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과탑 안에 또 하나의 밀폐된 문이 열리고 연기가 채 걷히기도 전에 고글을 쓴 구조체들이 돌입해 총을 발사했다.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로 연기가 흩어지면서 한스 소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좌측 인간형 변종, 클리어.
우측 인화성 물질, 격리 완료.
총 지휘관님, 보고합니다. 구역 진압 완료했습니다.
일부 벽에서 산탄총의 탄흔과 폭발 구멍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흔적 근처에서 인간형 변종으로 추정되는 잔해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건 우리 측 구조체나 청소부가 남길 수 있는 흔적이 아니다. 기록해서 데이터를 확인한다.
네.
시몬 소대 상황은 어떤가.
현재 시몬은 탑 내 모든 소대를 연결할 수 있는 위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느 구조체든 역원 장치 과부하의 징조가 보이면 즉시 연결하여 대응하는 지휘관과 함께 구조체를 안정시킬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의 협조 덕분에 현재 탑 안에 침입한 구조체에 침식 현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역원 장치의 이상도 발생 즉시 해결되고 있습니다.
‘긴급진화 소방대원’의 직책을 잘 맡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린 필드 포인트를 앞에 있는 방에 배치했다.
이것으로, 3개의 필드 포인트도 설치 완료되었다.
3개의 필드 포인트 좌표는 현재 한스 소대 바로 아래에 있었다. 이전 탐색을 기반으로 탑 내 모든 사람들은 마침내 이중합 모체 고위 개체가 그곳에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한스는 손에 든 우주 무기의 작동 버튼을 꽉 쥐고 자신의 발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마치 여과탑의 두꺼운 땅을 꿰뚫어보고 바로 아래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보는 것 같았다.
지상의 가혹한 상황과 풀리아 삼림 공원의 위협에 한스는 이중합 모체의 고위 개체가 이 구역을 떠나도록 놔둘 수 없었다.
만약 작전 종료까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이중합 모체를 처치하지 못한다면 샘플 회수를 포기하고 곧바로 이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다. 우주 무기로 적을 삼림에서 소멸시켜야 한다.
한스는 버튼을 품에 넣은 뒤 부대를 이끌고 방을 나갔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보다 이제는 총 지휘관인 그만 수행할 수 있는 임무가 기다리고 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이끌고 넓은 공간으로 들어서자 중앙에 매달려 있는 이중합 모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전에 본 실험체보다 더 거대하고 완성도가 높았다. 단말기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경고 신호가 눈앞의 그것이 이번 임무의 목표인 이중합 모체의 고위 개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무수한 붉은 탯줄은 모두 이중합 모체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중 몇 개는 시든 식물처럼 이중합 모체 위에 늘어져 있었다. 눈앞의 물건은 '벌레 떼'의 왕, 인간형 변종의 외부 자극을 처리하는 코어였다.
지휘관님, 역원 장치에 대한 적의 영향이 상당히 심해지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딛어 이중합 모체를 향해 총을 쐈다. 그러나 탄환이 이중합 모체의 단단한 외피에 튕겨져 맑은 소리를 울렸을 뿐 찰과상조차 남기지 못한다.
그러나 그 발포가 침묵하고 있던 이중합 모체를 자극했는지 그 몸에서 저주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 안돼……
피해 주면 안 돼…… 안 돼……
모체는 지하수로의 모체와 마찬가지로 의미 불명의 말을 하고 있다. 이 특징은 그것이 지하 수로에 그 이중합 모체 간의——승격자의 촉매라는 내부 연결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음 순간 모체의 촉수가 맹렬한 기세로 덤벼들었다.
알겠습니다.
루시아는 순식간에 나의 앞으로 다가와 붉은 태도로 달려드는 촉수를 베어버렸다.
그녀의 뒤에 있는 비행 장치에서 굉음이 울리고 있다. 외골격에 내장된 온도 유지 시스템 보호에도 불구하고 주변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루시아의 비행 장치에서 차가운 바람이 분출되면서 이중합 모체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순식간에 루시아가 이중합 모체의 외피 틈새를 향해 칼로 찔러 넣으려는 순간 모체로부터 거대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빠르게 루시아와 거리를 벌렸다.
거리를 벌린 이중합 모체는 갑자기 공중에서 정지해 분홍색 전자 울타리에 그의 몸체를 단단히 고정했다.
적을 성공적으로 견제했어요.
다시 이중합 모체를 향해 발포했다. 이번에는 발포에 움직이지 않았던 조금 전과 달리 모체는 총알이 맞기 직전에 몸을 비틀었다.
처음 사격과 마찬가지로 총알은 이중합 모체의 외피를 재차 명중하였으나 옆으로 튕겨 여과탑 벽에 탄흔을 남겼다.
————!
지휘관님, 준비됐습니다.
알겠습니다.
나의 명령에 따라 리는 기계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처음 방아쇠를 당겼을 때부터 리는 기계장치로 다가가 수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다른 대원들이 이중합 모체의 주의를 끌면서 리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기계에서 윙윙거리는 동작음이 울리며, 공기 중의 퍼니싱 농도가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중합 모체의 외피는 본래 규칙적으로 수축하고 있었지만, 농도의 저하로 수축의 빈도가 빨라진 것 같다.
수축할 때마다 그 외피는 마치 엄청난 압력을 받는 것처럼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현상은 알려진 퍼니싱 농도가 감소한 후 이중합 모체가 나타내는 반응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행동이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만들어 낸 기회를 붙잡아야 했다.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 사격의 목표는 이중합 모체의 외피가 아니라 위쪽의 무수한 탯줄이었다.
외부로부터 자극 신호를 받는 기관인 탯줄에 총알이 명중했다. 하나, 또 하나씩 끊어졌다.
이윽고 탯줄의 절단면이 하얗게 변해 시들기 시작했다. 절단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홍색 액체가 이중합 모체의 몸통에서 흘러 지면에 쏟아졌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선홍색 액체에 검은 액체가 섞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끊어진 탯줄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수축되는 이중합 모체의 외피에서 흘러나온 것 같다.
아…… 안 돼……
루시아가 앞으로 뛰어올라 흐르는 물처럼 이중합 모체에 참격을 가했다.
칼의 섬광에 싸인 이중합 모체는 기이한 자세로 바닥에 웅크리고 있다. 외피는 수축과 칼의 참격 때문에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이 흔들렸다.
그래도 모체는 온몸의 중심을 낮추고 그 몸의 하부를 루시아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고 있다.
그레이 레이븐은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이중합 모체의 영양 공급도, 외부로부터의 신호 수신 수단도 끊어서 이중합 모체를 제압했다. 이제는 모체를 쓰러뜨리고 샘플을 회수하기만 하면 된다.
승리의 저울이 인류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풀리아 삼림 공원에 들어선 뒤부터 불안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인간형 변종을 통해 외부로부터 계속 자극 신호를 얻고……
개체의 필요량보다 훨씬 더 많은 퍼니싱을 영양분으로 수집하고……
규칙적인 수축과 이상한 액체……
마치 자신의 외피 아래에 있는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듯한 저 자세……
이중합 모체로부터 다양한 위화감을 느꼈다.
?!
이미 늦었습니다.
이중합 모체의 몸은 남은 탯줄에 이끌려 급속히 공중에 떴다. 도중에 루시아의 공격을 받아 크게 다쳤다.
외피는 끊임없이 수축하고 압착하여 외피 밑에 있는 붉은 조직을 노출시켰다.
그 붉은 조직에서는 검은 액체가 떨어지고 경련도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이중합 모체는 자신이 입은 상처의 고통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드러난 붉은 조직은 압축으로 인해 약간 부풀어 올랐고 붉은 반투명 피막 아래에 있는 그림자가 점차 선명해졌다.
아무래도 추측은 절반만 맞았던 것 같다.
이 공간에 있는 적은 처음부터 이중합 모체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모체는 다른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출생할 ‘태아’를 숨기고 있었다.
만약 이합 생물에 태아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면.
이윽고 그 붉은 피막의 한쪽 끝을 뚫고 뿜어져 나오는 검은 액체와 함께 두 개의 인간 같은 것이 한꺼번에 흘러나왔다.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졌고 두 그림자가 땅에 떨어졌다.
출산과 같은 행위를 이룬 이중합 모체는 후방의 탯줄에 의해 허공에 늘어져 있었고, 그의 몸과 촉수는 처지고 분명히 약화되고 있었다.
내…… 내 아가……
모두가 약속한 듯 무기를 꽉 움켜쥐었고 강한 압박감은 숨쉬기조차 힘들게 했다.
인간형 변종이 적조가 인간을 삼킨 결과의 인류 모조품이라면 눈앞에 있는 남녀는 더 이상 모조품을 벗어나 최고의 공예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가장 완벽한 인간 완제품이었다.
그들은 공허한 눈빛으로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봤지만, 나는 상대방의 시선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시선은 인파를 뚫고 인간이라는 종족을 응시하고 있었다.
……Este no es nuestro final. (여기는 우리의 끝이 아니다.)
편히 잠들게나. 내 친구여.
왠지 모르게 그들의 목소리가 익숙했다. 마치 그 목소리를 낸 것은 눈앞의 두 남녀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인 것처럼.
두 남녀의 언어는 다른 인간형 변종이 보여준 서투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분명 삼림 공원의 수많은 인간형 변종으로부터 지식을 흡수한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태어나서 유창하게 말하기까지 불과 수십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활력 없는 표정을 보니,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흉내낸 것일 뿐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그들이 도대체 따라 하는 게 누구인지 자세히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적이 손을 살짝 들자 기이한 풍압이 내 볼을 스쳤다.
그 순간, 이합 생물은 다시 새로운 고도로 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