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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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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 여섯 번째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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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화염이 타오르면서 이합 생물은 핏빛 안개로 변해 소녀의 기체에 녹아들었다.

먹구름에 드리워진 빛은 너무 부드러워 긴 밤을 방황하는 눈들도 따갑지 않을 것이었다.

???

저건…… 빛인가?

잠식된 퍼니싱이 사라지면서 침식된 기계와 구조체가 점차 정신을 회복했다.

??

……내가 어떻게 여기에……

???

어, 깨어났잖아!

??

……이건 기적이야.

더는 그 통제할 수 없는 바이러스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는 침식된 동료를 직접 죽일 필요도 없었다. 사람들은 기쁨과 굳건함으로 묶여 있었다.

???

여기! 누가 좀 더 와 봐!

??

문제없어요!

그들은 서로 협력해 견고한 방어선을 만들어 리브의 공격에 시간을 벌었다.

외롭게 죽음으로 향하던 소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모두의 보호 속에서 백야는 바이러스를 삼키는 괴물처럼 순백의 불길을 끊임없이 쏟아부어 적조로부터 본래 인간의 영역을 되찾았다.

???

우리는…… 이날만을 기다렸어!!

행성 전체의 궤양에 비하면, 이건 상처 속 아주 작은 물약 한 방울이었다.

그러나 궤양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약수를 찾기 위해 인류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정신을 차린 모든 구조체가 환호하고 있었고, 새벽빛이 밝았으니 이제 맑은 하늘을 기대할 수 있었다.

리브

……모든 게 순조로워.

연구원들이 계획한 대로 퍼니싱은 기체에 의해 소녀의 의식의 바다 속으로 끊임없이 흡수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처럼 위조된 대행자는 퍼니싱을 자신의 힘으로 전환할 수 없었다. Ω무기의 효율은 제한적이었고, 그 흡수되지 않은 바이러스는 점차 쌓여갔다.

……그녀는 퍼니싱을 흡수하는 속도를 통제할 수 없었고, 통제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지는 월하미인처럼, "백야"라는 이 기체의 유지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그리고 그 기체는 누구에게도 기다릴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3시간의 생명을 쥐고 리브는 자신의 한계를 전력으로 쫓아갔다.

아아, 위력이 이정도라니. 대량의 침식체를 소탕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의식을 회복했어.

정말 아름다워. 전 세계의 침식체보다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희망의 시작은 확실히 잡은 것 같군.

겨울 계획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웃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어.

그린스는 스크린 속 리브의 영상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다만, 그녀가 목숨으로 바꾼 게 이렇게 짧고 작은 불꽃이라는 것이 너무 아쉬워.

이게 재난을 타개할 칼날을 잡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각 측정된 데이터를 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할 수 있어.

퍼니싱이 제거되면 이합 생물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침식된 구조체도 일정 정도의 이성을 회복하겠지만, 이후 모든 것은 추가적인 관찰과 테스트가 필요해.

구할 수 없는 건…… 바이러스에 썩어가는 인간뿐이야.

인간의 몸은 역시 너무 약해.

우리에게 혈청이 있다는 걸 잊지 마. 그게 Ω무기 보다 훨씬 더 일찍 나왔다고.

…………

리브의 상황은 어떻지?

Ω무기가 지금 그녀의 침식도를 제어하고 있지만, 침식보단 의식의 바다가 먼저 과부하 될 거야.

잠깐만, 뭔가 이상해.

군중이 그녀가 알아챈 기록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아래쪽 침식체에서 나는 그런 잡음일 겁니다.

아니, 좀 달라.

그는 기록의 세부 정보를 펼쳐 뒤에 있는 교수와 함께 하나씩 찾아갔다.

……이건 그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기억이야.

한 가지 추측이 있어.

침식체와 죽은 자의 기억?

맞아. 이전에 관찰된 상황을 보면 적조에는 죽은 자들의 수많은 기억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어.

그 정보들이 퍼니싱에 기록되어 적조의 허상과 인간형 변종에게 인격 데이터를 제공해 그들에게 죽은 자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있게 하는 거야.

그리고 지금, 리브가 퍼니싱을 흡수했기 때문에 그 기억들은 그녀의 의식의 바다로 흘러들어갔어.

침식체에게서 발견된 적이 없는 그런 현상이 설마 의식의 바다가 너무 안정적이어서 데이터들을 해석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 부분을 검증하려면 기체가 회수된 다음에 제대로 갖춘 분석을 진행해야 해.

…………

이건 절대 좋은 소식이 아니야.

무슨 일 있나?

구룡 상회의 기록 중에 ‘장주가 나비의 꿈을 꾸다’라는 옛말이 있는데, 의장은 들어본 적 있나?

구룡의 문화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 그저 나비를 자신의 꿈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들었다.

‘장주가 꿈을 꿔 나비가 된 건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꿔 장주가 된 건지 모르겠다.’

승격자들과 달리 그녀는 ‘죽은 자의 기억’들을 통제하지 못해 데이터 난류에 자아가 파괴됐고,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 속에 녹아들고 있어.

이미 죽은 자들과 그들이 죽기 전의 기억을 자신의 일로 삼고 있어.

만약 그 입장에 똑같이 서서 한 개인이 출생부터 죽음까지 겪은 수많은 경험들을 몸소 느껴보라고 한다면 어떨 것 같아?

…………

…………

테스트 결과가 영향을 받을까?

특화 기체와 Ω무기 합병의 가능성을 말하는 거라면 이미 성공했어.

하지만 인간형 생물체를 처치하는 중요한 임무가 남아 있지 않나?

그 결과만 있으면 충분해. 그녀가 지금 인간형 생물체를 처치한다고 해도 언제 새로운 게 나타날지 몰라.

다음은 데이터를 회수하고 개선해야 해. 보다 안정적인 기체를 개발해야만 반복적인 실패를 피할 수 있어.

그런 증상을 지금 억제할 방법이 있나?

……아니, 이미 늦었어.

………………

그건 의식의 바다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거야. 리브가 살아남는다 해도 격렬한 극통 외에 그런 죽음과 기억 데이터의 잔영이 평생 그녀를 따라다닐 거야.

……리브……

……네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제는…… 죽음이 네게 가져다주는 해방에 대해…… 기뻐해야 할까……

교회에 갇힌 동료들을 깨우고, 그곳의 의식의 바다뿐만 아니라 완전히 침식된 구조체들을 깨웠다.

소녀는 교회 광장과 거리를 누비며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그녀는 깨어날 수 있는 구조체들을 더 많이 찾아다니며 자신의 남은 시간을 생명을 되찾는 데 썼다.

그러나 연구원들이 말한 것처럼.

대량의 퍼니싱이 그녀의 의식의 바다를 오염시키자 소녀는 희미한 외침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목소리가 더 뚜렷해질수록 침식자의 기억도 뒤따라왔다.

그건 마치 적조 속에 잠겨 하나가 된 의식 데이터처럼 리브도 점차 그들과 연결되었다.

수많은 사람의 함성이 의식의 바다를 가르며 한 줄기 가시처럼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소리는 점차 커졌고, 마치 실제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희생자가 죽기 전에 겪었던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

살려주세요!! 아파!! 으아아아악!! 살려주세요!!!

날카로운 칼끝이 손끝을 찌르는 듯 시계추의 흔들림에 따라 인공 피부가 벗겨졌다.

모두가 죽었고.

나 혼자만 남았다……

펜 끝이 두 눈을 가르듯 수정체에 오래된 말이 새겨져 있었다.

???

그녀를 보호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그녀를 죽이고 있어!!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 그게 침식됐는데!!

그 목소리들이 익숙한 것과 상관없이, 세상에서 시시각각 울려 펴지는 비명의 메아리 때문에 그 말들은 낯설지 않았다.

왜 그들의 ‘죽음’을 직접 느끼는 걸까?

기체가 대행자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 완전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신 받겠다는 소녀의 소원 때문일까?

지금 결론을 내지 못하더라도 소녀는 손의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리브

……괜찮아요…… 더는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그런 고통은 제게 건네주세요.

수많은 과거<//추억>와 현재가 합친 순간, 숨결이 아직 남아있는 소녀는 돌이킬 수 없는 죽은 사람을 품에 안았다.

그녀<//어떤 구조체>는 귀청이 터질 듯한 폭발음을 들었고, 산산조각이 난 자신의 기체를 보았다.

순환액이 복강에서 분출되어 심한 통증이 의식의 바다로 밀려들어갔다.

으아아악……

죽어가는 의식이 자아를 뒤덮었고, 그녀는 질식감 속에서 눈을 감은 채 어둠을 뚫고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녀<//어떤 구조체>가 자갈이 쌓여 있는 좁은 길을 달리고 있었다.

자유의 끝을 상징하지만 완전무장한 연구실 인원이었다.

잔혹한 보름달은 밤하늘 높이 매달려 그녀<//어떤 구조체>의 헛된 몸부림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거 놔!! 실험실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기억 데이터’의 울음소리와 소녀의 비명이 겹쳤다.

그녀는 정원 앞에 엎드렸고, 한여름에 피어난 꽃은 이미 인간의 피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3079호…… 너 [치직] 여기 좋아하면 [치직] 잘 지켜……’

불완전한 데이터는 그 말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 말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지금 당장 앞에 있는 부상자의 지혈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했다.

붕대를 들려고 하자 리브<//원예 로봇>는 통제되지 못하고 전기톱을 휘둘렀다.

아…… 안 돼…… 전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아쉬워도 바꿀 수 없는 과거<//데이터>.

‘배’에서 떠난 지 6년 만에 구조체가 된 리브<//소년 구조체>는 탈영병의 신분으로 고향에 돌아갔다.

익숙한 거리는 폐허로 변했고, 대철수로 버려진 사람들은 백골과 잔해만 남았다.

죄송해요. 저 돌아왔어요……

그녀<//소년 구조체>는 눈물을 흘리며 ‘가족’의 몸 옆에 누워 그들의 퍼니싱에 자신이 침식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리브의 자아는 산산조각이 나고 끝없는 죽음의 기억과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설원 아래 부서진 뼈대이자, 깊은 바다에 빠져 방황하는 침식체이다.

그녀는 기계 공장의 정밀 부품이자, 빗발치는 탄알 속의 파편이다.

그녀는 농지의 충실한 수호자이자,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굶주린 사람들이다.

그녀는 아기를 어루만지며 잠든 간호사이자, 그들에게 악몽을 심어주는 장의사이다.

그녀는 동료를 습격한 침식체를 산산조각 내고, 침식된 자신도 동료에게 파괴당했다.

그녀와 모든 가족은 종말이 오기 전, 가스에 들어가 78명의 구조체와 함께 싸우다 죽음에 이르렀다.

그녀는 홍수 속에서 아기를 받쳐 들고, 인간에 의해 침식된 몸을 껴안은 생명으로 그녀<//침식체>가 다른 사람을 학살하는 발걸음을 늦추었다.

그녀<//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죽음의 밤으로 들어가야 했고 이 연진의 서광이 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그녀<//우리>의 서로 다른 언어와 그녀<//우리>의 다른 몸으로 그녀<//우리>는 똑같이 포효했다.

그녀<//우리>가 피부에 새긴 ‘비환’.

그녀<//우리>가 찾지 못한 ‘자유’.

그녀<//우리>가 남기지 않은 ‘시혜’.

그녀<//우리>가 대지를 저버린 ‘배’.

그녀<//우리>가 영혼에 불을 붙이기 전의 ‘고별’.

그녀<//우리>가 다 타버린 후의 ‘죽음’.

우리는 몸부림치고<//포기하지 않고>, 우리는 증오하고<//포기하기 싫었고>, 우리는 아쉬워했다<//포기하길 원치 않았다>.

만인의 감정과 죽음이 소녀의 몸속에 모여 생명으로 읊은 만가가 되었다.

리브

이게 바로 우리의 선택……

만약 어둠 속에서 그 얼마 남지 않은 등불을 붙잡을 수 있다면…… 그녀<//우리>는 모든 것을 기꺼이 우리의 행성에 돌려줄 것이다.

Video: 초리브가 침식을 정화했다.

슬픔에 젖은 꿈을 꾼 듯한 인간은 가시덤불로 만들어진 감옥에 갇혀 얼마나 배회했는지 모른다.

오른손에 갑자기 타는 듯한 따끔함이 전해졌고, 어둠 속에서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손등에 누군가의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가 흘린 눈물이지?

곁에 있던 동료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발 밑의 얼룩진 핏자국만 멀리 뻗어 있었다.

핏자국을 쫓아가다가 또 한 번 끝없는 하얀 안갯속에서 길을 잃었다.

이게 몇 번째지?

아무리 발버둥 치면서 헤매도 그곳을 떠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여기에 얼마나 더 머물러야 할까?

다시는 깨어날 수 없을까?

쉰 목소리로 동료의 이름을 불러도 돌아온 것은 메아리뿐이었다.

……그들은 여기에 없어.

나아갈 방향을 잃은 채 녹초가 된 사람은 끝없는 우리 속에서 무릎을 꿇었다.

…………

………………

……………………………………………………

음…… 소리를 지르고 있던 사람이 당신이었군요……

어디선가 부드럽고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서 나가고 싶으세요?

며칠만 더 기다리면 그녀들이 쌓아온 노력이 그 우리를 깨뜨릴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이렇게 계속 기다리면 늦어요.

…………

제가 도와드릴까요?

만회할 수 있을 때 깨워서, 자신의 걸음으로 선택하게 할 거야.

……‘영원한 겨울’이 오는 그날까지.

…………

그럼…… [player name], 후회 없는…… ‘여정’이 되길 바랄게요.

혼돈의 악몽에서 눈을 떠보니 생명의 별의 병실에 누워 있었다.

베개 옆에는 옅은 먼지와 피 비린내가 나는 활짝 핀 종이 월하미인이 놓여 있었다.

몸부림치며 침대 머리맡의 호출벨을 누르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은 무겁고 간단한 동작에도 평소보다 힘이 많이 들어갔다.

고개를 들어 멀지 않은 괘종시계 투영을 보니,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에서 임무 수행 후 거의 석 달이 지난 것을 알게 됐다.

오랫동안 누워 있던 몸에 간신히 적응하고 침대 곁에서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 밖으로 움직였다.

문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 갑자기 젊은 의사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어? 잠자는 미녀가 드디어 깨어났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낯선 여성은 얼굴에 화가 잔뜩 났다고 쓰여 있었다.

…………

그녀에게 리브와 모두의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베개 옆을 돌아봤을 때, 종이 월하미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런 몸 상태로?

몸이 자신의 짐이 된다 해도, 여기서 굴복하면 유일한 기회가 눈앞에서 사라져요.

유감은 무모한 핑계가 아니에요. 반드시 합리적인 전술을 세워야 해요.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루시아와 리 그리고 크롬은 통신과 원격 연결을 받을 수 있는 상태로 회복됐어요.

…………

그녀는 여전히 의심하는 것 같았다. 이 전술 계획에 대해 확신이 없기 때문일까?

더는 기다릴 시간이 없다. 반드시 그녀를 설득해야만 한다……

…………

그녀는 갑자기 내 어깨와 목, 등, 엉덩이를 세게 두드렸고 하마터면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을 뻔했다.

깨어나자마자 자신감 넘치고 흥분한 거 보고 뇌에 무슨 후유증이라도 생긴 줄 알았어.

생각이 그런대로 분명한 걸 보니, 석 달 동안 누워 있었다고 폐인이 되지는 않았네. 당신을 아무리 설득해도 막을 수 없겠지?

반올림하면 비슷해.

설마 정밀 검사를 받을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해? 당분간은 똑바로 서 있으면 돼. 지금 다른 방법은 없어.

당신의 계획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을 불러 수행 가능성을 평가해야 해. 내가 가서 사람을 불러오는 동안 옷 먼저 갈아입고 있어…… 혼자 할 수 있지?

좋아. 기운 넘치네. 너무 늦게 깨어났지만 석 달 동안 누워있던 두개골 외상은 겉보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단어를 좀 고려했다.

명이 길어도 아무도 당신을 보살피지 않으면 죽게 될 거야. 당신을 보살펴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현대 의료 기술에 대해 감사해야지!

그녀가 손바닥으로 등을 세게 한 대 때렸다.

맞아. 그리고 당신을 보살펴준 의사와 간호사에게도 감사해야겠지?

현대 의료 기술에게도 감사해야 해. 의료진이든 환자든 의학 발전으로 이뤄낸 결과니까.

옷을 갈아입고 병상의 커튼을 열자 문 앞에 낯익은 두 얼굴이 서 있었다.

우리는 모여서 리브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네 병실의 호출벨이 깜박이는 것을 보고 먼저 히포크라테스 교수에게 가서 상태를 보라고 했지.

……괜찮아 보이네.

현재 리브의 상황은 매우 심각해. 그녀의 의식의 바다가 반복적으로 오염되고 있어.

알기는 뭘 안다고.

자네 계획은 히포크라테스 교수를 통해서 들었네. 다만 그건 일말의 희망일 뿐, 아마 십중팔구는 그 상태에 도달하지 못할 거야.

리브의 의식의 바다는 이미 산산조각이 났어. 지금 의식 연결을 통해서도 회복하기 힘들고 연결도 구축하기 어렵게 됐어.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먼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다른 대원을 원격 연결한 다음 그걸 매개체로 리브의 의식의 바다로 강제로 침투할 수밖에 없어.

그녀의 의식 조각 일부를 확보하고 데이터와 퍼니싱이 모이는 것을 막아야만 리브에게 연결할 수 있어.

오염된 의식의 바다에 강제로 잠입하면, 퍼니싱이 가져오는 오염 외에 대량의 정보가 가져오는 방해로 인해 너희의 의식이 데이터 난류에 휩쓸리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아마 너와 ‘매개체’도 함께 오염이 되겠지.

심층 연결을 구축하려면 반드시 그녀에게 가까이 가야 해.

그 아래에는 대량의 이합 생물이 모여 있어. 두개골 외상에다 막 깨어나서 외골격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행동 능력은 매우 제한적일 거야.

대량의 수송기를 보내 침식체에서 회복된 구조체를 데려올 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네가 리브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호할 수 있겠지.

…………

엄청 많아.

예를 들어, 리브 기체의 전자 펄스 소진환이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과 침식도 문제가 있지.

정말 모든 게 잘 풀린다 해도…… 그녀의 의식의 바다는 이미 산산조각이 났어. 연결을 통해서도 복구할 방법이 없어.

있어. 하지만 영구적인 후유증을 남길 거야.

내가 담당한 환자가 깨어난 것을 보니 정말 기쁘긴 한데, 리브를 구하는 일에 대해 계속해야 할지 다시 한번 신중하게 고민해 줬으면 좋겠어.

그녀의 후유증은 우리가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해. 살아있는 게 그녀에게 더 고통이 될 거야.

………

[player name], 의장으로서 난 공중 정원의 엘리트 인재를 유지해야 한다. 자네가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 주길 바란다.

이건 매우 위험한 전투다. 성공률도 매우 적고 실패하면 목숨을 잃게 될 거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기껏해야 그녀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전부다.

자넨 전도유망한 지휘관이다. 이럴 때 쓰러져선 안 돼.

이렇게 많은 위험한 상황을 듣고도 가겠다고 결정한 건가?

이유를 알려줄 수 있나?

…………

…………

어쩌면, 나도 기적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장님……!

시도하지 않고 포기하는 건 자네 젊은 때의 스타일과 많이 다른 거 같군. 히포크라테스 교수.

…………

출발한다. [player name]. 남은 말은 가는 길에 말하지. 안 그러면 늦을 거다.

당신도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해. 안 그러면 발가벗겨져서 해부될 줄 알아.

그녀는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끝없는 죽음 속을 누빈 뒤 소녀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얼마나 계속된 걸까? 그녀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허무로 돌아갔다.

한순간 같기도 하고, 수백 년이 지난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은 침식 상태에서 회복됐을까?

내 사명이 곧 완수될까?

외로운 소녀는 생명의 카운트다운을 보지 못하고 그저 혼란스러운 의식의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퍼니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단지 더 버티고 싶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한 명이라도 더 도울 수 있다면, 마지막에 아쉬움이 덜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안고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종점을 향해 나아갔다.

……아무리 아쉬워도, 끝내야 할 시간이 왔다.

???

——리브!!!

어두운 공간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모든 비명을 덮었다.

리브

누구지……?

???

어서 돌아와!!

매우 낯익은 목소리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함을 질렀다.

???

돌아와!! 나를 봐!! 리브!!!!!!!!!!!

리브

…………

???

리브!!!!! 난 더 이상 동료를 잃고 싶지 않아!!!!!!!

리브

…………

목이 터져라 외치는 소리에 주의력이 끌렸고, 리브는 흐트러진 자신의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애쓰며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행동으로 인해 그녀의 느슨해진 의식이 마침내 오염과 침식의 깊은 바다 속에서 숨 돌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 순간——

뒤엉킨 죽음의 기억이 응집되어 형태를 갖추었고, 그녀 앞에서 둘로 갈라져 도시의 환영으로 변했다.

……이건……

뒤바뀐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도안을 형성했지만, 그 환영들 속에서 그녀는 수많은 익숙한 모습들을 보았다.

검증되지 않은 추측일 뿐이지만.

특화 기체에 ‘흡수’된 퍼니싱은 Ω무기에 ‘흡수’될 겨를도 없이 너의 침식치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하게 할 거야.

……어쩌면 그 특화 기체의 도움으로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승격 네트워크에 진입할지도 몰라.

……승격 네트워크는…… 이런 모습이었나?

???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비유야. 인식 범위를 벗어난 사물이 앞에 나타났을 때, 3차원 공간에서 사는 사람이 더 높은 4차원의 공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형태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워.’

‘지금, 넌 그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들 속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것만 포착할 수 있을 거야.’

이건 누구의 목소리지? 아니면 누가 이곳에 머물렀던 기억인가?

이 목소리는…… 마치……

이게 안갯속에서 앞길을 안내해 주고, 네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돕길 바랄게. 리브.

…………

???

‘처음 승격 네트워크에 연결된 구조체는 보통 자신에 관한 데이터를 보게 되니, 넌 그걸 질문방이라고 생각하면 돼.’

……왜 이런 말이 들리는 거지?

‘만약 [왜냐하면] 관련/너 [나] 그녀/갈망 [소망] 답안 [이해] 비밀/.’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모여 리브에게 답하는 것 같았고, 다른 사람이 그곳에 기록된 말을 복창하는 것 같았다.

그런 차갑고 감정이 없는 말에 리브는 얼마 전에 들었던 또 다른 목소리를 떠올렸다.

……승격 네트워크…… 혹시 게슈탈트와 비슷한 존재일까?

이번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질문에 대한 답도, 비명 소리의 근원도 찾지 못했지만, 그녀는 더없이 만족했다.

그 공간은 정지된 시간 같았고, 그곳에 남으면 몸이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죽음.

……여기에 남으면 좋을까?

내 사명은 이미 완수했을 거야.

……그럼 여기에 남자.

그녀가 다시 두 눈을 감았을 때, 그 목청껏 외치던 소리가 다시 귓가에 들려왔다.

——가지 마!!!

……안 되는 건가……

수많은 죽음을 겪으면서 소녀는 이미 온몸이 산산조각 났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 비통한 외침을 놓지 못했다.

……내가 더 버틸 수 있을까……?

그녀는 망설이며 ‘미지’ 속에서 선택할 수 없었다.

그 허무한 공간은 그녀의 질문에 응답하듯 두 갈래의 멀리 뻗어진 길로 나눠졌다.

한 길은 정면으로 통했고,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는 팻말에 ‘미래’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한 길은 뒤로 통했고, ‘과거’라는 두 글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리브

……이건…… 선택하라는 걸까? 아니면 연산된 결과를 보라는 걸까?

연산이라면 정말 게슈탈트랑 비슷하네…… 혹시 내가 게슈탈트만 볼 수 있어서 그런가?

어렴풋이 그 낯설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온 공간에 울려 퍼졌다.

‘후회하지 않는 결정이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