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까지 포함해서 우린 세르반테스의 기억 데이터 3개를 수집했어.
하지만 아직도 뭔가 부족한 것 같아.
정말요? 탐정이 되기엔 너무 형편없는 거 같은데요?
지친 트로이가 끊어진 나무뿌리 위에 앉았다. 고강도의 전투는 트로이의 의식의 바다에 큰 부담을 줬고, 지금의 그녀는 전투 전과 같이 멋진 발언을 할 여력이 없었다.
세르반테스의 계획은 우리가 모든 전시관을 돌아보는 거니까, 아직 통과하지 못한 곳이 몇 곳 더 있을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쩌면 다음엔 더 어려운 스테이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 소대라면 느긋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기 퇴직이나 신청할 걸 그랬어요.
……
레나? 방금 전부터 말이 없네? 무슨 일 있는 거야?
전투가 끝난 후, 레나는 줄곧 생각에 잠긴 채 전시관의 한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혹시...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일종의 교란 전파처럼 의식의 바다에 영향을 주는 일종의... 잡음 같은 거요.
예전에... 이중합 탑이 솟아오를 때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설마... 의식의 바다 오염 증상을 말하는 건가요? 전 그런 느낌이 없는 것...
여기엔 진짜 퍼니싱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퍼니싱이 있는 환경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 사용한 일종의 교란 장치 아닐까요? 제 의식의 바다가 워낙 불안정해서 구체적인 차이를 잘 분간할 수 없어요.
나도 이상한 소리는 듣지 못했어. 내 기체가 최신 규격이라 역원 장치의 필터 성능이 높은 거일 수도 있어.
그렇게 많은 전투를 치렀음에도 "만화" 기체의 표면엔 별다른 손상의 흔적이 남지 않았고, 소대에서도 아이라의 상태가 제일 좋았다.
참~ 좋으시겠네요.
됐어요. 피곤해서 환청을 들은 거겠죠. 이곳은 화염 입자 효과 때문에 눈이 부시네요. 너무 과하게 복원된 거 같아요.
일단 로비로 이동하죠.
시카는 손뼉 치며 소대 대원들을 모으려 했다.
경보. 권한이 없는 침입자를 감지했습니다. 제거 계획을 수행합니다.
경보. 권한이 없는 침입자를 감지했습니다. 제거 계획을 수행합니다.
귀에 거슬리는 경보가 전시관 내에 울려 퍼졌고, 붉은빛을 발하는 로봇들이 입체 영상에서 쏟아져 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이미 끝난 거 아니었어요?
이건 "시험"이나 "테스트"가 아니에요.
이 상황은 우리가 예술관 로비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것 같은데.
쳇... 안전 시스템의 적대 식별은 제가 해제했었는데... 누군가가 손을 댄 걸까요? 아니면...
레나의 시선이 트로이에게 향하자, 트로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안전한 곳까지 철수하죠! 싸워야 한다 해도 이곳 환경은 우리에게 너무 불리해요.
이 공간에 투영된 모든 것이 시각적 허상이었다. 로봇이 환경에 맞춰 나타나지 않고, 마음대로 돌아다닌다면, 적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그녀들에겐 매우 불리해지는 상황이 된다.
내가 길을 열게. 모두 왔던 방향으로 철수해!
아이라는 시카의 생각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현재 아이라를 제외한 소대 대원들의 상태는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로비에서 사용했던 작전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철수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길을 뚫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걸 할 수 있는 건 아이라밖에 없었다.
4명은 부채꼴 모양의 대형을 유지했고, 아이라는 광선 건랜스로 덮쳐오는 로봇을 차례차례 쓰러뜨렸고, 트로이는 시카를 지키며 철수하기 시작했다.
침입자를... 제거한다...
명령을... 수행한다...
거참... 끝이 없네!
창끝에서 초저온 공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여러 대의 로봇을 얼렸고, 창 자루의 분사구가 열리면서 아이라에게 접근하는 로봇들을 단숨에 산산 조각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카 일행도 복도의 입구 쪽까지 후퇴했다.
아이라, 빨리 와요!
레나의 화살이 아이라의 등 뒤에서 날아와 그녀와 가까운 로봇의 작동 코어를 관통하면서 엄호하는 역할을 했다.
안전 조치가 업그레이드됩니다. 전체 2급 안전밸브를 닫습니다.
차가운 경보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뭔가를 알아차린 시카가 다급히 아이라 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레나가 막아섰다.
가지 마세요! 가서 아이라의 짐이 되려는 건가요?
하지만...
시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시관과 복도를 연결하는 통로의 밸브가 쾅 하고 내려와 길 양쪽을 차단했다.
이런 역할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 너무 뻔한 전개 아닌가?
난 나중에 합류할 테니까, 다들 먼저 가!
이런 상황에 남아서 뒤를 맡는 게, 대장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줄 기회가 아니겠어!
큰 소리로 그렇게 말한 후, 아이라는 즉시 무기를 들고 전시관 안쪽으로 달려갔다.
……
이 문... 우리의 지금 무장으로는 단시간 내에 뚫기 어려울 것 같아요.
게다가 우리 쪽에서 적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요.
아이라의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시카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잠시 머뭇거린 시카는 결국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아이라 말이 맞아요. 나중에 아이라와 합류하죠.
우린 예술관에서 일어난 일도 조사해야 해요. 그러니 이곳에서 시간 낭비할 수 없어요.
시카는 앞장서서 전방에 있는 통로로 걸어갔고, 트로이와 레나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시카 뒤를 따랐다.
멋진 대사를 보여주긴 했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아이라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로봇들을 혼자 처리했다. 혼자라서 거리낌 없이 움직일 수 있었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탈출할 방법은 생각해야 했다.
(전시관이라면... 수동으로 열 수 있는 비상 탈출로가 있지 않을까?)
(여기의 구조를 생각해 보자. 내가 건축가라면, 어디에 출구를 만들었을까...)
침입자를... 제거한다...
안전 협의를... 업데이트 중..
또 하나의 로봇이 아이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이라가 건랜스를 휘둘러 막으려는 순간, 로봇 카메라의 붉은빛이 끊임없이 반짝이는 푸른빛으로 변했다.
안전 협의를... 업데이트 중..
무슨 일이지?
관람객 여러분, 즉시 F-23 구역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관람객 여러분, 즉시 F-23 구역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F-23 구역...!?
F-23... F-23... 생각났다. 내가...
아니, 들어본 적도 없는 숫잔데! F-23 구역이 어디지?
관람객 여러분, 즉시 표시된 구역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푸른빛이 깜빡이던 로봇은 몇 초간 침묵하더니, 가슴 부근에서 투영 장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특정 좌표를 표시한 전시관 홀로그램 맵 한 장을 아이라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너무 스마트해서 의심스러운데!
……
하지만 지금은 로봇 말대로 할 수밖에 없겠어.
멀리서 감당할 수 없는 로봇들이 몰려오는 걸 본 아이라는 로봇이 알려준 방향대로 달려갔다.
아이라는 이동 과정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로봇들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한 무리를 처치해도 또 다른 무리가 밀려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기왕 도박한 거 신비한 "알림"에 거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드디어 F-23 구역에 도착했다. 아이라는 이곳이 이 전시관의 가장자리라는 걸 발견했지만, 예상했던 출구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달려오는 길에 많은 로봇들을 몰아왔기 때문에 스스로 독 안에 든 쥐를 자처한 셈이라 할 수 있었다.
아, 정말! 역시 모든 퀴즈 게임의 찬스 항목 중에서 외부 지원이 제일 부실하다니까!
아이라는 몸을 돌려 밀려오는 로봇 대군을 마주 봤다.
근데 그 맵이 진짜라면, 이곳은 전시관 남서쪽이잖아. 내 분석에 따르면 숨겨진 출입구는...
저쪽이야!
이쪽입니다!
청량한 목소리와 함께 커다란 바위 뒤에서 기다란 낫이 나타나 발을 내디디던 아이라를 걸고 반대 방향으로 쭉 당겼다.
어어어!?
낫에 걸린 아이라의 몸이 홀로그램 돌을 뚫고 어둡고 비좁은 공간으로 끌려 들어갔다.
문을 닫으십시오. 스프너.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닫는 소리가 묵직하게 들려왔다. 이윽고 어두컴컴한 작은 공간에 쿨톤의 비상등이 켜지면서, 아이라를 포함한 세 명의 그림자를 비췄다.
이게 그놈들이 말한 "병아리"인가요?
각각의 데이터가 특징이 설명된 내용에 부합합니다. 그러니 맞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당, 당신들은...?
효율적 교류를 고려한다면, 이름을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프너.
제 이름은 당신이 방금 불렀잖아요.
안녕하십니까. 제 로봇 식별 넘버는 MPA-01, 하카마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스프너와... 하카마?
아이라는 자신을 구해준 낯선 로봇들을 보며, 마음속에서 어떤 이질적인 감각이 솟구쳤다.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라는 두 로봇에게 경계심이 생기지 않았다.
외형은 하나도 닮지 않았고 분위기도 전혀 달랐다. 하지만 의식의 바다에 오래됐지만, 아직 선명하기 그지없는 그 화면이 떠올랐다.
아이라! 오늘도 나나미랑 그림 그리기 대결하자!
나나미의 새 작품이 아이라를 꼭 이길 거야! 이번 주제는... "로봇 페스티벌"이야!
내 이름은 아이라야.
몇 초간 망설이던 아이라는 결국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공중 정원 예술 협회 그리고 아이리스 월블러 소대 소속 아이라야.
그렇다는 건, 우리 말고 도시에 들어온 구조체 소대가 또 있고, 누군가가 사전에 컨스텔레이션의 정보를 파악했다는 거네.
쿠로노가 우리의 행적을 파악해 행동 경로를 피한 건, 우리를 피해서 이 도시에 있는 무언가를 회수하기 위했던 거고.
전에 있던 경보도 그들이 건드려서...
맞습니다. 이것이 저희가 현재까지 파악한 정보입니다.
저희가 그중 몇 명과 마주쳤는데, 현재 전시관 내에서 활동 중인 소대가 한 소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
무엇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임시로 편성된 소대, 신비한 도시, 로봇이 만든 예술관, 앞뒤 이중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그리고 복잡한 내부 진영의 갈등까지...
요소는 다 갖췄으니 조금만 각색한다면, 틀림없이 흥행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물론 각색이 잘못된다면, 전례 없는 실패작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 대화의 흐름을 분석합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의 감상에 대해 어떤 답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 그냥 혼잣말한 거니까.
그나저나 나한테 이런 거 알려줘도 괜찮은 건가?
원래 공중 정원에서 벌인 일이잖아요. 아이라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누구한테 알려줘야 할까요?
저흰 사건이 빠르고 원만하게 해결되길 바랍니다. 이건 정보를 알려드리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목적은 공중 정원으로부터 이 로봇들을 보호하는 거 아닌가? 나도 공중 정원의 일원인데 왜 날 믿는 거야?
몇 년 동안 "저희"는 공중 정원과 많은 접촉을 해왔습니다. 대부분은 충돌로 끝났지만, 긍정적인 사례도 몇 있었습니다.
인간과 단기간 협력 관계를 형성할 확률은 0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희"의 적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이렇게 말했거든요.
당신은 세르반테스의 초대를 받고 이곳에 온 겁니다. 저와 스프너는 당신의 행동을 관찰했기 때문에 한 번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언젠가 "저희"는 정식으로 인간의 눈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날이 왔을 때, 서로의 진영에 "친구"가 있는 건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친구?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네.
황금시대에도 로봇을 친구로 생각하는 인간이 있었어. 하지만 "당신"들은 좀 다르네.
너무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어요. 우린 잠시 목적이 같은 거니까요.
우선 세르반테스를 찾아야 해요. 그가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세르반테스는 관리자로서의 자각이 전혀 없어요. 저런 놈이 자신의 구역에서 날뛰는 걸 지켜만 보고 있었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음... 우리한테서 무언가를 "검증"해 보고 싶어서, 전시관내 발생한 일에 대해 간섭하지 않은 것 같아.
혹시 세르반테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자세한 상황은 잘 모릅니다. 세르반테스의 여행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됐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세르반테스는 이곳을 자신의 "종점"으로 정한 것 같습니다.
"종점"이라...
눈을 감은 아이라는 아쉬움이 담긴 이 단어를 곱씹었다.
우선 세르반테스를 만나야겠어.
쿠로노 쪽은... 시카와 다른 대원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겠네. 당신들도 연락 못 하게 할 거잖아.
죄송합니다. 일종의 보험이 필요해서요.
곧 임시 점검 통로의 끝에 다다를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앞으로 내려가면 새로운 전시관이에요.
쿠로노 놈들이 해킹한 권한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안쪽 구역은 안전할 거예요.
다음은 어떤 테마일까? 아딜레의 영구 열차? 망각자의 주둔지? 아니면 황금시대의 모습...
어쨌든 어딘가의 인간 창조물을 모방한 거겠죠. 이런 모조품을 건설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어요.
스프너는 점검 통로의 갑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전시관의 모습을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침묵에 빠졌다.
여긴...
심플한 기하무늬가 복잡하게 조합된 후, 한 폭의 초월적인 디자인을 구현하고 있었다.
이곳은 아이라가 아는 그 어떤 예술 스타일과도 다른 분위기였다. 건물의 양식은 "예배당"처럼 보이지만, 모시고 있는 신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하카마와 스프너는 서로 마주 봤다. 그들은 이 예술관에 자신들이 잘 아는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곳이 수만 년 전에 멸망된 초고대 문명의 유적이 아니라면...
"당신"들이 있었던 곳인 거지?
아이라는 하카마 얼굴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관찰하며 이렇게 추측했다.
전 이 질문에 대해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헤헤, 대답을 강요하진 않을게.
하지만 이것들을 보면서 나도 무언가를 깨달았어.
함께 탐색하러 가자고.
그리고 겸사겸사 당신이 대표하는 "낫" 예술과 내 예술이 뭐가 다른지 볼게. 하카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