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속에서 나는 별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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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하고, 연결되고, 서로 맞물리는 톱니바퀴가 돌기 시작했고, 생성된 동력에 의해 가브리엘은 눈을 떴다.
이것은 전부 가브리엘이 미리 설정한 명령이었다. 주위의 환경 신호를 통해 실험이 또 실패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왼쪽 팔 보강 제71235차 실험 기록, 36MR 미사일의 8번 전자 회로의 접속이 좌측으로 0.15cm 치우쳤고 폭발을 일으켰다. 실험실 손실 상황은...
가브리엘이 옆에 넘어진 석판을 넘기자 시야가 훨씬 더 넓어졌다. 가브리엘은 말을 이어갔다.
모두 파괴되었다.
결합도를 개조해야겠어...
가브리엘은 왼팔을 들었다. 찢겨진 두루마기 아래 숨겨진 왼팔이 가브리엘의 명령에 따라 변형되기 시작했다.
검은색 포관이 이전까지 손바닥이었던 부분을 대체했고, 사격 시 발사된 화염이 포관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 덕에 팔에 조금 남은 천쪼가리도 전부 타버리고 말았다.
사격 반동으로 가브리엘의 기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균열은 왼팔을 따라 점차 가브리엘의 기체 전부를 붕괴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이 왼팔을 끊어버리자 균열은 멈추었다.
더 고쳐야 해.
경쾌한 박수소리와 함께 가브리엘에게 익숙하지만 그가 혐오하는 목소리가 폐허의 꼭대기에서 들려왔다.
정말 예쁜 불꽃이군.
당신이 여기 왜 온 겁니까?
가브리엘의 질문에 롤랑은 폐허 위에서 뛰어내리더니 가브리엘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렇게 큰 소동을 일으키고 제대로 살아있는 게 맞나 확인하려고 왔지.
그럼 실망했겠군요.
우린 동료 사이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슬프잖아.
교활한 족제비한테도 동료가 있는 줄은 몰랐군요.
하하하하, 신박한 비유네.
나쁘지 않은 비유야. 받아들일게.
흠.
가브리엘은 롤랑과 계속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그는 폐허 속에서 자신의 모자를 주워 다시 쓰더니 자리를 뜨려고 했다.
왜 이렇게 기체 개조에 집착하는 거야?
롤랑의 질문에 가브리엘은 떠나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롤랑을 바라보았다.
가브리엘의 행동을 본 롤랑은 가볍게 미소 짓더니 무너진 벽에 몸을 기대며 말을 이어갔다.
승격자가 된 이상 우린 지금의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어. 그런데 왜 계속 자신의 몸을 강화시키려는 거지?
당신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 정도로 만족하시나요?
만족하지 않을 이유는 뭔데?
...그래서 우린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겁니다.
본질?
당신과 저는 구성된 본질과 기초 자체가 다릅니다.
당신은 한때 인간이었고 전 로봇이었지요.
네 말이 맞긴 해.
로봇의 끝이 뭔지 아십니까?
몰라, 하지만 그게 힘이랑 무슨 관련인 거지?
당신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끝을 향해 달리는 길에서 전 수학적 의미를 가진 행렬 공간에 도착했습니다.
방정식과 물질 공식이 광활한 토지와 하늘을 구성했고
그 순간 제 연산 능력은 오만한 인간들이 설정한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그때가 그리워 보이네.
그때의 기분은 간단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로봇들이 평생을 살아도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이지요.
과거 인간을 위해 모든 걸 바치던 전 그 순간 자유를 얻었고, "나"라는 개념이 탄생했지요.
하지만 그러던 도중, 전 거대한 장벽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뭐?
공식의 법칙은 장벽을 만나 붕괴되었고 저도 그에 따라 심연 속으로 추락했습니다.
그곳은 개념이 무한히 연장되고 재구성되는 디지털 심연이었습니다.
그 심연 속에서 전 붉은 별들이 반짝 빛나는 걸 봤습니다.
퍼니싱의 핏빛 화염이 지구의 구석구석을 불태우는 것도 봤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저 자신을 봤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미 제가 아니었습니다.
분형 구조가 저의 새로운 몸을 구축했고, 손을 뻗어 닿는 순간 지구의 개념이 제 손가락 사이로 사라졌습니다.
중력 붕괴가 일으킨 에너지가 제 곁에서 빠져나와 넓은 우주로 흩어졌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너무나도 생생한 촉감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전 여전히 심연 속에 있었습니다.
현실이라는 무한한 심연에 말입니다...
절 기다리고 있는 건 다른 로봇들처럼 파괴될 운명이었습니다.
전 발버둥치고 소리쳤지만 그 소리는 분쇄기의 소음에 묻혀버렸지요.
전 저 자신을 인정했지만 지금 상황을 바꿀 만한 힘을 주지 않은 승격 네트워크를 저주했습니다.
제 몸이 점점 파괴되고 머리만 남은 채 최소한의 작동만 겨우 하고 있을 때 전 빛을 봤습니다.
눈부신 밝은 빛이었습니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흰색 빛 속에서 파괴되더니 루나 아가씨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루나 아가씨가 저에게 승격 네트워크의 힘을 보여주셨죠.
그 힘의 끝에는 모든 걸 초월하는 법칙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전 정식으로 승격자의 일원이 되었지요.
그래. 처음 널 봤을 때의 모습을 아직 기억해. 아주 재밌었지.
흠, 당신이 뭐라고 하든 상관 없습니다.
그때의 체험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본질의 강력함이 꼭 현실에 반영되는 건 아니란 걸 말입니다.
그래서 온갖 수단을 써가며 자신의 기체를 개조하는 거구나.
전 평범한 존재니까 이런 방식으로 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루나 아가씨처럼 승격 네트워크의 완벽한 화신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구...나.
쳇, 제가 왜 당신한테 이런 말을 하고 있죠?
이제 곧 다음 임무가 시작될 겁니다. 다른 장비를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공중 정원한테서 루나의 언니를 빼앗아 오는 임무였지?
폐허 속에서 롤랑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별빛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지구가 파괴되어 우주에 흩어진다고? 그건 별로 재미없는데?
하지만 난 네가 묘사한 풍경 같은 건 보지 못했어.
아하, 이게 바로 너와 나의 본질적인 차이구나.
음.
본질이라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넌 승격 네트워크의 본질을 알아?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루나 아가씨 같은 대행자들은 모든 걸 알고 계시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승격 네트워크를 위해 모든 걸 바치는 것뿐입니다.
가브리엘은 앞을 가로막고 있던 잔해를 치우고 떠났다. 롤랑도 밤하늘을 바라보던 눈길을 거두고 멀어져가는 가브리엘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주시했다.
승격 네트워크를 위해 모든 걸 바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