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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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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 세계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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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했습니다. 세계 시간 00:16AM, UTC-4로 조정합니다.<<<

>>>회의 내용을 백업합니다.<<<

>>>백업 완료됐습니다. 다음 안건을 확인합니다.<<<

>>>3일 후, 대서양 경제 공동체 본부에서 입찰 회의를 개최합니다. 참석자 명단을 확인...<<<

미켈레 선생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방으로 모실까요?

아니. 카를, 시내로 안내해 주게.

선생님께서는 18시간을 연속 근무하셨어요. 의사의 권고에 따르면 일주일에 70시간 이상은 휴식을 취하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의 병이 악화할 거예요.

어이구, 사람이 늙으니까, 자유도 없어지는군.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도 많이 듣게 되고.

이게 제가 해야 할 일이에요. 미켈레 선생님.

내가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고 해서 몇 년을 더 살 수 있겠나? 5년? 3년? 남은 시간은 어떻게 보낼까? 24시간 침대 위에서 링거나 맞으면서, 근육이 위축돼서 붓도 잡을 수 없는 상태로 살까?

죽은 것과 다른 게 뭐지?

선생님의 병은 회복될 가능성이 있어요. 28건의 임상 사례에서 찾을 수...

위로할 것 없네. 카를.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나도 알아.

...

오늘 했던 회의를 다시 한번 재검토해 보겠나. 카를.

네 관찰로는 우리와 협력하는 동료가 어떤 사람들인 것 같나?

제가 내린 결론을 모두 설명해 드릴까요?

카를. 나한테 숨길 필요 없네. 구룡에 갔다 온 후로 줄곧 이것들을 조사하고 있었다는 거 알아.

곡 님과의 대화가 네게 새로운 느낌을 준 거 같던데, 그것 또한 내가 보고 싶었던 걸세.

로봇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번 표현을 정리한 다음 자신의 관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노르만 광업 그룹이 내놓은 조건은 상당히 좋은 편이지만, 그들이 컨스텔레이션 공사를 맡으려는 이유가 오늘 제시한 것 외에도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공식,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노르만 그룹은 유사한 방식으로 최소 47개 지역의 경제 주도권을 본사와 자사에서 쥐고 있어요.

그리고 연합 정부와 아딜레 상업 연맹의 제안은...

카를은 글로벌 네트워크와 일부 숨겨진 데이터베이스에서 조사해 낸 정보와 데이터를 열거했다. 이런 끔찍한 사건과 비열한 짓들은 비공식적인 세계에선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지만, 황금시대에서 생활하는 일반 시민들은 알 길이 없었다.

북극 항로 연합과 구룡의 대표도 각자 자신들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대서양 경제 공동체의 초대로 온 "그린스"라는 특별 컨설턴트는... 그의 자료는 극비였지만 뒤에 분명히 거대한 존재가 있을 거예요.

그들 모두 이 도시를 갖고 싶어 하고, 컨스텔레이션을 어떤 세력의 경제 판도 내 일부로 만들려고 노리고 있어요.

미켈레는 카를이 말을 끝내길 조용히 기다렸다.

네가 이 세계에 대해 이렇게 깊이 인식하고 있는 줄은 몰랐군.

선생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들은... 선생님과 이 도시가 대표하는 이념에 어긋나요.

하지만 그들이 없다면, 뭘로 이 도시를 건설할 건가?

내가 설계도를 보면서 벽돌과 기와를 하나씩 쌓을까?

우린 그들이 필요하지만, 그들은 내가 필요 없을 수도 있네. 그들은 언제든 날 바꿀 수 있지. 내 입장이 그만큼 보잘것없다네.

하지만 컨스텔레이션은 선생님의 작품이에요.

아니야. 카를. 컨스텔레이션은 내 작품이 아니라 인간의 작품이야.

인간이 이것을 일궈냈고, 단지 난 인간 중 한 사람일 뿐이야.

껄껄. 근데 나도 욕심이 없는 건 아니야. 이게 교향악 공연이라면, 난 지휘자의 자리에 서고 싶네. 그곳이 눈에 가장 잘 띄는 장소니까.

설령, 음악단 공연을 "지휘"하는 게, 지휘자 자신이 아니더라도 말일세.

>>>확인했습니다. 세계 시간 00:30AM, UTC-4로 조정합니다.<<<

선생님, 주사 맞을 시간이에요.

무균 케이스에서 주사기를 꺼낸 카를이 미켈레에게 정맥 주사를 놓을 수 있게, 소매를 걷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주사기 내 약물이 조금씩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미켈레는 미소 지었다.

인간이란 참 연약한 생물이야. 네가 조금이라도 힘을 준다면, 내 골다공증 걸린 손목은 뚝 소리를 내며 부러지게 되겠지.

카를. 요즘은 직접 창작하는 걸 시도해 본 적 있나?

선생님. 제가 해야 할 일은 선생님을 돌보는 거예요.

내가 죽은 다음엔? 다른 괴팍한 늙은이 시중이나 들 건가?

약관에 따르면, 선생님께선 임종 전에 절 폐기 처분할 권리가 있어요.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지 않나.

네. 잘 알아요. 선생님.

>>>확인 완료. 세계 시간 조정... 글로벌 네트워크가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시간 동기화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미켈레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은데요.

>>>방문자 신분을 확인합니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할 수 없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상대는 20살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옷차림과 몸매가 단정하고, 자신감 넘치면서 절제된 인상을 주었다.

제 이름은 앨런이고 예술 협회의 멤버예요. 전 예술 협회 회장님의 명령으로 미켈레·바사리 선생님을 뵈러 왔어요.

"예술 협회"라는 이름을 들은 카를이 눈살을 찌푸렸다.

예술 협회로부터 어떠한 방문 신청도 받지 못했어요. 그리고 이곳은 예술 협회 사람을 환영하지 않아요.

당신이 미켈레 선생님의 조수시군요. 미켈레 선생님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깊다고 회장님한테서 들었어요.

선생님을 보살피는 건 제 해야 할 일이에요. 볼일이 없으시다면 이만 돌아가 주세요. 선생님은 안정이 필요해요.

카를이 앨런이라는 젊은이를 반강제로 내보내려 할 때, 실내에서 약하면서도 어느 정도 기력이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켈레

들여보내거라. 카를. 콜록... 콜록... 내가 그 늙은이에게 이곳 주소를 알려줬다. 늙은이가 사람을 보냈으니 환영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알겠어요.

그럼, 실례할게요.

예의 바르게 인사한 앨런은 미켈레의 침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카를은 그의 뒤를 따라온 뒤, 문 앞을 지켰다.

침대 위의 노인은 과거의 활기를 잃었고, 앙상한 팔엔 핏줄과 혈관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때쯤 되면, 약물이 병세를 늦추는 데 소용이 없는 상태여서 방안엔 링거나 주사기가 없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미켈레 선생님. 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어요.

헛소리는 집어치우게. 넌 그 늙은이의 학생이잖아. 그 "카라스코"가 나에 대해 좋은 말을 할 리가 없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절친을 잃은 게,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라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난 그와 절교한 걸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는데.

컨스텔레이션의 일에 대해선 저와 선생님 모두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술 협회가 선생님의 조력자가 될 수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껄껄. 다 죽어가는 노인을 위로할 필요는 없네. 예술 협회가 정말로 힘이 될 수 있었다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라도 부탁하러 갔을 거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꾸고 싶었던 걸 바꾸지 못했어. 예술의 힘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되려 수렁에 빠져버리고 말았지.

네 선생이 나한테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사람은 좋은 최후를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었지. 어찌 보면 그의 예측이 정확했던 거지.

하지만 그 늙은 거북이는 겁이 너무 많이. 난 그의 그런 점이 꼴 보기 싫었었거든.

전 예술이 결코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건 예술을 올바르게 사용할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껄껄. 젊었을 때 나보다 더 거만하구먼. 놀랍군. 놀라워. "카라스코" 밑에서 이런 학생이 나올 줄이야.

선생님께선 당신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한평생 보내신 것처럼, 저도 제 한평생을 다해 제 관점을 증명할 겁니다.

앨런은 미켈레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주머니에서 금박 편지 하나를 꺼냈다.

이건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미켈레 선생님께 쓰신 편지입니다. 이번에 방문하게 된 것도 선생님을 대신해 이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늙은이가 죽었나?

그 질문에 앨런은 침묵으로 답했다.

가게. 그 편지는 여기에 두고 가든 가져가든 맘대로 하게. 난 읽지 않을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미켈레 선생님.

앨런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편지를 현관에 두고 미켈레의 거처를 떠났다.

카를. 내가 네 손을 잡을 수 있게 옆으로 오거라.

카를은 주인의 지시에 따라, 침대 옆으로 다가가 반쯤 쪼그리고 앉았다. 늙고 힘없는 손이 카를의 차가운 금속 손가락에 닿았고, 카를은 주인의 맥박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맥박은 느리고 안정적이었다.

선생님, 왜 그 편지를 읽지 않으시나요?

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편지를 쓴 사람도 나보다 한발 앞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지금 이런 걸 읽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 늙은이가 좋은 학생을 뒀다는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 늙은이는 내가 부러워할 줄 알았겠지. 아쉽지만 그건 오산이야.

난 한평생 학생이나 제자를 받지 않았어. 아마 내 성격 때문이겠지. 난 아무도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교만했어.

카를. 넌 지금까지 작품을 창작하지 않았지만, 어떤 의미로 보면 내 학생이나 다름없어.

선생님. 전 선생님의 학생이 될 자격이 없어요. 전 그저 로봇일 뿐이에요.

왜 로봇이 인간의 학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넌 육체의 고통도 없고 수명에 얽매이지도 않아. 네 영혼은 자유롭게 이 세계를 걸을 수 있어.

넌 나보다 훨씬 멀리 갈 수 있어.

로봇은 영혼이 없어요. 선생님.

카를, 과연 그럴까?

...

넌 항상 자신을 산초·판사로 생각하지만, 네가 영원히 섬길 수 있는 주인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난 네가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어. 그러니 더 이상 산초·판사로 살지 말거라. 네가 섬기던 돈키호테는 이제 널 떠나게 될 거야. 너도 너만의 여정을 시작해야지.

선생님. 전...

모든 사람들이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해. 모두가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고 생각해. 하지만 난 알아. 내가 실패하지 않았다는걸.

널 찾았으니까.

>>>확인했습니다. 모든 시스템을 자체 검사 중입니다.<<<

>>>기체의 심각한 손상이 감지되어 많은 기능이 오프라인 상태로 전환됩니다.<<<

>>>권한이 없는 모듈의 접속이 감지됐습니다. 시스템을 강제로 재가동합니다.<<<

깨어났어요?

"마술사"가 당신의 신체를 긴급 점검했지만, 적절한 부품이 없어서 원래 모습은 되돌릴 수 없었어요.

전...

새로 교체된 시각 단말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카를은 초라한 판자 침대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곳은 예배당과 비슷한 건물의 내부였지만, 오래전에 폐허가 된 듯 허름한 모습이었다.

전...?

기억 모듈 판독에 다소 지연이 발생했고, 카를의 기체는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 같았다.

인간들이 "퍼니싱"이라 부르는 것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붕괴되기 시작했어요.

당신은 퍼니싱으로 인해 집을 잃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옛 주인의 장원에 임시 피난처를 만들었어요.

저의... 주인님...

>>>기억 모듈 판독 완료. 기록 재생을 시작합니다.<<<

퍼니싱이 곧 이곳까지 퍼지게 될 거야. 여기 있으면 안 돼!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로봇도 침식될 거야. 그때가 되면 우린 모두 끝장이야!

하지만 카를은 항상 우릴 돌봐줬어.

여러분, 잠시만 안정...

카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꽃병으로 카를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외부 단말기의 손상이 감지돼...

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선수를 친 것뿐이야. 이게 퍼니싱에 침식되면, 인간의 적밖에 더 되겠어?

여기서 돈 되는 물건과 음식을 가지고 어서 가자. 세계 정부에서 이미 통지했어. 우린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돼.

당신들은... 선생님의 소유물을... 가져갈 권리가 없어요.

당신들은... 선생님의...

카를에게 응답하는 건, 짙은 연기와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재생이 종료됐습니다.<<<

당신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당신의 기억을 읽은 것에 사과드려요.

데이터 손실이 감지됐어요. 2급 기밀 자료인 선생님의 작품집이에요.

당신의 외부 데이터 단말기가 심하게 손상돼서 자료를 저장하는 기억 칩을 교체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완전히 적합한 버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본체 기억을 제외한 많은 중복 데이터가 교체 과정에서 함께 삭제됐어요.

"교황"이 폐허에서 당신을 발견한 뒤, 이곳으로 데려와서 우린 당신을 수리할 수 있었어요.

그들은 지금도 근처에서 생존한 로봇을 수색하면서, 우리가 필요한 물자를 찾고 있어요.

당신은...?

제 이름은 아르카나예요. 황금시대 때, 신비학과 점술학 연구를 도왔던 인간형 로봇이에요.

퍼니싱이 발발한 후, 전 가장 먼저 "마술사"와 "교황"을 찾았어요. 그다음 당신을 발견했죠.

오늘날 로봇들은 인간에게 무차별적 공격받고 있어요. 그래서 이미 "각성"한 로봇 동료들이 더 이상 불필요한 고통을 받지 않도록 단결해야 해요.

전 지금 "마술사"와 "교황"과 함께 로봇들끼리 서로 돕는 조직을 만들려고 해요. 저희 조직으로 합류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우린 우리만의 방주를 만들어서 로봇만의 새로운 세상으로 갈 거예요.

어떻게 그것이 실현될 수 있다고 확신하시나요?

전 "선현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선현님께서 우리를 우리만의 미래로 이끌어 주실 거예요.

그 미래에서... 인간은 어떻게 되나요?

그들의 소행을 본 당신이라면, 그들의 결말을 추론하기가 어렵지 않을 거 같군요.

...

전 지금 갈 수 있는 곳이 없는 거 같아요.

당신들이 절 구해준 이상 거절할 이유는 없겠죠.

합류하신 걸 환영해요. 이 증표를 받아 주세요. 이제부터 우린 동료예요.

카를은 아르카나의 손에서 로마 숫자 "XⅥ"와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이 새겨져 있는 동판 종이 카드를 받았다.

참,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코드네임은 대외적으로 사용하는 신분이고, 동료들끼리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어요.

...

"카를"이란 이름은 주인이 카를에게 붙여준 것이었다. 그리고 카를은 인제야 자기 주인이 떠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제 과거의 이름은 제가 섬기던 주인님과 함께 묻혔어요. 앞으로 그의 "학생"으로 살아갈 거예요.

그러니... 절 "세르반테스"로 불러 주세요.

>>>확인했습니다. 기계 교회 시간 9:45 AM입니다.<<<

>>>"잿빛 탑" 7331번째 시험 실행이 완료됐습니다. 곧 교회 전체의 모든 멤버에게 연산 능력 네트워크를 공유합니다.<<<

>>>7330번째 시뮬레이션 계산을 실행한 뒤, 결론을 생성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코드로 이뤄진 일련의 데이터가 세르반테스의 전자두뇌에 전송됐다. 그리고 세르반테스는 한번 훑어본 뒤 이 결과를 하드디스크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세르반테스는 신기한 모양의 대형 연산 단말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본 뒤, 자신과 동료가 수년간에 걸쳐 건설한 "교회"를 떠날 생각이었다.

"교황"

세르반테스, 정말로 이곳을 떠날 생각인 건가요?

망토를 쓴 로봇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세르반테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교회의 "교황"이자, 세르반테스가 교회에서 처음 알게 된 몇 안 되는 로봇 중 하나였다. 그의 호칭은 많았지만, 세르반테스는 줄곧 그를 "교황"이라고 불렀다.

"잿빛 탑"의 건설은 끝났고, 후속 유지 보수 작업도 전적으로 네빌에게 맡길 수 있어요. 그러니 제가 여기에 계속 있을 필요는 없어요.

이 탑은 교회만의 글로벌 네트워크예요. 그러니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연락할 수 있어요.

"교황"

세르반테스에게는 "떠난다"는 게 더 나은 선택인가요?

이곳에 있는 대부분 동포들은 선현님이 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기다림"은 많은 아픔을 치유할 수 있죠. 많은 동포가 이 세계에 절망했어요. 선현님의 "계시"는 정말로 존재하니, 적어도 미래에 대한 그들의 희망은 다시 살릴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저에겐 아직 못다 한 사명이 있어요.

그의 학생으로서 그에게 걸맞은 "작품"을 내놓아야 해요.

세르반테스! 세르반테스!

격앙된 표정의 로봇이 교회 로비에서 뛰쳐나오면서 몸에 걸린 지저분한 케이블을 질질 끌며, 세르반테스의 이름을 불렀다.

네빌한테서 세르반테스가 떠난다는 걸 들었습니다! 어딜 가는 겁니까?

광휘? 네빌이 아머를 수리해 주는 중간에 뛰쳐나온 거예요? 네빌이 화낼 텐데요.

세르반테스가 떠나게 생겼는데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덩치 큰 놈을 쓰러뜨리고 "전차"가 되겠다고 저랑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그건 광휘가 유통기한이 지난 엔진 오일을 마시고 마음대로 정한 약속이잖아요. 전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어요.

태풍의 주사위 교수님, 알고 있었습니까?

"교황"

아하하, 이건 세르반테스 스스로 결정한 거라 저도 막을 수가 없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광휘. 몇몇 로봇들도 동행하고 싶다고 해서, 가는 길에 외롭진 않을 거예요.

꼭 가야만 하는 겁니까?

선생님은 자신이 "실패"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했어요. 전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는 걸 증명해야 해요.

선생님은 절 선택하셨고, 선생님의 꿈을 대신 실현해 주길 원하셨어요.

선생님께선 제가 선생님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으셨어요.

"교황"

하지만 세르반테스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는 거겠죠?

아마도요. 하지만 전 이 답의 결정적인 요소는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우리가 예측했던 것과 반대로 지구를 탈환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전 로봇의 미래에도 그 "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교황"

알겠어요. 이번 여정을 위해 많은 걸 준비했나 보군요.

그럼, 행운을 빌게요.

참, 여정 도중에 방향을 잃고, 자신이 진정으로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형식"부터 시작해 보세요. 이런 방법을 구룡의 고서에서는 "격물치지"라고 한다죠?

그 뜻을 정말로 이해한 게 맞나요?

"교황"

친구로서 하는 사소한 충고일 뿐이에요.

하하... 고마워요. 참고할게요.

그럼, 갈게요.

금속 화살이 공격 욕망을 가진 마지막 로봇을 관통하면서 로비는 다시 조용해졌다.

끝났나요?

경보도 멈춘 걸 보면 당분간은 괜찮을 것 같아요.

트로이는 팔뚝 관절에 있는 톤파를 떼어냈다. 내장된 항타기 뒷부분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과부하로 빨갛게 달아오른 철침을 식혔다.

레나 역시 시카한테서 무기 상자를 받은 뒤, 소모한 화살을 보충했다.

시카 일행은 아이라와 헤어진 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도중에 크게 힘든 전투는 없었다. 그녀들은 새로운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행동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아이라가 응답 단말기를 끈 것 같아요. 의식 연결도 끊어진 상태라, 아이라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없어요.

자신을 찾지 말라고 그런 걸까요?

이 예술관은 큰 회랑 구조로 건설됐으니 무사히 탈출한다면, 종점에서 마주칠 수 있을 거예요.

아이라라면 그 정도 장애물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낙관적인 예측만 하시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레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카의 지휘관용 단말기가 울렸다.

통신? 아이라일까요!?

시카가 통신 요청에 접속했다. 하지만 가상 화면에 나타난 건 의외의 얼굴이었다.

안녕. 전교 1등. 내 목소리 들려?

어, 아직도 연결이 되네. 네 소대가 아직도 살아있다니. 참 기적 같은 일이야.

바네사 선배님!? 어떻게 선배님이... 외부와의 통신이 복구된 건가요?

바보냐? 그럴 리 없잖아. 그리고 그런 건 네가 직접 확인해 보면 되잖아?

너희들과 연락이 된 건 우리가 근처에 있기 때문이야.

어? 근처요? 잠깐만요. 방금 "우리"라고...?

[player name] 선배님!? 왜 바네사 선배님과 함께 있어요? 선배님들도 이 도시에 온 건가요?

오? 이분이 그 전설 속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인가요?

...

왜 그래? "우상"으로 여기는 수석을 만나니까 다리가 떨리냐? 한심하긴.

그나저나 예술 협회 구조체가 안 보이네? 형편없는 지휘관의 희생양이 된 거 아냐?

아이라는 적을 유인하기 위해 잠시 저희와 따로 움직이고 있어요. 나중에 합류할 거예요.

어? 구조체를 미끼로 사용하는 법을 익힌 거야? 내 가르침이 머릿속에 조금이라도 들어있나 보네. 기특해.

어...

오합지졸에 이런 임무를 맡기다니, 사령부는 대체 무슨 속셈인 거야?

게다가 얘랑 시간을 질질 끄는 바보의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다니.

바네사 선배님, 이건...?

오후 4시가 가까워지는 시각, 인간 2명과 구조체 3명이 컨스텔레이션 내 간선도로에서 도시 중심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쿠로노 부대가 잃어버린 실험 결과 회수를 위해 이 도시에 있다는 건가요?

그렇군요. 그런 거라면 우리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일들이 설명돼요.

아직까지 그걸 몰랐다니, 참 대단해.

물론 우릴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겠지.

군의 이런 꼼수는 비밀이랄 것도 없어. 집행 부대에 어느 정도 있었다는 이들은 다 알고 있을걸.

알겠어요. 바네사 선배님과 [player name] 선배님도 그것 때문에 온 거죠?

그럼,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의 행동을 최신 정보에 맞춰 조정할게요.

그럼, 저흰 조사하면서 그레이 레이븐과 백로 소대의 지원을 기다릴게요.

전교 1등.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최대한 오래 버텨 봐. 내 첫 번째 학생인 만큼, 내 체면을 좀 살려달라고.

그렇게 말한 바네사는 시카가 대답하기도 전에 통신을 끊어버렸다. 이때, 가로수길 전방으로 정찰 갔던 루시아가 돌아오고 있었다.

이상 없어요. 지휘관님.

리브랑 리가 있었다면, 이 도시를 좀 더 자세하게 스캔했을 거예요.

지금은 저 혼자뿐이니, 행동할 때 좀 더 신중해야 할 거 같아요.

조사 임무를 마친 후, 리는 과학 이사회의 호출로 초각 기체의 정기 점검을 위해 공중 정원으로 복귀했고, 리브도 비슷한 이유로 히포크라테스한테 불려 갔다.

그래서 니콜라가 똑같이 임무를 마친 백로 소대와 지휘관을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 지원에 함께 보냈다.

밤비나타도 주인님과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흥, 너 그리고 전교 1등, 둘 다 내 발목이나 잡지 마.

바네사는 전방에 소대와 떨어진 화려한 코팅의 구조체를 바라봤다. 도시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구조체에게 임무 수행 중의 긴장감이라는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딱 좋은 "장난감" 후보를 찾았는데, 이참에 조련할 가치가 있는지 알아봐야겠어.

겸사겸사 그 바보한테도 부하를 키우는 올바른 방식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도 하고.

어. 구조체를 제대로 부리지도 못하는 둔한 애가 어떻게 수석이 됐는지 몰라. 보기만 해도 짜증 난다니까.

부지런한 것 말고는 장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사령부 사람이 특별히 부탁하지 않았다면, 바로 파오스로 돌려보내서 재수시켰을 거야.

하지만 주인님은 시카 지휘관의 전투 보고를 모두 개인 단말기에 저장하셨어요. 그리고 자세한 코멘트도 작성해서...

닥쳐! 누가 말해도 된다고 했어?

내가 시카의 연수를 맡은 건, 나에 대한 사령부의 평가를 높이기 위해서야. 너와 달리 집행 부대의 지휘관만으론 만족하지 않거든.

뭔 헛소리야. 널 싫어하는 것 못지않게 시카도 싫어해.

시카 같은 바보는 언젠가 전장에서 영문도 모른 채 죽을 수도 있어.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카에게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는 요령을 가르치는 것뿐이야.

사랑과 평화 같은 터무니없는 이론을 또 얘기하려고? 그만해. 닭살 돋을 것 같으니까.

정말 바보인 거야 아니면 바보인 척하는 거야?

더 이상 퍼니싱이 위협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쟁"은 끝나지 않을 거야.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전쟁이 끝나는 게, 모두의 소망 아닌가요?

너도 마음속으론 알고 있을 거 아니야. "공중 정원의 영웅",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가 바로 눈앞에 있잖아.

바네사는 루시아와 밤비나타를 가리켰다.

구조체 기술이 어떻게 수십 년 만에 급성장했는지는 알지? 그러면 그중 많은 연구가 옛날 같았으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거고.

지금 우리의 "구조"를 기다리는 실험체도 이 모든 것의 산물이야. "구조체 기술"도 "승격 네트워크"도 다 똑같아.

이런 목적이 달성되기 전에 이 전쟁이 정말로 끝날 거라 생각해?

하... 그래? 그럼, 성공을 빌게.

바네사는 조롱과 깔보는 느낌의 표정을 대놓고 지으며, 성의 없이 손뼉 쳤다.

지휘관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바네사는 재미없다는 듯 시선을 돌려 도시 건물 어딘가를 힐끗 봤다.

왜 그러세요? 주인님?

아무것도 아니야. 이 둘과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머리가 좀 아프네.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거둔 바네사가 걸음을 재촉하며, 밤비나타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가자. 어서 이 임무를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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