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실례 좀 할게.
그레이 레이븐 소대 여러분.
이번에도 역시 내가 먼저 도착했네.
베라는 손가락으로 붉은색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무언가 계산하는 것 같았다.
침식된 차징 팔콘 소대의 멤버... 내가 오랫동안 눈독을 들인 먹잇감이라고.
당신 손에서 그를 빼앗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카무이한테 묻고 싶은 게 있을 뿐입니다.
그다음에 어떻게 처리하든 전 상관없어요.
그럼 그러시던가.
미리 말하지만, 시간을 너무 오래 끌어서 정화 부대 멤버들이 도착하면 내가 어떻게 할지 알고는 있겠지?
……
카무이, 언제부터 침식 당하기 시작한 거죠?
롤랑을 만났던... 그때부터...
왜 우리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말해도... 소용없으니까...
그럼 왜 도망친 거죠? 두려워서?
아니... 내 몸속에 있는 퍼니싱을 제거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런 방법이 없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정말 그런 방법이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지도 않았겠죠.
너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왜냐하면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이건 단순한 도박일 뿐이야...
카무이...
우리 사이의 정을 생각해서 이 녀석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너에게 양보하도록 하지.
죽든 살든 나한테는 별 의미 없으니까.
그만 좀 하세요. 악질 여사님.
……
루시아...
윽!
……
과거의...
실수는... 반드시 여기서 끝내야 해...
참 슬프구나...
……
(왜 그녀가 생각나는 걸까?)
카무이, 저는 카무이를 믿어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일이라면... 하도록 해요.
루시아는 칼을 내려놓았다.
역시 마음 약해서... 결국 내가 나서야겠군.
잠깐만요.
정화 임무를 막으려는 거야? 미리 말해 두지만 지금 날 막으면 그건 반역이나 마찬가지야.
아니요. 막으려는 게 아니라 부탁을 하려는 겁니다.
하?
혹시 우리한테 줬던 ‘도움 쿠폰’을 기억하나요?
당신이 약속을 지켰으면 하네요. 왜냐하면 지금 이곳에서 그 기회를 쓰고 싶거든요.
……
…………
정말 실망이군.
좀 더 재밌는 곳에 쓸 줄 알았는데. 예를 들면...
됐다.
……
하~ 오래간만에 일찍 일어났는데 리 때문에 기분을 잡쳤잖아...
돌아선 베라는 기지개를 켠 뒤 모든 걸 내려놓은 듯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다.
하지만 하이힐과 철판이 부딪히는 소리로부터 그녀가 굉장히 불만스러운 상태임을 엿볼 수 있었다.
됐고, 이 일에 더 이상 참견하지 않을게.
그럼, 앞으로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