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가버리는 카레니나 쫓자 무대 문 쪽에 웅크려 안쪽을 살펴보고 있는 카레니나를 발견했다.
카레니나...?
쉿.
저쪽이야.
카레니나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먼 곳에 무대가 있었다.
……
로봇은 미묘한 자세로 "정좌"하고 있었는데... 그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지? 대단한 녀석인 게 분명해.
저것과 싸우려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것 같은데.
네가 전술을 논할 때가 있다니.
...짜증나게 굴지 마. 그래서, 같이 싸울 거지?
문밖에 계신 분, 손님이라면 어서 착석해주세요. 곧 극이 시작됩니다.
...극?
별 볼 일 없는 기계 배우 팔형이 후미시로 역할을 맡고 있다.
"후미시로"? 네 이름이야?
손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죠.
손님께서 곧 보게 될 <흑염마에 맞서는 신통한 후미시로>에서 후미시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죠.
물론 지금은 끝에서 두 번째 장인 "수만의 별이 흩어지고 쌍검의 충신만 남았다"만 보여줄 수 없겠지만요.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배우가 저밖에 안 남았거든요.
원래 이 빛나는 "유리 정상" 극장에는 저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만 해도 삼백이 넘었었어요.
그 휴연날에는 본래 유리 정상의 간판 연극 "순금 세대"의 공연이 있었어요.
유리 정상의 일인자 렌쇼님과 이인자 쿄메이의 합동 공연으로 잠시 등장하는 배역만으로도 80대가 넘는 공연이었죠.
공연을 시작해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제어실에서 보내야 하는 개막 신호가 들려오지 않아요.
그리고 어느샌가 무대를 보는 관중도 다 사라져버렸어요.
우리는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무대도... 계속 비워둔 채로요.
일인자 렌쇼님이 가장 먼저 종료됐죠. 아무래도 레이트가 높다 보니 소모도 가장 심하니까요.
일인자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성능이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는 원인이 되어버렸죠.
하지만 공연은 무기한으로 지연되며 우리는 소모를 최대한 줄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배우는 공연하지 않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더 나빠진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어요.
...선택지를 잃은 우리는 아직 작동하는 인원만으로 공연할 수 있는 극을 계속 조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바로 마지막이에요. 공연할 극은 작동이 중단된 이전의 배우와 함께 상의해서 결정한 거예요.
이 장은 무대에 한 명의 무사만 있으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흑염마는 무대 옆을 뛰어다니는 망가진 로봇으로 보충하면 되거든요.
누군가가 뒤의 제어실에 가서 공연을 시작하는 명만 내려주면 끼워 이 극을... 시작할 수 있어요.
네가 직접 가서 하면 되잖아.
제어실은 우리 같은 특화 로봇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요.
"캐릭터"인 우리는 "무대 뒤"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되니까요. 그러니 부탁드릴게요.
……
아이라, 조금 슬픈 것 같아.
뭐? 난 아니야. 다만... "그"가 공연을 끝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야.
영원히 대기하면서 자신의 끝을 기다리다니. 그건 예술가에게든 공연자에게든... 너무 잔인한 것 같아.
응. 고마워!
——공연이 곧 시작됩니다. 관객분들은 속히 착석해주시길 바랍니다.——
"——종업원이 과일 쟁반과 세수수건을 무료로 제공하니 안심하고 사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예술 협회의 사고에 이 극에 대한 기록이 있었어. 주인공이 병사를 도발해 싸우는 내용이었을걸.
후미시로가 가사를 부르고 움직일 때 침식체에게 공격당하지 않도록 지키면 돼.
검은 용이 푸른 하늘에서 나타나면서 흑염마가 사람들을 둘러쌌다...
하! 네놈!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구나!
네놈은 우리 가문의 사람을 열여섯 명이나 죽였다. 그런데 또 군을 일으켜 우리 진양천방 십만 백성의 평화를 빼앗으려고 하는구나!
이 진양 후미시로는 네놈을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으아악! 문가군은 명을 따르라! 오늘은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설령 죽게 되더라도 흑염마를 함께 끌고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