공중 정원의 사유 재산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순 없었다.

월리스한테 들었다. 홍보 업무를 맡고 싶다고?

하하, 듣자마자 그런 표정 지을 거 없네.

지금 지구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건, 최전선 지휘관인 자네가 더 잘 알 거야.

반이중합 탑과 그것이 만들어 낸 "정화 구역"이든 컨스텔레이션의 각성 로봇이든.

인간이 직면해야 하는 건 퍼니싱뿐만이 아니야. 새로운 사물의 출현은 인간에게 도전이자 기회다.

정책을 빨리 시행해야만 미래의 기회를 선점할 수 있어.

네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 마. 너희들의 전공은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리고 너희들의 판단을 믿는 건 시민뿐만이 아니다.

하산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물론 너희들을 제어 불가능한 요소로 보는 이들도 있지. 하지만 그들도 지금의 너희들을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을 거야.

신뢰를 쌓는 건 오래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건 한순간이다.

대철수가 바로 그런 행동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 토론할 순 없겠지.

다만 그 행동은 지구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겐 철저한 배신이었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그들과 다시 신뢰를 쌓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

너희 같은 젊은이들, 특히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인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것이 바로 네가 보육 구역에 가서 홍보 업무를 돕길 바라는 이유다.

물론이다. 이건 충분한 조사를 거친 뒤 나온 결론이기도 해서, 과학 이사회의 관련 보고서도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이건 우리가 지구를 탈환한 뒤, 지구에 남겨진 사람들과 신뢰를 쌓는 첫걸음이 될 거다.

그래서 우린 모든 위험을 제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일을 배정해 주고, 원래의 대우를 보장하면서 환경도 더 안전하다면... 좋아요. 당신을 믿을게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볼게요. 괜찮아요. 공중 정원이 자신들의 에이스를 가지고 사기 치진 않겠죠.

그리고 에덴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지상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말에 더 신뢰가 가요.

좋아요. 사업은 어디에서나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앞으로 혈청을 사용하는 건 군인들밖에 없겠네요? 지금 구입하실래요?

여태까지 살아남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정화 구역"이라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곳이 생겼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네요.

협조할게요. 당신들이 없었다면 저흰 그 지하실에서 죽었을 테니까요.

그땐 당신도 혼수상태였긴 하지만요...

너희들이 도우러 와줘서 다행이야. 자밀라도 너희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고 했어.

수송 부대의 준비 작업은 끝났어. 그쪽은 어때?

여긴 반즈. FD-12 구역의 정찰 임무 완료...

반즈는 지휘관 옆에 있는 창위를 봤다.

안녕~

음... 다른 용건 상의 중인가? 그럼, 난 나중에 보고할게... 낮잠을 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담당자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도시의 폐허 속에 있던 공중 정원의 정찰 부대 대원이 발치에서 꿈틀거리는 생물을 내려다봤다.

그 생물은 앞으로 가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길거리에서 기도하는 신자처럼 집게를 앞으로 쭉 뻗고 있었다.

FD-12구역은 이 방향의 마지막 정찰 지점이야.

퍼니싱 농도가 파일에 기록된 것보다 낮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깨끗한 건 아니고, 아마도 이곳이 "정화 구역"의 한계인 것 같아.

그래도 구체적인 농도는 설치한 탐측기가 보낸 데이터를 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거 같아.

반이중합 탑의 정화 범위와 정화 구역 내의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공중 정원은 휘하에 있는 대부분의 정찰 부대를 파견해 연합 정찰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정찰단은 반이중합 탑을 중심으로 정한 후, 12개의 방향으로 찢어져 장기간의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퍼니싱 농도가 0인 "정화 구역"들이 점차적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지원 부대도 이합 생물의 방해로 회수할 수 없었던 물자, 특히 대형 창고에 저장된 공업 물자를 대량으로 회수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후방 지원부에 보급을 신청하는 것도 수월해졌다.

하지만 기쁜 소식 외에도 연합 정찰단은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됐다.

응. 분포 구역에 별다른 패턴을 찾지는 못했지만, 모든 이합 생물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어.

반즈는 인간과 통신하면서 저 멀리 있는, 광학 보조 모듈로만 볼 수 있는 푸른 첨탑을 바라봤다.

맞아. 예전 보고와 같아. 그리고 방향은 반이중합 탑이야. 근데 이름을 너무 성의 없게 지은 거 아니야?

지금은 우리가 어떤 방법을 써도 그 탑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유일하게 들어갔다 온 건 리밖에 없잖아. 그런데 아직도 결정적인 부분이 생각나지 않는대?

의식의 바다에서 추출한 기억들은 리가 수송기를 조종하고 탑 안으로 들어가 탑 꼭대기까지 오르는 장면을 재현했다. 그리고 이 화면의 지속시간은 지휘관의 연결에 기록된 시간과 일치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탑이 역전하는 과정은 없었다.

의식의 바다에 기록된 과거의 시간에도 설명할 수 없는 제로 상태가 나타났다. 아시모프의 말로는 용량을 초과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 말은 탑의 예전 모습이 환상 속 공중누각 같다는 것처럼 들리네.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일단 계속 보고할게.

반즈는 고개를 숙여 새로운 이합 생물을 다시 바라봤다.

뱀의 몸뚱이에 여덟 개의 팔이 달린 이합 생물이었다. 온몸에 각진 결정으로 가득했고, 흉악한 가시는 몸을 보호하는 갑옷이자 살육하는 칼날이기도 했다.

이번에 발견된 이합 생물 중 기록에 없는 새로운 종류가 12종 있는데, 관련 자료는 참모부로 보냈어.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얼마나 많은 미지의 이합 생물 종류가 있을지...

이합 생물은 끝없는 수량으로 인간의 거점을 수없이 파괴했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에 이끌린 것 같았고, 진화의 본능때문인지 이합 생물은 고슴도치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몸으로 진화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인간 측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얼마 남지 않은 탄약을 소모해가며 원거리 공격으로 타격해야 했고, 구조체 자체의 장점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탄약이 떨어져서 육탄전이 시작되면, 인간 측의 일방적인 소모가 발생할게 뻔했다.

그동안 참... 여러번 마주했지.

누구한테 하는 탄식인지 몰랐다. 반즈는 적색 빛을 잃고 투명한 결정이 된 이합 생물을 발로 찼다.

스스슥...

외력의 작용으로 인해 그 결정은 하얀 먼지가 되어 바람과 함께 먼 곳으로 날아갔다.

이 이합 생물도 어느 정도 "풍화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어. 과학 이사회가 추측했던 대로 이중합 탑에 가까울수록 이런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

현장에 남겨진 침식체... 아니. 침식체라고 부를 수도 없겠네. 현장에 남아 있는 지능 로봇들도 활동을 멈췄고, 논리 전기회로가 심하게 파괴됐어.

그리고 실종자 명단에 있던 인원은 발견되지 않았어.

반즈는 잠시 침묵했다.

앞으로 계속 유의할게.

지하 통로, 방공호, 저축 시설 등 빠짐없이 수색했지만 적조의 흔적은 없었어.

다만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하나 있어.

반즈가 단말기에 있는 영상을 확대하자, 백발에 빨간 옷을 입은 구조체가 구석에서 지나가는 모습이 잠깐 보였다.

5일 전 영상이야. 그곳 퍼니싱 농도가 이상해서 조사해 봤었거든.

그 구역은 버려진 공장으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카메라를 찾는 데 애를 좀 먹었지. 그런데 마침 그 카메라에 방금 전 영상이 포착된 거야.

가능성은 많지. 나머지는 그쪽이 신경을 좀 써줘야 해.

나중에 지휘관의 수면 캡슐을 빌려줘. 오늘은 이만 끊을게.

지휘관님...

루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녀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그녀가 왜 다시 나타나서 이렇게 선명한 흔적을 남겼을까?

마음속 궁금증은 잠시 내려놓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알았어. 담당자한테 연락해서 보안 계획을 다시 검토해 보려는 거지?

이합 생물도 나오고 이상한 탑도 나오고 하니까, 승격자라는 위협을 까먹을 뻔했네.

수상해. 너무 수상해.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