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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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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미래의 열쇠

나머지 소탕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각 소대의 협력 아래, 서쪽 구역의 이합 생물은 모두 처리됐다.

통신으로 공중 정원에 피해 인원 상황 및 무기 손실을 보고했다. 그러자 귀환 수송기가 이미 출발했다는 답변을 받았다.

리브는 서쪽 구역에 남아 부상자들을 긴급 치료하고 있었고, 리와 루시아는 다른 쪽으로 이동해 생존자 수색을 추진했다. 그리고 지휘관은 지휘 센터에서 부상이 심각한 구조체를 위해,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켰다.

고마워요.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대장님은 방금 저쪽으로 갔어요.

정화 부대 대원이 방파제 쪽을 가리켰다.

해안가에서 비앙카를 발견했다.

전쟁이 막을 내렸다고 선고하듯, 무겁게 내려앉았던 먹구름도 초연이 사라짐과 동시에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바다 위에 투명한 노을빛이 비쳤고, 먼 하늘은 부드러운 색깔로 물들었다.

방파제 가장자리에 앉은 여성이 넋을 잃은 것 마냥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광활한 바다를 함께 바라봤다.

비앙카

……

지휘관님.

비앙카

네, 다 끝났어요.

비앙카는 지휘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앙카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사별을 여러 번 겪게 되겠죠.

비앙카는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복잡한 감회가 담겨 있었으나, 막막함은 없었다.

비앙카

맞는 말씀이에요.

바람 속에 서 있는 금발 여성의 모습은 오래전, 거대한 이합체를 마주했을 때, 활을 겨누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진리와 심흔의 외형은 완전히 달랐다.

비앙카는 흠칫 놀라더니, 곧 그 질문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누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센의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석양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비앙카

네.

비앙카는 대답하며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함께 임무를 수행한 이후로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걸 본 지휘관도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날이 저물어 평온해지는 바다를 바라봤다.

갈매기가 울면서 바람을 타고 지나갔다. 잠시 후, 멀리서 누군가의 부름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니, 정화 부대 대원이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때, 단말기에서 수송기가 곧 도착한다는 신호가 울렸다.

네.

비앙카는 마지막으로 몸을 돌리기 전, 검을 가슴에 얹고 인간 형태의 이합 생물이 사라진 방향을 주시하며 두 눈을 감았다.

비앙카는 기도하고 있는 걸까? 아니, 어쩌면 그건 소리 없는 작별이나 경건한 선서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비앙카의 행동을 감지한 듯, 허리춤에 있던 근원 추적 장치에서 짤막한 진동음이 울렸다. 그 안에 들어있는 조각 같은 무언가가 장치의 중심에서 반짝거렸다.

센한테서 떨어진 물건인데, 근원 추적 장치가 흡수했어요.

뭔가... 되게 중요한 물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공중 정원에 돌아가면, 임무 보고서와 함께 제출하려고 해요.

나머지 해석은 과학 이사회에 맡기시죠.

공중 정원, 과학 이사회.

기체 조절 완료. 각 파라미터에 이상은 없어요.

비앙카가 훈련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공중 정원에 돌아온 후, 진리 기체로 다시 교체했다.

그래, 해결됐어.

진리 기체는 조정과 업그레이드를 진행하면서, 손상된 영도 기체를 대체하기에 충분해졌어.

심흔 기체는 전투에서 가진 기능을 충분히 보여줬어. 진리 기체로 교체한 건, 기체에 남아 있는 퍼니싱 정보가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못했기 때문이야. 강제로 사용하면 의식의 바다가 더 불안정해질 수 있어.

조정을 철저히 한 후, 다시 사용할 수 있어.

그리고 비앙카가 가져온 근원 추적 장치는...

아시모프가 모니터를 클릭하자, 퍼니싱 이중합으로 구성된 코어 조각이 스크린 중앙에 나타났다.

아니. 이 조각은 정보를 담은 저장 장치라고 할 수 있어, 중요한 건 그 안에 포함된 정보야.

정보를 담을 수 있는 퍼니싱의 특성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 같아. 하지만 그 외에 내가 어떤 중요한 걸 놓친 것 같기도 하고...

적어도 지금은... 나도 이런 암호화 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어.

아시모프는 눈살을 찌푸리며, 검지를 들어 이마를 주물렀다.

당분간은 정확한 발신원을 조회할 수 없긴 한데, 초보적으로 해독한 내용은 "메시지" 한 줄이었어.

아시모프는 그 정보를 스크린에 띄웠다. 하지만 지휘관이 보기에는 그저 알 수 없는 코드였다.

유일하게 해석이 완료된 건 난해한 메시지뿐이었다.

나도 이 메시지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어.

의미를 알 수 없는 한마디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회색 머리 소녀의 익숙한 얼굴이 지휘관의 머릿속을 스쳤다. 활짝 웃고 있는 소녀는 지휘관을 향해 손을 흔들더니, 뒤돌아 깡충깡충 뛰면서 눈부신 빛 속으로 사라졌다.

일단 이 조각에 대해선 아직 모르는 게 많아. 그러니 이 부분은 내가 계속 연구할 거야.

조각 외에 Ω 무기 생산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야. 이번 전투로 보유하고 있던 대부분의 비축량을 소모했어.

하지만 우린 승리했잖아.

하산의 미간이 다소 펴진 듯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스크린에 있는 사상자율을 가리켰다. 그곳에 표기된 수치는 게슈탈트가 제시했던 예측 결과보다 훨씬 낮았다.

자네 말처럼, 중요한 건 희망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니까.

예상대로 이번 전투에 참여한 대부분 대원들이 살아남았으니, 이것보다 더 좋은 승리는 없어.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면, 우리가 혹사의 기체를 회수하지 못한 거겠죠.

전 혹사가 침몰한 위치 근처에 있었는데 혹사를 잡으려던 순간, 바다에서 대량의 이합 생물이 나타났어요. 이합 생물을 모두 처리하고 다시 둘러보니, 혹사의 기체가 사라졌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합 생물들은...

네, 그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승격자나 대행자만이 그렇게 많은 수의 이합 생물을 조종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신비로운 그림자는 다시 겹겹이 쌓인 먹구름 뒤에 숨어서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조작하고 수확했다.

바다에 가라앉은 그 승격자에게 있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걸,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유일하게 발견한 건, 혹사가 했던 머리 장식뿐이었어요. 그건 제가 가져왔어요.

……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머리 장식"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아시모프의 반응이 좀 묘했다.

그 머리 장식이라면 얼마 전, 심사와 소독 절차를 거친 후 여기로 왔어. 저기 저 박스에...

뒤쪽에 있는 테이블을 돌아보던 아시모프는 갑자기 말을 잇지 못했다.

아시모프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니, 테이블 위에 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뚜껑은 열려 있었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방금까지 여기 있었...

너희 말고 계속 실험실에 있었던 건 로사밖에 없었는데, 잠깐...

로사?

아시모프는 소리를 높여 로사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보라색 머리를 가진 소녀는 여느 때처럼, 구석의 자료 더미에서 빠져나와 대답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열려 있는 빈 박스를 보며, 아시모프는 얼마 전, 로사와 노안의 우연적인 만남을 떠올렸다.

그런 "사소한" 일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모프는 로사가 어떤 사건의 진실을 궁금해한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시모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

실험실 문을 나선 노안은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날이 반복되는 테스트는 노안에게 큰 부담을 줬다. 그래도 최대한 협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실험실의 문 앞을 떠나려던 노안은 모퉁이 벽 뒤에서 보라색의 땋은 머리를 발견했다. 머리는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

지금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노안이 발걸음을 옮겨 사람 많은 쪽으로 향하는 기미를 보이자,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황급히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저기... 제가 뭘 좀 여쭤봐도 될까요?

넌... 로사?

네. 맞아요.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괜찮아. 무슨 일이야?

노안은 고개를 돌려, 로사를 바라봤다.

사실, 저번에...

로사는 노안이 처음 과학 이사회에 왔을 때, 자신을 혹사로 착각한 일에 대해 말했다.

미안. 그때는 내가 잘못 봤어.

아니에요. 사실, 제가 여쭤보고 싶은 건...

우물쭈물하는 여자아이가 손바닥을 펼치며, 방금 전까지 가슴 앞쪽에 움켜쥐고 있던 머리 장식을 노안에게 보여 줬다.

이 물건에 대해... 알고 있나요?

이건...

노안의 마음은 덜컹하고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로사의 손바닥에 있는 물건은 익숙하다 못해, 거슬리기까지 한 혹사의 머리 장식이었다.

그건...

"그러니까 다음에 날 만날 때, 잊지 말고 나한테 자기소개를 해줘. 그때의 난 널 기억하지 못할 거야."

혹사는 이미 죽었다.

노안은 로사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로사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노안을 보며, 초조해진 듯 언성을 높였다.

전 비밀 유지 협의 때문에, 혹사라는 승격자가 있다는 것밖에 몰라요. 그에 관련한 모든 자료는 볼 수 없어요... 아시모프 님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시고요...

혹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날 당신은 절 보고 혹사라고 불렀었죠...

정신을 차린 노안의 첫 반응은 거절이었다.

미안. 비밀 유지 협의가 있다면, 난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어.

하지만...

여자아이의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로사는 흐느끼며 노안에게 애원했다.

제, 제발요. 당신 외에는 물어볼 사람도 없어요.

아니, 잠깐, 그러니까... 울지 마.

노안이 당황하며 흔들리는 기미가 보이자, 로사는 더욱 큰 소리로 울었다.

흐아아아아앙...

헉...

노안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울고 있는 여자아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로사, 많이 말해줄 수는 없지만...

노안은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낸 후, 혹사의 모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혹사의 모습을 그려줄 수는 있어. 이걸로 괜찮나?

네. 고마워요.

로사는 손을 들어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노안의 펜 움직임에 따라 새하얀 백지에 조금씩 나타나는 혹사의 얼굴을 봤다.

색깔은 칠하지 않았지만... 혹사의 머리 색과 눈동자 색깔은 로사 너랑 비슷한 보라색이야.

노안은 노트에서 완성된 그림을 찢은 뒤, 로사에게 건네줬다.

왜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지 물어봐도 될까?

우리 집에도 이것보다는 낡았지만, 똑같은 머리 장식이 있었어요. 그게 엄마 물건인지 아니면 엄마가 가져온 "재료" 중 하나인지는 잘 몰라요.

로사는 혼란스러운 추억을 떨쳐 버리려는 듯 고개를 저었고, 초상화와 머리 장식을 받은 뒤, 조심스레 손에 쥐었다.

이 그림...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제, 제가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잘 숨길게요.

물론이지.

고마워요. 그리고 제가 했던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응. 그럼 내가 너에게 알려준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이야.

노안은 손을 들어, 쉿 동작을 취했다. 로사는 턱에서 떨어질 듯 말 듯 한 눈물을 닦으며,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한 거예요. 우리 모두 약속을 어기면 안 돼요.

그래, 약속했어.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에요.

생명의 별, 지휘관 병실.

바네사는 조용히 병상에 앉은 채, 손을 들어 왼쪽 눈의 끔찍한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녀는 곁에 있는 소형 단말기를 들어, 지휘관의 최고 기밀 권한으로 숨긴 이미지 파일을 열었다.

파일에는 이미지 몇 장밖에 없었는데, 바네사의 손은 그중 최신 이미지에서 멈췄다.

바네사

하, 비밀이라...

바네사가 자조하는 듯 미소를 짓는 순간, 올라간 입꼬리가 상처를 당기게 되면서, 희미한 통증과 가려움증을 가져다줬다.

공중 정원으로 돌아오기 전.

그럼, 난 갈게.

잠깐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들어줄래?

……?

바네사는 손에 들고 있던 기록 단말기를 흔들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도 단체 사진을 찍었던데. 우리도 사진 찍어서, 마지막 기념으로 남기자.

저 먼 곳은 연기가 자욱한 전장이었고, 주변은 이합 생물의 잠재적인 위협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사진을 찍자는 제안을 했다.

사진?

뭐~ 마지막이니, 네 마음대로 해.

이미 전 지휘관이 돼버린 그녀가 왜 배신자와의 사진을 남기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네사에게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건 테슈가 이미 떠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밤비나타, 테슈 옆으로 가서 서있어.

밤비나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네사의 지시대로 테슈 옆에 서서 "사진용" 포즈를 취했다.

테슈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살짝 돌렸으나, 움직이지는 않았다.

바네사는 단말기를 들어, 앞에 있는 테슈와 밤비나타를 화면에 담았다. 그리고 단말기의 화면을 보면서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셔터는 누르지 않았다.

바네사는 뭘 기다리는 걸까? 테슈는 의문스러운 듯 그녀를 바라봤다. 밤비나타는 난처해하면서 손을 든 상태로, "사진용" 포즈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바네사는 테슈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먼 곳을 바라봤다.

아득히 먼 해안가, 시야가 닿을 수 있는 한계쯤에 익숙한 핑크빛 그림자가 나타났다.

핑크빛 그림자는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는 바네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부상당한 구조체를 향해 달려갔다.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네사는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때, 공장 구역의 폐허 속에서 긴 머리카락를 베어낼 때와 같이... 혹은 죽음에 쫓기는 구급차 안에서 "도망가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처럼, 우스울 정도로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구급차에 있던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보고, 바네사는 실종됐었던 테슈를 떠올렸다. 바네사는 자기 손에서 죽거나, 배신한 "인형"을 너무 많이 봐왔다. 하지만 자신을 구하러 돌아오는 구조체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미 늦었지만, 확실히 뭔가 바뀐 것 같았다.

리브가 화면에 들어온 찰나, 바네사는 셔터를 눌러, 눈앞의 모든 것을 사진에 담았다.

여전히 순종적인 밤비나타, 더 이상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테슈, 화면에 들어오지 않으려는 바네사, 멀리서 바라본 리브... 과거 찬란했던 백로 소대가 이런 방식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남겼다.

지금 이후로, 그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됐어. 끝났어.

시선을 거둔 테슈는 곧장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네사와 스치는 순간, 테슈는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 우린 적이야.

하... 날 배신한 놈은 다시 보고 싶지 않아. 게다가 내가 버린 "인형"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

바네사는 조금씩 무거워지는 자기 몸을 지탱하면서, 테슈를 보지 않고 고개를 치켜든 뒤, 임시 지휘 센터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바네사 곁으로 다가온 밤비나타는 자기 몸으로 자신의 주인을 지탱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테슈를 봤다.

그럼, 우리가 영원히 재회하지 않도록 기도할게.

……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자, 바네사는 스크린을 닫고 단말기를 이불 위에 엎어놨다.

생명의 별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검사 보고서를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온 건 과일 바구니를 든 세리카였다.

검사 결과가 모두 나왔어요. 나름 잘 회복된 것 같네요.

다만 얼굴의 상처는 시간이 좀 더 지나야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왼쪽 눈은... 유감스럽지만, 부상이 심하고,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바람에, 시력 기능을 상실해서 회복될 가능성이 없어요.

하지만 그때 상황을 다시 고려해 본다면, 그게 최선의 처리였어요.

교차성 감염을 막기 위해, 최대한 빨리 안구 적출 수술을 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그 후엔 의안을 장착하는 것도 고려해 보세요.

세리카는 바네사가 노발대발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은 듯 손을 저었다.

상관없어.

흉터도, 의안도, 내가 많은 사람을... 그리고 [player name]같은 바보도 구했다는 증거로 두지 뭐.

신경 쓰지 않는 듯, 바네사는 손을 들어 머리를 쓸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까칠한 웃음을 지었다.

그 수석이 내 얼굴의 흉터를 보고, 자신이 무능하게 석 달 동안 누워 있었던 일을 반성했으면 좋겠군.

음, 현재 [player name]이(가) 생명의 별에서 리브의 재활치료를 도와주고 있는데, 이곳으로 부를까요?

바네사는 경멸하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 수석이 어떻게든 나에게 사과하고 감사해한다면, 못 만날 것도 없지.

그리고 성의를 보여줬으면 좋겠어. 내 병실 앞에서 적어도 1시간은 벌서고 들어오는 거야.

……

바네사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지휘관님.

043호 도시에서 철수할 때, 바네사 지휘관이 여러 사람을 도와줬어요.

바네사 지휘관과 밤비나타가 철수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보육 구역에 남은 사람들은 아마도...

실종됐던 바네사가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해안가의 임시 지휘 센터에 나타났다고, 의료 구조체한테서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생명의 별로 옮겨졌지만, 침식으로 인해 의식 불명 상태라고 했다.

바네사는 자신의 부상과 실종된 수개월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선 일절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밤비나타와 함께 나타나, 전투가 끝날 때까지 포위된 병사들을 도와 전술 지휘했다.

대부대와 합류한 후, 바네사는 생명의 별로 옮겨졌다. 그 뒤 침식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리브와 루시아는 바네사가 043호 도시에서 했던 일을 전달한 적이 있었다.

네.

리브

전...

리브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먼저 다녀오세요. 전 나중에 혼자서 갈게요.

테슈가 그분을 배신했다고 들었어요. 지휘관님과 제가 같이 가면...

그럼 전 여기서 지휘관님을 기다릴게요. 그리고 바네사의 병실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모든 치료가 끝나는데, 30분이나 걸렸다.

세리카와 함께, 바네사의 병실 앞으로 왔다.

바네사

누구?

병실 안에서 바네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의 빈정거리는 목소리와 달리, 목소리는 잠겨있었고, 허약하면서도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바네사

너... 수석?

방금 전, 목소리 속의 쓸쓸한 느낌은 지휘관의 환청이라는 듯, 방 안의 목소리가 확 바뀌었다.

바네사

……

바네사

잠깐만! 너무 예의 없잖아!

내가 말했지. 성의를 보여달라고, 병실 앞에서 적어도 1시간은 벌서고 들어와.

벌을 서기는커녕, 34분이나 늦었잖아.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라는 사람이 생명의 은인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잠깐만요.

세리카가 문을 열려는 지휘관을 막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네사 지휘관은 매우 심한 상처를 입었어요. 왼쪽 눈도 잃고, 얼굴에 큰 상처도 생겼어요.

바네사가 부상을 입은 뒤로, 그녀와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던 세리카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바네사도 마음이 안 좋을 거예요. 그러니...

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얼굴에 큰 상처가 생겼어요.

옛날의 바네사가 떠올랐다. 그녀는 항상 세련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심지어 지상에서 전투할 때도 자신의 우아함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데...

그리고 반 시간이 지났다.

손을 들어 노크했다. 이번에는 거절당하지 않았다.

바네사

들어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손을 들어 문을 밀었다.

가장 먼저 풍겨오는 건 산뜻한 냄새였다. 이어서 침대에 앉아 있는 바네사가 보였다.

……

눈앞에 있는 바네사는 여전히 기억 속의 바네사였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치마와 완벽에 가까운 메이크업, 정교한 속눈썹과 왼쪽 눈을 덮은 화려한 레이스 장식의 안대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안대 아래 끔찍한 상처들을 엿볼 수 있었다.

보긴 뭘 봐? 수석도 눈을 도려내고 싶은 거야?

역시 그녀답게 익숙한 비아냥이 들려왔다.

활기찬 것도 수석 덕분은 아니거든.

아무튼 너 때문은 아니야.

바네사는 가차 없이 반박했다.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바보에, 부하 구조체는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잖아. 나 아니었으면 여기 이렇게 온전하게 서 있을 수 있었을 것 같아?

수석이 지하실의 낡은 침대에서 죽은 듯이 누워있던 모습이 얼마나 추하던지, 하여튼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는 걸 좋아한다니까.

뭔가 이상한 스위치가 켜졌는지, 바네사의 빈정거리는 말투가 여느 때보다 더 공격성을 띠고 있었다.

방금 전엔 문을 부수고 들어올 기세였잖아? 지금은 왜 한마디도 안 하냐고?

바네사는 기분이 좋아진 듯,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아하게 손을 들어,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을 집으려고 했다.

하지만 붕대를 감은 손은 물컵 옆의 공기를 스쳤을 뿐, 하얀 물컵을 잡을 수 없었다.

툭. 무의식적으로 움츠러든 바네사의 손이 컵에 닿았다. 물방울이 튀면서, 손에 감겨있는 붕대를 적셨다.

됐어. 다 식었어.

나름 빨리 감췄지만, 눈치 빠른 지휘관은 그녀의 눈빛에서 일말의 연약함을 포착했다.

지휘관은 다시 일어서, 물컵을 들고 온수 한 잔을 따른 뒤, 바네사의 손에 쥐여줬다.

괴상한 표정을 지은 바네사는 평소처럼 거절하지 않고, 두 손으로 컵을 받았다.

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내 앞에서 스스로 굽신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하네. 낯설기도 하고.

고개를 숙인 바네사는 컵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침묵에 잠겼다.

한참 뒤의 노크 소리가 침묵을 깼다.

시몬은 이것저것 여러 개 봉투를 들고 병실로 들어왔고, 아리잠직한 밤비나타가 그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주인님, 오는 길에 시몬 지휘관을 만났는데, 병문안 오고 싶다 하시길래 밤비나타가 여기로 안내했어요.

바네사, 몸은 좀 어때요? 아, 수석님도 계셨군요.

지휘관은 손을 들어, 시몬과 인사했다. 시몬은 병상에 앉아 있는 바네사를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근데...

오늘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거야? 바보 집합회가 따로 없네.

바네사는 시몬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말을 끊었다.

시몬은 바네사의 가시 돋은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손에 들고 있던 봉투 여러 개를 병상 옆 수납함 위에 올려놓았다.

비타민을 섭취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다 나았을 때가 제일 힘든 시기거든요. 저도 그때...

난 필요없...

밤비나타가 주인님 대신 시몬 지휘관님께 감사의 말씀드려요.

옆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밤비나타가 갑자기 앞으로 다가와, 시몬에게서 주머니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거든요. 지금 주인님은 이게 필요하다고요.

너희들...

시몬은 어느새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 바네사에게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양 보충 식품, 요양 기간에 볼 심심풀이용 책, 그리고 철수 중 생존한 사람들이 보내온 물품 등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바네사는 여전히 상관없다는 태도였고, 가끔가다가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못해" 밤비나타더러 시몬이 가져온 물건을 잘 보관하라고 했다.

잠시 후, 병실의 방문객이 또 한 명 늘었다.

와, 시끌벅적한데. 다 여기 있었네?

너희들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거니?

지금 하고 있어. 내 영웅 선배를 병문안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거든.

해리조의 진지한 표정을 본 바네사는 기가 막혔다.

맘대로 해...

바네사는 들고 있던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그러면서 일부러 자신의 표정을 가렸다.

그 후, 네 사람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서 파오스에 있을 때의 이야기를 나눴다. 졸업한 후로, 학교 축제에서도 이렇게 동창과 느긋한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다.

그래도 차기 동창회는 생명의 별 말고, 다른 곳에서 진행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의 별을 떠날 때,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는 비앙카를 만났다.

비앙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비앙카도 미소를 지으며 지휘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님.

비앙카와 스쳐 지나갈 때, 마침 여러 명의 구조체가 달려가면서 비앙카의 이름을 부르는 걸 목격했다.

비앙카 대장님!

우아하고 굳건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던 비앙카는 발걸음을 멈추고, 대원들을 기다렸다.

무심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마침 비앙카가 고개를 돌려 대원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모습이 보였다.

예전의 정화 부대는 늘 진지하고, 거리를 두는 분위기였다. 그들이 감정에 휘둘리는 걸 애써 회피했던 건, 언젠가 자신의 동료를 향해 칼을 겨눌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앙카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사별을 여러 번 겪게 되겠죠?

하지만 지금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함께 나아간다.

작지만 굳건하게 타오르는 불씨처럼, 무언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모든 만남과 이별이 언젠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별빛이 되어, 고요한 바다를 비추고, 희망의 귀로를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