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교회 뒷문에는 용광로가 하나 있었다. 회수가 필요한 대부분의 금속 물품은 이곳에 분배되어 보내지게 되고, 전송대로 보내진 다음에는 강철로 변해 로봇 성당의 견고한 외각을 만드는데 사용됐다.
하카마, 스프너와 대책을 논의하고 헤어진 뒤, 소녀는 살금살금 이곳으로 왔다.
나오지? 나나미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네가 일부러 파워 몸에 손을 대서 나나미가 신호를 받을 수 있었어. 용광로 쪽에서 열원을 섞으면 다른 로봇의 감지는 피할 수 있을 테지만, 나나미의 눈은 피할 수 없어.
...역시 처음부터 알고 있었군...
용광로 옆, 금속 쓰레기 더미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상대는 검은 옷과 낡은 군대 제식 외골격에 두꺼운 망토를 두르고 있었고, 가면으로 얼굴 대부분을 가려고 있었다.
상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가만히 손을 들어 악의가 없음을 나타냈다.
상대가 자신 앞에 서자, 나나미의 당혹감이 오히려 커졌다.
넌... 인간?
상대방은 맥박이 없고 체온이 매우 낮았는데, 이것이 로봇의 감지를 피할 수 있는 주요 원인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몸에서 호흡과 생체 반응은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손을 내리자, 망토가 그의 동작에 따라 약간 흔들리면서 그의 허리에 있는 순환 장치를 연결한 배터리가 노출됐다... 그는 한때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였고, 지금은 거의 반 로봇 상태였다.
요새에서 널 본 적이 있어. 혼자서 그렇게 많은 총을 맞았지만, 상처 하나 입지 않는 강력한 로봇 리더, 나나미. 이렇게 설명하면 틀림없겠군.
그때 나나미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어... 그래서...
트라우마가 있는 인간이 로봇에 대해 그 정도의 두려움을 가진 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지. 어쨌든, 로봇이 인간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로봇의 수장인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것 같은데?
나는... 네가 믿든 안 믿든 자유지만, 이건 내가 보고 싶은 상황이 아니야. 너는 인간이니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다면...
나나미는 멈칫했다. 그녀는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런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로봇은 여전히 출전할 것이고, 인간은 반드시 결사적으로 저항할 것이었다.
...나나미가... 잘 하지 못했어.
보아하니 나랑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네. 다른 인간은 너를 두려워할 테지만, 난 아니야. 어쨌든, 형은 네가 그레이 레이븐의 친구였다고 말했으니까.
그레이 레이븐?! 그럼 너도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알겠네? 그리고 루시아, 리브, 리도! 지금은... 잘 지내?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고민하는 듯, 앞에 있는 소녀를 잠깐 바라보았다.
...음, 아는 사이지. 이럴 때는 신분 같은 걸 속여도 의미가 없어 보이네.
상대방은 나나미에게 손을 내밀며 이름을 알렸다.
난 리의 동생, 머레이라고 한다. 예전에 [player name]와(과)도 몇 번 인연이 있었지.
나나미는 그 손을 잡았다.
나나미한테 그들의 최근 상황을 말해줄 수 있어?
네가 정말 듣고 싶다면 못할 거야 없지. [player name]이(가) 승진했기 때문에 이제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은 나야. 하하, 원하던 대로 형과 함께 싸울 수 있게 된 셈이지...
그레이 레이븐 모두... 잘 있어?
...그 일을 모르는 거야?
오래전 일이지만... 신형 특화 기체의 실험 실패로 인해, 처음으로 특화 기체로 교체한 구조체 리브는 인간형 이합 생물체와의 전쟁에서 전사했어.
리브... 백야...
나나미는 기억 속에서 관련된 키워드를 포착했다.
그 후 전쟁은 가속화됐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기계 교회는 인간에게 퍼니싱보다 더 아픈 고통을 안겨줬고, 우리가 쓸 수 있는 모든 자원은 '소진'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로봇 대군에게까지 모조리 약탈당했어.
지구를 떠나는 것조차 일종의 지나친 욕심이 됐고... 기계 교회가 인간에게 하고 싶은 것은 학살이었어.
인간의 진영에서 리더가 죽으면 대원이 이어받고, 장교가 죽으면 병사가... 1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이어받았어.
[player name]이(가) 지휘관을 계속하지 않은 이유는 [player name]의 장관인 하산, 니콜라가... 없기 때문이야.
하, 하산 아저씨...
그건 한 달여 전의 전투였어. 인간은 가장 큰 바닷속 요새와 오랫동안 함께 했던 리더들을 잃었지.
차징 팔콘 전원이 수중 보루로 뛰어들어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체류한 병사를 구하려 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반즈와 그의 품에 안겨서 죽은 아이 한 명뿐이었어.
정화 부대의 리더 비앙카는 퍼니싱으로 만든 무기를 드는 바람에 '마녀'가 됐어. 끝내 퍼니싱에 오염되어 심해로 떨어졌지.
[player name]와(과) 나는 그 전투의 생존자였어.
하지만, [player name]은(는) 침식으로 두 손을 잃게 됐어. 자원이 부족해서 고정밀도의 부분 신체 교체는 불가능했어. 긴박한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뒷 선으로 물러나 전 인류의 리더 역할을 계속 수행했어.
불완전한 그레이 레이븐은 번호를 남겨뒀어. 인간을 격려해주는 불굴 항쟁의 상징으로. 리브의 자리는 반즈가 이어받았고, '그레이 레이븐'은 대부분 상황에서 지휘관이 없는 상황에서 작전할 수밖에 없었어.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도움만 줄 수밖에 없었어.
교체 부품이 부족해서 루시아와 형은 번갈아 가며 출전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레이 레이븐은 여전히 전투에서 주력이자 에이스였어.
지휘관으로서의 나는 실패했을지도 몰라. 내 목숨과 형 말고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으니까.
아직도 생각나... 모래사장에서 기창을 들고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티던 베라의 그 모습이. 베라는 로봇 기체의 공격을 홀로 막아내며 나에게 '살아남아'라고 말했어.
케르베로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베라는 결국 다른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어.
머레이가 고개를 숙여 손가락을 벌렸는데, 손바닥의 절반은 로봇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는 자조적인 웃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지금의 나는 행운의 생존자이지만, 형이 내게 남겨준 심장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어.
머레이의 가슴에서 뛰고 있는 것은 금속으로 만든 정교한 대체품에 불과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 미래의 진실은 나나미를 휘청이게 했다. 그녀는 앉아 얼굴을 두 무릎에 묻고 작은 공처럼 오므렸다.
모두? 아, 다른 사람도 있었지.
예술 협회를 가리키는 거라면, 공중 정원이 함락되었을 때 황금시대의 유물을 옮기기 위해 철수가 늦어지면서 착륙에 실패했고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들과 함께 가루가 됐어.
머레이는 담담한 말투로 진술했다.
북극, 아딜레 그리고 구룡 사람들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공중 정원과 연락을 끊었어. 그 후 일부 흩어진 병사들만 우리와 합류했는데, 그들도 안타깝지만,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못했어.
망각자도 심각하게 침식된 사람들이 남았는데,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와타나베는 결국...
...그만.
네가 부탁한 거잖아. 지금은 또 듣기 싫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하찮음? 죄책감? 이게 우리가 처한 세상이야. 비극을 말하라면 3일 밤낮을 얘기할 수 있어.
이런 일들이 그의 주변이 아닌 멀리 떨어진 세상에서 일어난 것처럼, 진술이든 반문이든 머레이의 말투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충분해.
나나미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눈물을 글썽였지만, 말은 오히려 단호했다.
말이 많은 걸 보니, 나나미가 기계 교회를 '배신'하지 않고, 인간이 살 수 있는 희망을 숨길까 봐 걱정하고 있구나. 그렇지?
……
머레이가 나나미를 찾아온 것도 구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일 거야. 그렇지?
……
말하지 않아도 나나미는 느낄 수 있어. 너는 몇 번이나 형을 언급했어. 너의 가족, 형을 구하고 싶은 거야. 맞지?
……
기계 교회를 창시한 장본인을 마주한 머레이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레이는 상대방이 자신 때문에 감정의 동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했고 이어서 자신의 조건을 들어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봤다.
나나미는 잠시 침묵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나나미는 아직 '코그휠'의 구체적인 작전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어.
인간의 마지막 거점이 '레프트하임'이라는 곳에 있다면, 빨리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제로는 내일 인간을 향한 최후의 공격을 계획하고 있어. 나나미는 최대한 '코그휠'를 붙잡아서 너희들에게 시간을 벌어줄 거야.
나나미는 하카마에게서 받은 기계 교회의 발신기를 상대방의 손에 건넸다.
발신기는 너희들 거점으로 가져가지마. 기계 교회가 발신기를 추적할 수 있겠지만, 나나미도 발신기를 통해 '코그휠'의 동태를 알려줄 수 있어.
그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의외로 머레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 손끝이 그의 손바닥을 스치면서 약간의 낮은 온도차를 남겼다.
그가 발신기를 주머니에 넣자 용광로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빛이 그의 얼굴을 살짝 비췄다.
그만 가야겠어.
이번에 실패해도... 나나미는 다시 올 수 있어.
다시 온다고...
머레이는 낮은 웃음소리를 냈고, 용광로의 불이 후드 그늘의 두 눈을 비추었다. 눈꺼풀 아래가 약간 수축했는데, 그건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할 수 있어! 나나미는 전쟁이 없는 미래를 찾아서 인간에게 가져다 줄 거야.
소녀는 눈물을 닦더니 다시 확고한 말투로 말했다.
나나미는 네가 말한 그런 결말을 친구들이 당하지 않도록 할 거야.
...그래.
또 다른 세상이 있다면, 그 세상의 형을 잘 지켜줘. 부탁할게.
이 세상의 형은 내가 지킬 수밖에 없어.
나나미가 무슨 말을 계속하기 전에 머레이는 차가운 밤으로 향했고, 어둠은 그의 뒷모습을 덮었다.
기계 선현님이 자신을 위한 환영식을 준비하길 원하시며, '코그휠' 전군이 집결해 열병식에 참가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선현님께서는 웅장한 궁궐이나 아름다운 장식 같은 것이 진정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코그휠'의 리더가 자신의 옆에 있어야 그들의 충성과 사랑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므로, 전체 과정을 함께 해주기를 원하십니다.
이 명령들이 로봇들 사이에 전달되면서 공지를 형성했고, 갑작스러운 모든 일정의 배치는 선현님의 제멋대로인 생각으로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단기간 내에 더 기발한 계획을 생각해낼 수 없었던 나나미는 대규모 집회를 통해 전장에 참여하지 못할 정도의 로봇이 모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교회 군이 인간을 해치는 것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남은 인간이 현재의 거점에서 철수할 수 있는 시간만 충분하다면, 그 이후에는 우회할 여지가 있을 것이었다.
하카마와 스프너도 나나미의 요청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위엄의 로봇이 머리에 왕관을 쓴 소녀를 태우고, 광장 중앙의 큰길을 천천히 누볐고, 도로 양쪽에는 선현에게 충성하는 '코그휠' 강철 군단이 정렬하고 있었다.
로봇들은 원시적인 순례의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고, 차가운 눈밭에 가슴을 바짝 붙여 나나미를 향해 다가가 태양이 지는 지평선 방향으로 두 팔을 뻗었다.
마치 '인간의 순례' 같았다.
커다란 광장에서 나나미는 자신이 유일하게 서 있는 사물임을 발견했다.
앞에 있는 지평선 위의 태양은 더 이상 가라앉지 않았지만,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뒤의 하늘빛은 점차 짙어지고 어두워지면서 온 세상의 구름이 모여들었다.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땅 위에 엎드려 있는 로봇들은 나지막이 읊조리는 콧소리를 냈고, 이 소리는 순식간에 대지를 뒤덮었다. 소리는 어떤 리듬에 맞춘 것 같았지만,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말은 단 하나의 단어뿐이었다.
'선현님.'
이런 장엄하고 기이한 광경은 문득 나나미에게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녀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게 다야?
네, 전부예요.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신다면, 하룻밤, 하룻밤이면 두 배로 늘릴 수 있어요.
...그거 정말... 대단하네.
마음에 드신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새빨간 로봇 소녀의 흥분된 눈이 빛났다.
급작스러운 행사 개최때문에 시간이 촉박했지만, 제가 선현님을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요!
제로가 공중을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수많은 비행 로봇이 어둠 속에서 투영 스크린을 띄워 실시간으로 레프트하임 폐허의 화면을 보여줬다.
거대한 공격형 로봇 몇 개가 지하 터널을 통해 벙커를 부수고 요새로 진입했다. 그들은 제물을 바치듯 인간의 방어 건물과 총구에 자신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부딪혔고, 포효하는 포화 아래 끔찍한 침식체로 빠르게 변했다.
그리고 로봇들이 예전에 근처로 유인했던 침식체들까지 몰려왔다. 근처에서 떠돌던 침식체들이 벌 떼처럼 쇄도하자, 순식간에 인간의 방어선이 무너졌다.
광장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불꽃이 터지며, 최후의 승리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비행 로봇이 투명하고 반짝이는 붉은 다이아몬드를 제로의 손에 건네주었다. 제로는 정성스럽게 받아 들고는 마음대로 구경했다.
음... 누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요. 이건 '낭만'을 만드는 방법이자,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요. 오늘같이 '기념'할만한 날을 위해 이런 의식을 준비해도 좋은데요~
당신은 이 붉은 다이아몬드에 관해서, 예전에 그 인간과의 대화에서 몇몇 사람들을 언급했지요. 보아하니 그들은 당신에게 '기념'할만한 사람이고, 조금은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 같네요.
제로는 시를 읊는 듯한 이상한 말투로 그 보석을 바치듯, 나나미 앞에서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럼, 그들을 영원히 선현님 곁에 있게 해드리죠.
나나미의 손에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그 보석이 닿자, 갑자기 작은 소리로 흐느끼며 울었다.
전기톱의 체인 소드를 순식간에 세워, 사나운 기세로 도살자의 머리 위로 향했지만, 끝내 힘없이 회전을 멈췄다.
미안해...
어... 선현님 왜 그러세요? 이건... '기쁨'인가요? 아니면 '슬픔'인가요? 선물이 마음에 드시나요? 아니면... 제가 뭘 잘 못했나요?
저는 선현님을 위해 많이, 더 많은 걸 해드리고 싶어요. 이게... '사랑' 아닌가요?
항상 '사랑'과 다른 감정에 열광적으로 사로잡혀 있던 로봇은 이때 선현의 눈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녀의 논리는 한순간에 혼란이 생겼다.
많이, 더 많은 걸 해드리고 싶어요. 그 말은 '종이를 만들고, 더 많은 종이를 만들고 싶다.'라는 것처럼 들렸다.
나나미는 더 이상 분노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가락을 내밀어 제로의 볼을 살짝 만져 보았다.
...미안해. 나나미가 너무 늦게 왔어...
인간도, 너희들도, 나나미는... 더 이상 구할 수 없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