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기념일 이벤트 스토리 / 장막 뒤의 그림자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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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결말

비앙카

지휘관님, 제가 쓴 우리의 이 이야기... 마음에 드셨나요?

또 다른 생각에 잠기신 건가요? 제 목소리 들리세요?

비앙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마치 두꺼운 장막 하나를 사이에 둔 것처럼 흐릿하고 불분명했다.

몽롱하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천천히 눈을 뜬 뒤에야, 자신이 한동안 비앙카의 어깨에 기대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앙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보니, 아마 방금 전까지 꽤 오랫동안 자신을 불러왔던 모양이었다.

비앙카

좀 쉬셨나요? 괜히 방해가 될까 봐, 깨우지 못했어요.

이제 날도 저물었으니,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주위를 둘러보니 극장 안은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미 해 질 녘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전까지 그레이 레이븐은 비앙카와 함께 극장에 앉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흐릿해진 의식은 마치 극 중 인물들의 운명에 이끌리듯,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한 긴 꿈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비앙카는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귀 뒤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손끝이 스칠 때마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비앙카

움직이지 마세요. 여기 머리카락이 조금 헝클어졌네요…

요즘 계속 무리하신 건가요? 연일 일하느라 많이 피곤하셨을 텐데, 죄송해요. 어렵게 얻은 휴가에 이렇게 긴 이야기를 들려드리다니…

작품에 대한 조언을 좀 받고 싶었는데, 제 욕심이 과했던 것 같아요. 괜히 지휘관님께 폐만 끼친 것 같아서 걱정되네요.

그 말에, 그레이 레이븐은 이 여행이 시작되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오늘은 며칠간 이어진 고된 임무 끝에 얻은 짧고도 소중한 휴가였다. 그레이 레이븐은 그 시간을 비앙카와 함께 보내기로 하고, 둘은 이 보육 구역을 찾았다.

둘만의 시간을 불필요한 소음으로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아, 다른 주민들이 즐겨 찾는 놀이 시설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 손을 맞잡고, 외곽의 조용하고 인적 드문 구역을 천천히 걸었다.

서로의 손을 놓지 않은 채, 황금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축 유적들을 바라보며, 그 시절의 숨결을 느끼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앙카의 시선을 끈 건, 비록 버려졌지만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된 이 오페라 극장이었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자, 두꺼운 벨벳 커튼이 또 하나의 화려한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머리 위의 거대한 수정 샹들리에는 빛을 받아 몽환적인 광채를 흩뿌리고 있었다.

비앙카는 도착하자마자 감탄을 숨기지 않고, 극장 내부의 모든 디테일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폈다. 전에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에 깊이 빠져든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레이 레이븐의 손을 이끌고 무대와 가장 가까운 박스석으로 향했다. 커튼을 내리자, 그곳은 둘만의 조용한 공간이 되었다.

둘은 나란히 2인용 좌석에 앉아, 함께 텅 빈 무대를 바라보았다.

비앙카

그 시절에도 이렇게 소중한 사람과 나란히 앉아, 무대 위 공연을 즐겼을까요?

비앙카

지휘관님과 함께 직접 느껴보고 싶어요.

비앙카는 고개를 돌려 미소로 답한 뒤, 다시 시선을 무대로 돌렸다. 그리고 또 다른 생각에 잠겼다.

비앙카

전에도 가상 영화를 꽤 많이 체험해 봤지만, 아무리 시뮬레이션 효과가 "현실"과 비슷하다고 해도, 이렇게 직접 와서 느끼는 것과는 정말 비교가 안 되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지금의 시뮬레이션 기술만으로도 "현실"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이렇게 직접 그 공간에 있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게다가 시뮬레이션 기술은 관객의 시점에서 "몰입"하도록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잖아요. 현실감을 높이려고 의도적으로 무대 자체를 지워버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주변의 모든 것이 어둠에 잠기고, 오직 스포트라이트로 밝혀진 무대가 지닌 그 독특한 매력은 결코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지휘관님과 함께 무대 위에서 직접 느껴보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그레이 레이븐은 비앙카의 손을 잡고, 함께 무대 위로 걸어 올라갔다.

무대 위는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있었다. 고개를 들자, 극장 돔의 몇 군데 부서진 틈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어와,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둘을 비추고 있었다.

햇빛은 거대한 수정 샹들리에에 부딪혀 반사되었고, 그 빛은 비앙카의 몸을 감싸며 화려한 무지갯빛을 더했다. 그녀는 마치 무대 위에서 모든 시선을 받는 여주인공 같았다.

마치 이야기 속 인물처럼, 그녀는 몸을 돌려 가지런히 정돈된 텅 빈 관객석을 향해 우아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비앙카

이렇게 무대 위에 서 보는 건 처음이네요. 이런 시각으로도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극 중 인물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바라보고, 그 이해를 연기에 녹여내면 훨씬 더 생생한 생명력을 줄 수 있겠네요.

비앙카

이건 그냥, 이야기에 대해 제가 품고 있는, 조금은 유치한 생각일 뿐이에요. 부디 웃지 말아 주세요.

사실 가끔 이야기를 구상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이야기 속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게 돼요. 마치 글을 쓰다 보면, 제가 어느새 그 "인물"이 되어버리는 것처럼요.

그러면 저도 모르게 그 "인물"의 입장이 되어, 앞으로 닥칠 운명을 고민하게 되죠.

그때마다 "정해진 운명에 맞서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결국, 제 이야기는 늘 중간에서 멈춰버려요. 앞에 여러 갈래의 "운명"이 동시에 펼쳐져 버리니까요…

비앙카

재미있는 비유네요.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죠.

저 역시 그 인물들이 스스로의 "마음"에 따라 운명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라거든요. 그래서 한 번도, 그 이야기들에 확실한 끝을 내려본 적이 없어요.

제 행동에 대해 어설픈 변명을 한 것 같네요. 죄송해요.

그저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를 끝맺는 것보다, 그 인물들이 스스로의 "마음"에 따라 운명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라거든요. 그래서 한 번도, 그 이야기들에 확실한 끝을 내려본 적이 없어요.

그레이 레이븐의 말이 마음에 닿았는지, 비앙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층 부드러워진 미소를 지었다.

비앙카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구상해 온, 특별한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아직도 첫 문장을 적지 못했죠.

바로... 저와 지휘관님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운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지휘관님. 혹시 괜찮으시면, 그 이야기를 들려드려도 될까요?

그레이 레이븐은 비앙카와 함께 관객석으로 돌아와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그녀가 들려줄, "둘만의 이야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이미 수없이 머릿속에서 그려온 이야기였던 듯, 비앙카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이야기 속에서, 그레이 레이븐과 비앙카는 모두 새로운 신분을 가지고,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 있었다.

그곳은 지금 이들이 살아가는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재앙도, 포화도, 맞서 싸워야 할 퍼니싱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재능 넘치는 한 극작가와, 그녀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여주인공이 평화로운 시대에 만나, 전설적인 영원한 사랑의 만남을 시작할 뿐이었다...

어느새 그레이 레이븐은 이야기 속 "극작가"가 되어 있었다.

비앙카가 들려주는 수많은 굴곡과 사건을 함께 헤쳐나가며, 그녀와의 인연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마침내, 그레이 레이븐도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비앙카와 함께, 이 이야기가 만들어낸 화려한 꿈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 눈을 떴을 때, 밖은 이미 해 질 녘이 되어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 이야기로 인해 남겨진 감정의 여운이 잔잔히 일렁이고 있었다. 비앙카와 함께 전혀 다른 삶을 한 번 더 살아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비앙카

제 이야기를 들은 소감은 어떠신가요?

비앙카

그건... 설령 다른 세계의 우리를 그려내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저는 그 안에 지금의 우리와 이어지는 흔적이 조금이라도 더 담기길 바랐어요.

"꿈"이라는 건 현실의 투영이자, 아름다운 이상을 향한 소망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수많은 꿈이 교차하는 곳에는, 각자의 의식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꿈의 경계"가 있다고 믿어요.

이야기의 줄거리가 어떻게 변하든, 그 이야기 속에 우리 "지금"의 모습이 더 많이 비치길 바랐어요.

그건... 설령 다른 세계의 우리를 그려내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저는 그 안에 지금의 우리와 이어지는 흔적이 조금이라도 더 담기길 바랐어요.

지휘관님과 함께 살아가는 이 세계는, 전쟁과 위기로 인해 분명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겠죠…

하지만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 모든 순간은 결국 우리 둘이 함께 쌓아온 추억이 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의 "대본" 속에도, 그런 과거를 함께 담아두었어요.

제 이야기를 좋게 봐주셔서, 정말 영광이에요.

비앙카와 손을 맞잡는 순간, 이야기 속에서 서로의 손바닥에 새겨 주었던 그 "표식"이 문득 떠올랐다.

이미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챈 비앙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그의 손등 위에 살포시 얹었다.

두 사람의 손끝이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며, 서로의 마음과 약속을 담은 하나의 선을 그려 나갔다. 그리고 비앙카는 조심스럽게 두 손을 모아, 그의 손을 소중히 감싸 쥐었다.

비앙카

어쩌면 다른 세계에서의 저와 지휘관님은 이런 식으로 만났을지도 몰라요.

전쟁도, 포화도 없는 그 세계에서, 우리만의 또 다른 운명을 시작했겠죠.

하지만 이야기의 시작이 어떻든, 그 결말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지휘관님을 향한 제 마음처럼요.

저는 어떤 이야기 속에 있든, 지금처럼 늘 지휘관님 곁에 있을 거예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극장을 나서자, 마침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붉게 물든 석양이 천천히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고, 눈앞의 들판에는 생기 넘치는 풀과 그 사이사이에 피어난 백합들이 풍경을 채우고 있었다.

그 화사하고 향기로운 꽃은, 비앙카가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도 화려한 의상을 입은 그녀의 곁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이야기 속의 모습과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비앙카가 겹쳐 보였다.

새하얀 백합 한 송이가, 마치 그녀의 순수한 사랑처럼 손안에서 피어났다.

그레이 레이븐은 활짝 핀 꽃을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에 조심스레 꽂아 주었다.

비앙카는 자신의 옆머리를 만지더니,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만지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비앙카

지금의 저는, "무대" 위 모습처럼 화려하지 않아 이 백합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레이 레이븐은 손을 들어 비앙카의 머리를 정리해 주려다, 언제 손끝에 묻었는지 모르는 선명한 색을 발견했다.

순간, 허구와 현실 사이의 장벽이 소리 없이 허물어지며, 마치 무대에 오르기 전 그녀에게 세심하게 립스틱을 발라주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했다.

손끝이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스치자, 색이 천천히 번지며 다시 한번 익숙한 온기가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에 비앙카는 눈을 감지 않았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의 그레이 레이븐을 마음 깊이 새기려는 듯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비앙카

…이걸로 충분해요.

비앙카는 그레이 레이븐의 손을 잡고, 나비가 내려앉듯 가볍게 손끝에 입을 맞췄다. 그 부드러운 감촉에 몸이 저릿하게 떨렸다.

가벼운 입맞춤 사이로, 비앙카는 이 순간 오직 둘만의 서약을 속삭였다.

비앙카

다른 세계의 "비앙카"는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는 순간을 두려워했어요. 그녀는 행복의 끝에 다다르면, 곧바로 떠나야 하는 길 위에 서게 될까 봐 두려워했죠.

하지만 저는 그런 부질없는 걱정은 하지 않아요.

지금처럼 지휘관님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평범하고 작은 순간이라도 저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 되니까요.

함께 싸우는 날도, 잠시 숨을 고르는 평온한 날도, 지휘관님 곁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해요.

부디 이런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게 해주세요. 지휘관님과 함께, 행복으로 향하는 모든 시간을 같이하고 싶어요.

[player name] 님... 우리, 함께 집으로 돌아가요.

석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자, 밤하늘의 별들이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광활한 별빛 아래, 둘은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여정의 귀로에 올랐다.

그레이 레이븐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수억 년을 건너온 이 별빛이, 그녀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만들어 갈, 수많은 약속과 시간들 또한 이 빛 속에 오래 남기를 소망했다.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그 먼 곳을 향해.

지금처럼 서로의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