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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22-0 백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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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첫 출발하기 전에 많은 상상을 했다.

그 상상은 교과서에서나 봤던 지상의 풍경이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에 관한 것이었다.

지상에 남은 사람들은 어떤 노래를 만들며, 황금시대와 어떤 다른 문화가 탄생했을지에 대해 상상했다.

폐허 사이로 아직 시들지 않은 난초를 발견한 뒤, 그것을 공중 정원의 동료들에게 선물하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영웅들이 전투했던 곳을 밟으며, 그들에게 늦은 만가를 바치는 상상을 했다.

현실이 아무리 잔혹할지라도 두 눈을 부릅뜬 자신이 그것들을 마음속에 새기는 상상을 했다.

자신의 창작이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더욱 향상되는 것을 상상했다.

그 상상이 진실의 파편에 의해 박살 나고 지칠 대로 지친 자기 발에 밟히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

십여 명으로 구성된 구조체 소대가 황야를 걷고 있었다.

인원수는 출발했을 때보다 두 명이 줄었고, 나머지 생존자들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몇몇 구조체는 신체 부품이 심하게 손상되어 파열된 신경 전기회로와 합금 골격을 드러내고 있었고, 굳어진 순환액은 생체공학 피부 표면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들은 다른 이의 부축이 있어야만 천천히 나아갈 수 있었다.

……

소대의 맨 끝에 있는 분홍색 머리의 구조체가 가장 가벼운 부상을 입었는데, 그녀와 그녀의 몇몇 동료는 이 소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묵묵히 소대와 거리를 둔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전방의 소대를 주시했다.

무거운 분위기를 느꼈는지 앞에서 걸어가던 한 구조체가 자신의 발걸음을 늦춰서 아이라와 어깨를 맞췄다.

아이라, 괜찮아?

방금 전에 넌 지상에 내려온 게 처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훌륭했어.

오르페우스 대장님...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건 아이라가 고고학 소대에 소속된 이래 처음으로 참여한 대형 고고학 임무였다.

예술 협회가 황금시대의 유적을 발견하자, 그곳에 남겨진 자료와 유물을 회수하는 건 당연히 고고학 소대의 몫이 됐다.

유적은 집행 부대가 청소한 구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대량의 침식체가 출몰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검출되지 않은 퍼니싱이 유적 내의 로봇을 침식시키는 바람에 유적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간 고고학 소대와 집행 부대는 수많은 침식체한테 포위당하게 됐다.

집행 부대는 두 대원이 희생되는 대가를 치르고, 귀중한 유물과 데이터를 가지고 있던 고고학 소대를 무사히 유적 밖으로 탈출시킬 수 있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

고고학 소대에 갓 들어온 대원들은 많든 적든 이런 문제에 직면하게 돼 있어. 지상의 상황과 공중 정원의 상황이 천지 차이라 일시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

전 단지... 음,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제가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라요.

말수는 적지만, 가끔 썰렁한 농담을 하는 렉스... 절 친절하게 대해주면서 임무가 끝나면, 제 다음 전시회를 보러 오겠다던 페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얘기했던 소대원들이...

그 기분 이해해. 대부분의 이들은 지상으로 오기 전에 마음의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하지. 다들 의식 회수가 있으니, 전장이라 할지라도 무섭지 않을 거라 생각하거든.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잔혹해. 대비 방안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며, 그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지.

우리의 임무는 황금시대의 과학기술과 문명 유물을 회수하는 거야. 최전방에서 싸우는 집행 부대에 비하면 훨씬 안전하다 봐야지.

하지만 이번처럼 어디가 정말로 안전한지는 우리도 예측할 수 없어.

이런 건 앞으로도 자주 겪게 될 일이야. 견딜 수 없을 거 같으면 말해. 내가 대신 신청해 줄게.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협회에서도 이해해 줄 거야.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만둘 생각이 없어요.

아이라는 오르페우스가 자신이 꽁무니를 뺀다고 생각할까 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제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 그래요.

각오가 됐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아이라는 공중 정원에서 "전쟁"을 본 적이 있었다.

드넓은 별바다엔 함선의 잔해가 떠다녔고, 입자 무기의 섬광이 칠흑 같은 우주를 한순간에 밝혔다.

그때, 아이라는 전장에 있는 절친과 같은 풍경을 보게 됐고, 말할 필요가 없는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했다.

아이라는 절친의 선택과 꿈 그리고 절친이 말없이 떠난 것에 대해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우주 정거장에서 침식체와 싸우고 있을 때, 아이라는 중력, 습도, 기온이 쾌적하게 시뮬레이션 된 공중 정원의 온실 창가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후, 아이라가 세계의 "진실"을 느끼고, 그 속에 속하게 됐을 땐, 다리를 떨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가 진실한 세계를 그릴 수만 있다면, 우리도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겠지."

절친이 있는 우주 정거장이 전쟁의 파편에 의해 파묻히는 걸 목격했을 때, 아이라는 어렴풋이 그녀의 말을 듣게 됐다.

그건 세레나가 아이라에게 남긴 말이었고, 천진난만한 이상주의자가 여정의 끝에서 찾아낸 대답이었다.

그녀는 한때 그것이 한 알의 모래에서 하나의 세계를 보는 천계라고 생각했고, 그 그림자를 따르면 자신만의 소속감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퍼니싱에 부식되어 만신창이가 된 세계를 직접 보고, 칼날이 침식체의 몸을 관통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쳇! 어서 물건을 가지고 가세요. 그리고 멈추거나 뒤돌아보지 마세요!

고고학 소대! 넋 놓지 말고 어서 달려요. 저희의 임무는 당신들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아무 일 없어야 해요.

피투성이가 된 구조체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친해진 지 얼마 안 되는 동료가 침식체에 뜯기는 걸 본 아이라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아이라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겁이 많았다.

구조체가 돼서 예술 협회에 들어온 이유는 세계의 "진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전 그 "진실"을 제 캔버스에 담고 진정한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었어요.

하지만 "진실"이 꼭 힘이 된다는 법은 없었고, 그것마저도 제가 부여한 상상뿐이었어요.

지상으로 내려왔다 해서 세계를 이해했다고 말할 순 없더군요.

제 생각이 너무 순진했던 걸까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상식을 깨는 사물을 더 높은 수준의 진리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네가 말한 "진실"이 정말로 그럴까?

네가 느낀 감정에 부정하거나 답을 줄 수는 없어.

다만...

예전에 네 또래의 젊은이와 임무를 몇 번 수행한 적이 있어.

첫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 하나를 낭송해 줬어.

순수한 믿음을 비웃는 자, 늙고 죽어서도 조롱 받을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익숙한 시를 가볍게 내뱉었다.

순수한 믿음을 흔들려고 하는 자, 결코 썩어가는 무덤에서 못 나올 것이다.

그건 아이라의 절친이 가장 좋아했던 시였다.

순수한 믿음을 존중하는 자, 죽음과 지옥을 넘어 승리할 것이다.

자신이 본 것을 의심하는 자, 그대가 무엇을 하던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 마음 가는 곳으로 가거라.

우린 기록자이자 목격자이면서, 표현자이자 창작자야.

우리가 분투하려는 건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괴물과 영원히 싸우려는 거야.

그걸로 우릴 조롱하는 이도 있고 의심하는 이도 있으며, 우리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어.

하지만 우린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알고 있고, 우리 자신만큼은 그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돼.

난 네 눈에서 그 가치를 수호하려는 소원을 봤어. 그러니...

예술 협회에 들어온 걸 환영해. 아이라.

임무를 마친 고고학 소대는 근처에 있는 인간 거주지에 드디어 도착하게 됐다.

이곳은 버려진 도시 위에 건설됐다. 일부 보육 구역보다 조건이 떨어지긴 했지만, 내부엔 완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 있었다. 그리고 지상 방어군이 상시 주둔하고 있어서 기본적인 안전도 보장되고 있었다.

공중 정원의 수송기가 지상에 도착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서 고고학 소대는 이 거주지에 잠시 머물러야 했다.

……

아이라는 거주지를 걸으며, 인간들이 주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재료로 건설한 거주지를 봤다.

허름한 텐트 안에서 늙은 엔지니어는 방어군이 가져온 로봇 잔해를 검사하며 쓸 만한 부품이 있는지 골라내고 있었다.

화덕과 고기 걸이만 있는 야외 주방에서 요리사가 아이라는 상상도 못 했던 식재료를 손질하는 게 보였다.

어떤 노부인은 녹슨 바늘로 옷을 꿰매고 있었고, 남자는 폐품으로 사냥용 화살을 갈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아이라는 오르페우스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죽어버려! 이 망할 침식체야!

으아아아...

거주지의 아이들이 땅바닥의 나뭇가지로 구조체와 침식체 간의 전쟁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야, 너 구조체를 오래 했잖아. 이젠 내 차례지?

잠깐, 다음은 내 차례거든?

남자아이란... 어디나 다 똑같네.

……

아이들이 떠들며 다른 생활 구역으로 달려갔을 때, 한 여자아이가 아이라의 눈길을 끌었다.

남자아이들의 게임에 끼지 않은 여자아이는 나무 책상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눈앞엔 노트 하나가 펼쳐져 있었고, 손에는 연필 모양으로 다듬은 붉은 돌이 쥐어져 있었다. 그 돌이 여자아이의 펜 같았다.

종이에 무언가를 집중해서 그리던 여자아이는 간혹 턱을 괸 상태로 인상을 쓰며 자신의 그림을 바라봤다. 여자아이의 외투엔 천으로 만든 이름표가 있었는데, 이름표엔 "미레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아이라는 자신도 모르게 미레이라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림을 그리고 있어?

음...

미레이는 아이라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눈치챘지만 대꾸하고 싶지 않은 건지, 고민 가득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뚫어져라 봤다.

아이라는 미레이의 손에 있는 작품을 봤다. 그 작품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하기엔 다른 사람이 전혀 알아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뭘 그리고 있어?

거북이요.

미레이는 아이라에게 엉망진창으로 그린 부분을 가리켰다.

어린 새, 강아지 그리고 이건 토끼예요.

응... 무엇 때문에 이렇게 그린 건가?

……

언니는 제가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말하고 싶은 거죠?

미레이는 묘하게 예리했다.

아니,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아빠가 밖에서 찾은 노트를 저에게 선물로 주셨어요. 이것만 있으면 제가 본 걸, 그림으로 그려서 아빠가 돌아왔을 때 보여줄 수 있어요.

하지만 패트릭과 아론은 제가 그린 게 너무 못생겼다고 했어요. 그래서 걔들과 안 놀아요.

아빠가 예전엔 그림을 자주 그렸는데, 지금은 너무 바빠서 절 가르칠 시간이 없다고 하셨어요.

... 그럼, 언니가 가르쳐 줄까?

언니는 그림 잘 그려요? 여기 삼촌 이모들은 다 못 그려요. 참, 언니는 공중 정원에서 왔죠?

패트릭한테서 들었어요, 공중 정원의 구조체는 다들 대단하다고요. 그럼, 그림도 잘 그리시나요?

그림 수준은 다 다를 거야. 그래도 언니는 그림에 대해서 조금 알아.

아... 네. 그리고 제가 세어봤는데 깨끗한 건 70페이지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아껴 쓰셔야 해요.

아이라는 조심스럽게 미레이 옆에 앉아 노트와 붉은 돌을 건네받았다.

뭘 그리면 좋을까? 혹시 좋아하는 게 있어?

말해주면 언니가 그려줄 수 있어요?

너무 희귀한 것만 아니면 가능해. 예를 들면, 고양이나 강아지 또는 민들레나 히아신스 같은 식물도 돼.

음... 그럼, 수국을 그려줄 수 있어요?

수국?

네. 수국이라는 이름만 알고 실제론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이 없어서요.

예전에 공중 정원에서 온 구조체 언니가 있었는데, 저한테 수국 씨앗 몇 알을 주면서 심으면, 예쁜 파란색 수국꽃이 필 거라고 했었어요.

수국을 본 적이 있으세요? 정말로 그 언니가 말한 것처럼 이쁜가요?

미레이의 기대 찬 눈빛을 본 아이라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마도. 정말로 피울 수 있다면 엄청 이쁠 거야.

아이라도 사실은 수국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공중 정원의 교육 센터엔 세계에 알려진 대부분의 생물 이미지와 자료가 있었지만, 한정된 온실 자원으로 그것들을 모두 재배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아이라는 펜을 들고 미레이가 원하는 풍경을 그려줬다.

손에 들고 있는 붉은 돌은 울퉁불퉁한 표면과 끝부분 때문에 손목으로 컨트롤하기 어려워서 그림 그리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미레이는 그림에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되지 않았고, 가르치는 이가 없는 탓에 펜을 제대로 잡는 자세조차 배우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렇게... 그리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아마도 이런 느낌일 거야.

아이라는 완성된 그림을 미레이에게 보여 줬다.

대단해요. 언니는 정말 대단해요! 그린 그림이 진짜 같아요. 수국이 이렇게 예뻐요?

응... 난 그냥 기억으로 그린 거야. 그리고 하늘색도 아니어서 상상했던 것과 좀 다를 수 있어.

아무튼 그 기대는 나중으로 미루자. 직접 피운 수국이 내가 그린 것보다 훨씬 더 이쁠 거야.

그리고 방금 그리는 과정을 봐서 알겠지만, 그림 그리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 펜을 움직일 때, 이곳을 조심하면...

아이라는 미레이에게 그림 그릴 때의 요령을 자세히 알려줬고, 미레이도 영리해서 한 번 들으면 바로 터득할 수 있었다.

언니는 왜 이렇게 그림에 대해 잘 아세요?

언니가 말한 명암, 모양, 구도... 그림이란 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네요.

언니는 그 많은 걸 어디서 배웠어요? 공중 정원에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나요?

……

언니는 공중 정원의 예술 협회라는 조직에서 왔어.

그곳에 있는 이들은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어. 그들이 언니에게 예술과 관련된 지식을 많이 전수해 줬어.

예술... 협회요? 예술이 뭐죠?

예술이란...

아이라는 머릿속에 떠오른 복잡한 정의를 다시 삼켰다.

참, 미레이는 왜 그림을 그려서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야?

네?

그건... 아빠가 제 그림을 보면 기뻐할 것 같아서요. 아빠가 집에 자주 안 계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매일 뭘 봤고, 뭘 했는지를 알려주고 싶어요.

응... 그런 이유라면 충분한 것 같네.

예술이란... 내가 생각한 예술은 바로 그런 마음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이거든.

물론, 표현 방식엔 여러 가지가 있어. 그림, 춤, 소설, 시 그리고 황금시대에 유행했던 영화나 만화 등등 모두 포함이야.

만화? 만화... 아, 언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미레이는 뭔가 생각이 난 듯 황급히 달려가더니, 얼마 후 책 한 권을 들고 돌아왔다.

이게 언니가 말한 "만화"라는 건가요? 아빠도 그렇게 부르셨어요!

아이라는 미레이한테서 낡은 만화책을 건네받았다. 세월 탓에 재생지는 구겨지고 누렇게 변했지만, 내용은 읽을 수 있었다.

이건 <아름다운 천사>?

미레이가 소장하고 있던 건 황금시대에서 유행했던 만화였다. 정확히 말하면 먼저 해당 시리즈의 "애니메이션"과 "장난감"이 만들어졌고 그 이후로 파생 만화 작품이 출시됐던 것이다.

<가면 기사>를 만든 제작사에서 만든 만화네...

만화 속의 여자아이가 엄청 세요! 예쁜 마법 소녀로 변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악당들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까지 겸비했어요!

나도 어릴 적에 교육 센터의 도서관에서 몇 편 본 적이 있어. 그땐 정말 푹 빠졌었는데 그립네.

정말요? 정말요? 전 이거밖에 없어서 계속 반복해서 읽어봤어요. 아빠도 새 만화를 찾을 길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언니, 혹시 딱 한 권만 빌려주시면 안 돼요? 음... 이거랑 교환해도 좋아요!

미안. 이런 만화는 공중 정원에도 얼마 없을 거야. 그리고 언니가 가지고 나올 수도 없어.

그래요? 좀 아쉽네요. 전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했거든요…

두 여주인공이 정령에게 선택되어, '아름다운 천사'라는 마법 소녀로 변신하여 괴물들과 싸웠다. 그리고 서로 친해지게 된 그녀들은 그녀들만의 모험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 들고 있는 만화책의 마지막이었다.

여러모로 이야기가 더 보고 싶게 만드는 단계에 끝나 있었다.

응... 예술 협회에선 그동안 이 부분을 중시하지 않은 편이었지. 이런 상업적인 작품엔 예술성의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보존할 가치는 있을 텐데…

음... 언니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이런 것도 잘 그릴 수 있겠죠!

미레이가 아이라의 중얼거림을 끊었다.

이런 거라면... 만화를 말하는 거야?

안 되나요? 언니도 좋아하잖아요?

만화 같은 거 그려 본 적이 없고, 필요한 기법과 지식도 많이 달라.

그려주시면 저... 엄청 기쁠 것 같아요! 아,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도와드릴게요!

미레이도 자신이 무리한 부탁을 하고 있다고 생각됐는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아이라, 한참 찾았네. 슬슬 갈 시간이야.

수송기는 이미 도착했고, 10분 후에 출발할 예정이야.

네. 알겠어요.

언니... 벌써 가야 해요?

응.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야 해.

그렇군요. 알겠어요. 그럼, 다음에 봐요! 헤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아빠가 몇 달 뒤에 절 데리고 새로운 보육 구역으로 간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곳은 여기랑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에요.

언니, 조심해서 가요.

응. 고마워.

미레이와 작별한 아이라는 예술 협회의 동료와 함께 수송기가 착륙한 곳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빨리 아이들과 친해질 줄은 몰랐네.

우연히 혼자 있는 미레이가 보여서요.

고고학 소대의 대원 대다수는 보육 구역 사람들과 접촉하는 걸 싫어해. 그들은 하루 종일 밖에 모여 있으면서도 주민들의 접대를 받으려고 하지 않아.

우린... 집행 부대와 다르기 때문인가요?

지상의 많은 사람들은 공중 정원의 모든 구조체가 그들을 지켜주는 영웅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심지어 우리 자신도 집행 부대의 보호를 받고 있잖아.

오르페우스 대장님, "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이군. 지금 당장은 대답하기 어렵네. 예술의 정의는 워낙 복잡하잖아, 일단 네가 어떤 학설을 지지하는지 봐야 할걸?

음... 저한테 "예술"이란 매우 단순하지만 멀리 있는 사물인 것 같아요.

혹시 그 유명한 작가의 일기를 기억하나요? 그분은 첫날에 "결정했어. 사랑하고 일해야 해!"라고 썼어요. 하지만 다음 날에 바로 "힘들어. 사랑하고 싶지 않고 일하고 싶지도 않아"라는 글을 썼죠.

그는 때때로 혼란을 느끼고 자신이 쓴 글의 가치를 의심했어요.

그래도 그는 자신의 창작을 계속 이어갔고, 그의 작품은 인류 문명의 역사에 길이 남았어요.

우린 그분처럼 위대해지지는 못하겠죠.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미래엔 무의미한 것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라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매 순간마다 각오가 됐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당장 내일이 되면, 지금의 선택을 보고,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아이라는 자신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껍데기에 가둘 수 있었고, 문제에 대한 자신의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이라는 자신이 활동한 성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었고, 자기 행동이 결코 속세의 허영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오늘 같은 일이 앞으로 몇 번이고 반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라는 소멸과 분발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라는 이 길에 오른 것을, 이 순수한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 여자아이가 아버지에게 기대하는 것처럼, 그 만화의 이어지는 내용을 보고 싶어 했던 것처럼.

오르페우스 대장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아이라? 어딜 가려는 거야?

그녀는 오르페우스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고, 방금 왔던 방향으로 다시 달려갔다.

언니?

하아... 하아... 아직 멀리 안 가서 다행이네.

무슨 일이시죠? 혹시, 두고 가신 게 있나요?

응. 소중한 걸 깜빡했어.

아이라는 미레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반쯤 쭈그리고 앉았다.

내 이름은 아이라고, 공중 정원의 예술 협회에서 왔어.

그 만화를 나한테 빌려줄 수 있어? 그림 그릴 때 참고하고 싶어서.

아이라는 구시대의 유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니?

미레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알아차렸다.

아이라 언니, 그럼 새 만화 그려줄 거예요?

응. 약속할게.

지금은 시간이 없지만, 공중 정원에 돌아가면 미레이가 원하는 후속 스토리를 그려볼게.

소녀는 악당을 쓰러뜨리고, 우정을 쌓아 세계를 구하는 여정을 떠났어. 앗, 스포는 너무 별로니까... 어쩌면 악당을 쓰러뜨리지 못했을지도 몰라! 그러니 많이 기대해 줘.

하지만 전 나중에... 여기 없을지도 몰라요.

괜찮아. 내가 미레이를 찾으면 돼.

갈 수 있는 모든 보육 구역에 미레이를 찾으러 갈게.

그건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을 지도 모른다. 미레이를 실망하게 할 수도 있었고, 만화를 훔쳐 간 사기꾼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라는 이것이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았다.

그때, 이 만화와 새로운 스토리를 함께 되돌려 줄게.

약속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