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의합 조정 / 상서 / Story
낙차
>오로라가 반짝이는 하늘 아래, 그녀는 눈이 섞인 찬바람을 받으며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의 장막이, 눈이 덮인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먹물 같은 색깔을 무한으로 펼쳐냈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 그녀는 장창을 움켜쥐고, 눈 덮인 숲 사이로 시시각각 나타나는 어두운 붉은빛을 바라보았다.
창 들기, 조준하기, 투척하기. 그녀의 동작은 능수능란했고 힘이 넘쳤다. 오랜 전투가 오늘날에 지극히 간결한 동작을 만들어냈다.
던질 때마다 눈 덮인 숲 사이로 어두운 붉은빛이 눈에 띄게 줄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붉은 빛을 내는 주체들이 눈숲에서 튀어나와 설원 중앙에 서 있는 휴머노이드 소녀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녀의 옆에는 찬바람을 제외하고는 오직 장창들만이 줄지어 있을 뿐이었다.
눈밭에서 장창을 뽑아 들고 앞발을 높이 들어 올린 뒤 힘껏 땅을 내리치자, 땅에 있던 눈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바람에 휘날렸다.
눈이 바람 때문에 그녀의 기체 표면에 밀착되어 마치 은빛 갑옷처럼 보였다.
기계 창조물들은 충격을 받아 지면에 흩어져 하얀 설원 위에 먹물 색깔의 잔해가 되었다.
그녀의 앞에는 포효하는 모든 것을 잠식하는 광폭한 기계 창조물이 있다.
그녀의 뒤에는 인류를 상징하는 불꽃과 동료 주둔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있다.
마지막 기계 창조물의 비명과 함께,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장창을 땅에 꽂았다.
소녀와 장창의 조합은 적이 넘을 수 없는 철옹성과 같았다.
이건 수많은 세월의 평범한 하루. 하루하루 숲을 지키는 자의 일상 또한 로제타가 독행하는 설원의 전쟁터이다.
소녀는 다시 하늘 아래서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본 것은 여명이거나 혹은 황혼일 수도 있다.
분쟁이 지나가자, 무르만스크에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항구의 복구 작업은 각 세력의 지원을 받아 차근차근 진행됐고, 숲을 지키는 자들도 자연스레 복구하는 무리에 합류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보통 사람들이 짊어질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건설 자재를 서로의 등 뒤에 고정하고 힘차게 항구 곳곳을 누볐다.
이런 무리에서 인간 외형의 여성 구조체가 숲 숲을 지키는 자들 중간 사이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해당 광경을 외부 사람이 보면 다소 이상하다고 볼 수 있다.
로제타, 어깨의 건축 자재를 우리 등 뒤에 고정시키세요.
이 정도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야. 더구나 인간형 구조가 편리하지 않은 문제 때문에 내가 운반할 수 있는 수량이 너희들보다 훨씬 적어.
신경 쓰지 말고 목적지에 먼저 가. 이것 때문에 복구가 늦어져서는 안 돼.
음...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먼저 가도록 하겠습니다.
휴머노이드 동료는 로제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한 뒤 네 발로 떠났다.
상대방의 모습은 곧 시야에서 사라졌고, 로제타는 어깨의 있는 건축자재를 조여매고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
오늘 재건을 마치고 주둔지에 돌아온 로제타는 동료도, 주둔지에 있던 무기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걸 발견했다.
공기 중에 가득 찬 이상한 냄새에 로제타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든 장창을 움켜쥐었다.
————！
익숙한 기계 창조물이 주둔지 외각을 스쳐 지나갔다. 로제타 손에 들고 있던 장창은 빠르게 변형했고, 격동의 번개가 창 끝에 응집됐다.
멈춰!
그러나 동료의 외침은 로제타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였다.
이 거리는……안 돼.
창 끝에 응축된 에너지가 사라졌고, 로제타는 장창을 거두고 쫓아갔다.
젠장……또 놓쳤어.
무슨 일이지?
주둔지에 복귀한 뒤, 인근에서 침식체가 활동한 흔적을 발견되어 지금 동료들이 흩어져 쫓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만은 않습니다.
알겠어.
로제타는 동료를 지나쳐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변 환경을 살폈다.
그리고 낮은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방금 이쪽을 지나갔어?
음……아니요.
동료의 답변을 받고 주변을 확인한 로제타는 동료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손짓한 뒤 장창을 들었다. 응집된 번개는 곧바로 나뭇가지 쪽으로 발사됐다.
——!
이 한 방에 침식체의 신체 대부분이 잔해가 되었지만, 부서진 몸통을 이끌고 포효하며 로제타를 향해 달려왔다.
로제타가 창을 들고 반격을 준비하던 중, 숲에서 날아온 또 다른 장창이 먼저 침식체를 관통해 한쪽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단단히 박혔다.
헤헤, 로제타 반응이 느려졌네.
응, 현재 기체는 화력에 더 집중하다 보니 기동성이 약간 떨어졌어.
너희들 상처……
괜찮아. 이런 가벼운 상처는 모두 대수롭지 않게 여겨. 다행히 주변 침식체는 모두 제거했어.
로제타가 동료를 둘러봤을 때 모든 동료의 기체에 약간의 손상이 있었다.
……
어? 왜 그래? 로제타 얼굴색이 너무 무거워 보이는데.
아니, 괜찮아. 먼저 주둔지로 가서 좀 쉬도록 할게.
동료의 손상을 수습한 뒤 다이아나는 항구 주민들에게 눈 숲의 상황을 보고했고 다른 동료들은 다시 재건 무리에 합류했다.
일사불란한 동료들을 앞에 두고 로제타는 점차 주둔지를 떠났다.
그녀가 본 것은 여명이거나 혹은 황혼일 수도 있다.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주둔지로 돌아오자 휴식을 취하는 동료들이 보였고, 평온한 모습이 그녀 의식의 바다에 각인됐다.
동료를 수호하는 기사로서 또 한 번 사심 없이 사명을 다하며 동료를 지켰다. 따뜻한 온기가 기체에 퍼지면서 이전 전투에서 겪었던 혹한을 날려버렸다.
그녀는 주둔지 한 구석에서 동료들이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본인을 치료했다.
다이아나. 요즘 숲을 지키는 자 쪽은 어때?
문제없어.
그리고 다들 너를 보고 싶어 하는데, 언제쯤 돌아올 거야?
……
공중 정원 쪽의 임무가 끝나면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응, 기다리고 있을게.
너, 약해졌어.
수호하는 사람으로서 동료에게 위험을 초래하다니.
만약 과거의 나였다면……
로제타는 두 손을 움켜쥐고 지금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내가……약해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