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님, 임무 때문에 이 근처에서 하루를 보내야 할 것 같아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그럼 지금 바로 리랑 리브와 함께 야영을 준비할게요.
아무래도 이번 임무는 장기 임무다 보니 푹신한 침대는 준비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푹신한 베개는 무릎베개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지휘관님은 농담한 것뿐이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아, 농담이었어?
날씨도 점점 추워지네요.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죠?
대화를 나누던 리브는 넓은 하늘을 보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다들 같이 모여서 보낼 줄 알았는데...
더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다들 이리저리로 파견되었으니까. 축하하려고 해도 준비할 시간이 없었을 거야.
아쉬워도 임무는 진행해야죠...지휘관님, 내일도 다시 함께 힘내봐요.
네. 지휘관님의 말씀대로 앞으로 더 노력하면 다음에는 분명 같이 지낼 수 있을 거예요.
모든 희망을 내일로 미룰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리?
그렇게 말한 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프로젝터를 꺼냈다.
이건 제가 지휘관님, 루시아, 리브를 위해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니...언제 준비한 거야?
일주일 전에 준비했어. 세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어. 특히 지휘관님이요.
그런 거로 해두죠.
그럼 시간을 들여 선물을 준비한 보람이 있군요.
그럼 저 선물은 뭐야?
'모두'야.
모두요...?
루시아와 리브는 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리도 별다른 설명 없이 난수 기체와 연결된 위성 권한을 작동시켰다.
그리고 위성에서 전송된 데이터가 프로젝터에 보여졌다.
그럼 연결한다.
잠깐, 내 말을 제대로 듣고 있는 거야?
프로젝터 화면에 갑자기 카무이와 크롬의 모습이 보였다. 카무이는 스크린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었고, 크롬은 옆에서 카무이를 계속 잡아당기고 있었다.
화면을 다 차지하면 어떡해!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레이 레이븐, 잘 들려?
그러니까 이건 실시간 통신이 아니라는 거야? 아니...벌써 시작했잖아? 카무이, 빨리 뭐라도 말해봐!
어? 이럴 때는 대장인 크롬이 먼저 말해야 하지 않을까?
넌 이럴 때만 날 대장 취급하지? 참...
조금 지쳐 보이는 크롬은 금방 정신과 자세를 바로잡고 스크린을 똑바로 바라봤다.
차징 팔콘 소대의 대장 크롬이다.
그레이 레이븐이 지금 어떤 임무를 수행 중인지, 임무가 순조로운지 모르겠지만, 잠깐 동안 여유가 생겨 이 문자를 읽는다면...
임무가 순조롭다는 뜻이겠지. 물론 이쪽도 순조로워.
많은 일이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있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싸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크롬 대장, 인사말이 너무 긴 거 아니야...?
이 정도 예의는 차려야지...아니면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그건 당연히...
메리 크리스마스! 그레이 레이븐 소대. 이번에는 함께 모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선물은 준비했어!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도 불러서 선물 교환하자! 참고로 내가 가장 원하는 선물은 최신형 게임기야!
...후우, 너는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녹화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
나도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할 예정이다. 우리 모두 임무를 완벽히 수행한 후 공중 정원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
이 통신은...
차징 팔콘의 통신이 끝나자 리브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이죠. 방금 모두가 선물이라고 했잖아요?
작전 전에 모두에게 메일을 보내 영상 기록을 부탁했습니다.
그럼 다음 영상을 이어서 보죠.
역시 지휘관님은 다르시군요. 제가 준비한 선물을 바로 파악하다니.
자, 여기는 와타나베입니다…
모두가 아직도 선물에 놀라워하고 있는데 다음 영상이 재생됐다. 그리고 화면 중앙에 나타난 건 와타나베였다.
갑자기 이런 걸 하라고 하니 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해두지.
보다시피 난 지금 망각자들의 기지에 있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12월도 상당히 더운 곳이지.
그래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긴 하지만...그러고 보니 방금 아이들이 좀 일찍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면서 꽃을 가져왔더군.
봐, 바로 이거야...아니, 난 왜 이런 일상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와타나베 씨, 멋대로 통신을 시작해버리면 어떡해요! 아직 화장도 안 했는데!
젠장, 벌써 돌아오다니! 손에 든 그 옷은 뭐야? 내가 그런 걸 입을 것 같아?!
이건 우리가 특별히 준비한 가장 공식적인 의상이라고요!
눈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크흠...보다시피 지금 날 화장시키려는 부하들한테서 도망쳐야 해서...
그러니 통신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마지막으로...
메리 크리스마스...잠깐, 왜 꼬맹이 녀석들까지 있는 거야? 설마 너희들까지 날 가지고 놀 생각은 아니겠지?!
……
...대체 어떤 옷일까?
명절이 가까워지니 망각자들도 긴장을 풀고 즐겁게 지내는 것 같네.
그럼 이제 우리 차례지?
왜 "이제"라고 하는 거야?
우리가 쓸데없는 시간을 들여서 늦게 업로드했잖아. 순서를 고려하면 첫 번째는 아닐 테니까.
그렇구나. 그런데 쓸데없는 시간이라니? 공연을 준비한다고 하지 않았어?
공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맞아. 그래서 준비는 다 해놓고 취소했어.
...너희들 바보지?
바보와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어. 이 동전처럼 말이야...
하지만 네 동전은 양쪽이 다 같잖아?
허…포뢰 주제에 이제 적응한 건가...
주제라니? 무시하지 마!
시간이 부족한 것 같은데?
아, 이런...
잠깐! 통신 중인 걸 잊었잖아!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이런, 어쩌면 좋지?
그럼 다른 말들은 다 생략하고, 셋 세고 같이 외치는 거야...
메리 크리스마스!
이런 뒤죽박죽 한 영상을 업로드할 줄은 몰랐네. 소피아가 없었다면 마지막까지 목적을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모두 즐거워 보여요.
맞아. 그리고 창위가 말한 공연이 어떤 건지도 궁금하네.
지휘관님의 말대로 다음에 가서 보면 되지.
그리고 리의 프로젝터는 다음 통신을 수신하기 시작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레이 레이븐 소대.
그레이 레이븐...흥...메리 크리스마스.
우리 통신이 몇 번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축복의 말과 안부 인사는 이미 많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특별한 걸 준비해봤어요. 그건 바로...카레니나가 만든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잠깐!! 비앙카! 그건 어떻게 찾아낸 거야?!
방에 있던데요? 방문을 잠그지도 않고 다니다니,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만든 물건을 함부로 가지고 나오다니!
비앙카가 손에 든 건 액자였는데, 그 액자에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 모두가 함께 맞춘 퍼즐이 들어있었다.
비앙카, 돌려줘!
카레니나의 계속된 항의에도 불구하고 비앙카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액자 뒤에서 편지 한 통을 꺼냈다.
퍼즐에 카레니나의 친필 서신까지 있어요. 나중에 가져다 주면 너무 늦을 것 같으니 제가 직접 읽어드릴까 해요.
비앙카...설마 진짜 그럴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카레니나, 왜 카메라를 향해 총을 조준하고 있는 거죠?
모두 먼지가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려!
――
카메라를 그대로 부셔버리다니...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비앙카가 있으니 괜찮겠지...아마도.
그럼 이다음은 마지막 통신입니다.
네. 지금 수신한 영상은 이게 다입니다. 답장하지 못한 사람은 아마 특별 구역에 있겠죠.
아쉬우면 나중에 직접 만나러 가면 되죠. 지휘관님.
아무튼 이게 마지막 영상입니다...
따로 권한을 신청해서 특별한 사람들을 불러봤어요.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라 부르다니, 이거 분량이 너무 적은 거 아닌가?
그럴리가요! 여기에 의장님, 기술 부문의 대장, 그리고 귀여운 연락 보조원인 세리카까지 있잖아요!
그렇게까지 말하니 부끄럽잖아요. 그래서 누가 먼저 할 건가요?
내 차례인가...
아시모프는 세리카의 질문에 답하면서 바로 스크린 앞까지 다가왔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그리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모든 멤버, 너희 덕분에 훌륭한 데이터를 많이 얻게 됐다.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주길 바란다.
그 말을 마치고 뒤돌아 나가버렸다.
앗, 잠깐만! 그게 끝이야?!
이미 가버렸어요...
아시모프는 원래 그러니 이다음은 의장인 내가 말하도록 하지.
아뇨. 다음은 제 차례에요. 하산 의장님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우리가 말하려는 것까지 다 해버리실 거잖아요!
그...그런가?
후후, 제 승리에요!
당신들은 여기에 없지만, 모두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위해 크리스마스트리를 준비했어요.
모두 손수 장식한 거예요.
그래서 이상한 장식물들이 걸려 있었나 보네...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위한 거라서 그랬구나.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야!
지금 너희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닐텐데? 카메라 반대편의 상대에게 말해.
크리스마스트리는 다른 직원들한테 소대 사무실에 옮겨 놓으라고 했어요. 확인해 보세요.
그럼 마지막 인사말로 다 같이 한마디 해요. 세리카.
메리 크리스마스, 그레이 레이븐 소대.
……그럼 난?
이게 마지막 통신입니다.
조금 슬프긴 하지만 의장님은 이런 걸 신경 쓰시는 분이 아니시니 다행이네요.
뭐라고 해야 할까...리 네가 이런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할 줄이야. 참나.
소대의 일원으로서 나도 뭔가 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리고 리브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던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야.
리의 꿈이었어요?
꿈이라기 보다 작은 소망이랄까.
책 이름은 까먹었지만 과학을 배울 때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어.
"두려워하지 마라. 모든 영혼은 하늘 위에 모여 있으니, 결국 우린 항상 함께인 것이다."
난 그 구절을 실천한 것뿐이야.
메일을 보내서 모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통신 영상을 녹화하라고 했어.
모든 그리움과 축복을 이 인공위성에 담았을 거야. 그것들이 통신 선로를 통해 시공간을 넘었고 오늘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거지.
이건 꽤 로맨틱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휘관님도 그 책을 좋아하실 거예요. 제가 찾아 드릴게요.
대놓고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적응이 안 되네요.
리가 고백을 한 뒤 모두들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빛나고 모든 사람들은 '영혼'이라는 위성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성이라고 생각되는 별을 가리켰다.
다들 자신의 가리킨 곳이 정확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손을 뻗어 그곳을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다들 그대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레이 레이븐의 소대원 세명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지휘관님.