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편, 철수 명령을 받은 롤랑은 동료들에게 자신의 의문을 말했다.
왜 이렇게 빨리 끝난 거야?
…………
역시 이상하단 말이야. 설령 루나 아가씨가 직접 출전하셨다 해도 이렇게 빨리 끝날 리가 없었을 텐데.
루나 아가씨의 능력을 못 믿는 겁니까?
아니, 만약 정면으로 싸운다면 그 누구도, 그 어떤 세력도, 아가씨의 공격을 막을 순 없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 사람들은 이리저리 숨고 도망치고 그 사람들을 찾아내는데도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 마련이니까.
마치 라미아처럼——
이런——! 왜 갑자기 날 물고 늘어지는 거야!
전에 "구조체" 소대를 수색하라고 했는데 하루종일 걸렸잖아.
구, 구조체가 자꾸 숨는 바람에...
이것 봐. 내 말이 맞지. 이 일은 좀 이상하다니까.
속전속결로 끝내는 게 나쁜 겁니까?
가브리엘은 더 이상 롤랑과 애기를 나누기 싶지 않다는 듯 자리를 떴다. 라미아도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럼에도 가브리엘은 그의 뒤를 졸졸 따르는 롤랑을 떼어내지 못했다.
만약 이 임무를 너와 나한테 맡겼다면 어떤 결말이였을까?
루나 아가씨가 원하는 물건을 가지고 가는 것, 그뿐입니다.
그래, 바로 "그 뿐이지"란 말이야.
항로 연합에 잠입하여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고 떠날 수 있을 거야.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고 말이야.
…………
루나 아가씨도 만약 항로 연합을 파괴하고 싶은 거라면 더 확실하게 하셔야지.
이렇게 많은 생존자를 남겨두다니. 이것들은 다 후환이 될 거야.
루나 아가씨가 그런 결정을 내리신 건 임무를 위해서가 아닌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리고 이렇게 봐주시는 것도 한 두번이 아니란 말이지.
………………
저번에도 마찬가지였어. 몰래 알파한테 암시를 주시고는 죽여야 할 자식을 살려주셨지. 그 정도로 중상을 입으면 고분고분해질 거라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 결과는 어땠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일처리도 과감하지 못하고 후환만 남기는 사람이 정말 제대로 된 대행자일까?
두꺼운 천으로 가려진 가브리엘의 발성장치에서 코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는 롤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봐, 어디로 가려는 거야?
아직 준비를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래? 도와줄까?
아닙니다. 그저 번거러운 작은 일일 뿐이에요.
그렇게 내외하지 말라고. 요즘 갑자기 바빠진 거 보니 분명 중요한 일이 있는 거지?
업무 배분량에 불평하고 싶은 거라면 말을 이렇게 빙빙 돌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포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롤랑을 보던 가브리엘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먹이를 줄" 시간이군요.
응? 그 물건에 꽤 집착하는 것 같네.
매일 잔해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저더러 집착이라니요.
철가면 뒤의 표정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롤랑은 가브리엘에게서 일종의 쾌감과 경멸이 섞인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제가 관심을 가지는 일은 그 것뿐입니다.
인간의 악몽이 드디어 생명을 가졌으니 우리가 제대로 키워야죠.
짜증이 많이 난 것 같은데...
…………
"평소와 같은 멍청한 일"이라면 그런 표정을 지을 리가 없어. 화서가 너한테 보여준 기록과 연관이 있는 건가?
언니.
응.
그 연구소를 보니까 예전 일들이 생각났어.
알파는 한참동안 침묵했다. 그녀도 루나가 말하는 예전 일들이 뭘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다.
이제 연구소는 폐허가 되어버렸어.
네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그건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야.
내 걱정은 하지 마, 언니.
그 누구도 승격 네트워크을 흔들 수 없어. 사람들이 몇 명이 모인다 해도 그건 불가능해.
이렇게 당연한 일을 굳이 말할 필요가...
그 연구소를 파괴한다고 해도 과거는 바뀌지 않아. 네 기분만 잡칠 뿐이지.
설마 그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은 거야?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뿐이야.
루나는 언니 옆에 멈춰서서 멀리 폐허를 바라보았다.
난 "죄인"들을 위해 정의를 구현할 마음이 없어.
그저 내가 혐오하는 물건들을 이 지상에서 제거하고 싶은 것뿐이야.
내 행동이 설령 누구한테 이득이 된다고 해도 나한테 고마워하지 않겠지. 나도 인간들의 감사 인사는 필요없고.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뿐이야.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고.
... 난 자꾸 네 어렸을 때 모습으로 지금의 행동을 추측하게 되니까 그런 것 같아.
괜찮아.
추억으로 인한 습관은 잘못이 없어,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