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밤의 장막이 하늘에 걸리고 기체 표면 감지 장치가 추위의 느낌을 온몸의 구석구석으로 전달했다.
쏟아지는 달빛을 잡으려는 듯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손으로 두 눈을 가려버렸다.
그래, 역시 승산이 없네.
자신의 행동이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임을 느낀 라미아는 두 손을 내리고 옥상 변두리에 누웠다.
절망적이야, 절망적이야. 너무 절망적이야...
잠시 조용히 해줄 수 없어?
아니, 어차피 네가 죽는 것도 아니잖아.
만약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폐허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무언가가 옥상으로 올라와 라미아의 옆에 앉았다.
그럴 가능성은 없어. 내 능력으론 정면으로 싸우든 도망치든 가브리엘과 취서체들에게 따라 잡혀서 잠식 당할 거니까.
너도 분명 승격자인데...죽는 게 그렇게 무서워?
솔직히 말하면...그냥 그래...승격자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넘어서려는 강렬한 감정을 기반으로 움직이지만 살아남지 않으면 완성할 수 없는 숙원 같은 것도 있으니까.
너도 그런 게 있는 거지? 설령 죽는다 해도 막을 수 없는 감정 같은 거 말이야...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너한테 알려주지 않을 거야. 왠지 너한테 알려주면 정보로 팔아먹을 것 같거든.
어쨌든 난 아무런 의미 없이 죽는 게 싫어. 지금은 조금 더 열심히 살아가려고. 적어도...
야! 또 날 낚고 있는 거지? 넌 정말 짜증 나는 존재야!
난 그런 적 없어. 네가 알아서 떠들어댄 거지.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내 조건을 달성하면 어느 쪽이 승리하든 가브리엘이 도발한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보장해 줄 수 있어.
음...날 도와줄 수 있다고 어떻게 보장하지? 입장만 보면 우린 각기 다른 진영인데.
난 거래자야.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지.
그리고 너한테는 지금 선택지가 없어. 그게 아니라면 이런 곳까지 달려와 먼저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겠지. 안 그래?
절망적이네. 다른 사람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니.
네가 막 루나의 아래로 들어갔을 때와 비슷한 처지일 뿐이야.
어?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알고 있는 거야?
난 모르는 게 없어.
……
작은 로봇은 더 이상 침묵하는 라미아를 보지 않고 카메라를 돌려 멀리 지평선 위에서 넘실대는 적조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 너한테 별로 어려운 조건은 아니니까.
그리고 루나의 의심을 받을 걱정도 안 해도 돼. 물론 지금은 딱히 의심 받을까 봐 걱정하는 상태도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너 다른 여자한테도 이렇게 몰아붙이니?
사람에 따라 달라.
그래...그럼 넌 뭘 원하는 거야?
침묵하는 호수를 범람시킬 "열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