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도 플라톤의 아틀란티스가 존재한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 또한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한 이념이자 완벽한 꿈이며 후세 사람들을 격려하는 목표일 것이다.
그래서 이 교향곡의 끝은 투지를 불태우며 미래를 향해 진군하는 것이다.
—— 아서·클라크 《머나먼 지구의 노래》
케르베로스 소대가 임무를 받기 24시간 전의 공중 정원.
니콜라는 좁고 긴 복도를 넘어 고풍스러운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곧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울 뿐 품위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서재가 니콜라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던 니콜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플란넬 커튼? 샹들리에? 그리고 앞에 있는 검은 호두나무 긴 테이블? 이런 것들은 모두 지난 시대의 유산이었다. 대철수 때에 이런 불필요한 물자들을 종말의 방주에 실을 수 있었다는 건, 공중 정원에 오르지 못한 생명들에게 가장 악의적인 농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든 은발의 남자가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니콜라의 인기척을 느끼고 움직였다.
손잡이를 잡은 그린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오랜만이야. 리틀 닉.
그린스는 정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좋은 친구라도 되는 듯, 기분이 좋아서 말꼬리를 살짝 올렸다.
니콜라 미간의 굵은 주름이 그 "친근한" 인사로 더 깊어졌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 니콜라의 신분과 입장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지금 니콜라의 눈앞에 있는 저 남자를 향한 미묘한 반감과 혐오감은 쿠로노에 있을 때와 똑같았다.
그렇게 원수 보듯 보지 마. 오랜만에 만났는데 앉아서 천천히 회포라도 풀어야 하지 않겠어?
그린스는 젠틀하게 "안내"의 제스쳐를 취했고, 그의 말투는 공중 정원의 군사 총사령관이 아닌 쿠로노의 상급자가 부하를 대하는 것처럼, 경박하고 우스꽝스러웠다.
꽤 불쾌한 표정을 지은 니콜라는 긴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았다.
난 너하고 옛날 이야기하러 온 게 아니야. 그린스. 쿠로노가 [player name]에게 저지른 행위는 이미 의회의 인내심을 넘어섰어.
의.회야? 아니면 하.산.의.장이야?
그린스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렷하게 말했다.
……
니콜라의 침묵에 그린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지점도 지상에서 에덴으로 이전했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규칙을 이해하고 지킬 줄 알았고, 그 토대로 규칙을 조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날 너와 같은 선상에 놓지 마.
맞아. 넌 과거를 버리고 사람들 앞에 나선 화려한 군사 총사령관이자 지구를 탈환하는 선봉장이 됐지. 하지만 너나 나나 잘 알고 있잖아. 한 사람의 출신이 곧 그의 뿌리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넌 네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렇지 않다면, 왜 개인 신분으로 내 앞에 나타나 이 방에 있는 거지?
나한테 쿠로노가 저지른 일을 비난하기 위해서 왔다고는 말하지 마.
니콜라가 대답하기 전에 그린스가 먼저 가로막았다.
그래. 널 초대한 건 나인 건 맞지만, 그 약속에 응한 건 너 자신이야. 넌 이곳에 서 있고 이곳은 공식적인 회의실이 아닌 내 개인 거처의 서재지. 내가 널 불러서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지만, 결국 이곳에 왔잖아.
그린스의 목소리는 사람 귀에다 음침하게 속삭이는 독사 같았다.
난 네가 원하는 정보를 넘겨주고, 넌 나에게 정당한 권한을 부여한다. 우린 항상 이렇게 협력해 왔잖아. 안 그래?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남처럼 구는 거지. 리틀 닉?
내 권한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군부의 집행 부대 소속 지휘관을 불법 감금하는 사태를 묵인해 왔어.
명심해. 내가 원한다면, 그 권한은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어. 쿠로노는 영원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검은 그림자일 뿐이야. 지금까지 어둠 속에서 쌓은 악행들이 전부 사라질 수 있을 거란 착각은 버려.
아니. 넌 그러지 않을 거야.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알아. 네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절대 권한을 철회하지 않을 거야.
너희 의장은 감성적인 사람이지만, 넌 그렇지 않아.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은 네가 가진 카드 중 하나에 불과하지. 그래서 다른 집행 부대의 어떤 지휘관보다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신경 쓰지도 않잖아. 그래서 그를 위해 큰 소란을 피울 생각도 없고 말이야.
니콜라는 킥킥 웃었다.
카드라는 건 적절한 곳에 걸어야지. 모두가 탐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대가 없이 남에게 넘겨주면 안 되잖아.
이 모든 상황을 묵인하면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에 하산의 불만을 사고 있어. 하지만 난 그와 충돌하는 걸 원치 않아.
봐. 넌 항상 이성이 감성을 압도해. 그래서 너와 얘기를 나누는 게 좋다는 거야. 넌 자비로운 척 가식적인 하산 의장과는 다르거든.
니콜라의 얼굴색이 미세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린스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너희에겐 더 이상 우리 지휘관을 몰아세울 권한이 없어. 너희가 하는 짓을 내가 눈감아 준다고 해도, 대중은 그러지 않을 거야. 최전선에 있는 부대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일 거고 말이야.
너희는 취서체를 물리친 공로자를 감금하고 있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은 대중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조금씩 자리 잡고 있어. 사람들은 허황된 죄를 덮어씌우는 것보다 그들의 눈으로 직접 본 사실을 더 믿고 싶어 하지.
이게 바로 내가 너희가 "의회의 인내심을 넘어섰어."라고 말하는 이유야. 의회의 모든 구성원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을 신경 쓰는 건 아닐지 몰라도, 그들은 대중 속에서의 의회 이미지와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너흰 "감호 치료"라는 명목으로 [player name]을(를) 너무 오랫동안 통제해 왔어.
그린스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난 내가 원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했어. 단순한 "감호 치료"만으로는 부족해.
한낱 인간 지휘관에게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
아니. 그렇지 않아. 리틀 빅. 넌 잘 알고 있어.
……
니콜라는 입을 다물고 있었고, 그린스는 만족스럽게 손뼉을 쳤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을 임무에 투입하고 싶어.
지표면에서 루나의 의식의 바다 활동 신호를 포착했어. 그리고 우린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 루나의 흔적을 추적해 주길 바라.
손가락이 경직된 니콜라는 그린스의 요청에 바로 응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게 루나의 의식의 바다 활동 신호라고 확신하는 거지?
루나의 의식의 바다 활동 신호는 매우 특별해. 우리가 이전에 "얻었던" 그 승격자의 의식의 바다 데이터보다도 더 특별하지.
수천 개의 의식의 바다 신호가 한 장소에 몰려 있는 것 같아. 하지만 평소엔 루나가 잘 숨기고 있지. 지난번에 취서체가 잠식했을 때만 루나가 약해져서 조금 샜을 뿐이야.
그리고 이번에 다시 루나의 흔적이 포착됐어. 우린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 그것을 추적해서 루나를 찾아내길 바라.
너희들에게 그런 권한은 없어. [player name]은(는) 군부의 집행 부대 소속으로, 그의 모든 배치는 임무 전투 임무 계획센터의 시스템을 통해 진행되게끔 되어 있어.
그러니까 리틀 닉이 그 권한을 나에게 주길 바라는 거야. 군대의 총사령관에게는 사소한 일일 뿐이잖아. 안 그래?
니콜라는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마신 뒤, 단호하게 거절했다.
총사령관이기 때문에 이런 규정들이 형식적으로 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어.
우린 파멸된 이 세계에서 규칙과 질서를 재건하는데 함께 고생했어.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 운명 공동체를 불안정하게나마 미래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게 유지해 주고 있어.
한 번 깨진 규칙은 마치 강둑에 생긴 균열과도 같아. 언젠가 흰개미 굴처럼 구멍투성이가 되겠지
네가 말하는 방식이 점점 그 위선적인 의장을 닮아가는군.
하지만 난 잘 알아. 이런 것들은 리틀 닉이 가장한 모습일 뿐이라는 걸. 실제로 넌 이런 거에 신경 쓰지 않잖아.
너나 나나 불안하게 유지되고 있는 현재의 안정을 만족하지 않잖아.
이런 구석에서 비참하게 연명하는 거라면, 제 발로 관속에 들어가는 것과 뭐가 다른 거지. 네 야망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닐 텐데. 리틀 닉. 인류를 위해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이 가식적인 조용함을 깨트리는 게 항상 네가 원했던 거 아니었나?
그린스가 말하면서, 책상 아래 비밀 서랍에서 파일 봉투 한 묶음을 꺼냈다.
그건 매우 오래된 크라프트지 봉투로, 긴 세월이 그 모서리를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것만 같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린스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파일 봉투를 책상 위로 휙 던졌다. 그러자 오래된 낡은 종이 냄새가 바로 풍겨왔다.
게다가 난 리틀 닉이 간절히 찾던 그 물건을 찾아왔어.
파일 봉투 위 글자를 정확히 인식한 니콜라의 눈동자가 순간 수축했다.
봉투 위엔 "최고 기밀"이라는 단어가 적색 봉인에 새겨져 있었다.
지난 백년 동안 정보 시대에 접어든 인류는 물리적 매체를 사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이들은 분류하기도 어렵고, 전송하기도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밀 정보에 관해서만큼은 대부분 사람이 종이를 사용해 백업하기로 암묵적 합의를 했다.
전자 형식의 기밀 정보는 외부로 유출될 위험이 있었고, 저장 장치나 광디스크 같은 다른 매체의 수명은 종이보다 짧았다. 이런 상황에서 종이가 가진 모든 단점이 기밀을 기록하는 면에선 모두 장점으로 변했다.
니콜라는 무의식적으로 크라프트지 봉투 모서리에 찍힌 날짜를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니콜라의 손이 파일 봉투에 닿기 직전, 누군가의 손가락이 파일 봉투 한쪽 모서리를 눌렀다.
니콜라의 시선이 그 손가락을 따라 올라가다 그린스의 얼굴에 멈춰 섰다.
상대방의 입가에 걸린 승리의 미소에 니콜라는 자신의 실수를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니콜라는 무표정하게 조용히 손을 되돌렸다.
내가 말했잖아. 규정을 어길 수 없다고.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배치는 항상 전투 임무 계획센터의 시스템을 거쳐야 하며, 정식 구조체 팀과 함께 행동해야 해. 임무 내용도 정식 승인을 받아 기록에 남겨지게 되지.
그럼, 네가 말한 대로 모든 프로세스를 "정식화"하면 되겠네.
……
내가 알기로, 네 부하 중에 케르베로스라고 불리는 직속 집행 부대가 있다고 들었어. 거긴 원거리 연결 실험 부대이며, 그 리더는 쿠로노 출신의 구조체라고 알고 있어.
그린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파일 봉투 한쪽 구석을 가볍게 집어 들더니 니콜라의 눈앞에서 전리품을 보여주듯 흔들었다.
……
침묵이 조금씩 고조되기 시작했다.
잠시 생각한 니콜라는 결정을 내렸다.
케르베로스 소대의 배치 권한을 전투 임무 계획센터로 이양할 거야. 그럼,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은 이 소대와 협력해 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
너희들 중 이력이 깨끗한 사람을 이 임무의 감독으로 배치해. 난 논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도록 해.
한 번만이야.
임무가 끝나고 나면,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놓을 거야.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도 포함해서.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은 그린스는 손에 든 파일 봉투를 긴 테이블 건너편에 있는 니콜라에게 밀었다.
니콜라는 테이블 위의 파일 봉투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
니콜라가 떠나려 할 때, 그린스가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황금시대의 잔재 속에 뭐가 있길래, 네가 이렇게 긴장하는지 모르겠어. 우리 기술자들에게 이 자료의 분석을 맡겼지만, 퍼니싱 파멸이 발생하기 몇 년 전 과학 이사회의 실험 데이터 기록에 불과하다고 하더군.
……
폐허 속에서 발굴되어, 암시장을 거쳐, 다이달로스의 손에 들어갔다가, 결국 우리에게 회수된...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과거엔 최고 기밀이자 최첨단 기술의 성과였을진 몰라도, 이제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시대에 와선 필요 없는 폐지와 다를 바 없어.
궁금하군. 여기에 뭐가 있길래 리틀 닉이 이렇게 집착하는 거지?
그린스는 니콜라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침묵을 요구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말하지 않아도 돼. 언젠가 우리 모두 알게 될 거니까.
우리가 이 종말의 방주에 함께 있다면, 어떤 것도 영원한 비밀로 남을 수 없어.
니콜라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모든 게 정말 네가 말하는 대로라면, 쿠로노의 모든 것도 언젠간 태양 아래 드러나게 될 거야.
그린스는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니콜라는 방을 나섰다.
문이 요란하게 닫혔다.
케르베로스 소대가 임무를 받기 12시간 전의 공중 정원.
물건을 가져왔어.
니콜라가 방금 전 그린스에게서 받은 크라프트지 봉투를 하산 앞에 던졌다.
파일 봉투를 받아 든 하산은 바로 자료를 꺼내어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린스가 눈치챘나?
아니. 모르는 것 같아. 그린스는 내가 너하고 생각이 달라서, 너 몰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넘겨준 것으로 알고 있어.
나도 깜짝 놀랐어. 네가 이 제안을 거절할 줄 알았거든. 네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난 [player name]을(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쿠로노와 계속 "팔씨름"을 할 필요는 없어. 그런 식은 상황의 발전에 도움이 안 돼.
게다가 그들은 너무 급하게 움직이고 있어. 이렇게 큰소리치면서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건 쿠로노의 일관된 스타일이 아니야.
난 그린스가 뭔가 중요한 걸 얻었고, 그게 그들이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취하게 만드는 카드라고 생각해.
겉으로는 [player name]에게 승격자의 행방을 찾는 데 도움을 협력하라고 하지만, 넌 그들이 배치하는 인력과 배치 방식을 봤을 때, 승격자 하나를 추적하는 것처럼 보여?
그린스가 [player name]에게 주목하는 건, [player name]도 그들 계획에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일 거야. 이 모든 키워드를 연결해 보면,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있을까?
하산의 말을 들은 니콜라의 얼굴이 조금씩 더 어두워졌다.
이 시점에서, 이 결정적인 순간에 [player name]와(과) 관련 있는 거라면, 그들이 얻은 게 혹시...
니콜라는 "그것"의 정체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미 하산의 눈빛에서 확실한 답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맞아. 네가 생각하는 것과 같아.
물론, 이건 내 추측일 뿐이야.
어쨌든, 우린 쿠로노가 "그녀"를 손에 넣었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어. 그리고 그들이 "그녀"로 뭘 하려는지도 모르고.
우린 이 모든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야 해. 그러니 행동에 나서야 해.
네가 나서는 게 최선의 선택이야. 내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 문제에 "타협"한다면, 그린스는 우리가 뭔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난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맞아. 네 과거가 그린스의 경계심을 늦추게 만들지. 너랑 내가 평소에 보여준 "팽팽한 대립"이 지금 우리 계획에서 최고의 위장이 됐어.
어떤 의미에선 네가 나보다 더 이성적이고 냉철하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이것만은 미리 말할게. 그린스는 바보가 아니야. 처음엔 몰랐을지 몰라도, 내가 그 자료에 관심을 보이는 순간 그는 그 패의 중요성을 알아차렸을 거야.
원본을 나에게 주기 전에, 그린스는 분명 백업해 놨을 거야.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상관없어.
그린스가 가진 자료는 완전하지 않아. 그는 이 자료 아래 숨겨진 더 중요한 정보를 모르고 있어.
이 자료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확신해?
확신해.
사람들 눈을 피하고자, 화서가 게슈탈트를 침입했을 때, 우린 머레이에게 게슈탈트 안에서 자료 하나를 회수하라고 했어
하지만 그 자료는 완전하지 않아. 그린스가 가진 것도 마찬가지고.
겉보기에는 진공 영점 에너지 실험 원자로에 대한 실험 보고서일 뿐이야.
맞아.
그 자료는 각 원자로가 과학 이사회에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데이터 피드백이야.
하지만 우린 그중 한 원자로의 보고 데이터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 게슈탈트의 계산에 의하면, 이 자료 안에는 어떤 암호화 알고리즘이 사용돼서 특정 숫자에 암호화가 적용된 거 같아.
해독을 마친 우린 거기에 숨겨진 좌표 지점을 발견했어.
바로 코드네임 "아틀란티스 영점 에너지 원자로"의 좌표 지점이었어. 하지만 자료가 불완전해서 우린 위도와 고도 데이터만 획득할 수 있었어.
하산이 손에 든 파일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경도 데이터는 같은 시기의 실험 보고서 안에 숨겨져 있다고 우린 추정할 수밖에 없었어. 바로 그린스의 손에 들어간 실험 데이터 안에 말이야.
이해할 수 없군. 왜 자기 원자로의 정확한 좌표 지점을 암호화해서 외부로 전달한 거지?
이런 행동은 꼭...
스파이.
맞아.
세계 연합 정부는 예전에 성립됐어. 그래서 국경도 없고, 정치 체제도 거의 완전히 통일됐는데, 황금시대의 사람들이 왜 이런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려고 했던 거지?
정치 체제가 일치한다고 해서 내부에 분열이 없다는 건 아니니까.
영점 에너지 원자로는 에너지 혁명의 다음 단계를 의미해. 누군가가 이를 독점한다면 세계를 새롭게 재편하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게 되지.
이게 바로 그들이 원자로가 있는 장소를 비밀로 숨긴 이유야.
연합은 일시적인 환상일 뿐이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자원의 분배가 여전히 평등하지 못하다면, 이 세계에 영원한 공동체는 절대 존재할 수 없어.
……
슬픈 일이군. 과거에 찬란했던 황금시대건, 지금 우리처럼 위기에 처했건, 결국 같은 어려움과 같은 투쟁을 벌이고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