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이 되어버린 도시의 폐허에서 한 소녀가 반 토막 난 부러진 철근에 앉은 채 고개를 흔들며 이상한 대사를 읊고 있었다.
도시의 숲 종말이라고 해도 많이 힘들겠지만, 반드시 그것을 손에 넣어야 해!
그것?
당연히 승리지!
폐허 위에서 뛰어내린 나나미는 허리에 양손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나미 곁에는 여러 대의 로봇이 우뚝 서 있었는데, 놀랍게도 침식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갑자기 로봇들을 소집해서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지?
틀렸어. 일단 소개부터 시작해야지. 안녕, 난 나나미야. 잘 부탁해!
그래. 난 마틴이야...
아니, 틀렸어. 넌... 넌 기사야!
기사? 기사라니?
내 명을 받는 기사라는 뜻이야! 언제부터 기사가 된 지를 묻는 거라면, 그건 바로 방금이야.
...그래.
사수——로쿠하치!
로쿠하치, 는, 사수다.
음... 의식의 바다 구석에 중세기 RPG와 관련된 게 있는 것 같은데... 뭐지... 키워드는... 자객!
……
맞아. 그리고 너희는 자객이지. 그리고 뭐가 부족하더라... 아... 방패병!
거기! 너로 결정했어!
……
보아하니 네가 찾은 '세 번째 동료'는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마!
아무튼, 저쪽에 있는 탑 보여...?
나나미가 뒤의 잿빛의 탑을 가리켰는데, 탑 끝은 뿌연 하늘에 뒤덮여 보이지가 않았다.
...설마 저 위에 올라가려는 건 아니겠지?
후후, 그럼 다음은... 나나미님이 이끄는 로봇 군단! 잿빛 탑의 꼭대기를 목표로 출격하라!
그래서 이건 무슨 MMORPG라도 되는 건가...
음...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50층의 잿빛 탑'! 어때?
로쿠하치, 도 가?
전부 가야지!
나나미가 손을 들자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로봇들은 마치 소녀에게 답하는 것처럼 그녀를 따라 살짝 흔들렸다.
승리를 위해 다음 전략대로 잿빛 탑의 모든 층을 뚫고 갇혀 있는 공주를 구출해야 해...
저 위에 진짜 공주가 있는 건가?
음... 어차피 생각지 못한 서프라이즈가 있을 테니까!
나나미와 함께라면, 뭐든지, 다 좋아.
그냥 도시를 청소한다고 생각해야겠네...
……
좋아!!
그럼 여기서 헤어지지. 필살기를 단련하여 승리를 차지하라! 나나미 군단, 출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