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가 모두에게 10분간의 정비와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주었지만 주둔지에 깔린 무거운 분위기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에 들어가면 어떤 적을 만나게 될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한 치의 방심으로 정비를 소홀히 하면 인간형 변종의 날카로운 발톱에 죽을 수 있다.
루시아는 리와 리브를 데리고 숲 근처에서 가서 상황을 탐색했다. 나는 먼 초원의 바위 위에 앉아 손에 든 무기를 점검했다.
바로 그때 목 옆에서 갑자기 살기를 느꼈다.
뒤로 휙 피하자 단도 한 자루가 내 목을 스쳐 지나갔다.
습격자의 모습을 보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한 손으로 습격자의 손목을 비틀어 단도를 떨어뜨리게 한 뒤, 상대방이 당황한 틈을 타 발을 걷어 넘어뜨렸다.
아니???
습격자가 일어서려고 하는 것을 양손으로 꽉 눌러 구속했다.
히, 항복, 항복할게. 저 단도는 칼집에 넣은 채로 있어! 역시 시몬의 말대로 수석의 반사신경은 굉장하군!
아래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내가 짓누르고 있는 남자가 공중 정원의 지휘관 제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퉤퉤퉤.
그는 고개를 돌려 입 안에 든 흙과 잡초를 뱉었다.
그제서야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임무 브리핑 영상에 등장한 도요새 소대 지휘관인 해리조였다.
안녕?
이렇게 될 거라고 경고했잖아. 너 정말 바보야?
수석과 1대1 훈련의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옆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 뒤의 기계 팔이 위로 올라갔다. 기계 팔은 보기보다 훨씬 유연하게 움직여 항복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패배를 인정할 테니 그 바보를 풀어줄 수 있겠어?
그녀가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 이곳에 있는지 몰랐다. 만약 상대방이 기습했다면 몸 밑의 남자는 이렇게 제압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교섭을 하겠다는 건 상대방이 성의를 보여준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놓아주지 않은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내가 비키자 그 여자는 로봇팔을 내밀어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렸다.
나는 성갑충 소대 소속의 팔지라고 해. 지휘관은 발베리아이고. 이번 임무에서는 임시 멤버로 해리조 지휘관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게 됐어.
여기 이 바보 이름은 해리조.
팔지는 팔로 옆에 들고 있는 해리조를 가리켰다. 해리조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 제대로 소개해줄 수 없어? 바보라니 너무하네.
너같이 이상한 사람을 바보라고 하는 거야.
뭐, 좋아. 별명으로 서로 부르는 것도 일종의 친밀한 증거라고 할 수 있지. 팔지가 나를 임시 지휘관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지.
??
주둔지의 분위기가 너무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말이지. 총 지휘관님이 시간을 주셨으니 유용하게 활용하려고.
정식으로 소개하지. 난 해리조. 시몬과 마찬가지로 네 동기야.
하하, 잘 알고 있어. 시몬이랑 같이 자주 얘기하거든.
해리조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팔지는 옆에서 빈틈없이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너도 우리 도요새 소대가 보낸 정보를 봤을 거야. 그 전투에서 내 동료 대부분이 부상을 입어서 현재 가장 가까운 보육 구역에 보내져서 정비를 받고 있어.
당연히 걱정되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동료 옆에서 그냥 걱정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내 동료를 다치게 한 그 인간형 변종 녀석들에게 뼈아픈 교훈을 주고 싶었어.
그리고 부상이 비교적 가볍기도 하고, 이렇게 팔지와 임시 소대를 꾸려 전장으로 복귀했어.
인간형 변종 말하는 거야?
사실 마음속은 두려워 죽을 것 같아. 못 믿겠으면 직접 느껴봐.
해리조는 말하며 내 손을 잡더니 그의 손목에 갖다 댔다.
격렬하게 뛰는 맥박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형 변종을 언급할 때 목소리가 낮아진 것도 그가 두려워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군인으로서 난 지금까지 수많은 강한 적들을 만났다고 생각해. 두려움이란 감정은 전장에 발을 내디디면 잊혀졌다고 생각했지만.
인간형 변종은 외형이나 능력으로 봤을 때 두렵지 않아. 정말 무서운 것은 퍼니싱에서 비롯되는 그 알 수 없는 것들이지……
퍼니싱은 점점 우리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짧은 시간에 인간에 가까운 인간형 변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으니.
그럼 그것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인간을 대신해 지구를 지배하는 새로운 생물 형태가 되는 것?
생각만 해도 무섭지 않아?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당연히 전선으로 돌아가 적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어.
이곳은 지구야. 쫓겨나야 할 것은 불청객인 퍼니싱이야.
그리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적을 물리쳐 승리하는 것이 우리 군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문제가 생기면 군대가 해결해야지. 민간인에게 맡길 수는 없잖아?
다른 사람들도 내가 겪었던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하하, 아무것도 아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너무 긴장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어.
팽팽한 활시위는 금방 끊어져. 그래서 총 지휘관님도 우리에게 자기소개할 시간을 준 것이겠지.
지금 이 야영지의 분위기는 전혀 좋지 않아. 그래서 내가 분위기를 전환할까 생각 중이야.
어? 팔지, 왜 자꾸 멀리 떨어지는 거야?
당신들 경계심이 너무 없어. 초면이면 거리를 둬야 하는 거 아니야? 뭔가 계속 조잘조잘 지껄이고 있는게 아니라.
우웁…… 지금…… 절 부른 겁니까?
해리조와 대화 중에 시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옆에 있는 구조체에 기대어 허약하게 입가를 닦고 있었다.
이를 본 해리조는 구조체를 도와 함께 시몬을 부축했다.
야야, 시몬, 괜찮아?
윽…… 아직도 적응을 못하겠군요……
방금 집합했을 때는 멀쩡해 보이던데.
그건 한스 총 지휘관님이 너무 무서워서……
이런, 멀미가 안 날 정도로 무서웠어?
앗, 지휘관님, 이분들은……
여럿이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루시아 일행이 막 숲에서 돌아왔다. 눈앞에 있는 낯선 소대들을 보고 루시아가 얼른 물었다.
해리조야. 여기 있는 내 동료는 팔지고.
낯 간지럽게 왜 그래.
그냥 임시 대원과 지휘관이라는 관계일 뿐이야.
그리고 이쪽은 시몬. 여기는 그의 대원……
해리조는 팔지의 불평을 완전히 무시하고 제멋대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10분 경과했다. 총원 집합하라. 삼림 공원에 진입하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옆에서 갑자기 들린 한스의 목소리에 시몬은 꽤 놀란 모양이다. 그는 자신을 부축하던 구조체와 해리조에게서 튕기듯 몸을 일으켜 바로 차렷 자세를 취했다.
조용히 해라.
인간형 변종에 대한 정보가 적은 상황이다. 우리의 목소리에 반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한스가 냉정하게 시몬을 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대원들은 지시를 받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져 인간형 변종의 습격을 경계했다.
바네사가 이끄는 백로 소대도 어디선가 나타나 내 곁에 섰다.
준비 중에 무슨 수확은 있었나?
이곳의 식물을 채집했습니다. 어, 한 입 베어먹기도 해봤습니다.
현재 식물에 대해 분석 중입니다.
인간형 변종과 관련된 건 없나?
어……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삼림 공원에 관해서 저희가 보낸 영상에 기록되지 않은 정보가 하나 있습니다.
저희 도요새 소대가 처음에 길을 막고 있는 식물을 베어 신속하게 40호 여과탑으로 진입하려 했습니다. 그때 붉은빛을 띤 나무 절단면에서 이상한 액체가 흘러나오면서 절단면 근처의 퍼니싱 농도가 2% 높아졌습니다.
잘리지 않은 식물은 그런 현상을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표면에 붙어 있는 이합 식물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 이합 식물은 제가 이합 생물의 특성을 가진 식물에 지은 이름입니다.
붉은 물질을 파괴하지 않고 식물 자체를 파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추측이지만 광범위하게 이합 식물을 파괴할 경우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과 주변 구역에 돌이킬 수 없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원들이 진입한 뒤 불필요하게 침식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미리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렇게 보고 드립니다.
칫, 진짜 성가시네. 더 값진 정보를 기대했건만.
바네사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더니 해리조에게서 시선을 돌렸다.를 쳐다보지 않았다
어어? 이 냉담한 적대감은 뭐지?
백로 소대, 어떤 진전이 있나?
공중에서 시도해 봤지만 역시 안 됐습니다.
단거리 비행으로 나무 꼭대기를 넘으면 즉시 삼림 공원의 방공 화력에 차단됩니다.
여긴 삼림인데 어떻게 방공 화력이 있을 수 있죠?
맞습니다. 그들은 공중에 떠 있다가 적을 만나면 자신을 포탄으로 삼아 엄청난 속도로 적을 향해 자폭 공격을 가합니다.
이합 생물이 벌써 그런 공격을 할 정도로 진화했다는 건가...
좋은 징조는 아니군.
맞습니다. 게다가 그 녀석들은 매우 지능적입니다.
공중에서 저 거대한 나무에 접근하는 공중 목표만 공격합니다. 40호 여과탑에 가까울수록 방공 화력도 격해지는 것 같습니다.
삼림 공원 밖에서 착륙한 우리 수송기가 방공 화력에 격추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알겠다.
그럼 기동력 있는 해리조가 팔지를 데리고 측면을, 나머지 소대는 일자 대열로 서서 서로를 엄호한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진형 중앙에서 전력을 보존하면서 공중에서 기습하는 이합 생물을 경계하라.
인간형 변종을 만날 경우 보고없이 전투를 시작해도 좋다. 우선 진형을 유지하며 전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