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의견이 일치하게 됐네요. 소대 단위 작전 전술 핵심 포인트는 이상입니다. 지휘관님께서 더 보충하실 내용 있으신가요?
과찬이십니다. 오히려 지휘관님의 사고방식이 상당히 명확해서 정리하기 편했습니다.
그런가요? 지휘관님도 가끔 장난을 치네요.
크롬은 단말기의 시간을 보고 웃으면서 전투 토론 자료를 정리했다.
네, 한 시간 정도면…… 제 임무는 거의 다 완료됩니다.
그러면 지난번 작전에 대한 전술 검토는 여기까지…… 오늘마저 시간을 뺏어서 죄송합니다.
크롬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홀로그램 전술 투영 화면 위의 전투 기록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차징 팔콘 소대와 협동 작전을 하던 모습이었다. 참 그리웠다.
지휘관님도 지휘관으로서 저희 차징 팔콘과 함께 많은 어려움과 험난한 고비를 넘겼고…… 이제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게 됐네요.
글과 그림이 뒤섞인 짜릿한 과거를 보니 서로가 마치 오랜 세월을 같이 보낸 친구처럼 느껴졌고 옛 사진첩을 보며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 가는 것도 잊었다.
네, 과거보다 미래를 더 주목하는 게 맞죠. 저희 차징 팔콘은 앞으로 지금보다 더 강해질 것이고 훌륭한 모습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할 겁니다.
크롬은 화면 속 차징 팔콘의 모두를 보며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지휘관님 덕분에 차징 팔콘의 대원들도 점점 성장하고 있어요. 카무이, 반즈, 그리고 저와 카무…… 모두 지휘관님의 많은 도움을 받았죠. 오늘 차징 팔콘의 모두를 대표해 지휘관님에게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받아주세요.
크롬이 건넨 예쁜 리본과 색종이로 싸인 선물을 받았지만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마침 선물에 대해 물어보려는데, 차징 팔콘 소대의 휴게실 문밖에서 누군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리더!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은 갔어?
너도 지휘관님을 찾고 있어? 그리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손님이 계실 때는 휴게실에서 소란 피우지 말라고……
큰일 났어! 그것도 아주 큰일! 내가 방금 돌아왔을 때, 세리카가 두꺼운 서류 가방을 들고 지휘관이 어디 있는지 여기저기 찾는 것을 봤어. 곧 이곳으로 찾아올 것 같아. 지휘관, 빨리 도망쳐!
추가 업무가 짜증 나는 건 사실이지만 일부러 도망칠 정도는 아니잖아….
정말로 급한 일이라면 세리카는 분명 통신을 보냈을 거야. 게다가 서류봉투가 꽉 찬 걸 보면, 전혀 중요하지 않은 보고서나 문서 같은 귀찮은 서류들이 잔뜩 들어 있을 거야.
후훗, 세리카를 상대하는 요령은 반즈가 알려줬어.
너희들이 훈련 결과를 작성할 때 이렇게 명확하게 분석했으면 좋았을 텐데……
크롬은 잔뜩 찌푸린 눈썹을 문지르다가 한숨을 내쉬며 결국은 카무이 편을 들었다.
이런 행동을 찬성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은 특별 상황이라고 생각할게요.
세리카 쪽은 저희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지휘관님은 우선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휴게실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어서 움직여! 루시아가 기다리고 있어.
진지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오늘 다들 왜 이래'를 물어볼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저 대신 루시아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저와 카무이는 아마 늦을 것 같아요……
왜?'라고 물어볼 기회가 없어서 일단 그레이 레이븐의 휴게실로 돌아갔다. 루시아랑 기타 멤버들은 뭔가 알고 있겠지? 세리카 쪽은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차징 팔콘이 있는 곳에서 떠났지만 손에 든 선물들을 보면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렇게 두고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차징 팔콘이 나 때문에 욕먹는다면 마음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크롬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휴게실로 돌아가라고 재촉했고...... 그게 신경 쓰여 잠시 동안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복도 구석에서 주춤거리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닌 게 분명했다. 왜냐면 주의력을 잃은 순간, 구석에서 나타난 누군가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삐】! 눈을 어디다가 두고 다니는 거야! 다행히 그 녀석에게 줄 선물은 무사하네…… 안 그러면 넌 벌써 죽었어…… 응???
카레니나! 무슨 일이야…… 응? 지휘관님?
그제야 방금 부딪힌 사람이 카레니나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도 손에 예쁘게 포장된 박스를 들고 있었는데 시선이 거기에 닿자 카레니나는 재빨리 뒤로 숨겼다.
뭘 봐!
카레니나는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쯧…… 짜증 나. 어떻게 여기서 마주치지…… 이러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잖아.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치는 것도 서프라이즈라고 생각해.
그렇기도 하지만……
오늘을 놓치면 그동안 힘들게 고른 선물은 의미가 없어지잖아.
아니야! 선물을 고른 건 비앙카야. 난 그냥 도와줬을 뿐이고……
카레니나는 한숨을 내쉬며 예쁘게 포장된 박스를 다시 뒤에서 꺼내 건네었다.
이건 너한테 주는…… 선물인 셈이지. 비앙카의 안목에 내 취향을 더해 무조건 그레이 레이븐 그 녀석들보다…… 루시아가 고른 선물보다 더 좋을 거야!
선물을 받자 카레니나는 마침내 미소를 보였다.
선물은 각자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 이런 걸로 비교하면 안 돼.
그래도 우리가 제일 먼저 선물을 줬어.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이겼어!
비앙카는 웃으며 카레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시선은 차징 팔콘이 준 선물에 꽂혔다.
이건…… 다른 분께서 이미 선물을 드린 건가요?
차징 팔콘…… 카무이가 소속된 척후 소대죠?
네, 그럼 다행이네요…… 지난번 이후로는 좀처럼 그를 볼 수 없었어요. 아마 정화 부대와 다시 만나려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네가 고집부리지 않았다면, 카무이를 퍼니싱 바이러스에 감염된 병사라고 생각하고 진작에 죽였을 거야.
지휘관님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항상 정화 부대에 속해있던 저로서는 그렇지 않아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때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지휘관님의 행적을 계속 주시했어요. 지휘관님의 신념은 항상 믿기 어려운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지휘관님이 조금씩 쌓은 노력이 모두에게 확실한 희망을 주었어요. 이 선물들은 마치 그걸 증명하는 최고의 증거와도 같죠.
참, 쓸데없는 생각 말고 오늘만큼은 얌전히 모두의 축하 인사를 받으면 돼.
루시아…… 그레이 레이븐의 멤버들이 아직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때마침 마주쳤으니, 같이 가면 되겠네.
네.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등장한다고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 되잖아요.
짜증스러운 카레니나에게 밀려 걸음을 옮기려 할 때 멀리서 타이어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드디어 찾았다!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기세등등한 함성과 함께 복도 끝에 세리카의 모습이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만이 아니었다.
짜잔~ 나나미 등장!!
세리카는 나나미의 등에 업혀 있었고, 나나미 펄스 기체의 바퀴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왠지 과거 역사에서 나올법한 기사가 돌격하는 듯한 기세였다.
역시 스토리대로라면 악역이 있어야 느낌이 살지! 난 지금 나쁜 놈의 하수인이다~
누가 나쁜 놈이라는 거야?
오늘 지휘관님은 세리카에게 잡히면 안 돼…… 부탁이야, 로제타!
비앙카의 외침과 함께 추진기의 불빛이 멀리서부터 빠르게 다가와 모두의 곁에 착지했다.
일단 그 부분에 신경 쓰지 마시고 …… 지휘관님, 저를 안으세요, 도망가셔야 해요!
지휘관님…… 꽉 안아도 괜찮아요. 이 기체는 상당히 튼튼해요.
아! 죄송해요. 지휘관님. 너무 세게 안으셨어요. 이 기체의 아머가 너무 단단해서 지휘관님이 다칠까 봐 걱정돼요.
뒤에서 로제타의 가느다란 허리를 껴안은 채 고개를 돌려보니 나나미와 세리카는 벌써 뒤쪽에 와 있었다.
내가 간다!!! 전속력 전진!!!
거기 서!!!
지휘관님, 꽉 잡으세요. 곧 이륙합니다!
준비를 하기도 전에 눈앞의 사물들이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풍압과 추진기의 굉음이 동시에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의식은 고속 운행과 함께 거의 사라지려고 했다. 유일하게 깨어있는 신념은—— '손을 놓으면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손을 놓으면……
귓가의 매서운 바람 소리가 잦아들었고, 공중 정원 시뮬레이션 중력의 끌림이 다시 느껴졌다. 마침내 두 발을 땅에 디뎠다.
비록 몇 분밖에 안 됐지만 파오스의 초중력 지구력 훈련실로 돌아가 한참 동안 훈련한 것 같았다……
보아하니 당분간은 못 따라올 것 같아요…… 지휘관님, 괜찮으세요?
로제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그녀에게 부축되어 겨우 일어섰다.
시야가 흔들리긴 했지만 눈을 감아도 착각하지 않을 만큼 주변 풍경이 익숙했다.
네. 바로 앞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휴게실이에요. 다들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고,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을 거예요……
로제타는 머뭇거리다가 가볍게 손을 떼고 다시 어깨의 추진기를 펴 공중에 떠 있었다.
제가…… 세리카와 나나미를 유인할게요. 지휘관님을 위해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예요.
도대체 다들 그레이 레이븐의 휴게실에서 무엇을 할 예정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 다 모인 것 같았다. 로제타는 무의식적으로 그녀 자신을 '모두'의 반열에서 배제한 듯했다.
로제타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레이 레이븐 휴게실의 문을 바라보았다.
전 오늘까지도 공중 정원의 통제 감시를 받고 있어요. 만약 제가 여러분들의 곁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걸 핑계로 뭐라고 할지도 몰라요. 오늘, 전 지휘관님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래요.
로제타는 놀란 듯했지만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장비 보급 포켓에서 제법 정교한 색깔의 박스를 꺼냈다.
줄곧 망설였어요. 제 감사 인사 대신 이 선물을 지휘관님에게 드려야 할지. 지휘관님이 숲을 지키는 자를 위해 한 일에 비하면……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로제타는 눈을 감고 나와 이마를 맞대었다. 과거 들은 바로는 숲을 지키는 자가 이런 행동으로 진심 어린 감사를 표현한다고 했다.
하지만 '감사'라는 감정은 선물의 무게로 따질 필요가 없어요.
다시 한번 감사해요. 지휘관님……
로제타는 다시 눈을 떠 자신 있게 고개를 들었고, 무지갯빛 날개에는 힘이 가득 찼다.
지휘관님 말이 맞아요. 전 여러분의 일원이에요. 전 여러분들에게 갈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루시아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전해주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말을 끝나자 그녀의 추진기가 바람을 일으키며 재빨리 복도 너머로 날아갔다. 나중에 세리카한테 너무 오래 혼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제타가 벌어들인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됐다. 한 가닥의 호기심과 기대를 품고…… 수없이 드나들었던 그레이 레이븐의 휴게실에 들어갔다.
휴게실 자동문이 열리고 보니 실내는 캄캄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멤버들은 안에 없는 것 같았다.
어둠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지만, 실내의 센서등이 평소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이상한 상황일 같은 느낌이 들어, 다른 구조체로부터 받은 선물을 내려놓고 품에 있는 권총을 꺼내려 했다.
손을 품에 넣어 총을 꺼내려 할 때 갑자기 생각이 났다. 오늘은 휴일이라 총기 지급이 안된다는 사실을...... 다소 의아하는 순간, 휴게실 불빛이 우렁찬 축포 소리와 함께 켜졌다.
지휘관님,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지휘관님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지휘관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손에는 방금 발사한 리본과 종이 조각의 축포가 들려 있었고, 루시아와 리브가 깜짝 등장했다. 그들을 보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관님, 놀라셨어요?
정말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전통에 따르면 '서프라이즈'는 원래 살짝 놀라는 게 좋은 거라고 들었어요.
정말요? '감독님'께서는 원래 놀라운 요소를 더 강화시킬 계획이었는데……
그걸 떠나서 방금 '생일 축하'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래서 다들 모인 거야?
루시아와 리브는 다소 의아한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당연히 지휘관님의 생일이죠.
네, 그래서 오늘 지휘관님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이렇게 모였어요.
그제야 평소보다 휴게실에 장식이 많아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멤버들이 이렇게 많은 준비를 할 줄은 몰랐다.
심플한 장식 위주였지만 평소 단조롭고 차가운 휴게실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오늘 몇 번째 감사 인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직접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지휘관님 눈치 못 채셨죠. 사실 이 장식들은 전부 리가 설정한 거예요!
저와 리브의 키로는 리본 같은 것을 높은 곳에 붙일 수 없어서 리한테 맡길 수밖에 없었어요.
리가 장식을 맡아서 했다고? 전혀 상상이 안 가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 리본들은 자연스럽게 어긋나야 예술적인 느낌이 나!
도대체 뭐가 예술적 감각인지……
휴게실의 안쪽 방에서 논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리와…… 아이라?
예술 협회의 일원으로서, 난 이런 허접한 장식을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생일파티 장식을 잘 모르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더러 리본을 이리저리 옮기라고 하는 게 아니라 요구 사항을 정확히 말해야 맞죠.
오오,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이시군요. 지휘관님의 생일파티 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여기는 그레이 레이븐의 휴게실이니까 그쪽이 손님인 것 같은데요.
다들 지휘관님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다고 하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아이라에게 담당자를 맡기려고 했는데……
정정해 줘. 총괄 디자이너거든. 그래서 난 이곳에 있는 모든 것에 관여해야 해!
모든 사람의 탄생은 특별하고 기념할 가치가 있어요. 과거 황금시대에는 그랬어요. 지금처럼 인류가 쇠퇴한 시대에는…… 모든 사람의 존재를 더욱 기억해야 해요.
어쩌면 아이라의 말처럼 내일이 어디로 갈지 모를 땐 오늘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예술 협회의 기록에 따르면 과거에는 이렇게 생일 파티를 열어 가족과 함께 잊지 못할 하루를 보냈다고 해요.
네…… 어렸을 때의 생일은 1년 중 가장 기쁜 날이었어요.
리브는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그녀의 미소는 쓸쓸하지만 그리움이 가득한 것 같았다.
온 가족이 밤하늘 아래 모여서 엄마가 반나절이나 준비한 고소한 파이를 맛보고 했는데 아주 달콤했어요. 그때의 그 맛은 구조체가 된 이후에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하지만 미각이 변한 건지...... 지금의 저는 다시 그 파이를 만들려고 해도 도저히 만들 수 없어요. 안 그랬으면 지휘관님도 맛보셨을 거예요.
지휘관님과 여러분을 위해 특별한 케이크를 준비했는데, 여러분께서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리브가 케이크를 준비했다는 것을 알면 머레이 그 녀석이 매우 기뻐하겠지.
머레이도 단 음식을 좋아하나요?
엄밀히 말하면, 머레이가 그냥 생일 케이크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 같아.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의 생일을 기억하고 생일날에는 각자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주려고 노력했었어요.
리는 평행선처럼 곧게 뻗은 리본을 붙이면서 가볍게 옛날 일을 이야기했다.
리는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제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요. 오늘의 주인공은 지휘관님이니까요.
제 기억으로는 제 생일날에는 가족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떠들썩한 생일 파티를 준비했었어요……
오늘처럼 가족도 친구들도 다 모이고 지휘관님처럼 많은 선물을 받았었어요.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고, 한쪽에 놓인 선물들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레이 레이븐의 휴게실로 가는 길에 받은 선물이었다.
그 선물들을 볼 때마다, 전 제가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생기고 제가 싸울 수 있게 항상 저를 지지해 주었어요.
루시아는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저를 응원하는 것은 과거의 추억뿐만이 아니죠. 여러분과 지휘관님도 이미 저에게 중요한 '가족'이 되었어요.
루시아의 말처럼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유독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됐고, 공중 정원의 지휘관이 됐다. 모두의 '가족'이 된 것에 대한 후회는 조금도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생일 같은 개인 정보는 누구에게도 공개한 적이 없었고, 이런 자료를 작성했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심지어 지휘관 자신도 이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다.
루시아와 리브는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결국엔 리가 입을 열었다.
말하자면 이게 다 베라 덕분인데요.
오늘 지휘관님께서 정례 보고에 참석하셨을 때, 저흰 케르베로스 소대가 "기밀문서"를 갖고 있는 걸 봤어요. 어떻게 문서를 손에 넣은 건진 잘 모르겠어요.
베라, 그건 지휘관님의 개인 자료예요. 공식적인 획득 경로를 밝히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돌려주세요.
3명의 그레이 레이븐 소대 대원이 베라를 막아섰다. 그러나 케르베로스의 다른 두 대원은 옆에 나란히 서 있던 베라를 조롱하듯 웃으며 루시아의 질문에 답했다.
웃기는군. 나한텐 그 지휘관에 대한 기밀 같은 건 없어. 거기 너희 둘은 본 적 있어?
21호, 본 적 없어.
하, 자기 물건을 간수 못 해서 유출되니 우리한테 트집을 잡는 거야?
루시아,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정상적인 교섭은 베라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리가 손을 품에 넣어 총을 꺼내려는 듯한 동작을 보이자, 녹티스와 21호는 재빨리 대응해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뭐, 싸우고 싶은 거야? 언제든지!
"박살 내버려!"
뜻밖에도 품에서 꺼낸 것은 권총이 아니라 통신 단말기였다.
이런 일로 연락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머레이는 당신들의 지휘관이니까요.
전 잘 알고 있어요. 머레이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당신들에게 불법적으로 획득한 자료들을 제출하라고 명령하는 걸 주저하지 않겠죠.
베라는 눈을 크게 뜨고 약간 놀란 듯 보였지만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제법인데. 네가 이렇게 유해질 줄이야. 하지만 더 웃긴 건 내가 이 자료를 누구의 손에서 얻었는지 넌 전혀 모른다는 거야.
베라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점점 미소를 거두었다.
확실히 이건 나에게 쓸모가 없지.
그럼, 저희에게 돌려주세요.
만약 당신이 순순히 자료를 돌려준다면, 저희도 당신이 어떻게 자료를 얻었는지 묻지 않을게요.
베라는 뭔가 재미있는 게 생각났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정당한 경로로 교환하여 얻은 자료야. 많은 공을 들였는데 이렇게 쉽게 너희들에게 줄 수 없지.
잔말 말고 조건을 제시하세요.
너희들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돼. 아주 간단해.
베라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리에게 던졌고, 봉투는 개봉돼 있었다.
안에 있는 물건을 봤어요?
당연하지. "그 녀석"은 가치가 높은 기밀 정보라고 하더니, 나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거였어.
리는 베라가 속임수를 쓰지 못하도록, 안에 있는 물건을 검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건 날짜예요?
[player name]님의 출생 날짜... 지휘관님의 생일이에요! 그것도 오늘이에요!!
베라는 손가락을 튕겨,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세 사람에게 자기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렸다.
내가 너희들에게 부탁하려는 건 바로 그 지휘관과 친한 구조체를 찾아서, 그의 생일 파티를 열어주라는 거야. 참가자가 많을수록 좋고.
리는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베라를 바라봤다.
정말로 그게 다예요?
그래. 그렇지 않으면, 내가 누군가를 암살하라는 명령이라도 할 줄 알았어? 안심해. 그런 일은 나 혼자서도 충분해.
베라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고, 분노를 전혀 감추지 않았다.
"그 녀석" 감히 날 속이다니.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 정보를 모든 구조체에게 알려서, 소위 "기밀 정보"라는 것을 가치 없게 만들어 버리라고. 난 그 녀석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그러나 리의 눈빛은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리의 인식 속에는 베라가 손에 넣은 것을 이렇게 쉽게 줄 리가 없었다.
도대체 목적이 뭐죠? 당신은 생일 축하 같은 시시한 걸 할 리가 없잖아요.
생일 파티는 시시한 일이 아니야!
21호가 화를 내며 리의 말을 끊었다. 리도 의외의 반응이었다.
생일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날... 이날을 축하하는 것은 인간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어.
21호는 뭔가를 생각하거나 뭔가를 참고 있는 듯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21호에게 알려준 지식이야. 그러니까 지휘관도 분명히 생일 파티를 좋아할 거야.
베라는 21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제법인데. 리마저도 네 말에 할 말을 잃었어.
……
21호, 말솜씨가 뛰어나고, 녹티스보다 10배 정도 똑똑해.
뻥치고 있네!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왜 쓸데없이 말을 그렇게 많이 해. 그건 시간 낭비야.
베라는 그레이 레이븐 쪽을 바라봤고,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내저으며 그들을 보냈다.
왜 아직도 멍때리고 있어. 오늘이 다 가기까지 얼마 안 남았을 텐데?
지휘관은 생일 파티를 열기까지 이런 우여곡절이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로 인해 케르베로스와 별다른 충돌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지휘관님은 개인 정보 보호에 너무 신경을 쓰시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 덕분에 끝없는 일과 잔혹한 전투를 잠시 잊고, 모두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날카로운 급정거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더니, 한 사람의 그림자, 정확히는 겹친 두 개의 그림자가 무서운 속도로 휴게실 문을 지나갔다.
야호!!!! 나나미 택배 임무 완수!
마지막 급정거로 인한 관성 때문에 나나미 등에 있던 세리카는 뜻하지 않게 던져졌지만, 세리카는 "비행" 도중 다행히 아이라의 몸과 부딪혔고, 커다란 쿠션으로 인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세리카, 괜찮아?
푹신해... 아니죠! 나나미!!! 전 방금 죽을 뻔했어요!!
나나미를 뒤따르던 것은 추진기를 접고 땅에 착지한 로제타였다. 그녀는 조금 낙담한 듯 보였다.
지휘관, 미안해. 나나미와 세리카를 따돌리지 못했어.
근데 로제제의 추진기는 정말 멋지더라. 직진 가속할 땐 따라가질 못하겠어~!
로제타는 나나미가 내민 손을 잡고 쑥스러운 듯 웃었다.
나나미의 바퀴 장비는 복잡한 지형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어서 깜짝 놀랐어. 구조체도 그런 빠른 기동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네.
왠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공중 정원 스피드레이싱의 한 라운드를 거친 뒤, 묘한 우정을 쌓은 것 같았다.
참, 중요한 일을 잊을 뻔했네. 저기 지휘관님! 오늘 왜 저만 보면 도망가시나요! 여기 급하게 드려야 할 게 있어요.
역시나 올 것이 왔다. 이미 마음의 준비는 됐고, 그냥 루시아가 준비한 이벤트를 할 수 없게 될 뿐이었다.
지휘관님...
지휘관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오늘 휴가시잖아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일을 배정하지 않았는데요?
이 서류 봉투 말인가요? 그래서 도망가신 거였군요!
세리카가 문득 깨닫고, 책상 위에 서류 봉투를 올려놓았다. 봉투를 열자, 예쁜 카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카드 위에는 예쁜 그림 또는 축복이 담긴 메시지가 있었다.
리브는 이 카드들을 주워서 자세히 들여다봤다.
모두 지휘관님이 받으신 생일 카드에요! 보세요. 하산 의장님과 니콜라 사령관님도 있어요~
지휘관님의 생일 소식이 의회와 사령부에까지 전해지자, 지휘관님의 생일 카드를 준비하자는 제안이 있었어요. 문화 홍보를 위한 작은 이벤트로 삼을 수 있고 해서...
하하, 아마 앨런 회장님일 거야.
앨런 회장은 이런 이벤트에 행동력은 늘 강했다. 웬일로 의장과 사령관까지 참여했다.
앨런 회장님의 제안이지만, 그동안 지휘관으로서 불가능에 가까운 여러 가지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시면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공중 정원을 보호해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리카는 카드 더미에서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생일 카드를 꺼내 웃으며 건넸다. 그 위에 적힌 서명은 분명 "세리카"였다.
생일 축하해요~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 이건 제 마음이에요.
고개를 끄덕이며 특별한 카드를 받았다. 보아하니 내일 또 바빠질 거였다.
리는 뭔가 생각난 듯 옆에 있던 임무 수령 단말기를 조작했다.
세리카와 그녀들이 보낸 카드 덕분에 오늘 망각자 기지와 아딜레 상업 연맹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 생각났어요.
어쩌면 지휘관님에게 보내는 축하 메시지일지도...
리 보고 메시지를 열어보라고 했다. 생일 소식이 어떻게 두 곳에 전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야, 너 진짜로 잘 찍고 있는 거야?
당연하죠. 제가 대충 일하는 거 보셨어요?
네가 기억을 좀 잃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공중 정원의 지휘관 생일인데, 우리가 정말 그 녀석의 생일을 축하해 줄 필요가 있을까?
하아! 대장님이 항상 말씀했잖아요. 우리의 친구라면 망각자는 그들을 잊지 않을 거라고요. 친구 생일에는 못 가지만 예의를 다해야 하는 거잖아요.
와타나베는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 말을 잇지 못했고, 카메라를 다시 쳐다봤다.
그래, 음음. 우선 망각자의 대표로서 "고맙다"라고 말하겠어. 지난 1년간 망각자에게 큰 도움을 줬고, 너의 노력은 망각자의 존중을 받게 됐지.
이 메일이 공중 정원에 제시간에 도착한다면, 아직 너의 생일이겠지.
생일... 망각자에게도 매우 중요한 날이야. 우리는 이 땅에서 소리 없이 홀로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고인을 추모하면서 탄생의 의미도 되새기고 있어.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한번 망각자를 대표해서, 너에게 말할게 "생일 축하해".
오케이, 완벽해요! 와타나베 대장님, 너무 잘하셨어요. 원고를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풍부했어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영상은 완성됐나?
걱정하지 마세요. 이따가 이 영상은 자동으로 전용 암호화 채널을 통해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게 전송될 거예요~
그런데 방금 작은 문제를 발견했어요.
무슨 문제?
우리가 잡담한 것까지 다 녹화된 것 같은데요. 아, 대장님, 진정하시고 비수를 먼저 거두어 주세요!!!
망각자들은 여전히 시끌벅적하네. 다음은 아딜레 쪽의 메시지인가?
안녕. 지휘관.
소피아, 벌써 시작한 거야? 왜 날 깨우지 않았어!!
지각한 너 자신을 탓해야지. 네 잘못이잖아.
난 단지 "타이밍"을 놓쳤을 뿐이야. "지각"이 아니라고!
시간은 돈이야. 서로 원망하기보단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응, 소식 들었어. 오늘이 지휘관의 생일이라고, 생일 축하해.
좋겠다. 지휘관 생일에는 많은 이들이 놀러 갔겠지? 아쉽게도 우리는 공중 정원에 갈 시간이 없어.
지휘관이나 우리나 할 일이 많으니까.
다음 지휘관의 생일날, 내가 너희들에게 휴가를 줄 테니, 가는 김에 공중 정원의 그분을 우리 이곳으로 모셔 왔으면 좋겠어.
겸사겸사 상품을 판매할 수 있고... 큰돈을 벌 거야.
큰일 났다. 지휘관이 타깃이 되었어.
그때 그 아딜레 소녀도 확실히 많이 성장했네요.
참나, 방금 왔어. 우리뿐만 아니라 모두 다 왔나 보네.
지휘관, 또 보네. 대장, 우리 아직 늦지 않았나 봐!
네가 길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면, 아마 더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난 반즈를 찾고 있었지. 그 녀석은 임무 마치고 돌아와서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르겠네.
이때 리브가 화려한 케이크를 들고나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야, 대장! 케이크야!
시끄러워 죽겠네. 근데 냄새는 확실히 좋아. 이거 리브 혼자 만든 거야?
네. 이번엔 열심히 만들었어요. 괜찮으시면 와서 드셔보세요.
하하, 어쩐지 카무가 꼭 케이크 한 조각을 챙겨달라고 부탁하더라니. 카무는 "나 대신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줘"라고 말하고 임무를 수행하러 갔어.
걱정하지 마세요. 많이 만들었어요. 단지 이것만 특별한 거예요.
케이크 위에 "Happy Birthday"라고 쓰여있는 장식도 있었다. 신경을 많이 쓴 거 같아서 먹기가 아까웠다.
리브가 케이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마자 테이블이 움직였고, 흰옷을 입은 구조체가 테이블 아래에서 기어 나왔다.
반즈!?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오늘 아침에 훈련 임무가 있었는데, 훈련 끝나고 자느라 지휘관 생일을 놓칠까 봐. 하암...
반즈는 아직 잠이 덜 깼다는 듯 크게 하품을 했다.
꿈속에서 아주 향기로운 냄새와 익숙한 목소리가 나서 깼어. 지휘관, 지금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도 아직 안 늦었겠지?
네. 모두 도착했네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생일 파티를 시작할게요.
한 바퀴 둘러보니, 작은 휴게실에는 여러 소대의 각자 다른 성격을 가진 구조체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각자의 특징이 있었지만, 유독 웃음만은 모두 같았다.
가능하다면 그 웃음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참, 지휘관. 여기 선물이 하나 더 있어. 이 물건은 분명히 지휘관님에게 유용할 거야.
평소의 영상 기록 장치와 다른 황금시대의 구형 카메라였다. 이전에 자료에서 소개된 걸 본 적이 있었고, 이는 "찍으면 바로 나오는" 형식의 카메라였다.
보이지 않는 데이터에 비해, 이 카메라는 추억을 손에 잡히는 사진으로 만들 수 있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
앞으로의 모든 순간이 지금 같길 바라며, 천천히 카메라를 들어, 휴게실에 있는 모두를 렌즈에 담아 셔터를 눌렀다.
지휘관님, 생일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